장정일, ‘제국의 위안부’ 기소에 부쳐 (한국일보)

장정일 소설가

지난 11월 2일 서울에서 이루어진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의 철거를 요청했다.

2011년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총리간의 정상회담에서도 노다 전 총리가 똑같은 요구를 한 적이 있다. 한국 언론은 대사관 앞의 소녀상이 일본의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맺고 대사관을 설치하기로 했을 때, 두 나라는 대사관 지위와 주변 관리에 대한 각서를 교환했을 것이다. 대사관 주위는 대사관을 설치한 나라에 대한 공격이나 혐오가 금지된 공간이다. 그렇지 않다면 전 세계의 대사관 주위는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전장이 될 것이다. 알다시피 지구상에는 한일 두 나라와 버금가는 앙숙이 많은데, 모든 나라가 한국을 모범 삼는다고 생각해보라. 선전 포고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서로에 대한 우호가 가정(假定)되어야 하는 상징적인 공간이 대사관이다. 일본 총리의 요구는 외교 각서와 국제 외교 관례에 근거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아베 총리가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해 달라고 요청한 의도도 깊이 따져봐야 한다. 아베 총리의 요청이 진심이고자 했다면, 정상회의에 앞서 한국 정부와 한국민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선물을 가져 와야 했다. 하지만 그는 올 한 해 동안 일본 정부가 군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했던 ‘고노 담화’를 뒤집으려고 애썼던 장본인이다. 그랬던 만큼 자신의 요구가 어처구니없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저런 ‘쇼’를 한 것은 자신의 지지 기반을 넓게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은 일본 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이 일본의 목에 걸린 ‘가시’라고 여기지만, 아베와 같은 우익 세력에게는 ‘알박기’처럼 흥감한 일이다. 자국의 대사관 앞에 설치된 ‘혐오ㆍ적대’ 시설은 평범한 일본인마저 혐한으로 돌아서게 해주니 말이다.

여기에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했던 어떤 충고를 대입해 보자.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백성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것은 이루기 힘든 희망 사항이라고 한다. 그래서 제시한 차선책이 백성들로 하여금 군주를 ‘두렵게(공포)’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군주가 반드시 피해야 하는 최악은 백성들이 군주를 ‘경멸’하게 되는 사태라고 했다. 일본 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은 일본인들로 하여금 한국을 경멸하게 만든다. 위안부 문제의 진실과 상관없이 일본인은 한국을 ‘제 멋대로’라고 생각할 것이다. 일본인들로 하여금 한국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방법은 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하는 대신, 전국의 마을마다 하나씩의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는 것이다. 아마도 식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승만 이래 친일파가 득세해온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갈등은 민족주의를 동원할 수 있게 해주는 자산이다. 현재의 한일 정부에게는 소녀상이 필요하다.

2011년 12월 14일 처음 세워진 일본 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위안부 소녀상)은 커다란 일을 했다. 이 동상이 있었기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탄력을 받았고, 해외로까지 동상 건립이 이어졌다. 하지만 적당한 계기에 이 동상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나도 이제부터 친일파가 되는 것일까? 제대로 된 사회라면 더 많은 이견을 환대해야 한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 2013)는 올해 2월 법원으로부터 34곳을 삭제하라는 판결을 받고, 6월에 복자(伏字) 처리가 된 삭제판을 냈다. 그런데 처음에 지은이를 고소했던 위안부 관련 단체는 ‘복자 처리’가 자신들을 농락한 것이라며, 출판 중지를 요구했다. 일제 강점기에 복자 처리된 책이 꽤 나왔으나, 일제 경찰도 그것마저 트집 잡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검찰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저자를 기소했다. ‘제국의 위안부’가 민족ㆍ국가ㆍ남성이 독차지해 온 공식 역사와 다른 목소리를 내다보니, 위안부에 대한 고정된 상식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이견이 없으면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 사상이 생겨날 수 없다.

원문: [장정일 칼럼] ‘제국의 위안부’ 기소에 부쳐 (한국일보)

김규항, 배설


김규항

November 27, 2015 ·

배설

당연히 박유하의 견해를 비판할 수 있다. 학자가 책을 쓰는 것 자체가 비판과 토론을 위한 것이다. 다만 비판은 사실을 근거로 해야 한다. “자발적 매춘부”라는 말은 박유하의 말이 아니다.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일본 극우 세력을 비판하기 위해 박유하가 그들의 발언 중에서 인용한 말이다. 또한 비판과 토론은 민주적 공론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얼마든 비판하고 토론할 공간이 열려있는데 왜 법정에 내맡기는가. 그럴 거면 국정교과서는 왜 반대하며 세월호 사건도 법의 처분만 기다리면 되지 왜 광장에 모여 시위를 벌이는가. 박유하의 견해에 비판적일수록 오히려 더 검찰기소를 반대하는 게 정당한 태도다. 그런 분별이 없다면, 스스로 비판이 아니라 감정적 배설을 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다. 일본 극우세력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바로 그런식의 감정 배설을 위안부 문제를 뒤트는 데 애용해왔다. 좀더 냉정해지지 않으면, 좀더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 그들을 꿇릴 수 없다. 덧붙여, 근래 사회적 비판엔 끔찍한 수준의 성차별적 발언이 널리 용인되고 있는데 이글 역시 그렇다. 전체 비유도 그렇고.. 아버지는 딸을 미친년이라 욕해도 되고 뺨을 때려도 되는가? 말을 말자.

渦中日記 2015/11/27

아침에 나를 기소한 검사가 전화를 했다. 검찰에 오라 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전자 지문날인”을 위해서라고 했다. 처음으로 “범죄 혐의자”가 되었음을 절감했다.

만인의 비난을 받는 사태는 이번이 세 번째다. 하지만 조금씩 그 양상이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작년 6월에는 내 담벼락에 쏟아지는 댓글과 비난에 시달려야 했지만, 이제 그런 일은 없다.
어떤이는 내가 친구만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한 건 다른 의견은 듣지 않겠다는 것이냐고 힐난하지만 나는 들을 만한 의견은 듣는다. 두번의 경험에 의해 그런 비난의 대부분은 들을 만한 의견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고, 어떤 비난들이 있는지는 내가 원하면 트위터로 쉽게 볼 수 있다. 해명이 필요하다고 여겼던 부분들은 메모 중이다. 사태가 안정되면 쓸 생각이다.

김규항 선생님이 올려주신 정철승씨의 글을 보고 한숨이 나왔다. 나는 그런 이들의 글에 더이상 상처받지 않는다. 가부장제의식으로 똘똘뭉친 남성들의 비난이 내포한 폭력성에 대해서도 조만간 쓸 예정이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대한민국의 문제점은 그런 이들이 인기가 있다는 점이다.

고발 이후 모든 비난은 고발을 지탱했다. 특히 “박유하의 책은 문제 있는 책”이라는 암시를 흘려 대중을 호도했던 지식인들의 비판이야말로 기소를 이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지식인의 권위”는 때로 우아하게 폭력을 유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 내용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고발에는 반대한다”는 말은 지극히 자가당착적이다. 정말 비판하고 싶었으면 고발부터 비판했어야 했다. 그런 아이러니한 정황을 만든 것이 고발이라는 사태였다.

다음 주 수요일에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서구 언론들이 관심을 보여 오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서글프다. 위안부 문제를 미국에 호소하지 말고 직접 일본에 이야기하자고 나는 말해 왔는데, 정부와 지원단체가 기댔던 매체들이 이제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찾아오는 아이러니라니. 나는 이런 사태를 결코 원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 아사히신문칼럼은, 어제 성명에 언급하면서 “하지만 정말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은 한국인들”이라고 쓰고 있었다.

가능한 일이라면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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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안내 記者会見案内

<제국의위안부>검찰 기소관련 박유하교수측 회견

언론매체 각위

일시 : 2015년 12월2일(수) 오전 10시
장소 :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을 쓴 박유하 교수가 검찰기소와 2014년6월의 고발사태 전후, 그리고 그 이후의 정황에 대해 말합니다.

기소 이후 대부분의 언론들이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할머니들을 “자발적 매춘부” 로 썼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위안부들을 그렇게만 보아온 이들을 비판하기 위해 그들이 한 말을 인용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고발당시 원고측이 보도자료를 통해 내보내고 법원제출서류에도 사용했던 이러한 오해는 박유하교수가 법원제출서류와 그밖의 매체를 사용하여 반복적으로 설명했음에도 1년반 가까이 지나도록 시정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소라는 사태를 맞아 반복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이는 원고측 주장을 전혀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법원과 검찰에 특히 중대한 책임이 있다 하겠습니다.

그동안 박유하교수는 여러 정황을 감안하여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수단을 충분히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가처분재판부와 검찰에서 상식에 바탕한 결론을 내려주리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를 더 이상 가질 수 없게 되었음이 판명되었으므로 이제 언론을 향해 이 고발과 기소,그리고 책에 대해 설명하려 합니다.

2015년11월26일 무라야마담화의 무라야마 전수상, 고노담화의 고노전관방장관, 그리고 작가 오에겐자부로선생까지 동참한 일본에서의 성명을 받아 한 언론인은 박유하의 책이 “오독되었을 가능성” 을 제기했습니다.
위안부문제는 너무나 여러갈래로 착종되어 있어, 짧은 시간에 책과 고발사태에 대해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언론/학문의 자유가 없는 것으로 비치게 되어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마저 땅에 떨어지게 된 지금, 우선 시급하게 해명과 항의가 필요하다고 간주했습니다. 언론관계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2015년 11월 27일

세종대 박유하
뿌리와 이파리 대표 정종주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236676153025963&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11/26

오늘 오후에, 나에 대한 기소를 비판하는 성명이 나왔다.

이번에 중심에 있어준 건 와카미야 아사히신문 전주필이고, Masahiko Nishi 교수, 우에노치즈코 교수, 고모리요이치교수, 작가 나카자와 게이선생등이 각각 발벗고 나서 주었는데, 오에겐자부로 선생에 더해 무라야마담화의 무라야마전수상, 고노담화의 고노전관방장관까지 동참해 주었다.

일본 최고의 지식인들이, 입을 모아 내 책은 세간에서 말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얼마전에 통화했던, 원고가 된 한 할머님도, “당신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었다.

기사에 서명자 이름이 빠져 있어 첨부해 둔다. 오래오래 잊을 수 없을 이름들.

浅野豊美(Asano Toyomi, 아사노 토요미)、蘭信三(Araragi Shinzo, 아라라기 신조)、石川好(Ishikawa Yoshimi, 이시카와 요시미)、入江昭(Irie Akira, 이리에 아키라)、岩崎稔(Iwasaki Minoru, 이와사키 미노루)、上野千鶴子(Ueno Chizuko, 우에노 치즈코)、大江健三郎(Oe Kenzaburo, 오에 겐자부로)、大河原昭夫(Okawara Akio, 오카와라 아키오)、大沼保昭(Onuma Yasuaki, 오누마 야스아키)、小倉紀蔵(Ogura Kizo, 오구라 키조)、小此木政夫(Okonogi Masao, 오코노기 마사오)、加藤千香子(Kato Chikako, 가토 치카코)、加納実紀代(Kano Mikiyo, 가노 미키요)、川村湊(Kawamura Minato, 가와무라 미나토)、木宮正史(Kimiya Tadashi, 기미야 타다시)、グレゴリー・クラーク(Gregory Clark, 그레고리 클러크)、ウィリアム・グライムス(William Grimes, 윌리엄 그라임스)、栗栖薫子(Kurusu Kaoru, 쿠루수 카오루)、河野洋平(Kono Yohei, 고노 요헤이)、アンドルー・ゴードン(Andrew Gordon, 앤드류 고든)、古城佳子(Kojo Yoshiko, 코죠 요시코)、小針進(Kohari Susumu, 고하리 스스무)、小森陽一(Komori Yoichi, 고모리 요이치)、酒井直樹(Sakai Naoki, 사카이 나오키)、島田雅彦(Shimada Masahiko, 시마다 마사히코)、千田有紀(Senda Yuki, 센다 유키)、添谷芳秀(Soeya Yoshihide, 소에야 요시히데)、高橋源一郎(Takahashi Genichiro, 다카하시 겐이치로)、竹内栄美子(Takeuchi Emiko, 다케우치 에미코)、田中明彦(Tanaka Akihiko, 다나카 아키히코)、茅野裕城子(Chino Yukiko, 치노 유키코)、津島佑子(Tsushima Yuko, 쓰시마 유코)、東郷和彦(Togo Kazuhiko, 도고 가즈히코)、中川成美(Nakagawa Shigemi, 나카가와 시게미)、中沢けい(Nakazawa Kei, 나카자와 케이)、中島岳志(Nakajima Takeshi, 나카지마 다케시)、成田龍一(Narita Ryuichi, 나리타 류이치)、西成彦(Nishi Masahiko, 니시 마사히코)、西川祐子(Nishikawa Yuko, 니시카와 유코)、トマス・バーガー(Thomas Berger, 토마스 버거)、波多野澄雄(Hatano Sumio, 하타노 수미오)、馬場公彦(Baba Kimihiko, 바바 기미히코)、平井久志(Hirai Hisashi, 히라이 히사시)、藤井貞和(Fujii Sadakazu, 후지이 사다카즈)、藤原帰一(Fujiwara Kiichi, 후지와라 키이치)、星野智幸(Hoshino Tomoyuki, 호시노 도모유키)、村山富市(Murayama Tomiichi, 무라야마 도미이치)、マイク・モチズキ(Mike Mochizuki, 마이크 모치즈키)、本橋哲也(Motohashi Tetsuya, 모토하시 데츠야)、安尾芳典(Yasuo Yoshinori, 야스오 요시노리)、山田孝男(Yamada Takao, 야마다 다카오)、四方田犬彦(Yomota Inuhiko, 요모타 이누히코)、李相哲(Lee Sangchul, 리상철, Li Sotetsu, 리 소테츠)、若宮啓文(Wakamiya Yoshibumi, 와카미야 요시부미)  (54명)

사무국:西成彦( 니시 마사히코) [email protected]

http://news.donga.com/Inter/3/02/20151126/75041382/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6093969750848

渦中日記 2015/11/25 강의가 없었던 날.

강의가 없었던 날.

하루종일, 제 시간에 식사조차 못할 정도로 한국과 일본에서 진행중인 성명작업을 지켜보는 일과, 전화와 메일과 이런 저런 연락에 시달렸다.
일본에서의 성명은 내일 오후에 동경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다고 한다. 회견에 나서 줄 이들은 와카미야 아사히신문 전 주필, 여성학자 우에노치즈코 교수, 일본근대문학자이자 “헌법9조를 지키는 모임”의 사무국장을 맡아온 고모리요이치 교수가 될 듯 하다.

처음으로, 일본언론 중 아사히신문의 인터뷰에 응했다. 다른 언론들에는 다음주 기자회견(12월 2일 오전 10시.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을 기다려 달라 했지만, 아사히신문은 책을 낸 곳이기도 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발 후 받았던 형사조사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 때 느꼈던 수모의 기억이 떠올라 잠시 고통스러웠다.

뉴욕타임즈 한국인기자에게서 인터뷰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내 사태가 “인권문제”로 보이고 그래서 관심이 있다 해서 응할 생각이 들었다.
고발 이후 짓밟히고 실제로 명예를 훼손당한 건 위안부할머니가 아니라 나다. 내 책을 읽고 할머니들한테 “매춘부!”라고 손가락질했을 이는 아무도 없었을 거라고 믿는다.
나는 그렇게 말해온 이들과 그런 차별의식에 동조한 이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언급했을 뿐이다.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다 해서.

저녁 무렵에, 비로소 기소장을 받았다. 내용을 읽고 그만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고측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위안부문제 연구자가 아닌 그들이 어떻게 내 책이 거짓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일까.
결국 그들은 누군가의 주장을 믿고 대리싸움을 할 수 밖에 없는데, 박유하라는 개인보다는, 지원단체라는 오랜 권력, 힘을 가진 “기존”연구, 여론과 국가라는, “다수의 주장”을 선택한 셈이다.

기소장에 대해 썼던 메일 일부를 옮겨 둔다.
이제 저녁식사를 해야겠다. 다행히 구토증세는 없어졌다..(걱정해 주신 분들,감사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이 문제에 대한 과거의 이해를 그냥 적고, <박유하의 책은 그런 기존인식을 부정하고 있으니 범죄>,라는 논리입니다.
그런 논리가 성립한다면 학자는 누구나 기존인식만을 말해야 하고 국가를 대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저로서는 물리적강제연행을 부정했으나 구조적 강제성을 강조했고 실제로는 위안부연구자들도 그점에서 일치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그렇다고는 말하지 않고
제가 업자의 책임을 강조한 것을 두고 <국가책임 없다>(이것을 법적책임주장을 비판한 것과 연계시켜 <박유하는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고 있다!>고 하는 거지요)
고 말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왜곡하고 있으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입니다.

지적된 내용 대부분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이처럼 이중삼중의 비틀림들에 의한 억압이 제가 처한 상황입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5603783133200

渦中日記 2015/11/23

며칠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실망과 절망과 분노와 슬픔과 위안이 교차했던 시간들. 나쁜 기억은 내 안에만 기록할 생각이지만, 한가지만 써 두려 한다.

기소 다음날 아침, 대일피해자 보상문제분야에서 오래 일해 온 한 변호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와는 어떤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 차 한잔 한 사이일 뿐이다. 그는 나의 책의 취지를 이해한다면서, “해결하고 화해하자는 것이니, 당신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했다. 뭐냐고 물으니 일본외무성이 뭔가 자료를 감추고 있는데 그걸 공개하라는 요구를 한국에서 기자회견이나 글로 주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 대해 요구할 것이 있으면 한국이나 외압동원이 아니라 직접 일본을 향해 말하는 것이 나의 방식이니 그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그럼 재판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나눔의집과 가까운 사이다. 그들의 생각이 새삼 명백히 보이는 듯 했다. 함께 하지 않는 자에 대한 처벌. 나에 대한 고발은 분명 그런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런 요구를 받아 들였다.

암담한 건 기소 다음날 아침에 전화해서 나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 자체가 아니다. 그런 감성을 가진 그가, “약자”를 대변하는 이로 자신을 정의하고 또 보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진부하리만큼 횡행해 왔다는 것. 그게 어쩌면 우리사회의 본질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

내 사태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성명서 작성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조만간 발표될 듯 하다. 두군데가 될 것 같다.

나는 나대로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정한 날, 냉전 종식후 태어난, 1992년의 문민정부를 상징했던 김영삼 대통령이 서거했다. 위안부문제는 문민정부의 출발과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이어진 20여년에 대해 고찰한 책으로 인해 나는 국가에 의해 “범죄”의 혐의를 받게 되었다.

며칠동안, 무기력과 나를 포함한 세개의 의견표명을 위한 작업과 예정되었던 일정을 펑크내지 않기 위한 긴장의 무게에 짓눌렸다. 오늘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는데 그러자 구토가 시작되었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구토할 때가 있는데 컨디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별로 없던 현상이 일어나는 걸 보니 생각이상으로 충격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기소 축하합니다. 유죄가 되기를 빌겠습니다” 라고 일본어로 트윗에 쓴 걸 봤다. 아마도 재일교포일 것이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눈의 여왕”얘기를 떠올렸다. 세상엔, 무언가가 눈에 박힌 채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눈에 있는 거울조각은 씻겨내려질 수 있을까. 게르다와 카이의 이야기는 늘 내게 많은 시사를 준다.

(며칠전 포스팅에 달아주신 격려의 댓글과 좋아요에 감사드립니다. 당분간 일방적인 글쓰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日本の友人たちへ
ご心配をかけています。大丈夫ですから心配しないでください。少数ではありますが、韓国人友人たちにも支えられています。検察の暴挙は検事の考えに過ぎません。時間がかかるかもしれませんが、なんとかこの難関を打開していきたいと思ってます。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4594109900834

조석주, 이 책은 여러분을 꽤나 불편하게 할 것이다.

“무언가 하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을 오해하는 백 가지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어느 선생님의 말씀이다. ‘우리 농업 지키기 운동본부’에서 아이들 그림책을 낸게 꽤 있나 본데, 우리 집에도 몇 권 있다. 아래의 첫번째 사진은 그 중 한 권인데, 우리 나라산 곡식이 왜 몸에 좋은가를 재밌는 그림동화들로 이야기해놓은 것으로 일곱 살 딸래미가 좋아하는 책이다. 나는 사실 이 책 내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첫째로, 어떤 곡식은 무엇에 좋고 어떤 곡식은 다른 무엇에 좋다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중 과학적 근거가 별로 없는게 꽤나 보인다. 둘째, 외국산 농산물과 우리산 농산물을 대비하면서 전자는 건강에 나쁘고 후자는 건강에 좋다는 주장을 지나치게 과장한다. 예컨대, 어떤 공주는 외국산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몸에 가스가 차서 완전 뚱뚱하게 되었는데 도대체 방구가 안 나와서 해결할 수가 없다가 우리 나라 곡식들을 먹고 방구를 많이 뀌니 다시 날씬해졌다. 뭐 이런 스토리들이다.

근데, 아직 한글을 잘 못 읽는 우리 딸이 이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나는 그냥 재미있게 읽어준다. 공주가 방구뀌는 소리도 리얼하게 내주고 딸래미 배도 누르면서 가스빠지는 묘사도 하면서. 어떤 때는 책 내용에 대해 커멘트도 하지만 많은 경우 아이가 재미있어 하면 그냥 그대로 놔둔다.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어차피 이 책은 우리 딸이 앞으로 읽을 수많은 책 중의 하나이고, 이 책의 관점은 앞으로 우리 딸이 살면서 접할 수많은 관점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신이 책을 쓰지 않는 이상 세상에 ‘틀리지’ 않는 책은 없다. 한 권의 책을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올바르게’ 만든다 하여 그게 얼마나 깊이 얼마나 넓게 얼마나 시간을 초월하여 오랫동안 ‘올바를’ 수 있겠는가? 쌀을 수출했다고 쓴 책도 있고, 쌀을 수탈했다고 쓴 책도 있으면 사람들이 그 둘을 다 읽고 토론해가면서 수출의 의미와 수탈의 의미 그 각 주장의 맥락을 짚으며 일제하에 있었던 일들을 판단해 간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수출이라고 쓰는 책이 더 많이 읽히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혹은 수출도 아니고 수탈도 아닌 새로운 단어를 사용한 책도 나오게 된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사람들이 ‘수출’과 ‘수탈’ 중 꼭 어느 것이 올바른가를 토론하여 오직 ‘수출’만을 쓰고 ‘수탈’이라고 쓴 책은 없애 버린다면, 이후 세대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99프로 올바른 한 권의 책을 읽기 보다는, 다양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틀린 책 백 권을 읽는 사람이 훨씬 세상을 넓고 깊게 지속적으로 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교과서는 한 권일 필요가 없다. 나는 내 딸이, 내 아들이 진보교과서를 가르치는 학교를 가든, 보수 교과서를 가르치는 학교를 가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딸에게 아들에게 특정한 관점의 책은 아예 읽지 못하게 한다면 나는 반드시 상관할 것이다.

오늘 아침은 우울한 소식으로 시작하였다. 검찰이 기어이 박유하 선생님을 기소하였다 한다. 그리고, 기소를 보도한 기사의 여파인지 박유하 선생님은 또 항의전화에 시달리셨다 한다. 아마도 국정교과서를 반대하기 위해 교육부에 항의전화한 누군가가 박선생님에게 항의 전화를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욱 우울해진다.

더 많은 분들이 ‘제국의 위안부’를 읽어 보셨으면 좋겠다. 아마도 여러 분은 그 책의 주장에 백프로 동의하지 않으실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근데, 돌이켜 보면 내 평생 읽어본 책 중에 내가 백프로 동의하는 책은 미적분학과 선형대수 딱 두 권밖에 없다. 사람이 살아있는 경험세계를 다루는 어떤 책도 백프로 동의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제국의 위안부로부터 많이 배웠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중첩된 모순으로서의 위안부 문제와 그것이 드러난 많은 사실들에 대해 배웠다. 그래서, 여러분께 권한다. 이 책의 관점에 동의하는가란 질문을 던지시기 보다 이 책으로부터 배울 것이 없는가란 질문을 던져주시기 바란다. 아니, 본인이 배울 것이 설사 없더라도 다른 독자들도 배울 것이 없을까란 질문을 던져 주시기 바란다. 학술적 연구의 목적은 관점의 주입이 아니라 지식의 확대다. 따라서 학술적 연구의 공익이란 그 관점의 보편성에 의해서 판단되는게 아니라, 의미있는 지식의 발견내지 재편성이라는 영역에서 판단된다.

또 하나, 아마도 이 책의 내용은 여러분을 꽤나 불편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정확히 이 책의 저자와 출판사가 형사처벌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불편하지 않은 관점과 책에만 저술과 출판의 자유를 줄 것 같으면, 그런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지 않아도 된다. 그때그때 다수결로 혹은 다수의 위임받은 법관이건 누구건 판단해서 하면 된다.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출판의 자유가 필요한 ‘공익적 이유’는 그러한 자유가 우리를 끊임없이 불편하게 만드는 새로운 관점과 사상과 학술을 시도하게 하고, 그것이 곧 우리 사회가 시대와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게 만들 다양성을 확보해 주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씀드려서, 두 가지 공익이다. 이 책의 구체적 학술적 내용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식을 자극하는 공익. 둘째, 이러한 시도들을 물리적으로 억제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의 장기적 발전에 기여할 공익. 그리고, 다시한번 물어봐 주셨으면 좋겠다. 이 책의 관점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물어봐 주셨으면 좋겠다. 이 책은 정말 재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이런 책을 쓰는 연구자는 이런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는 형사처벌을 받아야만 하는 것인가? 그냥 불편하다고 틀렸다고 혹자들은 다른 책을 쓰면서, 그렇게 논쟁해가면 안 되는 것인가? 그것만으로는 정녕 부족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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渦中日記 2015/11/19 – 起訴

검찰이 나를 어젯밤에 기소했다고 한다.
조금 전에 간접적으로 알았다.

나눔의집에서 내보냈다는 보도자료를 우선 올려둔다.

検察が、私と出版社を起訴したようです。
———

보도자료-나눔의 집

<제국의 위안부>저자 박유하를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님들이 동부지검에 2014년 6월10일에 고소를 했습니다.

나눔의 집 할머님들은 저자 세종대 박유하 교수가 책에서 할머님들을 <자발적 매춘부>, <일본군의 동지이자 협력자>로 묘사하여 모욕했다고 하여, 출판물에 의한 <일본 군’위안부’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를 했습니다.

동부지방검찰청은 2015년 11월 18일 저녁, 저자 박유하와 출판업자 정종주를 기소(불구속)했습니다.

그리고 저자 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 책이 동부지방법원으로부터 출판금지가처분을 받은 상태에서 문제된 내용을 “ㅇㅇㅇㅇㅇ” 하여 출판하고, 일본어판을 출판하는 반인권적 행위를 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법적 판결도 무시하는 반복적인 범죄 행위로 할머님들을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 했습니나.

권방문 검사(02-2204-4440)
사건번호 서울동부지방검찰청2014형제 25099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2216783471900

渦中日記 2015/11/18-2

광고하는 김에 하나 더.

일본에서 받은 상에 대해 한국언론은 보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딱 한군데 보도해 준 곳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분명, 포커스뉴스의 신윤석 국장님께서 마음 써 주셨을 것 같다.

실은 일본에서 주는 상을 받아야 할 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지난주 시상식에 불참하면서 보냈던 메시지에 쓴 것처럼, 수상하는 일은 이 책을 지지하고 응원해 준 여러 일본인들의 “마음”을 받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출판사와 편집자를 포함한 그 마음을 받아들고 연대하는 일이, 한일관계개선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한 것이 상을 받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들은 대부분 일본의 문제를 잘 인식하는 이들이었으니까.
한 언론인은 내 책이 “자본과 군대의 이동이 여성의 상품화를 강화시키”는 구조를 지적한 책이라고 정확히 읽어내면서 “일본을 향해서는 어느나라나 다 한 일이라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말하지 말고, 제국적팽창을 넘어서는 사상을 만들어내라고 말하”는 책이라고 정확히 칼럼에 쓰기도 했다.

아무튼, 일본쪽도 그렇지만 특히 페북에서 너무 많은 페북친구들의 옹호와 격려와 도움과 위안을 받았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두고두고 갚을 수 있을텐데.

http://m.focus.kr/view.php?key=2015102200172511519&share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1824696844442

渦中日記 2015/11/11

오늘은 원래는 아시아태평양상 수상식 날이었다.
하지만 일본에 가는 대신, 우연히도 겹쳤던 네번째 민사재판에 참석했다. 재판은, 참석자와 쌍방이 제출한 서류를 확인 후 향후 일정을 잡기만 하고 10분만에 끝났다.

민사재판 마지막 날은 12월16일로 잡혔고, 1월에 선고가 내려지게 되었다. 조정위원회에서 검찰로 다시 돌아간 형사소송도 조만간에 기소여부 결정이 날 것이다. 약 1년 반만에, 또하나의 전환점을 맞게 될 것 같다.

법원으로 가기 전 아침에, 저녁에 있을 수상식에서 편집자가 대독해 주기로 된 스피치를 써서 보냈다.

오늘은 빼빼로 데이라는데, 내게도 앞으로는 해마다, 바다 하나 사이에 두고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이 극명한 대조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일본어지만 기념으로, 오늘 아침에 주최측 언론사인 마이니치신문에 난 “심사평”과 스피치를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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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ジア太平洋賞 受賞スピーチ(2015・11・11、朴裕河)

このたびは『帝国の慰安婦』にアジア太平洋賞特別賞を授けてくださり、心から感謝しております。11月11日の朝、ソウルでこのスピーチを書いています。本当は日本に赴いてご挨拶すべきでしたのに、足を怪我して行けなくなったことをまずお詫び申し上げます。
受賞のお知らせを聞いたとき、嬉しいながらも複雑な心境でありました。というのも、みなさんのご存知の通り、現在この本は韓国で、慰安婦支援団体によって、慰安婦の名誉を毀損したとして訴えられているからです。そのような状況の中にいるので、賞を受け取るべきかどうか、少し迷いました。ひとつには、わたしの意図とは別であるにしろ、原告として名前を連ねているおばあさんたちを無視したとみなされるだろうということ、もうひとつは、「日本」の賞であるだけで「日本の味方をしている、日本政府を代弁している」とする、原告側やその周辺人物の主張を証明するものと見られることが分かっていたからです。
しかし、そうした迷いの時間は長くありませんでした。わたしは、ある選択をめぐって迷うとき、そのことが発生させるであろう様々なことが、わたしたちの守るべき、考慮すべき、モラルと本質的に関係があるかどうかということを考えながら決めてきました。そして、今回の受賞は、誰かを傷つけるものでは、本質的にはないと考えたからです。そして私への評価や裁判に不利か有利かは、受賞自体が決めるのではなく、受賞を眺める人々の良識が決めるもの、と考えたからです。そして、その結果を、わたしは引き受けるつもりです。さらに言えば、現在私に向けられている批判より、わたしの拙い本を高く評価してくださった方々の「心」を受け止めることこそが、おそらく閉塞の中にある今の時代を切り開く方向のものと信じているからです。

この日本語版は、私が書きましたが、もはや私だけの本ではないと思っています。装丁を見たとき、とても嬉しかったのですが、装丁をデザインしてくださった方は、わたしがこの本に込めた意図を、本当に的確に受け止めてくださったと思っています。一輪の、韓国では国の花となっている、可憐なむくげの花は、少女であれ大人であれ、不遇な時代に生まれて耐え忍びながら生きた慰安婦の方々、そして砲弾の飛び交う中で亡くなった方々、そして病気で与えられた命を全うできずに亡くなった方々の悲しみと強さを、あますところなく表現していたからです。本の編集者である岡恵里さんは原稿を読んでいて涙が出そうになったと言ってくださり、日本人の最初の読者であるお二人にそのように受け止められたことは大きな励みになりました。そして、その二人をはじめ、出版するまで、そして出版してから多くの方たちの理解と気持ちが込められているわけですから、この本はもはやわたしだけ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書評や個別の感想の形で高く評価してくださった日本の方々との「合作」のようなものです。ですから、この賞はそうした方々と「一緒に」受け取るものと考えています。

日韓基本条約さえも締結まで14年かかりましたが、慰安婦問題は、はや四半世紀になろうとしています。この二十数年間わたしたちが経験してきたことが、後日どのように受け止められるのか、わたしたちはまだ分かりません。しかし、この本を評価してくださった方々の気持ちこそが今後を開いていけるとわたしは確信しています。わたしの本がよいからではなく、みなさんの気持ちをわたしがよく分かっているからです。様々な批判にさらされながらも、自分が考えていることを書いてこられたのには、ひとえにわたしが信頼する方々が支えてくださってきたからにほかなりません。
思えば数十年前に出会った日本人の方々がそうした信頼を最初に植え付けくれました。様々な事柄や人々が存在するなかで、信頼すべきものを見つけ、 大切にしていくことこそが世の中を平和に導いていくものと考えます。過去を考えるときも今を考えるときも。
悪い記憶や経験をみつめながらもそれに振り回されず、暗黒の中でも一筋の光のようなものを見つける心を維持し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それこそが、今を生きるわたしたちが次の世代のためにすべき、もっとも価値のあることと考えます。今後もそうした姿勢を維持し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ほんとう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2015年11月11日
民事裁判4回目の日の朝に、ソウルにて、 朴裕河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28221010538144

渦中日記 2015/11/8

주말엔 사실, 역사니 사회문제 같은 것보다 삶과 우정과 사랑,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너무나 “사건”이 많아 그럴 여유를 빼앗는다. 불과 2박3일로 일본에 다녀왔을 뿐인데도, 돌아와 보니 아이유와 성추행과 국방부의 교과서참여라는 “사태”가 발생했었다. 나역시도 “사건”을 겪고 왔다.

아이유사건이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건 나 역시도 “왜곡해석”으로 인한 적의를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워해야 할 대상은, 전쟁에 참여한 사람이 아니라 전쟁을 일으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의가 살의(殺意)가 된 장면에 맞닥뜨릴 때, 그런 나의 생각이 옳은지 의심하곤 한다. 오늘은 스카프를 살인도구로 사용하고 싶어하는 이를 만나, 이재명시장이 나를 공격했을 때 내게 겨눠지던 칼과 총사진들을 오랫만에 떠올렸다.

생각하면 “업자”의 문제를 제기했던 것도, 국가정책(중심담론)에 자신의 잔혹성을 감추고 참여해 이익을 얻었던 이들의 문제를 말하고 싶어서였다.
재벌을 비난하는 오늘의 노동자 안에도, 국가를 비난하는 오늘의 국민들 안에도, “그들”은 있다..

(학자들에 대한 반론, 연재하자고 연락해 온 곳이 있어 당분간 쉽니다. 정식연재를 시작하게 되면 다시 올리겠습니다.
어젯밤에 수많은 분들이 친구신청해 주셨는데 친구정리를 해야 해서 많이 기다리시게 될 지 모릅니다..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26756497351262

한일회담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한일회담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한국정부는 일본과 나눈 얘기를 다 말하지 않았다. 이 정부는 국민에게 감추는 게 너무 많다. 세월호 때 드러난 것처럼, 해결을 하지도 못하면서 정보를 독점한다.

“뒤통수친다”는 생각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정부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일본은 한번도 그들의 “원칙”을 바꾼 적이 없다. 어젯밤에 아베수상이 일본의 TV에 나가 “원칙을 고수한다”고 강조했던 것도 그 일환일 뿐이다.
한국언론들은 듣고 싶은대로 들었지만, 아베수상이 했다는 얘기를 내 이해대로 번역해보면 이렇다

“솔직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일본의 세계유산등재 때 징용문제로 한국이 용어사용에서의 약속을 뒤집은 일, 산케이 지국장문제,수산물수입금지든 그동안의 불만을 다 말했다.)

“해결을 위한 협의를 가속화한다”
(일본이 요구한대로 대사관 앞 소녀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미국등에서의 일본 비방과 소녀상 설치를 자제한다고 합의하면 사죄/보상을 할 수 있다. )

“차세대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한다”
(위안부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이 문제는 더이상 문제삼지 않는다. 과거에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더이상 묻지 않겠다고 했는데 언제까지 말을 바꿀 것인가.)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511022228125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24204917606420

이번 정부에서는 처음으로 한일회담이 열린다

이번 정부에서는 처음으로 한일회담이 열린다. 나는 외교전문이 아니지만, 최근 3년간 대일외교는 내가 보기엔 빵점이다. 심지어 오늘도 그 수준을 유지중이다. 손님을 불러 대화를 하는데 식사대접을 안 한다는 건 어느나라 풍속인가. 우리의 대통령은 영어나 불어는 가능한 것 같지만 외교나 인간심리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대통령은 위안부문제 해결이 먼저라면서 그동안 대화를 거부해 왔다. 하지만 해결을 하려면 진작 만나 대화해야했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도 회담을 하는 건 아마도 미국에 등떠밀린 결과일텐데, 이제, 한일 FTA에도 부정적이었던 입장을 바꾸어, TPP참여문제를 일본에 부탁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자존심은 좋지만,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자존심은 오히려 자신을 비굴하게 만든다. 오늘, 위안부문제에서도 기대하는 대답을 듣지 못할 게 분명하다.

덧붙여 말해 두자면, 대부분의 언론이 “일본이 1965년에 (보상은)끝났다면서 위안부문제해결을 거부하다”는 식으로 보도했지만, 그건 정확하지 않다. 일본이 “원칙”을 말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해결할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최근 국장협의에서 주로 논의된 건 소녀상문제인 듯 하다.

상대의 생각과 주장을 정확히 알아야 대응도 제대로 할 수 있다. 거부하든 받아들이든. 오늘 대통령은 그 이야기를 들을 지 모르지만,아마도 대답을 못할 것이다. 소녀상은 정대협이 만들었지만 이미 “국민 소녀”가 되었기 때문에.

http://m.ichannela.com/news.do?mode=viewsec&cid=11&nid=374948&news_date=20151028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23558134337765

渦中日記 10/31 – 젊은 역사학자들에게 답한다 1

지난 봄에 <역사문제연구>에 게재되었던 젊은 역사학자들의 비판에 대해 답한 글입니다. 긴 글이라 조금씩 나누어 올려 둘 생각입니다. 이 짧은 연재가 끝나면, 한꺼번에 읽을 수 있도록 노트에 링크를 만들어 두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재승 교수에 대한 반론도 올릴 생각입니다.

지난번에 올린 재일교포 정영환교수에 대한 반론도 그렇지만, 이런 모든 논쟁들이 고발 이전에 이루어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습니다. 시간은 흘러가고, 이제 올해도 두 달 밖에 남지 않았군요.

———-
<1>
1. 비판 방식에 대해

1) 허위 적시

『역사문제연구』33호에 집담회 「젊은 역사학자들, 『제국의 위안부』를 말하다」(
『역사문제연구』33호, 2015.)가 게재되었다. 이들의 비판 역시 재일교포학자 정영환과 마찬가지로 오독과 곡해 그리고 적의로 가득한 내용이었던 것과,( 정영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1965년 체제의 재심판」, <역사비평>111, 2015.) 한 학자의 고민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거친 말들이 정제되지 않은 채로 학술지에 게재된 데 대해 먼저 깊은 유감을 표한다.
비판은 전체 문맥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각 기술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는지를 살피며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내가 책에서 비판했던 정대협에 대해서는 “맥락까지”(앞의 집담회, 561쪽. 이하 쪽수만 표시) 살펴야 한다고 말하면서 나의 책에 대해서는 맥락은커녕 쓰여 있는 내용조차 없는 것으로 취급한다. 이들의 비판이 논지에 대한 구체적인 반박이 아니라 인상비평에 치중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위안부 문제 연구자가 아니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겸허해야 했다. 그러한 성급함과 은폐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정영환에 대한 반론도 참조해 주기 바란다.( 박유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1965년체제」, <역사비평>112, 2015.)

이들의 비판이 얼마나 성급한 오독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를 하나만 먼저 제시해 둔다. 나는 『제국의 위안부』 2부 3장, 즉 위안부의 재현의 문제를 다룬 부분에서 애니메이션 『소녀 이야기』의 문제와, 한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변해 간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소녀 이야기』의 경우 할머니의 증언이 애니메이션에서 어떤 식으로 변형되었는지를 지적한 것이니 이 부분이 할머니들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또 후자에 관해서도, 나는 “그런 변화는 의식적인 거짓말이라기보다는 듣는 이들의 기대가 그렇게 만든 측면이 크다”라고 썼다. 이어서 “그런 의미에서는 위안부의 증언에 차이가 난다고 해서 위안부들만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또 그런 증언을 듣고 싶어 했던 것은 오히려 우리 자신이라고 해야 한다. (…) 피해자임을 확인하기 위한 민족 담론은 표면적인 피해 인식 외의 모든 기억을 말살시키려 한다”( 박유하,『제국의 위안부』, 뿌리와이파리, 2015, 133-134쪽.)라고 썼다.

그렇게, 이 부분의 비판의 대상이 우리 자신이 피해자임을 확인하기 위한 민족 담론임을 분명히 하면서,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영원히 안 볼 수 있도록 해주”기를 바라는 우리 안의 욕구에 대한 언급에 이어 이렇게 썼다. “그러나 70세가 되어가도록 그 이전의 자신의 모습을 직시할 수 없다면, 그건 과거의 상처가 깊어서라기보다 상처를 직시하고 넘어서는 용기가 부족해서라고 할 수밖에 없다. 혹은 우리가 아직,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보듬는 자신에 대한 사랑 대신 타자에게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구가 더 큰 미성숙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가.”(제국의 위안부, 뿌리와이파리, 2015, 134)라고.

여기서 문제 삼고 있는 대상이 위안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자 해방 후 한국이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젊은 학자들은 “위안부경험을 했던 사람들한테 이런 반성과 비판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 무리가 있는데도 저자는 이 비판을 그녀들에게 집중하죠. 예를 들어 <70세가 되어가도록 과거의,(중략)미성숙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는 표현처럼요. 용기의 부족, 미성숙 등으로 몰아세우고 있어요.”(550)라면서 비난한다.
사실 이 부분은 『제국의 위안부』를 고발한 이들이 첫 번째 고발장에서 적시한 109곳 중의 하나였다. 지원단체는 이후 내가 반박문을 제출하자 지적 내용을 반으로 줄이고 고발 취지를 바꾸기까지 했는데, 이 부분은 그때 사라진 지적부분이다. 젊은 학자들 중에 소송문서작성에 직접 관여한 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거기서 문제 삼은 내용 역시 이들의 주장과 같았다.
해방 후 70년이라는 시기에 할머니가 70세라면, 해방 무렵에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당연히 위안부 체험을 했을 리도 없다. 이 집담회는 이런 식의 웃지 못할 오독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들은 『제국의 위안부』 33쪽에 나오는 웃고 있는 이미지의 사용을 문제 삼으며 사진 위치가 의도적(554)인 것이 명백하다면서 비겁하다는 식의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는데, 33쪽은 물론 32쪽에도 34쪽에도, 이들이 지적한, 위안부의 숫자가 20만명보다 적고 상대한 숫자도 적고 연애도 하는 존재였다는 대목은 이 사진이 실린 부분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미지 사용 위치는 출판사가 정한다. 명백히, 나를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로 몰아가기 위한 허위이자 근거 없는 비방이다. 이들의 비판은 유감스럽게도 정영환에 못지않게 악의적이고 그 왜곡 수준이 범죄적이다. 또한 『소녀 이야기』에 대한 나의 지적을 두고, 내가 없는 얘기를 한 것처럼 말하면서 비웃지만, 내가 이 애니메이션을 보았을 때는 분명히 있었다. 나는 근거 없는 비판은 하지 않는다. 또 나는 『제국의 위안부』의 비판에 대한 반박에 “표현의 자유”(543) “학문의 자유”(543, 572, 575)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옹호해야 하는 문제적인 기술 자체를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이들은 하지도 않은 행위를 한 것처럼 말하면서 허위에 입각한 비방에 치중한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22584924435086

국민세뇌는 국정교과서만 하는 건 아니다.

국민세뇌는 국정교과서만 하는 건 아니다. 전시관도 기념비도, 대개는 “하나의 기억”을 주입한다. 그리고 중요한 건 “하나의 기억”인지 여부가 아니라, “어떤” 기억인지, 배경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기억인지 여부에 있다.

1970년대 이후, 전국곳곳에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는 9살짜리 이승복의 동상이 세워졌었다. 이제는 80퍼센트 이상이 철거되었다는데, 그로부터 40년후, 2010년대에는 위안부”소녀”상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 그 상들은 어떤 운명을 걷게 될까.

문제는 상 자체가 아니라, 당사자를 넘어선 “생각과 욕망”들이 상에 담기면서 영웅화되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고요한 추모와 슬픔이 자리할 공간이 사라진다는 데에 있다. 그곳에 있는 건, 희생된 소년/소녀들의 아픔이 아니라 형해화된 어른들의 욕망일 뿐이다. 교과서든 기념비든. 국가든 민간이든.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20516641308581

渦中日記 2015/10/22

그저께저녁, 감기로 골골거리고 있는데 와세다대학에서 연락이 왔었다. 와세다에서 주관하는 “이시바시탄잔 기념 저널리즘 대상”수상자로 결정되었다고.

얼마전에 쓴 것처럼 지난번 마이니치신문사의 수상소식에 대해서는 좀 복잡한 심경이었지만 이번 소식은 순수하게 기쁜 마음이 들었다. 소감을 써 보내라기에 그 이유를 썼다.

실은 마이니치의 경우 수상식에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밝고 화려한 장소에 나가 웃는 얼굴을 할 기분은 아직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지인의 의견에 힘을 얻었고 생각을 바꾸었다. 나는 결코 위안부할머니를 모욕하지 않았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한점 부끄럼이 없다. 그래서 수상에 대해서도 당당해지기로 했다. 할머니들도 언젠가는 오해를 풀어 주시리라 믿는다. 수상 덕분에 이 책을 읽는 일본인들이 한사람이라도 더 늘어난다면 위안부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면 되었지 결코 방해가 되는 일은 아니라는 확신에도 변함이 없다.

감기가 나으면 그동안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셨던 페친여러분들과의 만남도 가져야겠습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여러분들께 감사 전하면서 보고드립니다.

<소감>

“대학원에서 배웠던 와세다대학이 주관하는, 그것도 이시바시탄잔을 기념하는 상을 수상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시바시탄잔은, 반전, 반군대, 식민지 포기, 소일본 주의를 지향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국가/제국의 욕망에 개인이 어떤식으로 동원되고 착취당하는지를 생각해 본 책이니, 의도하지 않았으나 이시바시의 사상과 접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경계를 넘어, 이시바시와 같은 사상을 계승하고 공유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작금의 동아시아가 불안정한 만큼 간절히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집필에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大学院で学んだ早稲田大学からの、しかも石橋湛山の名を冠する賞を受賞することになってとても嬉しく思います。石橋湛山は、反戦、反軍、植民地放棄、小日本主義を目指しました。「帝国の慰安婦」は、国家/帝国の欲望に個人がどのように動員され、搾取されるのかを考えてみた本ですから、石橋湛山の思想に図らずも接しているのかもしれません。境界を越えて、石橋のような思想を受け継ぎ共有することが本当に必要と、現在の東アジアが不安定なだけに切に思います。そうした賞をいただいたことは、今後の仕事の上でも大きな励みになりま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17801724913406

渦中日記 2015/10/22-2

하루에 渦中日記를 두 번 쓴 적은 거의 없다.

이 제목으로 쓰는 내용은 <제국의 위안부>, 혹은 재판에 관한 얘기들이다. 낮에 <제국의 위안부>가 높이 평가받았단 얘기를 썼는데 저녁에는 반대되는 상황을 써야 하니 아이러니다.

오늘, 그동안 진행해 왔던 “조정”이 중단되었다. 따라서 이제, 형사고발에 관한 결정은 검사의 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동안 제시된 원고측 요구는,
1.사과,
2.삭제요구부분을 000표시한 한국어삭제판을 다른 형태로 낼 것(000표시가 삭제된 내용을 “간접적으로”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3. 제3국에서 내는 책도 한국에서 삭제한 부분을 삭제할 것,
이 세가지였다. 그러면 소송을 취하하겠다고 했다.

나로서는 2번도 일종의 검열이었고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생각해 보겠다고 했었다. 대신 3번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일본어판은 번역도 아니고 독자적으로 낸 책이어서 권리도 없을 뿐 아니라 그런 요구를 내가 수용해 일본측 출판사에 요구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받은 연락은, 원고측은 일본어판을 삭제하지 않는다면 조정에 부응하기 어렵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2번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 모든 게 아마도 나눔의집 소장의 생각일 것이다. 내가 얼마전에 통화했던 할머니는, 자신이 형사고발인 명단에 오른 줄도 모르고 계셨다.

두통/근육통에서 해방되었나 했더니 오늘은 기침이 심하다. 문득 겁먹으면 기침을 심하게 하던 영화속 러시아의 공주가 생각난다. 잉그리드 버드만이었을 것이다.
겁을 먹은 건 아니지만 긴장되기는 한다. 아무튼 이 달 안에 형사고발에 관한 결정이 날 것 같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17953421564903

渦中日記 2015/10/19

어제 유달리 건조하다고 느꼈던 건 감기가 오는 전조였던 것 같다. 바쁜 일정들 대충 끝내고 좀 여유롭게 지낼 수 있겠다 생각했던 첫날,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결정해야 하는 몇가지 일이 있어서 머리를 아주 쉬어 주지는 못한다.

2주일 전엔 오랫만에 검찰에 갔었다. 이제 곧 결정해야 할 “조정”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여름부터 3회의 가처분재판, 5회의 검찰조사, 3회의 민사재판을 받으며 느낀 것은,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나의 책에 관해 논하는 일의 무의미함이다. “법”의 틀 안에서 사고하는 일이란 “이미 존재” 하는 규범에 근거해 사고하는 일이어서, 나와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자체가 다르다는 걸 나는 법학자들의 사고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위안부문제가 학계에서는 어떻게 이해되어 왔고 운동은 어떠했으며 나의 주장은 이러한 것이라는 주장을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는 이들에게 말해 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동안 원고측 주장에 최대한 답변해 왔지만, 검찰은 “정말 나쁜”일을 한 수많은 사람들을 조사하고 구속하는 일만으로도 바쁠테니 국력을 소모하는 일에 나역시 가담해 온 셈이다.

최근 등장한 “고소사회”라는 단어가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는 너무나 소모가 많은 사회에 살고 있다. 결코 그럴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하긴 늘 그랬는데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만큼 에너지가 넘쳐난다는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나에 대한 고발은, 할머니가 아니라 내가 비판했던 주변인들이 제기했고 주변인들의 의사만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걸 최근에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이 재판에 대한 나의 회의의 첫번째 이유였다.
법의 억압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답변을 해 왔지만 그런 의미에선 나역시 나를 엉뚱한 방식으로 소모해 온 건지도 모른다. 1년하고도 4개월동안.

날이 흐리다. 비가 온다면 어젯밤 포스팅은 “기우제 포스팅”이 되는 걸텐데. 그랬으면 좋겠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216417821718463&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