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12/15

기소 이후 한달이 되어가는데 아직 원래의 일상을 못 찾고 있다. 원래의 일상이란, 재판과 그에 관련된 일들이 생활과 감정의 중심이 되지 않는 상태다.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은 기본적으로 내게 “비일상”일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시간이 많이 지난 탓에 기소 이전에는 조금은 평정심을 찾았었다. 그런데 기소 이후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일에 대한 의욕을 잃었고, 아직 살아나지 않는다. 그저, 필요 최소한도의 말과 글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한일 양쪽 성명을 비롯해 이런 글들, 그리고 페북에서 여러 글들을 써 주는 분들을 위해서 기운을 차려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장정일 작가의 말은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나는 이 1년동안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저 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라고 말해왔을 뿐이다.
얼마 전에 인터뷰를 해 주었던 기자가 이번에는 칼럼을 써 주었다. 욕 먹을 걸 알면서도 이렇게 쓴 기자가 여성이라서 더 기쁘다.

http://www.hankookilbo.com/m/v.aspx…

http://news.donga.com/3/00/20151215/75364063/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6940285332883

渦中日記 2015/12/13

내일이라는 통지를 받았던 형사재판이 연기되었다. 날짜는 모르지만 판사가 하나인 단독재판이었던 것이 복수가 심의하는 합의부재판으로 옮겨진 것이 이유라고 들었다. 따라서 이번주엔 16일 민사재판만 있게 되었다. 1심 마지막 재판이라 출석해서, 의견을 말할 예정이다.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하면서, 여러가지가 보인다.
꼭 해야 했던 몇가지 일들을 온힘을 다 해 하고 나니, 약간의 무기력증이 왔다.

나눔의집 소장이 음해메일을 퍼뜨리는 일에 나서기까지 했다는 걸 알았다. 고발 직후부터 해 왔던 얘기라 놀라울 건 없지만 그가 안쓰럽다. 그는 불교도라고 들었는데, 무엇을 지키려 하는 것일까.
그의 말을 요약해 페북에서 공개질문장을 쓴 이도 있다고 들었다. 거짓과 비방을 퍼뜨리는 이들에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아직 숙제로 남아 있다.

누군가가 얼마전 마이니치 신문 인터뷰를 번역해 주었다. 번역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올려 둔다.
이 안에는, 대중들에게 읽히기 전에 “논문으로 써야 했다”고 비난했던 이에 대한 대답부분이 있는데 “나는 내 분야에서 충분히 학자로 인정 받고 있으므로 굳이 ‘학자’에게 인정받기 위한 학술서형식으로 써야 할 이유는 없었다”는 의미였다.

http://dbzlanfk.blogspot.kr/2015/12/blog-post_13.html?spref=tw&m=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5723022121276

배홍진, 순결한 피해자와 불결한 피해자

 

배홍진

December 11, 2015 ·

제국의 위안부 – 순결한 피해자와 불결한 피해자

나는 늘 궁금했었다. 취업사기 등으로 인신매매를 당해 위안부가 된 피해자들은 대중의 자연스런 동의하에 성노예라 불리기도 하는데, 똑같이 인신매매를 당해 매춘을 하게 된 여성들은 어째서 대중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지금까지 버젓이 매춘부라 인식, 호명되고 있는 것일까. 위안부와 그들(인신매매와 구조적 강제에 의해 매춘부가 된 여성)은 성적착취의 장소로 가게 된 과정과 자유의 박탈, 육체적 학대 등 그 피해 양상이 비슷한데 왜 매춘부는 성노예라 불리지 않는걸까?

여성들이 밤거리를 걷다가 인신매매를 당해 매춘부가 되는 일이 횡행했던 저 80년대,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매춘부를 더러운 년이라 손가락질 하곤 했다. 그건 그들이 피해자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몸이 많은 남자에 의해 이미 범해졌다는, 그런 여성의 몸은 불결한 것이라는 비겁하고 폭력적인 시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린 새로운 편견과 차별을 만드는 경계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족과 국가의 역사로 호명된 피해자 여성의 몸과 호명되지 못한 피해자 여성의 몸을 구분짓고 다른 시선으로 보게 만드는 경계. 만약 매춘부가 피해자임에도 여전히 매춘부라면 위안부 피해자들은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매춘이란 말은 어째서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희석하고 부정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금기어가 되었는가? 역설적으로, 동시에 매춘이란 단어는 어떻게 성노예의 순결한 정체성을 불결함으로부터 지키는 심리적 배제의 기제로 작동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한가지 이상한 코미디. 기지촌 피해자 여성들 중 노인의 연령에 이른 사람들을 이 사회가 공식적으로 기지촌 피해자 할머니들이라 부르는 걸 난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위안부 피해자를 할머니라 부르는 건, 그들의 역사적 비극을 가족주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가족인데, 어째서 기지촌 피해자들은 가족이 되지 못했는가.

오래전 불결(가부장의 시선 아래서)했던 피해자는 어떻게 순결한 피해자가 되었는가? 그리고 그것(인격의 회복)이 역사의 정의라면 어째서 순결한 피해자들은 불결한 피해자들을 타자화하는가? 그 차이를 만드는 이 정의로움은 우리 안의 어떤 괴물인가?

* 이 대단찮은 글을 쓰는데도 스스로 검열하고 사족을 단 말들이 너무나 많다. 약자에 대한 배려는 때로 약자에 대한 담론을 검열하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장정일, 개도 물어 가지 않는 ‘표현의 자유’ (한국일보)

소설가 장정일

지난 12월 2일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 2013)로 검찰의 기소를 당한 박유하씨의 기자 회견과 기소에 반대하는 지식인 성명이 함께 발표되었다.

기자 회견에 나선 저자는 정작 “표현의 자유를 침해 당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표현의 자유를 말한 적이 없다. ‘표현 자유’라고 말하면 아무 얘기나 다 써도 되는 거냐? 라는 질문이 돌아오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나 역시 ‘제국의 위안부’와 통합진보당 내란 사건에 대해 여러 번이나 쓴 적이 있지만, 한 번도 표현이나 사상의 자유를 내세워 이들을 옹호하지 않았다. 이런 일에는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결코 내세울 게 아니다. 그보다 윗길은 그들이 옹호되어야만 하는 가치를 적극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이다.

똥은 개가 물어가지만, 표현과 사상의 자유는 개도 물어가지 않는다. 원래 저 자유는 도로나 다리 같이 국가를 지탱하는 공적 기반이어야 하지만, 한국에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기반이 있다면 법이 쉽사리 나서는 일도 없겠지만, 걸리더라도 저 권리를 내세우거나 거기에 의지할 수 있다. 그게 없기 때문에 걸렸다 하면,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한다. 사회안전망이 없는 나라의 실직자가 스스로를 구제해야 하는 이치다. 이처럼 막상 경험하게 되는 현실은 정반대인데도, ‘한국에서는 언제부터인가 표현의 자유가 절대화 되었다’고 목청을 높이는 머저리들이 있다. 슬프게도 저런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진보 ‘먹물’이라니, 우습지도 않다.

박유하씨의 기소에 반대하는 지식인 성명 발표 때, 형사 기소에 반대하는 194명의 서명자 명단도 아울러 공개되었다. 저자를 형사 기소로부터 구하려는 저런 노력이 과연 박유하를 검찰의 기소로부터 자유롭게 해 줄까? 지식인의 서명을 진짜 귀중하게 여기는 사회라면 194명이 아니라 19명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검찰은 1만 9,400명의 지식인이 서명을 했다하더라도 꿈쩍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절판된 나의 에세이집 ‘생각’(행복한책읽기, 2005)에 이런 글이 있다.

“가야산에 골프장을 만드는 일을 반대하기 위해 100만인 서명 운동이 필요할까? 혹은 시인 이상화의 생가를 보존하기 위해 그게 필요할까? 박정희 기념관을 반대하기 위해서는 그것도 필요악일까? 열 명 혹은 다섯 명으로는 안 될까? 진정 단 한 명의 의견이라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고심하는 사회에서라면 100만인 서명 운동 따위는 우스갯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명 운동의 규모와 목표가 걸핏하면 100만인이 넘는 진풍경은 우리 사회의 병폐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100만인 서명 운동은 그것이 어떤 선의에서 행해지든지 간에 우리 사회가 물량과 물리적인 세(勢)가 득세하는 사회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처럼 머릿수가 말하기 시작할수록 소수 의견은 점차 설득력을 잃게 되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박유하씨의 형사 기소에 반대하는 지식인 성명과 서명자가 공개된 날, 저자의 검찰 기소에는 반대하지만 그의 책은 엄정한 비판이 필요하다는 반대편 지식인들의 성명과 서명자 명단도 공개 되었다. 비판자들은 저자의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이 적절치 않다면서도, 결과적으로는 형사 기소를 승인하는 모순을 범했다. 비판자들은 박유하씨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했지만, 토론장에서 피고 신분의 박유하씨가 고르거나 누릴 수 있는 말과 자유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반대자들이 자신들의 성명서를 학술장으로 이 논란을 불러들이기 위한 노력으로 자평한다면, 기만이다. 이들의 의도는 법정의 판결에 앞서 인민재판을 하겠다는 것이다. 죽창을 정의라고 착각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학제 연구가 모색된 지 오래인데도 불구하고, 저자가 역사가가 아니기 때문에 역사학계는 지금까지 박유하씨를 상대하지 않았다. 올해 벌어진 국정교과서 파동 때, 전국 대학교의 역사학과 교수들이 보여준 일치단결은 위안부 문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박유하씨의 박사학위 논문이자 첫 책인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문학동네, 2011)는 제목 그대로 학제 연구를 수행한 책이자, 같은 문제의식이 ‘제국의 위안부’에까지 이어지고 있으므로 반드시 읽을 필요가 있다.

원문: [장정일 칼럼] 개도 물어 가지 않는 ‘표현의 자유’ (한국일보)

와카미야 요시부미, 할머니의 명예는 훼손됐을까 (동아일보)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원문: [와카미야의 東京小考]할머니의 명예는 훼손됐을까 (동아일보)

와세다 저널리즘 대상 받는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무겁고 복잡한 마음의 상처 절절히 느껴져
미묘한 이야기를 예각적 표현을 섞어 집필
의도 오해받을 수 있었겠지만 모독했다는 생각은 안들어

배홍진, 담론의 독점시장에 대해

배홍진

December 9, 2015 ·

제국의 위안부 – 담론의 독점 시장에 대해.

상품 시장에만 독점기업이 있는 게 아니다. 우수어린 신념과 정의감, 투사적 역사의식이 착종된 사회에선 담론시장에도 독점기업이 등장한다.

역사담론 시장의 독점적 자본주의 기업. 그들의 자본은 살아있는 피해자이고, 그들이 판매하는 상품은 미리 특허를 받아둔 역사의 진실이며, 그들이 교란하는 시장은 역사 담론의 자유로운 교환이 이뤄줘야 할 논의의 장이자, 바로 우리 의식 속 사유의 시장이다.

시장을 독점하는 기업은 경제시스템에서 시장을 추방한다. 진실을 독점하는 담론은, 정의롭게, 사명감을 가지고 진실의 옷에 맞지 않는 인간들을 담론의 지평에서 배제한다.

渦中日記 2015/12/9

<제국의 위안부>에 비판적인 학자들이 오늘 기자회견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의 답변–“토론을 요청하기 전에 고소를 취하하도록 노력하는 게 수순일 것”이라고 한 얘기에는 긍정적인 대답을 얻지 못했다. 정대협 전 회장이 두 사람이나 있는데도, 그들에겐 그런 노력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그들이 “할머니의 아픔”에는 더할 수 없이 민감하면서, 같은 학자인 나의 정황에는 둔감한 이유가 궁금하다.
나는 요즘, 끊임없이, 새롭게, 할머니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어제 퇴근길에 어떤 할머니가 전화하셨기에, 대화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다시 말하지만 할머니를 아프게 한 사람은 내가 아니다. 할머니는 “서울대교수가 다섯 명이나 당신 책이 나쁜 책이라고 했다더라.”는, 고발직후에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셨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누가시켰다고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피해자의 아픔”을 강조하는 이들이 가장 “피해자를 배제”하고 있는 구조가 점점 더 명확히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모순적 구조.

교수신문이 그나마 사태를 제대로 보려고 해서 다행스럽다. 언론때문에 피해 본 것도 많지만, 부정적인 부분만을 보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을 보는 편이 인생에는 도움이 된다.

일본의 한 언론인이 “이 사태에 대해서 해설해야 하는데 나쁘게만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해 주세요. 나쁜 부분만 보는 것 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보려는 노력을 같이 하는 것만이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길일테니까요.”

나역시 아직은 그런 심경을 버리지 않고 있고, 생각해보면 그게 이제까지의 나의 방식이었다.

http://m.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1845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3408772352701

양한승, 검찰 기소 취하를 바라며

양한승

December 17, 2015 ·

나눔의 집은 학자의 책을 마치 연예인의 실언처럼 취급했다. 학교를 사직하고 나눔의 집에서 봉사할동이라도 시키려 했던 모양이다. 아픈 역사의 기억을 무기로 타성어린 여론매질과 고소장부터 남발한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통념을 바꾼 박유하교수의 연구서 ‘제국의 위안부’는 명예 문제가 아니라 사상이 쟁점이다. 내셔널리즘보다 젠더 입장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에 부합하는 관점이다.
정부 또한 새삼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안다. 하지만 광장에서 무르익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검찰 기소를 취하하고 사법부의 판단 오류를 최소화시켜야 한다. 역사는 법복을 입은 일단의 사람들이 ‘예, 아니오’를 결정하는 성질이 아니다.

渦中日記 2015/12/7-2

기소이후, 한국언론으로는 처음으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다른 곳의 의뢰도 받았고 일부는 이미 인터뷰를 했지만 동아일보가 먼저 나오게 되었다.

호의적인 내용이지만 “매듭지어야”한다던가 “한일 양심적 지식인들이”그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 책은 해결을 위해 힌트가 되었으면 해서 쓴 책이지만 해결에만 방점이 찍힌 책은 아니다.

또 위안부문제는 해결을 두고 늘 누군가를 배제해 온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 틀 자체가 수정되어야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http://news.donga.com/3/all/20151207/75216867/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1962239164021

渦中日記 2015/12/7 – 반론, 나눔의 집 입장에 대하여

고발직후, 나눔의 집과 여러 응수를 했다. 나를 “일제의 창녀”라고 쓴 트윗을 소장이 리트윗했기에 이후 차단까지 했다.

그들과 진실공방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거짓을 말하면 우리는 그에 대해 반론을 해야 한다. 무엇을 위한 일인지, 누구를 위한 일인지 잘 모르는 채로. 소송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허무하다.
(아까 이 글을 공유한다는 게 잘못 올렸습니다. 좋아요와 댓글 주신 분들 죄송합니다..)

엊그제, ‘나눔의집’ 쪽에서 최근 한국-일본에서 나온 <제국의 위안부> 형사기소에 대한 항의성명과 관련하여 ‘입장’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박유하 교수가 따로 얘기를 하시리라 생각하지만, 우선 제 짧은 소견으로나마 사실관계를 포함한 몇 가지 점만 말씀드려두겠습니다.

1.
벌써 1년 반이 되었습니다만, 저는 줄곧 이 책이 담고 있는 ‘사실’과 ‘의견, 주장’ 모두 법정에서 다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씀드려왔습니다. ‘사실’은 확인하면 될 일이고, ‘의견과 주장’은 공론장에서 비판하고 토론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2.
나눔의집 쪽은 입장 표명에서 “이번 사안의 본질은 과연 박유하가 사실과 다른 표현을 하여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느냐입니다”라고 말씀하셨고, 작년 6월의 출판금지 가처분신청과 민.형사 고소 시점부터 이 책이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해오셨습니다.(가처분신청 심리 중간쯤에 박유하 교수의 반박 답변서 제출 이후 ‘신청 취지’를 ‘변경’하실 때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아니라 저자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고 전쟁범죄를 찬양’했다는 식으로 바뀌어 정말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하지만 이미 박유하 교수가 여러 차례 밝혔고 법원 및 검찰 답변서에서도 상세히 기술했듯이, 이 책에 언급된 어떤 내용도 근거 없는 ‘허위의 사실’이 아닙니다. 이와 관련하여, 박 교수는 어느 월간지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결국 이 기사는 실리지 못한/않은 것으로 압니다).

-문:위안부 강제연행은 포주나 업자들의 취업 사기와 인신매매가 더 많았다는 식의 주장을 했는데, 근거가 있습니까.

-답: 제가 책에 인용한 증언집은 기존 위안부 지원단체나 연구자들이 낸 것입니다. 이걸 거짓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동안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은 모두 허위를 바탕으로 이뤄져 온 것이라고 인정하는 게 됩니다.

또한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도 목적도 없었습니다. 특히 위안부 할머니들을 <“자발적인 매춘부”, “일본의 승전을 위하여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전쟁을 수행하였다”고 하는 여러 표현들>이라고 썼다는 ‘거짓말’을 비롯한 ‘허위의 사실’ 여부와 관련해서는, 원고 측과 검찰이 들고 있는 이른바 ‘범죄일람표’와 거기에 대한 반박을 곧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3.
2015년 봄부터 몇 달 동안 진행된 검찰의 형사조정 과정과 관련해서도, 나눔의집 쪽에서 내놓은 입장은 저희가 아는 바와 다릅니다.

나눔의집 쪽은 “① 박유하의 진심어린 사과 ② 왜곡된 표현을 한국이나 제3국에서 사용하지 마라는 2가지 요구만을 하였고 박유하가 이를 수용한다면 진행하고 있는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을 모두 취하 하겠다고 까지 하였습니다”라고 쓰셨습니다.

형사조정위원회에서 나온 조정안들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만, ‘조정 불성립’으로 끝나게 된 가장 결정적인 문구는 “가처분사건의 결정주문 제1항에서 금지한 행위를 한국 내외에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하지 아니한다”였습니다. ‘한국 내외에서 직.간접적으로’ 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곧 한국에서 ‘삭제판’도 출판하지 말고, 비슷한 표현을 앞으로 나라 안팎에서 직/간접적으로 하지 말 것이며, 결정적으로 한국어판과는 구성도 문장도 다른 ‘일본어판’마저 절판시키라는 요구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예 입을 다물라는 요구였지만, 박유하 교수는 ‘일본어판’과 관련된 요구 말고는 모두 수용하려고까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조정안의 전문과 1항, 2항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 사건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피해자인 위안부할머니들이 겪었던 형언할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깊이 공감하고, 20년이 넘도록 갈등을 거듭해온 위안부 문제가 고령의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조속하게 해결되어야 한다는 데에 뜻을 함께하고 이를 위해 일본정부의 명백한 사죄와 보상의 행동을 촉구한다.

한편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한일양국간의 위안부 문제의 원만한 해결과 동시에 양국 시민들의 상호 이해와 우호협력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는데 공감한다.

이에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다음과 같이 조정하여 이 사건을 원만히 해결한다.

1) 피고소인들은 피고소인 박유하가 저작하고 피고소인 정종주가 출판ㆍ배포한 책인 ‘제국의 위안부’(이하 ‘이 책’ 이라 한다.)로 인하여 고소인들을 포함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하였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것에 대하여 고소인 및 위안부할머니들께 진심으로 사과하고 아울러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2) 고소인들은 피고소인들이 이 책을 저작ㆍ출판ㆍ배포한 목적이 위안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역사 인식을 내놓는데 있었고, 위안부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할 적극적 의도나 목적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아니한다.”

4.
박유하 교수도 저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모진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눈 감고 있지 않습니다. 저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아흔 살이 넘은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한시라도 일찍 한일 간에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어제 새벽에 돌아가신 최갑순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저는 <제국의 위안부>가 법정에서 단죄당하는 것이 아니라 공론장에서 토론되고 비판받고 논박하는 ‘공개토론’을 통해서 진정한 해결책을 함께 찾고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 일동’의 여러 선생님들도 “원칙적으로 연구자의 저작에 대해 법정에서 형사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단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공개토론을 제안하셨으니, 모쪼록 이 사안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래는, 나눔의집 쪽에서 낸 ‘입장’ 전문입니다.
——————————————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일본인들의 항의 성명서(2015년11월26일)와 국내학자들의 기자회견(2015년12월2일)에 대한 <나눔의 집> 입장

금번 박유하에 대한 기소에 대하여 학문적 잣대로 기소를 반대 하는 것은, 한국의 법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무엇보다 할머니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것으로 과연 그 동안 성명인들이 성의를 보여왔던,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문제 해결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합니다.

소위 연구서라는 것은 사실 묘사와 의견으로 구성되어 있고 박유하의 책 ‘제국의 위안부’ 역시 그러합니다. 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 서문에서 그럴듯한 집필의도를 밝히고 있지만 박유하의 책 역시 다른 책들이 갖는 한계처럼 정확한 의견과 사실묘사 외에 부정확한 의견과 사실묘사가 존재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호하지만 일정한 한계를 두어 학문의 자유를 빙자하여 타인의 기본권까지 무제한으로 침해하는 것을 용납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금번 성명서가 우려하고 있듯이 대한민국 검찰의 박유하에 대한 기소는 학문과 언론의 활발한 장을 봉쇄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검찰은 <제국의 위안부>에서 표현되고 있는 부정확한 의견에 대하여기소를 한 것이 아닙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 역시 박유하의 틀린 의견을 문제 삼아 형사 고소를 한 것이 아닙니다.

성명서에 밝힌 것처럼 박유하의 책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문제를 심도 깊게 연구한 대한민국의 학자들이나 직접적인 피해자 할머니들은 박유하가 자신의 책에서 피력하는 의견이나 역사관 등에 대하여 비록 동의를 하지는 않을 지라도 이를 문제 삼지는 않습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존재하니까요

2013년 8월에 박유하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출간의도를 밝히며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자 박유하의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책에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이 겪었던 ‘위안부’ 삶을 객관적으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였거나 심하게 왜곡한 부분이 존재하였습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박유하의 책에서 자신들이 겪었던 고통이 잘못 왜곡되어 표현되고 있는 현실에 분노를 표하였고 이로 인하여 자신들의 명예가 심하게 훼손되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금번 성명서에서 한국 검찰과 박유하라는 두 주체를 중심으로 이분법적 가르기를 하고 있는 것은 사안의 본질을 완전히 간과한 것입니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과연 박유하가 사실과 다른 표현을 하여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느냐입니다.

도둑질을 하지 않은 사람을 도둑이라고 규정짓는 책이 발간된 경우 피해자가 이를 참아야만하고 이는 학문의 자유를 보호해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억울한 피해자는 어떻게 보호를 해야 하는 것인가요? 이는 더 이상 학문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표현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자신들을 “자발적인 매춘부”, “일본의 승전을 위하여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전쟁을 수행하였다”고 하는 여러 표현들이 사실이 아니고 자신들의 명예를 심하게 훼손하였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2014년 6월 17일 박유하를 상대로 출판금지가처분, 민사소송, 형사고소를 하였습니다.

2015. 2. 17. 가처분 사건과 관련하여 법원은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을 ‘자발적 매춘부’라고 하거나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일본의 승전을 위해 전쟁을 수행하였다.’는 등의 몇몇 표현이 객관적인 연구 결과나 사실과 동떨어진 잘못된 표현으로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러한 문제되는 표현을 삭제하라고 하였습니다.

한국검찰은 2014. 10.월 이후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를 조사하고 박유하도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수차례에 걸쳐 형사조정 절차를 거쳤습니다. 일본에는 생소하겠지만 형사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를 통해 원만한 해결을 도모하는 제도입니다.

위 조정절차에서 피해자 할머니 측은 ① 박유하의 진심어린 사과 ② 왜곡된 표현을 한국이나 제3국에서 사용하지 마라는 2가지 요구만을 하였고 박유하가 이를 수용한다면 진행하고 있는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을 모두 취하 하겠다고 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박유하는 형사조정절차에서 여러 이유를 대며 법원이 삭제를 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용한 문구를 그대로 사용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검찰은 수차례 더 조정을 주선하였지만 결국 조정은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한국 검찰은 박유하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습니다.

한국 형법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와 일반 명예훼손죄를 구별하고 있습니다. 금번 한국 검찰은 박유하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기소를 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일반 명예훼손죄 중 허위사실 공표로 기소를 한 것입니다. 즉 박유하의 연구 결과에 대하여 공소권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박유하의 책 중에서 일부 표현이 할머니들이 겪은 경험을 왜곡하였고 이러한 행위가 할머니들을 고통스럽게 한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금번 학자들이 발표한 성명은 한국법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검찰이 어떤 것을 기소한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이 어떤 표현에 분노하고 고통 받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박유하를 고소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자발적 매춘’을 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일본의 승전을 위해 싸운다’는 생각을 하면서 ‘위안부’ 생활을 견딘 것이 아닙니다. 죽지 못해 견뎠고 70년이 지난 지금도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형사조정절차에서 위와 같은 잘못된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지만 박유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차 대전이후 프랑스나 독일 등 몇몇 국가는 법제정을 통해 반유대주의를 표명하거나 나치의 대량 학살 등을 부정하는 행위에 대하여 처벌을 하였습니다. 의견표명에 대한 처벌이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법까지 제정하여 처벌을 하는 것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금번 기소는 박유하의 책에서 문제삼을 수 있는 여러 의견을 대상으로 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제국의 위안부> 책에서 표현되고 있는 여러 견해의 부적절함에 대한 논의는 학문의 영역에 속하지만 사실이 아님에도 사실인 것처럼 표현을 하여 할머니들에게 고통을 준 부분은 시정되어야하고 그러한 사실과 다른 표현을 계속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는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합니다.

발표된 성명서는 금번 형사처분이 왜 이루어졌고 어떤 죄명으로 기소가 되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이 어떤 표현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그 표현이 사실인지 여부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금번 성명이 단순히 한국 검찰이 기소를 한 것이 박유하의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였다고 비난을 하는 것이라면 이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을 제대로 성찰하지 못한 피상적인 비난을 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닙니다. 반복하지만 성명서 어디에도 고소를 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박유하의 표현으로 인한 고통을 보듬는 내용이 없습니다.

향후에도 위안부 해결을 위한 건강한 토론의 장은 늘 열려 있어야하고 학문의 자유 역시 완벽히 보장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학문의 자유를 빙자하여 사실과 다른 표현으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계속 고통을 주는 행위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번 형사사건의 본질에 대하여 정확한 이해를 가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1691312524447

배홍진, 오독과 표현의 자유에 관해

 

배홍진

December 5, 2015 ·

제국의 위안부 – 오독과 표현의 자유에 관해..

제국의 위안부 사태는 엄밀히 말해 학문과 표현의 자유의 문제는 아니다. 실상 저자와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가부장적 시스템과 이데올로기, 제국주의와 식민의 문제, 민족주의(저자는 반일과 혐한 민족주의, 비판자들은 일제에 의한 조선인의 차별)와 그 폭력의 문제를 동일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같은 대상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거기서 도출한 결론도 문제해결의 방법론을 제외하곤 그다지 다르지 않다. 다만, 저자는 문제의 맥락을 심화하고 그 외연을 넓혀 그동안 분명 알고 있었으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거나 외면하고 있었던 것들을 상기시키고 있을 뿐이다.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그 지점에서부터 비로소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실 저자와 비판자는 아예 서로 상반되는 적대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한 마디로 표현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오독 혹은 왜곡의 문제란 것이다. 표현 자유의 문제가 되려면 적어도 그 누구들처럼 무궁화회 할머니들을 제외한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은 가짜다, 이 정도까진 얘기해야 한다.(내가 한말이 아니다. 세상에 오독이 범람하여, 이런 구질구질한 사족을 덧붙인다.)

그럼 오독 왜곡의 문제가 어째서 표현의 자유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일까. 어째서 오독이, 오독한 문장을 공권력으로 구속하려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 오독의 주체들은 왜 자신이 표현의 자유를 구속한 건 아니라고 알리바이처럼 깨끗한 손을 내미는 것일까? 고발과 기소는 전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했다고, 마치 그게 정의의 실현인양 목청을 높이며 외쳐대는 것일까? 난 여기서 왜 자꾸 학창시절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이간질하던 얘들이 생각나는 것일까. 제국의 위안부를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세상에 편견과 분노를 일으키더니 그게 학문의 자유를 침탈하는 문제로 번지자, 이번엔 반대로 고발은 할머니들이 했다, 라고 사방팔방 떠들며 학문의 자유는 존중한다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것도 정도껏.
내가 이 상황을 일부러 비틀어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치 친일파의 얼굴을 고발하듯 전면에 나섰던 이들이 정작 중요한 순간에 피해자 할머니들의 얼굴 뒤로 숨어 고개만 삐죽 내밀고 할머니들의 권리야, 어쩔건대, 라고 떠들고 있는 모습은 글쎄, 별로 솔직해 보이진 않는다.

오독 왜곡의 문제가 표현의 자유의 문제를 핵폭탄처럼 터트렸다. 사실 문장을 오독하면 오독한 걸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그러나 이번엔 오독이 맹수처럼 달겨들어 문장을 넘어 책 자체를 잡아먹어 버렸다. 어째서일까? 혹시 그건, 위안부 문제가 지금까지 굳건히 믿어왔던 거와는 달리, 악랄한 가해와 숭고한 피해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고 해결도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이 그 복잡의 해결책으로 단 하나의 깔끔한 정답만을 믿어온 사람들은 단순의 가면 아래서 숨막혀하던 복잡의 얼굴을 누군가 꺼내려 할 때 분노하고 두려워한다. 그때 그들은 단순의 가면을 벗기려는 사람의 몸짓을 극단적으로 과장해서 보게되고, 그 과장된 몸짓이 온 시야를 무섭게 압도하기 때문에 그들은 맹수처럼 달려들어 그 과장의 몸짓을,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신기루를 물어뜯는다. 그 몸짓, 신기루의 뒤편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자신들이 허상 혹은 오독을 물어뜯을 때, 죽는 건 더이상 허상이 아니란 걸 모르고……

때로 오독하는 사람은 자신이 오독한 내용을 두려워 한다. 그리고 그 오독의 내용을 주둥이 수세미로 빡빡 지우려 한다.

배홍진, 문맥의 창조적 오독에 대해

배홍진

December 5, 2015 ·

제국의 위안부, 문맥의 창조적 오독에 대해

텍스트는 다양한 문맥의 핏줄들로 짜여진 복잡한 유기체다. 하나의 텍스트를 읽을 때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문맥만 따라가다 아뿔사 창조적 오독에 빠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문맥의 지도를 섬세하게 짚어가며 텍스트의 의미망을 객관적으로 포착하기도 한다.

제국의 위안부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자꾸 쓰지도 않은 자발적 매춘부다란 표현을 고집스럽게 물고 늘어지는 건, 그들 말대로 어떤 문맥이 그들에겐 그렇게 창조적으로 읽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뭐, 그렇다 치자. 그럼 왜 그들은 자발적 매춘부로 읽힐 수 있는(편협한 오독이지만) 문맥만 읽고, 그 문맥을 전반적으로 둘러싸고 있는 여러 다양한 층위의 문맥들은 읽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일테면 위안부란 가부장적 제국주의와 식민지가 만들어낸 명백한 피해자들이며, 설령 그곳에서 형식적인 자발성이 있었다 해도, 그건 국가와 계급, 남성권력이 벼랑으로 내몬 가혹한 자발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리고 이 외에도 일본과 제국과 식민지의 모순을 신랄하고 꼼꼼하게 비판한 다른 수많은 문맥들은 왜 읽어내지 못했는가? 아니 읽으려 하지 않았는가. 쓰지도 않은 자발적 매춘부란 말을 문맥에서, 무슨 달걀 꺼내듯이 마구 끄집어낼 정도로 창조적인 독해를 할 줄 아는 양반들이 우째서 다른 문맥들은 개무시를 하고 휑 지나갔는냐 말이다. 참으로 아리송한 일이다.

아리송하지만, 요건 분명히 말하고 싶다. 역사의 정의란 미명하에, 한 학자를 마녀재판의 가혹한 불길로 몰아넣을 정도로 당신들은 확신하고 있는가? 당신들이 그 놀라운 문맥을 본 곳이, 당신들이 손에 들었던 그 책의 지면인지, 혹은 그 책을 냉소적으로 내려다 보던 당신들 눈동자의 심연인지…..

渦中日記 2015/12/5

기자회견이 끝나고 사흘. 기소 이후 이주일 여, 내내 경황이 없어 답하지 못했던 전화, 문자, 메일, 메시지등에 답하기 시작했다.
이 주말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원고도 써야 한다.

경향신문 기자가 이번사태에 대해 정리한 기사를 써 주었다. 생각해보면 <제국의 위안부>가 나왔을 때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전면기사로 서평을 써주었던 매체다. 그럼에도 얼마전엔 나를 “친일교수”로 모는 기사를 쓰기도 했던.
당연한 얘기지만, 하나의 매체가 결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걸 나는 이 책을 간행한 이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자발적 매춘부”라는 말이 내 이름과 함께 돌아 다닌다. 어떤 이는 “설사 직접 쓰지 않았어도 그렇다고 알 수 있는 내용을 쓰지 않았느냐”고 한다.
위안부문제 해결은 어쩌면, 뿌리깊은 매춘차별의식에서 벗어날 때에야 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당사자든 주변인이든.

“논박”이란 때로 필요하지만, 때로 무의미하다. 중요한 건 논지도 아니고, 지식도 아닐 수 있다. 세계를 지배하는 건 그저,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태도, 그리고 타자와 마주하는 자세일 뿐이다.

http://h2.khan.co.kr/20151203163105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1018259258419

Yong Kyun Kim, 현재에도 자행되는 구조적 폭력

Yong Kyun Kim

December 4, 2015 ·

무하마드를 풍자한 <샤를리 에브도>가 모독한 건 신이 아니라 그 신을 추앙하는 신도들이었다. 신성모독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 신에게 불경을 행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을 때, 그로인해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할 때, 그가 모욕한 건 정작 신이 아니라 그 신의 절대성을 절대적으로 숭배한 나머지 그의 이름조차 입에 올릴 수 없었던, 세차게 돌을 던지는 바로 그 군중들 자신이었다.

<제국의 위안부> 사태를 바라보며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된 까닭은, 위안부 할머님들이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느꼈다는 사실 자체를, 그리고 그분들이 자신들이 당한 피해에 대해 민형사상 법적 구제를 청구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내가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할머님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느낀 것은 하나의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하나의 사실 이상이기 때문이다. 아니, 위안부 문제가 수천여 명의 위안부들의 개인적 경험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문제가 되어버린 이상, 그것은 단지 하나의 사실에 그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인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가 공격한 건 위안부 할머님들이 아니라, 일본순사에게 끌려가는 열네살 소녀이자 일본대사관 앞에서 사죄와 배상을 외치는 칠순 투사로, 그렇게 단일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우리 안의’ 위안부였으며, 그 박제화된 이미지에 사로잡혀 다른 어떤 해석의 시도조차 용인할 수 없었던, 박유하 교수를 향해 사정없이 돌을 던진 군중들 그 자신이었다. “할머님들이 피해를 입었다”라는 사태 자체와 바로 그 진술을 대변하는 단체, 학자, 정치인, 그리고 수많은 군중들이 내보이는 할머님들에게 투영된 피해의식을 구분하는 건 따라서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명예훼손을 당한건, 그리고 그 피해의 구제를 바라는 건 누구보다 바로 그들이다. 이 점에서 이번 사태는 법적 문제 이전에 정치적 문제인 것이고, 이를 법적 문제로 환원하려는 시도에 대해 나는 반대한다.

어디 위안부 문제 뿐이겠는가. 굴곡의 한국 현대사 장면장면마다, 하나의 ‘올바른 역사 해석’에 도전해 그 획일화된 단순한 이미지 속에 감춰져 있던 수많은 다양한 진실들을 누군가 들춰낼 때마다 그 재해석되는 역사 속의 인물들의 명예는 그럼 어떡해 해야 하나. 아직 살아있는 ‘건국 공신들’의 명예는 훼손되어도 상관없는가. 4.3 항쟁은 모두 ‘무고한’ 양민이었고 군경은 ‘모두’ 학살자였는가. 베트남전에 참전해 나라를 위해 목숨걸고 싸웠던 것을 평생의 명예로 살아온 월남용사들을 이제 와서 베트남 양민을 무참히 살해한 전쟁범죄자라고 말한다면 그분들의 참혹히 무너진 명예는 그럼 중요하지 않은가. 이 모든 문제들을 법정으로 가져가 누구의 명예는 어떤 주장, 어떤 표현에 의해 훼손되었음이 인정되기에 삭제하고, 보상하고, 인신을 구속해 죄값을 치르게 해야 맞는 것인가.

내가 생존해 계시는 위안부 할머님들의 아픔을 단 1센티라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동시엔 난 위안부 할머님들이 명예훼손으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입었다며 이의 법적 구제를 옹호하고 있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같은 고백을 할 것을 요구한다. 올해 봄 <제국의 위안부>를 읽기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내가 가지고 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지식과 관심 수준은 한국 국민 평균을 결코 넘어서지 못했다. 할머님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깊은 연민을 가지고 그분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14세 소녀를 강제로 끌고간 일본 순사에 대한 분노에 치가 떨리는 대신,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처음으로 그분들이 아팠다. 의붓아버지 손에 위안부로 팔려가는 걸 옆에서 눈감았던 자기 어머니를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는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에 마음이 무너졌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여동생을 두들겨 패고 책을 모두 불태워 버린 오빠를 피해 결국 학교가 아닌 위안소에서 성노예로 청춘을 보내야 했던 또 다른 할머니의 증언을 읽고 그 오빠를 대신해 사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꼭 분노가 아니어도 좋지 않은가. 그분들의 아픈 과거를, 우리의 잘못된 역사를, 그리고 여전히 자행되는 구조적 폭력을 조금이나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래서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로 그분들이 바라는 것이 아닐까. 난 그렇게 간곡히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渦中日記 2015/12/2-2

며칠간 경황이 없어 어젯밤 늦게야 오늘 기자회견에서 발표할 글을 썼다. 허핑톤포스트가 게재해 주었는데, 다시 보니 중요한 말을 빠뜨렸다.

나를 비판하는 이들은, 내가 “당사자/피해자를 배려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책에서 의도했던 건, 또다른 “당사자”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일이었다. 문제발생 초기에는 자연스럽게 공존했던,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한국정부보고서에조차 등장할 수 있었던 “당사자”들. 세월이 가면서 지원자와 국가의 목소리에 묻혀 “삭제”당했던 목소리들.
나는 그렇게 해서 우리시야에서 사라졌거나 혹은 여전히 존재함에도 들리지 않는,”언로”를 갖고 있지 않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뿐이다.

하지만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위안부 할머니의 목소리를 나는 아직 세상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을 시도하자마자, 고발당했다. “당사자”란 하나가 아니다.

http://www.huffingtonpost.kr/yuha-park/story_b_8695314.html…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9404569419788

渦中日記 2015/12/2

기자회견과 지식인 성명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한국언론 일본언론은 물론 미국 스페인 언론까지 와 주어 장내가 가득 찼을 정도였습니다. 관심 가져주신 기자,언론인 여러분들, 특히 Facebook 친구 언론인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저를 위한 성명에 참여해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어떤 국면이 될지 모르지만 선생님들이 함께 해주셨으니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려주신 분 중 한 분인 김원우 선생님께서 내내 뒤에 앉아 계시다가 가셨는데 저와 함께 찍힌 사진이 있기에 올려 둡니다. 우연히도 옆에는 역시 오래 함께 해준 친구들이 있군요

우선 간단히 보고 드립니다. 먼저, 오래오래 소중하게 기억될 이름들, 191분의 성함을 옮겨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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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언론인)
노재현(출판인)
박성태 (언론인)
안보영 (프로듀서)
오태규 (언론인)
이강택 (프로듀서)
이수경 (언론, 예술인)
임현규 (광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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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조 (출판인)
조동신 (출판인)
조용래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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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욱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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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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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변호사)
김용찬 (변호사)
김향훈 (변호사)
박도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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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김택수 (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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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호 (치과의사)
정 부 (의료인)
최명환 (의사)

*종교계

이정우 (목사)

총 서명인 194명

『제국의위안부』의 형사 기소에 대한 지식인 성명

2015년 11월 19일, 서울 동부지방 검찰청은 세종대 박유하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군 종군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묘사하고 일본군과 종군위안부를 “동지적 관계”로 표현하였다는 이유로 저자를 형법상의 명예훼손죄로 기소하였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 17일, 서울 동부지방 법원은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학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로 『제국의 위안부』의 내용 가운데 서른네 곳의 삭제를 명하는 “가처분 신청 일부인용”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 일련의 조치에 대해 우리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선, 검찰 측에서 제시한 기소 사유는 책의 실제 내용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습니다. “자발적 매춘부”라는 말은 저자 자신의 것이 아니라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인사들을 비판하기 위해 저자가 그들의 발언 중에서 인용한 것이며, “동지적 관계”라는 말은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된 식민지 조선인의 사정을 그 전쟁의 객관적 상황에 의거해서 기술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입니다. 검찰이 과연 문제의 책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기소 결정이 과연 공정한 검토와 숙의의 결과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공론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책입니다. 특히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집단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마이니치 신문이 주관하는 아시아태평양상, 와세다 대학이 주관하는 이시바시 단잔 기념 저널리즘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국내 출판사 마흔일곱 곳이 참여하는 모임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책의 삭제판 출간이라는 오늘의 출판현실에 주목하여 이 책을 올해의 책 중 한 권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의 주장에 논란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학술적으로 보다 철저한 조사와 정교한 분석을 요하는 대목이 있을 수 있고, 국내외의 이런저런 정치사회단체의 비위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군위안부는 당초부터 갈등을 유발할 요소를 가지고 있는,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까다로운 사안입니다. 이 사안을 다루는 합리적인 방법은 어느 특정 정치사회집단이 발언의 권위를 독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표출되고 경합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검찰의 기소 조치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사법부가 나서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여론을 국가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와 발언의 자유가 당연히 제한을 받을 것이고, 국가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주장들이 진리의 자리를 배타적으로 차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종군위안부 문제의 범위를 넘어 역사 문제 일반과 관련해서도, 국가가 원한다면 시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도 무방하다는 반민주적 관례를 낳을 것입니다.

한 학자가 내놓은 주장의 옳고 그름을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발상은 너무나도 시대착오적입니다. 우리 사회는 1987년 권위주의 정권을 퇴출한 이후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민주적 관례와 제도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으며 사법부를 포함한 국가 기구 또한 그러한 사회적 진보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검찰이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를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것은 그러한 민주화의 대세에 역행하는 조치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시민들과 함께 박유하 교수에 대한 기소 사태를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부디 검찰의 기소가 취하되기를 바라며,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2015년 12월 2일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239315759428669&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theater

渦中日記 2015/12/1 – 기자회견 전야

그저께는 마이니치신문 인터뷰를 했고, 어제는 뉴욕타임즈 인터뷰를 했다. 한 일본인기자는 나에게 전화해서 한국언론의 반응을 물었다. 한국언론에서는 아직 인터뷰신청이 없고 기소를 직접 비판하는 기사나 칼럼은 내가 아는 한 아직 없다고 했더니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이유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응원을 보내 주는 분들은 계시다.

내일 기자회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1년반 동안 재판소와 세상을 향해 “내 책은 위안부할머니를 비난하는 책이 아니다” 라고 외쳐왔지만 그 외침은 철저하게 묵살당했다. 읽은 이든 안 읽은 이든 나를 비판하는 이들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책임을 부인하는 일본””피해를 호소하는 할머니”라는 두가지 대비되는 이미지인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그들에게 내 책은 그러한 “정황”에 대한 인식이 없는, 그러한 “정황과 싸우고 있는 할머니의 인권”을 짓밟고 있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 읽은 이들조차 “똥을 먹어봐야 아느냐”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전제”가 맞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문하지 않는다. 조금 사려깊은 이들은 “책이 설사 그런 의도를 담지 않았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상처입었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해자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검사는 내게 책의 문맥을 보면 의도가 나쁘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 “구절”이 문제제기되는 한 그건 “법적”으로는 문제삼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1년 반동안 알게 된 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검찰과 법정이라는 공간은, 하나의 사태에 대해 총체적으로 다방면으로 생각하려 한 인문서적에 대해 “판단”이 맡겨져서는 안되는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법학자의 발상이 인문학자의 발상과 얼마나 다른지도 알았다.

가처분재판부와 검찰이 나의 책을 성실하게 읽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의 답변서를 읽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자발적 매춘부”라고 말했다고 쓴 원고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데서 드러난다. 그럼에도 검사는 “내가 한국에서 이 문제를 세번째로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말했었다. 아마도 검사는 원고측이 제출한 방대한 자료들–유엔보고서니 그외 자료들을 열심히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제출한 또다른 자료, 1992년에 한국정부가 만든 자료는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자료는 나의 견해와 아주 비슷하다.

그들은 나의 책을 판단할 때 단순히 “할머니의 명예”침해 여부로만 묻지 않는다. 그들이 갖고 있는 현대일본에 대한 이해, 식민지시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 책에 대해 말한다. 나눔의집 측이 내 답변서를 읽고 “허위!”라고 주장했던 처음 주장을 바꾸어 나의 “역사인식”이 “공공선”에 반한다고 말하면서 내가 “전쟁범죄를 찬양”하고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던 것은 그런 생각이 잘 드러나는 과정이었다. 그런 그들의 전략은 유효했고 “삭제하라”는 명령과 “기소”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내 책은 바로 그런 그들의 “전제”와 “사고”에 대해 물으려 한 책이었다. 그러니 나는 어쩌면 그동안 접점자체가 없는 싸움을 해 온 셈이다.
수십번 한 이야기지만 이 싸움은 할머니와의 싸움이 아니다. 지원단체와의 싸움조차 아니다. 그저, 20년 이상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했이들, 그들이 이 사회에 심어놓은 “인식”과의 싸움일 뿐이다. 그 인식의 뒤에는 때로 이런저런 권력도 보이지만.
나를 지지해 준 이들 중에 외국등 “바깥”에 있는 이들이 많았던 건, 이 사회를 지배하는 통념과 힘에서 자유로운 이들이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혹은 “안”에 있을지라도 우연한 인연이나 통념을 존재와 생각과 행동의 근거로 삼지 않고, 그래서 생각이 자유로운.

나를 위한 “지식인성명”에 서명을 받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내일 나의 기자회견에 이어 발표된다. 주로 학계, 문인을 포함한 문화예술계, 출판계, 언론계, 그리고 법조계 분들이 참여해 주었다.
오래 교류해 온 학문적동지이기도 한 분과, 고발이후 적극적으로 옹호해 주셨던 명망가가 나서주고 계신데 나는 늘 교류하는 페이스북 친구들에게조차 미처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유명진보논객들이 동참해 주었지만, 발표되는 첫성명에 늘 지지해 주었던 페북친구들의 이름이 없으면 그간의 상황이 반영되지 않은 성명서라는 느낌이 들 것 같기도 하다.

알려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경황이 없었습니다.

혹 이제부터라도 참여해 주실 “해당분야” 분들은 아래 댓글에 있는 백승환군에게(이미 저에게 보내신 분은 괜찮습니다) 페이스북메시지로 이메일주소와 함께 성함(신분)을 적어 알려 주시면 되겠습니다.
(예:박유하(연구자), 홍길동(언론인)등. )
오늘밤 10시까지입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8473506179561

渦中日記 2015/11/29

열흘이 지나고, 오늘은 처음으로 주변을 둘러 볼 수 있었다. 며칠 전에 페친 설안재 선생님이 보내주신 김치와(오래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다.) 그 전에 페친 송민수님께 구입했던 사골국을 챙겨 먹고 기운도 차렸다.

나를 비난하는 층위가 너무 여러가지라서 벅차게 느낄 때가 있다. 위안부문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게 쌍욕을 쓰는 이들부터, 팩트가 틀렸다는 사람들, 태도가 나쁘다는 사람들, 방법이 나쁘다는 사람들까지. 심지어는 하는 얘기는 틀리지 않지만, 타이밍이 나쁘다는 사람들까지 있다. 내가 읽은 원고측 마지막 문서에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일본에 강제연행을 인정하게 하면 되는데 왜 굳이 딴소리를 해 일을 복잡하게 만드냐는 내용 조차 있었다. “한반도는 식민지 통치 하에 있었기 때문에 강제연행이 있을 수 없었다”고까지. 그러면서도 외부에는 “박유하는 강제연행을 부정한다”는 식으로 비판중인 것이 현재 상황이다. 그리고 그 비판들이 나를 감옥에 보내고 싶어하는 한, 나는 그 비판의 숫자만큼 대답해야 한다.

비판자들은 개인도 있지만 다수 혹은 집단으로, 조직적으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심지어 나의 SNS까지 감시하며 즉각적으로 한일 양국어로 비판의 자료로 삼는다. 고발사태를 겪으면서 나는 스토커에게 감시당하는 기분이 어떤건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2년 전에 나온 이재승교수 글에 대한 반론을 써놓고도 아직 발표하지 않았을 만큼, 느리고 소극적이었다. “위안부 문제를 잘 모르고 있다””반론을 쓰지 않는 건 반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오늘의 기소가 당연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에게 책임이 있다면 이 사회의 양식을 너무 믿었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자기방어에 게을렀던.

어쨌든 이제 정신을 차렸다. 사골국과 김치와 찜질방 덕분이다. 일본에 가서 살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역시 여지없이 이런 것들을 사랑하니 좀 더 이곳에서 버텨 볼 생각이다. 고발사태를 겪으면서 서로 깊이 알게 된 사람들이 있어서 소중한 이 공간에서.
내 장점 중 하나는 상황이(상대가) 너무 심하면 씩씩해진다는 점이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7699806256931

渦中日記 2015/11/28

기소이후 열흘이 지났는데 여전히 제시간에 밥을 먹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비일상”의 시간들.

그동안 받은 염려와 위로의 문자와 메시지와 메일들에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약간의 평정을 찾고, 댓글에 답글을 달려 하니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을 느낀다. 말을 하려면 힘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아마도 죽기 전에 침대 옆에 모여 있는 이들을 바라볼 때, 비슷한 생각이 들 것 같다.

바보들이 바보인 건 자신들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어둡고 흐린 날. 많이 추운 날이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7068392986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