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 도서 지정 관련 보도

성남도서관에서 나의 책들을 19금 도서로 지정한 배경을 취재해 준 기자분이 있었다. 깊이 감사드린다.

우연히도 오늘, 서울의 한 남자 고등학생 둘이 <제국의 위안부>가 “방과후수업”의 과제도서였다면서 남은 질문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었다. 고등학교 1학년. 책을 읽고 찾아온 학생중에는 최연소다.

책을 너무 좋아한다는 두 학생한테 성남시 조치 얘기를 했더니 학생들도 기막혀 했다.

아이들은 때로, 어른들을 훌쩍 앞서간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06090107263917300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86654784694765

 

급진의 보수화/정의의 악의

이 며칠 도를 넘어선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뒤늦게 시사인 기사를 보았는데, 자료에도 없는 소리를 내가 지어낸 것처럼 쓰고 있어서 충격을 받았다.
와카미야 선생 사망 소식을 그 밤에 들었으니 내겐 최악의 날이었다.

비판자들은, 자신이 단 한사람을 향해 집단 공격에 참여중이라는 걸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재판 중이라는 것도 잊고 있을 것이다. 재판내용과 상관없는 비판마저 “박유하의 책은 문제있는 책”이라는 담론이 되어 재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도.
물론 이 모든 것이 의식적으로 하는 일이라면 더 할 말은 없다.

정영환 비판조차 잘못 옮긴 것으로 보이는 이 “편집위원”은 알고보니 아직 박사과정 재학중인 학생이라고 한다. 아사히신문출판사에 정정을 요구하는 패기는 좋았지만, 그전에 배워야 할 것이 많아 보인다.

“제국의 변호인-박유하에게 묻다”는 책도 나왔다.
제목을 붙인 이는 페이스북에서도 나를 비난했던 손종업씨라는 걸 알았다. 그는 고발 직후에 내가 일본에 돈을 받은 것처럼 쓰고 금년 들어서는 나를 아이히만에까지 비교하며 비난했던 이다.
비판보다도, 제목의 함의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비평가”를 데려다 책을 만든 이들의 존재에 더 한숨이 나온다.
이미 여러번 말했지만 “제국의 위안부”란 “제국에 동원된 위안부”라는 뜻이다. 설사 주체적으로 보였거나 행동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책은, 내용의 오용에 이어, 이제 제목마저 오용되고 있는 중이다.

대중선동이 “비평”의 얼굴을 하고 세상에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혹은 정의의 얼굴로.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정의와 악의는 고작 한 글자 차이다.

나뿐 아니라 나를 옹호해 온 이들에 대한 비판도 담았다니 사태는 이제 나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일본에서 2007년부터 시작된 갈등이 10년후 한국에서 본격화된 양상.
그때와 다른 것은 그때는 비판자들이 극소수였지만 지금은 수십수백명이(그 뒤엔 수천명이) 한미일 연대망을 이용해 나 하나를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물론 현실적패배감이 부추기는 일일 것이다.

< 제국의 위안부>는 지원단체와 일본의 일부 지원자를 비판한 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응답”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들의 응답은, 10개월에 걸친 침묵끝의 고발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학자들마저 본격적으로 지원단체에 발 맞추고 있다.
연구와 학문이 운동논리를 사유하지 못했던 건 사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운동이든 이론이든, 지키는 것이 목적이 되면 보수화 될수밖에 없다.

급진의 보수화는 피해자로서의 마이너리티 의식이 만든다. 하지만 마이너리티가 온전히 정의일 수 있는 것은,그들이 적으로 간주한 이에게도 정의로울 수 있을 때다.

나를 두고, 한편에선 “제국의 변호인”(손정업)이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제국에 대적해 온 “일본 리버럴(진보)의 비겁한 무기”(정영환)라고 한다. 이들에겐 내 책이 대단히 혼란스러운 것 같다.
혼란은 선입견이나 목적이 있었을 때 일어난다. 기존인식에 꿰어 맞추려 하는 한, 거기서 일탈하는 기술들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금년들어 이들의 공격이 강해진 건, 일본어판의 수상과, 오에겐자브로/우에노치즈코/고노&무라야마 등의 지식인 성명, 그리고 한일합의에 원인이 있는 듯 하다. (한국은 물론 일본판 위키페디아마저, 정영환을 비롯한 이들의 시각으로 채워져 있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내겐 남의 일이 아니다)

위기의식은 이해하지만, 사태를 정확히 파악 해야 이길 수 있다. 일본을 20년 이상 비판해 왔으면서 운동이이길 수 없던 건, 정확하게 비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냉전 이후 시작된 한일진보시민연대의 문제와 한계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민주”라는 개념이 국가에 대한 저항으로 기능했던 시대에서 30년이 지났다. 군사독재국가를 넘어선 시대의 “민주”란,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어야 한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59084934118417

이미지와 폭력–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한일합방 36년이라고 하지만, 일본이 이 땅에서 본격적인 권력을 누리기 시작한 것은 이미 청일전쟁때 부터였다. 그리고, 청일전쟁에서의 전쟁터는 일본도 아니고 중국전체도 아니고, 중국의 극히 일부와 조선땅이었다. 민비암살이라는 끔찍한 폭력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도、그런 유린의 연장선상의 일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민비가 암살당했을 때、일본언론은 그 사실을 충격이 아니라 당연한 일처럼 보도했다. 심지어 훗날 일본의 문호로 추앙받게 되는 26살청년, 나쓰메 소세키조차 “최근에 가장 고마웠던 일은 왕비 살해…”라고 친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감상을 적어 보낸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일본인들이 원래부터 냉혈한이기 때문일까.

일본언론은 일찍부터 민비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도했다. 질투많고 권력욕 강한 악녀. 그것이 민비에 관한 보도들이 만들어내 일본인 안에 심어놓은 이미지였다. (<암살이라는 스캔들>.나이토 치즈코)
젊은 엘리트로 하여금 자신이 무엇을 한건지 모르도록 만든 것은 그런 식의 편향적 보도들이었다. 또 훗날 일본군이 중국 전쟁터에서 중국인을 대상으로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도록 만든 것도, 편견을 바탕으로 교육되고 확산된 차별의식이었다.
폭력행사는,타자를 고통을 모르는 물건으로 봐야 가능한 일이다. 미움과 차별은, 때로 그 필수조건이 된다.

어제 한국정부가 구마모토에 뒤늦게 구호물자를 보냈다고 한다. 또 위안부할머니의 성금을 둘러싸고 찬반이 격렬한 듯 하다. 뒤늦은 대응과 기부에조차 차갑게 닫힌 2016년 대한민국의 심성에 대해서 일부언론이 비판적인 칼럼을 내놓았지만, 그런 신문들조차 “일본에 대한 미움”은 당연한 듯 전제된다.
그리고 미움의 크기는 늘 위안부문제에서 가장 크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하는 파렴치한 태도, 과거의 잘못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뻔뻔스러움”(2016/4/21.국민일보)이라는 말이 보여주는 것처럼.

90년대 들어 시작된 위안부문제해결운동은, “파렴치한” 일본상, 그리고 이제 악마같은 일본상 구축에 성공했다. 미운 건 일본이 아니라 일본정부라고 뒤늦게 말해본 들, 이대로 가면 일본과 전쟁을 한다 해도 기꺼이 참여할 피끓는 청년들과, 그들을 등두드려 내보낼 국민들이 대다수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현재의 북한이 그런 것처럼.

이 모두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이 20여년의 보도–독자적인 조사도 관계자들에 대한 취재도 없이 그저, 지원단체가 주는보도자료들을 언론이 받아써 온 결과다.
물론 그런 보도들을 추인하거나 리드하기조차 했던 지식인들이나 전문가들의 책임 역시 작지는 않다 . 또 최근 몇 년동안 위안부문제를 어떻게 끔찍하게 형상화할지에 골몰하고 졸속공부에서 경쟁했던, 그림과 영상 제작자들 역시 책임이 없을 수는 없다.

대한민국 국민다수의 생각을 만드는데 일조한 이들이라면, 이미지와 지식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일상속에서의 적대와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더 큰 폭력에 대한 책임의식을 뒤늦게라도 가져봤으면 좋겠다. 물론 수용하고 전달해 왔던 우리 모두도.
악마화 하지 않고도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니 악마화는 오히려 본질을 놓친다.
“뻔뻔한 일본””사죄않는 일본”이미지의 재생산 속에서 우리가 해 온 일은 고작,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며 죽었다는 이승복 소년을 소녀상으로 대치한 일 뿐이다.
어른들은 언제나,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이들을 이용한다.

우려되는 것은 사실 일본에 대한 몰이해가 아니다. 그 몰이해가 만든 미움이, 우리를 조금씩 냉담하게 만들고 있는 정황이다. 또 우리를 그렇게 편협하고 차가운 한국인으로만들어버리고 만 상황이다.
인간의 죽음에조차 쾌재를 부르는.
26 살 나쓰메소세키처럼.

일본인들을 돕는지 여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2016년 봄, 대한민국은 대만과 달리 구마모토에 냉담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정황이, 20여년동안 남의 말에 결코 귀를 기울이는 법 없이, 양극단 사람들의 적대와 과장과 은폐에 휘둘린 결과라는 점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건 바로 그런 적대와 증오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 증오를 누가 만든지도 모르는 채 먼저 희생된다. 불화 역시 마찬가지. 적대담론의 폭력성을 봐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추신)
재해때마다 화제가 되는 “일본인의 아름다운 모습”은 재해가 많아 체념적이 되어서도 아니고, 그저 어릴 때부터 방재훈련을 많이 받았기 때문만도 아니다.
일본어머니들이 자식에게 가장 많이 말한다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배려심이 몸에 밴 결과일 뿐이다.
긴급한 순간에 남을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제어해야 가능하다. 자아보다 조화, 나의 욕망보다 타자의 평안에 가치를 두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50782178282026

혐오의 방정식

일본의 위안부문제 지원자들도 더이상 하나가 아니다. 한일합의에 관해서도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
이 기사에 언급된 이들은 가장 강경한 입장을 고수 중인 이들이다.

분명 이들이 말하는 대로, 일본인들 일부가 내 책을 자신들이 하고 싶은 얘기에 멋대로 이용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독해력과 무절제한 왜곡욕망의문제. 심지어 영어요약을 멋대로 만들어 내가 한 요약인 것처럼 유포중인 블로그조차 있었다. (일본쪽 출판사에 대응을 의뢰중)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위해 내 책을 멋대로 왜곡하는 건 이들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이 20수년간의 한일갈등은 이 양쪽이 그런 식으로 세간에 제공해 온 정보의 과장과 은폐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책이 평가받은 건 일본의 책임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제국의 책임”임을 말했기 때문이고, 이 양쪽 세력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그런 나의 논지에 공감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언젠가 전여옥이 “일본에는 추녀만 많다”면서 “일본은 없다”고 했던 것처럼, 소수 문제적인 이들에게만 주목하면서 그들을 “일본”이라고 생각한다.
불행한 사람들이다.
더 불행한 건 이 양쪽은 똑같이, 자신들이 확산시킨 혐오에 대해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

이들은 위안부 할머니의 인권을 말하지만 나의 인권은 개의치 않는다. 이들이 며칠 전, 내가 감옥에 갈 수도 있는 형사재판을 반대하지 않는 자세를 분명히 한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기사 오류를 바로 잡아둔다. 물론 이번 경우 기자가 아니라 발표자가 이렇게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군관여부정–일본군 조선반도 “공식적 강제연행”부정
*책임부정–“법적” 책임 부정

타자에 대한 적개심과 처벌을 부르려는 행위가, “정의”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던 슬픈 봄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1&aid=0008315212&sid1=001


본문:

혐오의 방정식일본의 위안부문제 지원자들도 더이상 하나가 아니다. 한일합의에 관해서도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 이 기사에 언급된 이들은 가장 강경한 입장을 고수 중인 이들이다. 분명 이들이 말하는 대로,…

게시: 박유하 2016년 4월 7일 목요일

거짓말처럼, 위안부문제가 타결되었다.

거짓말처럼, 위안부문제가 타결되었다. 정부끼리도 시작전부터 삐그덕거리기에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회적합의라는 의미에서의 “해결”로 가기까진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벌써 지원단체와 당사자간의 이견마저 보인다. 너무 서둔 감이 있다.

이런 일이 없도록, 나는 대립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협의체를 만들어서 몇가지 논점에 대해 토론하도록 하고 그 논의를 언론과 관계자들에게 공개해 당사자와 양국국민이 “인식에서의 합의”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 결과에 근거해 해결책도 찾을 수 있도록.
(“국회결의”가 있기를 바랐지만 그건 위안부문제 뿐 아니라 식민지배 전반에 대한 것이었으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기다려봐야겠다. )

아무튼 결정된 이상, 이제 남은 일은 이런 결정이 얼마나 정당한지에 대해 검토하고, 뒤늦게라도 납득에 기반한 국민적합의에 이르는 일일 것이다. 위안부할머니들 “당사자”의 생각과 선택과는 별개로.
일본의 경우는 오늘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사죄/보상에 부정적이었던 일부 우익과 지원자들의 일부인 듯 하다. 말하자면 대다수 일본국민들은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에 공감한다.

따라서 앞으로 중요해 지는 건 한국의 언론과 여론일 것 같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이 필요하다. 좌우로 나뉘는 게 아니라 그저 합리적이면서 윤리적인 판단에 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반으로 갈려 대립하는 게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의 공통시각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위안부문제 뿐 아니라 다른 국내문제에서도 그런 일이 가능해진다면, 분열과 대립으로 소모하지 않는 공동체만들기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그런날을 나는 여전히 꿈꾼다.

위안부문제가 갑자기 타결된 날에.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56280397732205

한일회담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한일회담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한국정부는 일본과 나눈 얘기를 다 말하지 않았다. 이 정부는 국민에게 감추는 게 너무 많다. 세월호 때 드러난 것처럼, 해결을 하지도 못하면서 정보를 독점한다.

“뒤통수친다”는 생각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정부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일본은 한번도 그들의 “원칙”을 바꾼 적이 없다. 어젯밤에 아베수상이 일본의 TV에 나가 “원칙을 고수한다”고 강조했던 것도 그 일환일 뿐이다.
한국언론들은 듣고 싶은대로 들었지만, 아베수상이 했다는 얘기를 내 이해대로 번역해보면 이렇다

“솔직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일본의 세계유산등재 때 징용문제로 한국이 용어사용에서의 약속을 뒤집은 일, 산케이 지국장문제,수산물수입금지든 그동안의 불만을 다 말했다.)

“해결을 위한 협의를 가속화한다”
(일본이 요구한대로 대사관 앞 소녀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미국등에서의 일본 비방과 소녀상 설치를 자제한다고 합의하면 사죄/보상을 할 수 있다. )

“차세대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한다”
(위안부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이 문제는 더이상 문제삼지 않는다. 과거에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더이상 묻지 않겠다고 했는데 언제까지 말을 바꿀 것인가.)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511022228125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24204917606420

이번 정부에서는 처음으로 한일회담이 열린다

이번 정부에서는 처음으로 한일회담이 열린다. 나는 외교전문이 아니지만, 최근 3년간 대일외교는 내가 보기엔 빵점이다. 심지어 오늘도 그 수준을 유지중이다. 손님을 불러 대화를 하는데 식사대접을 안 한다는 건 어느나라 풍속인가. 우리의 대통령은 영어나 불어는 가능한 것 같지만 외교나 인간심리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대통령은 위안부문제 해결이 먼저라면서 그동안 대화를 거부해 왔다. 하지만 해결을 하려면 진작 만나 대화해야했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도 회담을 하는 건 아마도 미국에 등떠밀린 결과일텐데, 이제, 한일 FTA에도 부정적이었던 입장을 바꾸어, TPP참여문제를 일본에 부탁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자존심은 좋지만,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자존심은 오히려 자신을 비굴하게 만든다. 오늘, 위안부문제에서도 기대하는 대답을 듣지 못할 게 분명하다.

덧붙여 말해 두자면, 대부분의 언론이 “일본이 1965년에 (보상은)끝났다면서 위안부문제해결을 거부하다”는 식으로 보도했지만, 그건 정확하지 않다. 일본이 “원칙”을 말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해결할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최근 국장협의에서 주로 논의된 건 소녀상문제인 듯 하다.

상대의 생각과 주장을 정확히 알아야 대응도 제대로 할 수 있다. 거부하든 받아들이든. 오늘 대통령은 그 이야기를 들을 지 모르지만,아마도 대답을 못할 것이다. 소녀상은 정대협이 만들었지만 이미 “국민 소녀”가 되었기 때문에.

http://m.ichannela.com/news.do?mode=viewsec&cid=11&nid=374948&news_date=20151028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23558134337765

국민세뇌는 국정교과서만 하는 건 아니다.

국민세뇌는 국정교과서만 하는 건 아니다. 전시관도 기념비도, 대개는 “하나의 기억”을 주입한다. 그리고 중요한 건 “하나의 기억”인지 여부가 아니라, “어떤” 기억인지, 배경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기억인지 여부에 있다.

1970년대 이후, 전국곳곳에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는 9살짜리 이승복의 동상이 세워졌었다. 이제는 80퍼센트 이상이 철거되었다는데, 그로부터 40년후, 2010년대에는 위안부”소녀”상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 그 상들은 어떤 운명을 걷게 될까.

문제는 상 자체가 아니라, 당사자를 넘어선 “생각과 욕망”들이 상에 담기면서 영웅화되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고요한 추모와 슬픔이 자리할 공간이 사라진다는 데에 있다. 그곳에 있는 건, 희생된 소년/소녀들의 아픔이 아니라 형해화된 어른들의 욕망일 뿐이다. 교과서든 기념비든. 국가든 민간이든.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20516641308581

미국이 한국이 한 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한국이 한 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안으로는 미군기지촌위안부문제, 밖으로는 베트남에서의 성폭행과 위안소이용문제를 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도,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해 그런 자신을 돌아보며 대처하기를 바랐었다. 언젠가 그 외침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전에.
물론 문제가 알려지는 것 자체야 문제될 것 없지만, 한국이 가장 열심히 일본을 규탄했을 무렵, 이 문제는 전혀 자각되지 않았었다. 일본의 사죄와 보상시도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을 몰랐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10년전에 쓴 <화해를 위해서>에서 나는 한일간 네가지 문제를 다루었지만,가장 알리고 싶었던 건 그런 뒤틀린 모순구조였다. 하지만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나는 여전히 그들의 억압아래 있다.

미국은 이미 한국전쟁때 UN을 위한 한국인 위안부를 이용했고, 강간도 했다. 따라서 미국역시 한국문제를 거론할 처지가 아니다. 하지만 우선은 이 문제를 세계에 알려온 한국의 대처가 주목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문제를 보도한 곳이 경향밖에 없는 듯 하다. 그조차, 다음날엔 일본의 로비를 의심하는 기자의 글이 실렸다.

손가락이 나를 향했을 때 필요한 건, 의도에 대한 의구심이 아니다. 다른 이의 책임을 묻는 일로 “물타기”하는 일도 아니다. 개인도 국가도,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깊이 타자를 볼 수 있다.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510160053461

http://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151018_0010356275&cID=10100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15735585120020

연구자의 윤리

이미 페친이 아니지만 “젊은 학자”김헌주는 학술지<역사문제연구> 에서, 내가 웃는 얼굴의 조선인 위안부 이미지를 사용한 곳이 “위안부는 20만명이 아니고 상대한 일본군의 숫자도 적으며 연애도 했다”는 내용을 말한 곳이라면서 “명백”히 “의도적”이고 “비겁”하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33쪽은 물론 사진에 대해 언급한 31쪽에도, 32쪽과 34쪽에도 그런 내용은 적혀 있지 않다. 설사 내가 그런 의도로 사진을 사용했다 해도 사진을 어디에 넣을지 정한 건 출판사지 내가 아니다.

내가 이 사진을 사용한 건 “강제로 끌려간 소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자료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사진을 찍은 일본인 기자가 조선인 위안부의 웃음을 “망향의 념을 떨치버리기 위한” 모습으로 읽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십년전에 <화해를 위해서>를 쓸 때는 나는 이 사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강제로 끌려간 소녀”의 이미지에 균열을 만드는 자료로서 언급했다. 하지만 <제국의 위안부>를 쓸 때 사진이 실린 원본을 찾아보니 그동안 이 사진이 기자의 설명이 빠진 채 유통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내가 굳이 사진을 사용한 이유는 표면적인 것만 보지말고 빠진 설명까지 참고해서 보자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헌주는 이 설명은 빼고 게재할 뿐 아니라, 표면적인 내용에만 언급해 나에 대한 적대를 유도한다.

그의 “불편”함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여성”을 벗어나는 이미지를 벗어나는 여성들을, 바로 그자신이 부정하고 배제하고 혐오하기 때문에 생긴 불편함이다. 다시 말해 그 사진에서 오로지 표면적 “자발성”만을 읽어낸 건 내가 아니라 오히려 김헌주다. 일본인기자조차 갖고 있었던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우리의 “젊은 학자”들에겐 없다.
물론 나눔의집 관계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내가 제시한 또다른 이미지를 오로지 부정해야 하는 무엇인가로 여겼다. “박유하는 위안부를 자발적인 매춘부라 했다”고 보도자료에 써서 배포했지만 그렇게 본 것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다.

이미 수십번 쓴 얘기지만, 내가 “자발적 매춘부”라는 단어를 사용한 건 위안부문제를 부정하는 이들이 그렇게 사용했기에 인용하며 비판한 문맥에서였다. 서경식선생조차 “구조적강제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나를 비판했고 이후 같은 비판을 반복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 개념은 바로 내가 십년전에 제시한 개념이다. 이들이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지만 명백한 표절에 해당한다.

자신들이 기대하고 희망하는 여성상을 벗어난 여성에 대한 혐오는 여성자신도 공유한다. 지원단체관계자들이 내 책이 할머니들을 비난한 책인 것처럼 간주한 것도 그 때문이다. 매춘이라는 주장도, 아니라는 주장도, 매춘을 혐오하고 차별한다는 점에서는 닮은 꼴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만든 왜곡된 보도자료와 고발때문에 나는 일년 3개월동안 전국민적 비난에 시달려 왔다.

내가 제국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인 위안부와의 위계도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들의 비난은 일본을 비판한 부분을 완전히 도외시한 비난이다. 다시한번 읽고 사과해 주기 바란다. 책을 편파적으로 읽고 비난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발이 당연하다고 말한 것을, 부끄러워 해 주길 바란다. 물론 다른 “젊은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김헌주의 발언이야말로 위안부할머니에 대한 명예훼손이자 나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한 학자의 고민에 대해 아무렇게나 말하고 “아니면 말고”로 끝내기엔 내가 받은 고통이 너무나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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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의 윤리이미 페친이 아니지만 "젊은 학자"김헌주는 학술지<역사문제연구> 에서, 내가 웃는 얼굴의 조선인 위안부 이미지를 사용한 곳이 "위안부는 20만명이 아니고 상대한 일본군의 숫자도 적으며 연애도 했다"…

게시: 박유하 2015년 9월 27일 일요일

이 다큐영화에 저도 나옵니다

이 다큐영화에 저도 나옵니다. 제 생애 첫번째이자 아마도 마지막일 영화출연입니다. ^^
책이 나온 직후부터 찍기 시작했는데 고발을 당하는 바람에 저로서도 예기치 않았던 장면들이 담기게 되었습니다..

감독과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다른 생각”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성노동자에게 관심이 많은 감독이시라 위안부 문제 비중이 어떨지, 어떻게 엮일지 궁금했는데, 살짝 구경한 결론은 위안부 문제 비중이 크다고 느꼈습니다. 위안부문제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한 일본분들도 총출연한,귀중한 기록이더군요.
성매매 문제에 관심 많은 분은 꼭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저는 20일 일요일에 가서 볼 생각입니다. 혹 오실 분은 아는 척 해 주세요.

http://www.dmzdocs.com/program/program_view_2015.asp?p_idx=7&menu=2&category=2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97116093648636

일본단상

일본에 관해 쓴다 해 놓고 한동안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얘기만 올렸다. 이제 가끔 본론을 쓰기로 한다.,

——–
1. 망각된 “전후일본”

아베정권의 집단자위권에 반대하는 일본인이 60퍼센트가 넘는다는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중 어디도, 놀랍다는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늘 생각해왔던 “군국주의국가”라면 국민들이 나서서 찬성해야 하는데, 그런 국민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편”이 되어 준 듯한 일본을 어여삐 여기는 보도들만 넘쳐날 뿐이다.

하지만 정말은 그런 일본이, 일반적인 일본인 다수의 모습이다. (집단적자위권 문제에 관해선 더 섬세하게 논해야 할 부분이 있으니 다시 쓸 생각이다.)
심지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무라야마수상의 여러정책도, 그저 악의 화신인 것처럼 얘기되는 자민당의 국제정책을 이어받은 것이었다(아사노토요미). 그리고 내가, 십년전에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에서 중점적으로 쓴 건, 그런, 전후일본과 그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였다.

물론 전후일본의 한계나 문제를 몰라서가 아니다. 하지만 한계를 말하려면 우선 대상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충분히 알아야 한계를, 그리고 정확히, 말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전에 쓴 적이 있지만 한일협정을 맺고 국교정상화를 했어도, 우리가 일본의 맨얼굴(문화/일반인)을 보기 시작한 건 아직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내가 썼던 얘기는, 일본전후는 기본적으로 이전과의 단절을 결심하며 시작된 시대였고, 그러다 보니 국민들에게 반전사상/평화주의가 정착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애국심이 없어진 국민들을 우려하거나 미국으로부터의 자립등을 생각하는 우파들의 목소리가 그에 반발해 커진 시기가 가끔 있었고, 그걸 일본의 “본질”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의(주로 일본좌파가 견인. 기본적으로는 정치적위기의식과 자성에서 비롯된) 목소리만 보도되면서 그것이 “전후일본”인 것처럼 간주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십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전후일본”에 대해 아직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전후사상”의 핵심에 있었던 지식인으로 꼽히는 가토슈이치가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있는 게 그 증거다. 물론 그렇게 된 건 나를 비롯한 일본학연구자들의 책임이다. 나역시도,가라타니고진등 현대지식인은 소개했지만( 일본에 이른바 “양심적지식인”이 있다는 것도 알려지지 않았을 때 얘기다), 마루야마마사오, 가토슈이치, 요시모토다카아키등의 존재를 소개하는 일엔 태만했다(마루야마는 많이 번역되었지만).
문학조차도, 우리 앞에 놓인 건 소세키니 미시마등 근대작가에서 갑자기 현대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중심이고, 그 사이에 놓인 노마히로시나 오오카쇼헤이(그에 관해선 문학시리즈에 넣었지만)에 대해선 알려지지도 읽히지도 않는 것이 현황이다.

물론 타국의 문학과 사상을 꼭 체계적으로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현대일본을 알기 위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전후일본”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것은 우리의 일본이해를 결정적으로 왜곡시켰다. 그러는 사이에 “전전일본=전후일본”이라는 지극히 단선적인 이해만 팽배하게 되었다.
일본과 다시 마주하려면,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아는 건 아주 적거나 왜곡되었었다는 자각부터 필요하다.

지난 주말심포지엄은, 일본에서조차 포스트모던이후 비판에 급급해 그런 전후사상을 잊거나 폐기하려하는 현대일본정치에 대한 위기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었고 그런 연장선상에서 다시한번 “전후일본”의 근간을 만든 “전후사상”을 재검토해 보자는 취지의 심포였다. “빛과 그림자”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고 11살때 패전을 맞은 81세 노학자와 “영속패전론”을 쓴 37세 학자가 한자리에 모여 선배들의 “지의 양상”에 대해 검토하고 고민하는 모습은 감동적이기조차 했다.

깊이 알아야, 폐기든 망각이든 계승이든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과거를 마주하는 방식”은, 잘 알지 못하는 채로 그저 폐기하려 하거나 옹호할 뿐이다.
하지만 후대가 할 일은 전부 버리거나 전부 취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죽은자를 둘러싸고 그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빛과 그림자”를 냉철히 들여다 보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후대이기에 가능한, 특권이기도 하다.

주말심포에서 만난 역사학자 나리타 류이치 선생은
1919년에 태어나 7년전에 작고한,”9조의 모임”의 발기인이기도 했던 가토슈이치에 대해 쓴 책<
가토슈이치를 기억한다–일본의 대표적 지식인은 일본의 “패전후”에 어떤 물음을 던져왔는가>는 제목의 책을 건네 주었다.
이 모임을 주최한 70세 불문학자 미우라선생은, 가토의 생일인 9월19일에 가토에 관한 강연회를 연다고 했다. 금년 강연자는 우에노치즈코선생이라고.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60243804002532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이런 일이 반복된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이런 일이 반복된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은 일본이 꼼수를 부리려는 것으로만 보도하지만, 이번 대상은 어디까지나 “메이지시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이다. 1868-1912,즉 메이지 천황이 통치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시설들이다. 말하자면 정확히는 일제시대 이전의 설비들이니 한국이 꼭 직접적인 관계를 주장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다. 그리고, 1925년에 나온 “女工哀史”라는 책이 말하는 것처럼, 당시의 노동자 착취는, 조선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곳에 조선인노동자의 땀과 피와 눈물이 존재했다면 , 비록 시기가 다르더라도 기억되고 보존되는 일의 의미는 크다. 그랬기에, 시설들 어딘가에 그런 설명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나도 생각했다. 그래서 6월말 한일 외교당국자들이 “주석”을 다는 형태에 합의했다기에 안심했었다. (최근 기사들을 보면 설비가 아니라 등재 신청서에 적는다는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그런데 직전에 한국당국자들이 생각을 바꾼듯 하다.
민족문제연구소등이 본까지 가서 반대시위를 했으니 그런 영향을 받은 걸까. 민디코틀러씨가 등장한 걸 보면 위안부문제 관련자들도 가세한 듯 하다.
코틀러씨는, 2007 년미하원에서 위안부문제 결의안이 통과되도록 힘쓴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일본이 미워도, 사안사안에 따라서 신중하게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결과로, 이 문제는 더 이상 역사문제도 아니고 정치문제도 아닌 “신뢰문제”가 되고 말았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간 협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중 하나는, 뭔가 조치를 취해도 최종적인 해결이 되지 않고 또다시 사죄요구를 해오지 않을까 하는 불신에 있다. 이번 일로, 한국과는 어떤 약속을 해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일본 사회에 더 확산될 것이다. 8월 이전에 어떤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도 한걸음 더 멀어졌다.

물론 옳기만 하다면 한번 정해진 일이라도 번복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일본에 관한 한국의 생각은, 충분치 않은 정보와 인식과 적대의식이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

몇 년 전에 미국에 있었을 때 느꼈던 일 중 하나는 한국도 일본도 아주 작은 나라라는 거였다. 중국만 약간 존재감이 있었을 뿐.
불행한 일이다.

http://m.mk.co.kr/news/headline/2015/638250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

http://sp.mainichi.jp/select/news/20150705k0000m040048000c.html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50534851640094

길고 긴 <안내>

어제 발표된 <국가평화지수>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42위라고 합니다. 일본은 8위라고 하네요. 북한은 하위에서 10위 이내라고 합니다.

사실 저의 관심은 일찍부터어떤 담론(사고)이 사람에 대한 지배와 폭력을 당연시해 자타를 불행하게 만드는지에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평화>라고 하면 <국가>단위로 떠 올리지만 한사람한사람의 평화(로운 일상)가 유지되는 일 없는 국가평화란그저 중심체제의 평화일뿐입니다.

국가가 화해와 평화를 만들지 못하니 시민이 나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얼굴을 한 시민단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더니 센 돌을 맞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무수한, 국가를 대변하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그런 내외부의 정황을 넘어서지 못하면 동아시아의 평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외침에 귀기울여 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보도자료 올립니다. 기자친구분들께서 더널리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페북친구여러분들이 함께 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내일 마련된 공간이 텅텅 빌까봐 오늘은 비장하지만..어깨에 힘을 빼고 즐겁게 유쾌하게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요즘 회자되는 미시마유키오<우국>같은 극단의 사고야말로 폭력을 만드는 법이니까요.)
————————-

< 2015년 6월 19일 보도자료 >
(문의 : 김석희 010-9147-8485)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 128-4 2층 이메일 [email protected]

‘동아시아화해와평화의목소리’ 창립총회 및 기념 심포지엄
주제 _역사를 마주하는 방식 –해방 70년, 한일협정 50년, 위안부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

일시 : 2015. 6. 20(토) 오전 11시~오후 6시
장소 :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세미나실 (수하동 67 ‘미래에셋센터원빌딩’ 서관 19층)

동아시아 평화는 화해를 통해서, 민족과 국가를 넘는 상상력으로

『제국의 위안부』 소송사태(2014년 6월 16일)로부터 정확하게 369일이 되는 2015년 6월 20일에 ‘동아시아화해와평화의목소리’ 창립과 이를 기념하는 심포지엄이 열린다. 지난 1년 동안 이어져 온, 소송에 반대하고 한일 간, 나아가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단체 출범과 이를 기념하는 심포지엄으로 가시화된다. 이날 창립총회에서는 단체의 취지문에 걸맞은 정관을 확정하고, 대표와 운영위원을 선출해 『제국의 위안부』 소송사태를 넘어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목소리를 낼 것임을 밝힌다. 오후 1시에 이어지는 기념 심포지엄 1부에서는 동아시아 교류와 평화와 관련해 강남순 교수(텍사스크리스천대), 아사노 토요미 교수(와세다대) 등이 발표를 한다. 또, 2부에서는 단체에 참가하는 시민들을 대신해 정우성 특허사무소김앤정 공동대표와 요시다 베키 교수(인덕대)가 심포지엄 주제와 관련된 시민사회의 담론을 발표한다. 이어 3부에서는 이날 발표자와 장박진 교수(국민대), 김용운 교수(한양대), 세미나에 참가한 시민들이 종합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한편, 이날 소송사태와 관련해서 법원의 판결에 따라 삭제 부분을 〇〇〇〇〇으로 처리한 『제국의 위안부』 삭제판과 『화해를 위해서』 개정증보판이 출간되어 참가자들에게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제국의 위안부』 삭제판은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의 중재 요청 등으로 제작이 지연되어 일주일 뒤, 30일경에 출간된다. 『화해를 위해서』 개정증보판은 예정대로 이날 출간된다.

창립취지문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로 대표되는 오랜 한일 갈등의 배경에는 이 지역이 겪었던 근대—20세기의 제국주의와 냉전 시대가 존재합니다.
제국주의의 상흔의 극복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민족주의뿐 아니라 냉전 시대가 만든 좌우 이념 대립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지역에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뿐 아니라 이념 차이에 따른 갈등도 넘어서야 합니다. 국적과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대화와 우애의 공간을 만드는 일은 가능합니다. 각기의 내부 분열과 적대가 이제 청소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가가 아니라 인간을 생각하는 개인들의 사고가 만날 때, 공동체 내외부의 평화가 가능해집니다. 우리는 국가·민족·이념에 진지하면서도 그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우리의 이웃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바랍니다. 반목과 불화를 넘어선 우애와 평화를 만듭시다. 국민 간의 불신은, 국가의 폭주를 막을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민족이나 좌우 이념의 차이를 넘어, 체념과 혐오를 넘어서기 위한 시민으로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는 제국주의와 냉전주의의 상흔을 극복한 평화로운 미래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한 시도를 시작합니다. 공간의 제약을 넘어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우리의 시도에, 지구촌 모든 분들이 함께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초청의 말씀
동아시아 화해과 평화의 목소리가 발족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합니다. 이 모임은 2014년 6월, 박유하 교수에 대한 나눔의 집의 고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주로 페이스북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 만든 모임입니다.
이번 사태에서 두드러진 것은 학자 이상으로 작가, 예술가, 그리고 직접 관련이 없는 시민들이 냉철하고도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주었다는 점입니다. 동시에 이른바 ‘민주사회’의 폭력적인 단면도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해방 70년을 맞으면서도 여전히 ‘일본’이라는 이름의 주술적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 사회(일본 사회)의 제반 문제점, 그리고 가능성을 진단하게 될 것입니다.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평화와 화해의 구축이 가능한, 또 다른 ‘시민의 목소리’를 모색하려 합니다. 50주년을 맞은 한일협정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려 합니다.
오전에 창립총회를 열게 됩니다. 창립취지문을 보시고 함께해주실 분들은 오전부터 하게 될 창립총회에도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런 연고 없이도 만나고 소통할 수 있었던 저희들이, 이제 다시 여러분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발기인
김남현((주)미리온 대표), 김미영(텍사스주립대 교수), 김석희(경희대 연구교수), 김철(연세대 교수), 민김종훈(성공회 사제), 박삼헌(건국대 교수), 박세진(애들레이드대학 교수), 박유하(세종대 교수), 서윤(대중예술인), 신인섭(건국대 교수), 신형기(연세대 교수), 심준섭(교육가), 이권희(단국대 연구교수), 이우연(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원), 이희경(프리랜서 통역가), 정나란(현대무용가), 정승원(기호학자), 정우성(변리사, 특허사무소 임앤정 공동대표), 정종주(뿌리와이파리 대표), 정찬용((주)정찬용교육 대표), 최규승(시인), 황종연(동국대 교수),
나일경(추쿄대 교수), 고모리 요이치(도쿄대 교수), 김두철(오카야마대 교수), 니시 마사히코(리츠메이칸대 교수), 나카자와 케이(호세이대 교수,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메이지가쿠인대, 작가), 아사노 토요미(와세다대), 오구라 키조(교토대)

함께해주시는 분들
곡인무영(예우학당), 김도언(소설가, 시인), 김문숙(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회장), 김용운(한양대 명예교수), 김영규(인하대 명예교수), 김향훈(종합법률사무소 센트로 대표), 박일환(시인), 박정란(오이타현립예술문화단기대학 교수), 배승주(프리랜서 통역가, 릿쿄대학 겸임강사), 윤성호(동서대 교수), 손이상(문화운동가), 이민석(변호사, 이민석 법률사무소 대표), 이춘경(프리랜서 통번역가), 장현우(사진가), 최돈선(시인), 최범(디자인 평론가), 최순애(건국대 강사), 후루카와 아야코(古川綾子, 번역가)
_가나다순 2015. 6. 19 현재

발표문 속으로
하나의 고유명에 의거해 민족/국가 대립을 강조하는 일로 여성들에 대한 착취를 덮고 ‘민족’의 딸이 되기를 요구하는 가부장적 담론—지배와 공포의 담론은 폭력을 막지 못합니다. 혼혈과 변방의 사고를 억압하고 모두가 똑같은 ‘일본인’, 혹은 ‘한국인’이 되어 대립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틀에서 벗어나는 시도에 대해서는 마녀사냥적인 배제를 촉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역사를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총체적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예외/단편/파편’등의 단어로 존재한 기억을 소수화하고 억압하지 않아야 합니다. 차별과 억압이 중심인 공간에서의 ‘다른’ 기억은 대세에 저항했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기억해야 하고 이어받아야 할 하나의 ‘정신’입니다.
동시에, 중심적인 다수의 체험도 기억되어야 합니다. ‘아시아여성기금의 기금의 망각’은 기억의 소거입니다. 한국인에게 사죄했던 이들을, 그들이 ‘국가’를 대변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그들의 마음을 역사에서 배제한 폭력입니다. 그 결과로 일본인의 다수의 선한 마음은한국인의 기억에서 무시되고 소거되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전쟁을 기억하던 이들이 많았던 시대의 중심기억’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이야 말로 ‘전후일본’을 대표하는 이들이었고 그것이 바로, 그들이 기억되어야할 이유입니다. 최근 십여 년의 혐한은 더 젊은 층이 중심입니다. 전쟁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의 기억보다 전쟁과 지배를 기억하는 이들의 기억이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피소 1년 _박유하(세종대) 중에서

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강제연행’과 마찬가지의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성노예’였는지, 아니면 ‘매춘부’였는지에 대한 논의를 좌우하고 있는 것은 일본인위안부의 존재이다. 위안부로서의 징수·이송·관리에 일본정부의 관여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일본인위안부도 예를 들면 버마에서 마찬가지로 미군에 수용되었었다는 것과, 위안부제도가 게이샤(芸者)의 미우케 제도(돈을 지불하고 기적에서 빼 주는 제도)를 가원으로 해서 부모의 전차금(前借金)를 갚는 기간 동안에는 자유를 빼앗기는 상태에 있었음을 이유로 ‘매춘부’ 논이 전개되고 있는 것에 반해 조선인위안부가 특히 젊은 연령층의 여성이 많았다고 여겨져 왔던 점과, 일본 본토와는 달리 보다 강압적이었다고 여겨지는 방식으로 징수(徴収)가 이루어졌다는 점, 조선인위안부와 일본인위안부 사이에 위안소관리에 있어서도 다른 가격과 대우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가지고 조선인위안부의 ‘성노예’논이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 또한 여담이긴 하지만, 조선에서의 징수 문제를 놓고는 조선통치의 지방 말단(末端)을 책임지고 있던 조선인 면장이나 이장이 위안부 징수 동의를 총독부의 의향과 함께 얼마나 불가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에 대한 문제도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한일정상화와 위안부 문제/역사에 의거해 생각한다: 국민감정에 이용되어온 역사로부터의 탈피를 향해 _아사노 토요미(와세다대학) 중에서

프로그램

총회 11:00~12:00

휴식 12:00~13:00

1부 13:00~14:40 _사회 | 이권희(단국대)
개회사 _사회자
축사 _라종일(전 주일한국대사)
환영사 _김철(연세대)
『제국의 위안부』 피소 1년 _박유하(세종대)
일곱 가지 ‘정치학들’의 교차
—‘위안부 논쟁’ 에 대한 비판적 소고 _강남순(Taxas Christian Univ.)
한일정상화와 위안부 문제/역사에 의거해 생각한다
—국민감정에 이용되어온 역사로부터의 탈피를 향해 _아사노 토요미(와세다대학)

휴식 14:40~15:00

2부 15:00~16:00 _사회 | 정우성
왜 이따위 책을 냈냐구요?
—어느 출판인의 소박한 반문 _정종주(뿌리와이파리 대표)
위안소와 조선인 _이우연(낙성대경제연구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측 국민감정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_요시카타 베키(인덕대)
전승되는 증오에 관하여 _정우성(특허사무소임앤정 공동대표)

휴식 16:00~16:10

3부 16:10~18:00 종합토론 _사회 | 김철
장박진(국민대), 김용운(한양대), 박유하, 강남순, 아사노 토요미
폐회사 _김철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39035016123411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70퍼센트 이상이 일본을 싫어하고, 그 이유는 “역사를 반성하지 않아서”이고 일본을 “군국주의국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총체적/평균적으로 본다면 이런 일본관은 결코 정확하지 않다. 이런 일본관을 정착시킨 건 불과 이 이십여년이고, 위안부문제, 혹은 독도문제 주변인들의 선입견과 편견이다. 또 그런 편견을 확산 시키는데 앞장서 온 언론과 지식인들이다.

내가 정대협을 비판한 건 그런 편견확산에 가장 먼저, 열정적으로 앞장서 온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대협은 위안부문제에 대해 발언할 때마다 “군국주의 일본”을 강조해 왔다. 반크,서경덕,김장훈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군사대국이 꼭 군국주의가 되는 건 아니다.

문제는 이십여년의 그런 외침이 작금의 불안정한 동아시아정세에 일조했다는 점. 국가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건 시민들인데 지금의 동아시아 시민들은 불신과 경계심(담론)에 휩싸여 그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불화와 전쟁은 불신과 경계심이 만든다. 근거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고, 그런 불신의 밭에서 희생되는 건 꽃같은 젊은이들. 오늘도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그렇게 불신과 경계심의 덫에 사로잡혀 가고 있는 중이다. 정말은 서로를 알지 못하는 채로.

http://www.genron-npo.net/world/genre/cat212/post-358.html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25636477463265

일본의 인터넷뉴스에 언급되었기에…

일본의 인터넷뉴스에 언급되었기에 이런 글을 “칼럼”이라는 이름으로 유통시키는 매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본에도 혐한이 있지만 이렇게는 말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까지 극단적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인식과 감성을 가진 이들이 한국에서는 결코 소수가 아니라는 점.

하지만 문제는 이사람보다도, 이런식의 인식을 확산시키고 만, 이 이십여년에 걸친, 위안부문제해결운동의 편향적인 정보제공에 있다.

“만약 기회가 오면, 우리도 일본왕실의 가코 공주를 위안부로 보낼 수밖에 없다.”

http://m.ggdaily.kr/a.html?uid=68784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19654438061469

진짜 자존심을 보고 싶다

아베수상이 미국에서 위안부문제에 대해 “인신매매”라고 말한 일을 두고 언론이 맹비난중이다. 하지만 그건 며칠전에 일본에서 지원단체가 “방침전환”을 발표하면서도 그에 대해 설명하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
최소한 한국인 위안부에 대해 말할 때 지원단체들은 더 이상 공식적으로는 “강제연행”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인식변화를 말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과 국민들만 불필요한 분노와 혼란 속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나는 그런 부분을 책에서 “거대한 소모”라고 썼었다. (지원단체는 그 부분도 삭제하라고 요구했지만, 그런 요구들은 기각되었다. )

지원단체가 일본에 대해 요구한 사항중,
“당시의 국내법 및 국제법에 반하는 중대한 인권 침해였다는 사실”이란 실은 강제연행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인신매매와 이송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현재 지원단체와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하와 같다.

1.”인신매매임을 알고도 받아들였으면 불법”
2,”일본에서는 매춘업에 종사하는 여성이라도 21세 이하는 도항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조선에서는 21세 이하도 가능하도록 해서 어린 소녀들을 위안부로 동원가능하도록 했다”
3,”일본에서는 취업사기나 인신매매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법적규제가 존재했는데 식민지에서는 그렇지 않아 사기나 인신매매가 쉽게 이루어지도록 했다”

하지만, 이 주장들엔 전부 문제가 있다. (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으니 여기선 생략한다)

중요한 건 일본이건 한국이건 지원단체들은 더이상 우리가 생각해온 것처럼 “강제연행”이 아니라 “인신매매”를 바탕으로 이런저런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그렇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아,국민의 다수는 군인이 강제연행한 것으로 생각하고 소수만 속임수나 인신매매가 많았다는 걸 아는, 그나마도 일본정부가 지시한 것으로 생각하는 식의 인식편차와 그에 따른 혼란을 낳고 말았다.

지원단체가 방침을 바꾸면서도 “일본이 들어주면 그것이 곧 배상”이라고 말하는 건, 일본이 보상을 했을 경우 그것을 그간의 주장이었던 “배상”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20년가까이 “강제연행”이라는 주장을 세계에 말해왔으니 한번쯤은 자신들의 인식이 잘못되었었다고 말해도 되는 것 아닐까.
이대로 가면 위안부 문제가 설사 해결된다 해도 한일간 앙금은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너무 많이 감정을 상했다. 그 중심에는 일본 우익도 있었지만 지원단체도 있었다. 소수의 주장들이 다수의 감정을 상하게 해 국가간 대립으로 이어진 셈이다.

누구나 잘못된 주장은 할 수 있다. 하지만 해결이 관계 개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면 자신의 잘못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나는 그게 진짜 자존심이라고 믿는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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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단죄 문화를 다시 생각함

분노와 단죄 문화 를 다시 생각함

정치인들의 무식을 바탕으로 하는 이런 선동은 혹세무민 의 시대착오적 부메랑 – 결국 본인과 본인을 믿고 따르는 분들에게 깊은 해악으로 돌아올터 ..

손쉽게 분노하며 일견 명분과 숫자를 가진 편의 줄로 서서 분노 혹은 애국심 래토릭으로 중무장한후 다른 편에게 돌팔매질 ( 단죄) 하는것은 본능처럼 우리에게 친근한 행동이지만 문제의 본질을 가리고 집단적 오해를 대량재생산 하며 다수국민들을 결국 편견의 틀에 갇히게 하여 국제사회 에서 고립되는 자충수임을 다 같이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9339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3145553712358

페친 박상미선생님이 쓰신…

페친 박상미선생님이 쓰신 <제보자>관련 글을 보고,예전에 황우석교수사태때 썼던 글이 생각났다.
거의 십년전 글. 아직 혈기왕성할 때의 글이다. 위안부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의 일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한번 쓴 글을 다시 보는 경우는 필요할 때 외엔 거의 없지만, 때로 자기분석에 도움이 된다. 옛기억 속의 나를 나이든 내가 바라보는 일처럼.

http://www.kyosu.net/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8682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43878698972377

프랑스 테러에 관해 본 글 중…

프랑스 테러에 관해 본 글 중 가장 깊이 있는 글. 테러문제가,실은 제국(매저리티)과 식민지(마이널리티)간의 문제이기도 했다는 걸 알려 준다. 사실,내가 <제국의 위안부>를 쓴 건,<제국일본>의 문제뿐 아니라 일본을 비난하는 일로 자신들의 <제국성>은 덮어두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모순도 지적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 글이 곧바로 “식민지인의 테러(적 상상력)”를 긍정하는 글로 읽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갈등은 복합적이고, 단순한 이분법이야말로 폭력을 부르는 근원에 있는 것이니까.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98478


본문:

프랑스 테러에 관해 본 글 중 가장 깊이 있는 글. 테러문제가,실은 제국(매저리티)과 식민지(마이널리티)간의 문제이기도 했다는 걸 알려 준다. 사실,내가 <제국의 위안부>를 쓴 건,<제국일본>의 문제뿐 아니라 일본을…

게시: 박유하 2015년 1월 12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