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4/10/20

오늘도 재판관련 작업으로 하루를 보냈다. 언론에 보내기 위한 보도자료를 만들었고, 언론중재위에 올렸던 신청서를 보완했고, 재판진행상황을 보기 위해 <전자소송>사이트에 가입했다. 그리고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언론에 보도자료를 보냈지만 얼마나 보도해 줄런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가장 빠르고(), 어쩌면 유일한 보도매체가 될지도 모르는 이곳–페이스북에 노트로 올려둔다.

오랫만에 비가 왔는데 너무 일찍 그쳐 아쉽다. 내일도 비가 왔으면 좋겠다.

<My favorite musics>
ryuichi sakamoto – rain(live)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81324815227766

渦中日記 2014/10/19

어제는 오래 미루어 왔던 일을 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요청하기 위한 작업.
그런데 언론 중에도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문제가 심각했던 건, 양극단의 “적대적공존”이라는 우리사회의 현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만 것이 아니었을까.

과거에 쓴 내 책이 “일본우익을 대변”했다고 쓴 한겨레는 벌써 5년 전에 “일본우익의 찬사”를 받았다고 쓴 적이 있다. 그 때도 난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를 요청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그 때 하지 않았던 선택이 5년 후에 이런 사태를 불러왔는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나를 일본우익의 대변자로 몰고 싶어하는 한겨레의 인식은 사실 재일교포학자가 퍼뜨린 인식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인식이, 고발장에도 차용되어 고발이라는 폭력을 뒷받침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사상은 때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원고측 요청으로 미루어졌던 2차심리가 이번주 수요일로 다가왔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도 이제 중반.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80578661969048

渦中日記 10/3

멀리서 페친 정나란님이 오신 걸 계기로 야심차게 만남의 기획을 했는데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가을햇살”과 청명한 하늘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다 어제부터 컨디션이 좀 이상하더니 감기기운. 따끔거리는 목과 묵지근한 근육통을 핑계로 머리맡에 책 몇권을 쌓아두고 게으름을 피울 특권을 누리고 있다.(하여 어제 올린 포스팅은 혼자보기로 돌려 두었다. 술을 마시긴 글렀고 오랜시간 앉아있는 것도 무리일 것 같아, 정나란님과 호젓하고도 조용한 대화의 시간을 가질 예정. 개별적으로 연락 드렸지만 참석해 주시겠다 한 분들과는 다음 기회에 만나기로 했다.)

페친들이 언급하기에 봐 봤던 한 드라마가 정신(마음)을 앓는 사람들을 다룬 건 소재만으로도 탁월해 보였다. 사실 마음의 병을 앓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우울증”이니 “스트레스”니 하는 단어들이 생기면서 관리가능한 정도의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회 속을 활보하지만, 실은 누구나에게나 그 활보가 버거운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스스로가 관리할지 타인에게 관리를 부탁할지의 차이일 뿐.
“일”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거나,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이야기나 대상으로 도피하는 건, 아마도 그런 “자기관리”의 시간들일 것이다.

어제는 반론을 쓰기 위해 이재승교수의 비판을 다시 읽었는데 비판자체보다 비판에 담긴 적의와 마주하는 일이 또다시 나를 우울하게 했다.
나의 싸움은 재판이나 폭력과의 싸움이 아니라, 오에겐자브로의 소설에서처럼 슬픔이 내 얼굴에 곰보자국을 남기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수많은 적의들이 나를 망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 분노도 경멸도 오만도 아닌, 다른 자세로 마주하는 일. 적의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오는 일. 그럴 수 있도록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일. 경험의 흔적을 다른 형태로 남기는 일.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날. 나라보다 먼저, 자신을 꼿꼿하게 세우는 일들이 도처에 필요해 보인다. 오늘저녁엔, 미움과 폭력과 적의에 의해 ‘찌그러진’영혼들을 위해 건배해야겠다. 의심과 증오와 욕망에 의해 일그러진 영혼들을 위해서도 무언가 해야겠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68931486467099

渦中日記 9/28

9월 마지막 일요일, 집안정리를 하면서 보냈다. 석달 이상 쌓인 마음의 먼지까지 털어 내면서. 이제 이 가을을 제대로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유학의 최대효용은 마이너리티가 되는 체험,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아들 역시 그 체험이 효과가 있었는지 훌쩍 자라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의 마이너리티체험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 될 텐데.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965627720130809&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4/9/19

어제는 기쁜 일이 있었다. 원래 7월출간 예정이었던 <제국의 위안부>일본어판이 소송사태때문에 중지상태였는데, 출간을 위한 작업에 다시 들어가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국의 위안부>는 많은 한국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나역시 책을 쓰면서 내내 불편했다. 그리고 결국 누구보다 불편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실은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일본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주안점인 책이다. 한국에서 문제시된 내용들도, 오로지 그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일본의 부정파들이 이미 언급하고 있는 내용을, 회피하거나 그저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에서 받아들여 “재의미화”하는 것이, 내가 선택한 방법이었다.

내 책이 일본을 정말 설득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최근에 일본어로 내보낸 (4월심포지엄에서의 글과 아사히신문의 위안부문제보도기사검증에 관한 인터뷰) 글에 대한 반응은 나쁘지 않다.
사실 나의 목적은 아베수상과 그의 추종자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하루빨리 해결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그 주체는 아베정권일 테니까. 이 책이 원래 일본어로 쓰여지기 시작한 건 그래서였다.

2011년 겨울, 일본에서 한국의 정황을 지켜보며 일본인을 향해 연재했던 글이, 우여곡절끝에 원래대로 아사히신문출판사에서 나오는 것으로 결정된 날.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60175527342695

渦中日記 2014/9/17

어제는 고소당한지 3개월 되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간의 흐름을 특별히 의식하지는 않게 되었으니, 소송사태도 이제 제게 “일상”이 된 듯 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신 분들, 이 석달 동안 이런저런 형태로 함께 해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올립니다. 기력을 충전했으니, 이제 저도 필요할 때 그분들께 방패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압도적인 상황에 노출되면 알러지현상이 생깁니다. 전 유학때 애키우고 아르바이트하며 공부한 탓에 이후 스스로 “피로알러지”라 이름붙인 현상이 생겼습니다. 피로에 유달리 금방 반응하는 거지요.

소송직후에 한꺼번에 몰려온 공격에 노출되었던 탓에 다소 공격에 민감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공격알러지”같은 것. 그때문에 페친들께 때로 보였던 까칠하거나 거친 모습이 그대로 저자신이 되지 않도록, 부드럽게 감싸 주셨던 한마디 한마디들이 새삼 고마운 마음입니다.
누구나가 누구나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원래는 내일 있을 예정이었던 재판에 제출될 자료를 하나 올려 둡니다.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고진선생이라는 분이,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보내준 메시지입니다. 7월에 받았는데 8월도 넘기고 9월도 결국 넘겨버렸군요. 가을장마에 곰팡이 필 것 같아 빛 좋을 때 널어 말리는 심정으로 올립니다.

가라타니선생 말처럼, “사이”에 서서 한일양국을 봐 오려 했습니다. 소송사태는, 위태위태 걸어가던 가느다란 줄이 어느날 툭 끊겨 속절없이 굴러떨어진 격이지만, 이제 줄을 이어붙였으니,다시 걸어갈 생각입니다.
왜 굳이 줄타기를 하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생각을 말하고 행동하는 일 아니면 “나의 인생이 아니”라는 생각이 그렇게 만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실 인생이란 어떤 의미에서건 그런 줄타기라는 생각도 합니다.

오늘, 하늘은 흐리지만 모두가 조금 덜 힘들게 느끼고, 살아있음을 행복하게 느끼고, 아무도 자살하는 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작성일: 2014.09.17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959134277446820&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박진용, 명예훼손 그 치열한 삶의 존재양식 – 박유하씨의 소송과 관련하여

명예훼손 그 치열한 삶의 존재양식

(박유하씨의 소송과 관련하여)

반목과 조롱과 고소의 ‘세월’이자 ‘명예훼손’의 시대이다. 얼마전 한 보수논객은 특정 다수인을 종북으로 몰아대다가 실형을 선고받았고, 극우청년들의 게시판 ‘일간베스트’ 이용자들은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을 ‘유족층, 시체장사를 하는 좌익좀비’라 몰아간 책임을 묻기 위한 소송이 한창이고, 이성적인 가치를 몰각한 ‘팩트주의자, ‘개인적 취향의 옹호자‘들은 행동의 일선에서 폭식이라는 엽기적인 애국 투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엊그제는 대한민국 청와대에 의해 같은 죄로 고소당한 일본 일간지 기자에 대하여 ‘국경없는기자회’가 불기소를 촉구했다는 기사까지 나왔으니 대한민국은 현재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라고 불러도 과언은 아니다.

한때 나치들은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전용하여 유태인의 열등함, 이기심이 독인인의 고통의 원인이며, 유대인을 박멸하는 논리로 게르만의 우수성이 ‘팩트’라는 우생학을 끌여들였다. 1차대전 패전후 독일인들에게는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 했고, 이에 부화뇌동한 지식인들은 주변의 이웃이기도 한 유대인을 대량학살 할 수 있는 제도와 법률을 만들었다. 이것을 독일인들만의 ‘특이한 뇌구조’라고 말할 사람들은 없다. 그게 우리의 잠재된 본능이고 그들처럼 ‘일베’는 본능에 충실한 놀이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의 연혁은 권력에 대한 시민의 자유로운 비판을 보호하기 위함이었기에, 인종, 여성, 장애자 등 약자에 대한 공격과 혐오 표현은 애초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려던 가치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표현의 자유를 한계로 헌법이 명시한 명예훼손은 변종 나찌의 부활을 사회공동체의 힘으로 견제하고자 하는 이성적인 결단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예훼손 소송의 증가는 사회적 비경제를 창출하는 면이 있다. 특히 국가 사법권의 총화인 ‘형사법정’에 표현 내용을 세우는 제도는 구시대적이며, 말로 인한 처벌가능성의 대중적 자각은, 표현을 요체로 하는 학문, 언론 출판의 영역에 있어서 소위 ‘자기 검열의 일상화’를 구축할 위험요소를 내재하고 있다.

최근에 박유하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피소는 이런 위험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사고의 집합적 표현 양식인 책은 저자의 본질적 주장 즉, 전체의 맥락으로 읽혀져야 하며, 주장의 근거는 ‘사상의 시장’에서 동종의 사인들 끼리 논박되고 비판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예컨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혁명가 염상진이 꽤나 멋지고,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이 많은 부분 할애되었다고 해서 소설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이유이다. 태백산맥은 단순한 허구 이상의 역사에 대한 기록과 이에 대한 작가적 관점이 함축되어 있지만 그 시각은 실정법으로 단죄될 수 없는 부분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수백 개의 자극적인 표제를 단 기사들이 쏟아졌다. 아니 위안부가 일본군의 동지라니 “박유하 교수’제국의 위안부 책 내용 보니…충격 넘어 경악” 이 서적은 현재 출판금지 가처분, 형사상 명예훼손, 또 그 이상의 송사에 휘말린 듯하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여러 서평을 읽어봤다.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위안부의 명예를 훼손할 고의가 있다는 평가는 그 어디에서도 드러나지 않았고, 그의 결론은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일본 제국의 성노예로 규정하고 있다. 즉 기술의 관점을 민족주의적 시각이 아닌 국가와 개인의 관점으로 정리하고 논의를 방향을 설정했다. 이 관점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적지 않다.
즉 법학의 틀로 바라볼 때 전제 개념에 해당되는 법적 책임의 주체인 국가를 제국과 혼동했으며, 반사적으로 국가범죄로서의 위안부 모집범죄에 대한 방조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이 점에서 법학자 이재승 교수의 비판은 동종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는 관점은 학자의 고유한 영역이고, 학문의 방향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 있고, 현행법에 의할 때 논리적 흠결을 가져온다는 점, 그리고 법적인 관점을 견지하지 못했다는 것이 학문의 영역에서 형사처벌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문적 관점에 관한 차이는 논쟁을 낳고 논쟁을 통한 상호침투는 학문간의 경계를 허물고 다른 관점에 대한 사고의 범주를 확장시키며 전향적이고 진일보한 질서와 원칙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간학문적(interdisciplinary)접근방식이 추구하는 소통과 보완의 과정이다.

결국 명예훼손의 주체가 된 제국의 위안부는 상식적 논쟁과 비판을 넘어 바람직하지 않는 사법적 판단의 절차로 이송되었다. 일반적인 법적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법적’으로 이 사건이 명예훼손의 구성요건인 허위사실의 인식, 비방의 목적을 인정하기 어렵고, 이에 대한 고소는 무리한 소송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적 행위를 위한 사법권의 사적 전용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게 된다. 고소가 권리남용이 된다면 제고하고자 하는 공익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일반인의 법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의 ‘조리를 향한 도피’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논리는 집단명칭에 의한 모욕죄의 부당함을 다투고자 수많은 사람을 고소했던 정치인 출신의 모 변호사의 항변과 닮아있다.

친일의 칠을 덧씌우는 언론의 행태는, 종북의 칠에 익숙한 극우세력의 행동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터넷 언론의 ‘자극적 제목 뽑기’라는 선정주의는 학문으로 논쟁하고자 하는 학자를 법정에 세웠으며, 다른 한편으로 피고소인을 수많은 명예훼손과 모욕죄의 피해자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명예훼손적 친일 작품이 아니라면 이는 무고죄에 해당 할진데 과연 그는 평등하게 사법적인 구제를 구할 수 있는 지위인가?

부연컨대 무리한 사법의 사용은 결국 사고를 검열하게 만들고 표현을 위축시키게 된다. 또한 주류질서의 경제주의, 이와 결합한 언론의 선정주의, 그리고 ‘대세’로 구분하는 편의주의를 통해 비주류적인 관점에 대하여 무차별적인 공세를 만들어내고, 이러한 조직적 일관성은 다양한 사고와 표현을 공격함으로서 결국 적군과 아군의 논리로만 준별되는 학문적 이분법이라는 퇴행으로 이끌게 되어, 궁극적으로 일체의 다양성이 용인되어야 할 학문질서를 후퇴시키는데 기여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법학자들, 법조인들은 이 유죄 추정된 금서에 대한 가벌성과 관련하여 직업적 양심에 의한 어떤 법적평가를 내릴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론의 재판을 통한 유죄평결에 맞서는 정치적 부담을 감당하느니 가만히 있고 싶은 생존 본능이리라
이 점에서 마치 국회의원 이석기의 내란음모사건에서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침묵했던 모습이 교차되기도 한다. 아직 우리는 이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안전하게

명예훼손 그 치열한 삶의 존재양식(박유하씨의 소송과 관련하여)반목과 조롱과 고소의 '세월'이자 ‘명예훼손’의 시대이다. 얼마전 한 보수논객은 특정 다수인을 종북으로 몰아대다가 실형을 선고받았고, 극우청년들의…

게시: Jinyong Park 2014년 9월 10일 수요일

 

渦中日記 2014/9/6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달 전부터. 하지만 해야 할 일들이 좀처럼 끝나지 않았고 멀리 떠날 기력도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제주. 마침 지인이 과수원 딸린 집을 빌려 준다고 해서 바로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저 책 읽고 음악 들으며 비우고 채우는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어제까진 그렇게 하지 못했다.해야 할 일들을 이제 대충 끝냈으니 오늘부터 진짜 휴식의 시간.

어제 제주(의 개)사진을 올렸더니 제주 사시는 페친이 연락을 주셨다. 나도 만나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다음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이번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렌터카도 빌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페북에 글 올리는 한, 진정한 “혼자”는 아니겠지. 문득, 죽을 때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갈비뼈에 금이 간 김도언샘이 그 와중에 글을 올린 것처럼, 나도 아마 올리게 될 것 같으니까. 그 때 내 옆에 누가 있건 없건. 죽을 때 필요한 건 내면의 목소리일 터이니.

실제 만남이나 전화는 분명 친밀감을 더해 주지만, 페북에서의 대화는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 만큼 “내면의 목소리”적인 부분이 있다. 술이 취해야 자기를 내보이는 실제 만남보다 때로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수많은 비난을 들은 곳도 페북이지만 소중한 인연들을 만났으니 페북은 분명 내 인생의 동반자가 될 것 같다.

아무튼 며칠 전에 의도치 않게 반감을 산 끝이기도 해서 이 곳에서의 자가유폐는 지금의 나에게 아주 적절한 것 같다. 그리고 보니 제주도는 유배지였던가.

하여 한 몇일 정치/사회 얘기는 쓰지 않을 생각. (답변 기다릴 김헌주 선생님, 미안합니다. 페북은 공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사적인 공간이 없으면 숨쉬기가 힘드니까요… )

누군가가, 며칠 전 내 글을 읽고 “가슴이 서늘”해졌다고 쓴 걸 봤다. 그 서늘함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오늘은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날씨도 안성맞춤.

본문: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52813801412201

渦中日記겸 감사일기 2014/8/25~8/28

며칠 포스팅을 못했더니 숙제가 날아왔다. 이우연님으로부터 감사일기 릴레이 요청. 하여, 오늘은 개학 앞두고 밀린 방학일기 쓰게 된 초등학생 모드.

1.
이 며칠간의 교류에 감사한다.

1)월요일. 책 나온 직후 인터뷰를 해 주었지만 결국 내 보내지 못했던 한 신문사 국제부 기자와 점심. 한국에는 여전히 훌륭한 기자가 많다.

2)화요일. 고발사태이후 여러가지로 도와 주시고 계신 분들과의 만남. 이 분들 덕분에 이 두 달 반도 고독하지 않았다.

3)수요일. 젊은 페친과의 만남. 만난 적 없는 페친을 일부러 약속잡아 만난 건 처음 일이다. 일본으로 근무나간다 해서 만든 자리인데 떠나는 남성에게 선물을 받았다. 다큐를 찍고싶다는 참한 젊은여성도 함께 만났다. 슬기로운 젊은이들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환해진다.

4)목요일. 모신문사 국제부에서 기자들 상대로 강연. <제국의 위안부>가 나왔을 때 서평을 써 주었던 기자의 기획. 끝나고 둘이 티타임을 가졌다. 학술부에 있었기도 해서 많은 책을 읽은 그가 그 곳에 있다는 것에 희망을 보았던 시간. 사진은 강연메모.
저녁엔 일본의 대학에서 가르치는 정치학자와 일본사를 전공한 젊은 학자와 만나 이야기. 두 분 다 나이로는 후배지만 사람을 보는 눈이 깊어서 나의 장단점을 꿰고 있었다.지혜롭고 따뜻한 이들을 만난 밤이면 잠이 잘 온다.

2.
고발사태 이후 두 달 반동안 이루어진 새로운 만남과 이전부터의 만남에 감사한다.
실제 만남 여부를 떠나,이 분들의 지지와 응원이 있었기에 뜨겁고도 추웠던 여름을 건너 올 수 있었다.

3.
오늘,여전히 살아 있어 이우연님의 릴레이 지명에 응답할 수 있고,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만나고 싶고 보고 싶은 사람이 아직 훨씬 더 많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래서 살아갈 이유와 의욕이 내 안에 충만하다는 사실에.

이우연님을 돕는 이 릴레이의 다음주자를,고발 사태이후 내게 쏟아진 비난의 집중 포화 속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방패 역할을 해주신
김도언김규항노혜경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싶다. 이 분들의 사려와 지성에 경의를 표하며. (이우연 님에 의하면 두 사람을 지명해야 한다지만,이 경우는 허용되겠지..)

본문: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47296075297307

 

渦中日記 2014/8/24

어젯밤에 재판자료작성이 일차적으로 끝나 오랫만에 느긋했던 일요일. 바쁠 땐 온 집안이 엉망이 되는지라 정리하느라 시간을 많이 썼지만. 그래도 정리하는 시간은 하나의 나를 과거로 보내고 또다른 나를 맞는 시간이기도 해서 즐겁다. 이를테면 정화의 시간.

빌리 홀리데이 노래 중 “summertime”을 제일 좋아한다. “I’m a fool to want you”를 처음 들려 주었던 건 학부 때 만났던 남자친구였던가. 가무가 안되는 나조차 춤추게 만드는 곡.

세상은 “단식과 고뇌”로 가득하고(그 다른 한편에서 조롱과 비난이), 여름이 간다.
Billie Holliday – Summertime.

작성일:2014.08.24
본문: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44720008888247

渦中日記 2014/8/18

얼마전에 일본 아사히신문이 내놓은 위안부문제특집에 관한 전화인터뷰를, 일본의 한 월간지와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결방책에 대해 묻기에, 일본의 “국회결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간의 지원자나 운동가가 말해온 것처럼 그렇게 해야 할 “법적의무”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국가에 의한 여성동원에 대한 “법적보호”를 방기한 근대국가시스템의 문제이니, 일본이 “주체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1년 전에 한국에서 책을 낼 땐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생명의 헌납을 요구당한)남성에게는 보장되었던 “법의 보호”가, (성의 헌납을 요구당한 )여성에게는 보장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된 금년 봄 이후다. 그리고, 아사히가 강조한 “구조적강제”에 불만이 있는 듯 했던 기자는 내 말에 공감하는 눈치였다.

<제국의 위안부>일본어판에서도 사실 나는 그 점을 강조했었다. 문제는 한국에서 소송사태가 나는 바람에 일본측 출판사가 출간을 미루고 있다는 점.
그러니 이번 소송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해결을 위한 또하나의 노력을, 지원자들과 할머니들자신이 막고 있다는 점이다..

본문: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41628459197402

渦中日記 2014/8/16

지난 주말에 끝낼 예정이었던 재판소제출용 자료준비를 아직도 못끝내고 있다..

이번주엔 두개의 공식모임이 있었는데 하나는 참석했다가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 십분만에 나왔고, 또 하나는 가지 않았다. 그리고 어젠, 세월호집회에 잠시라도 갈 생각을 했는데(지난번에 갔을 때 집회 진행방식에 회의하긴 했지만), 특별히 많은 이들이 오는 만큼, 어쩌면 나를 비난했던 이들과 만날 수도 있단 생각이 들면서 의욕을 잃고 말았다.
고발사태에서 오늘로 두 달. 아직도(나를 알 수도 있는)불특정다수가 모이는 공간이 불편하니 고발이전의 나로 돌아가기까진 조금 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뒤늦게 전달되어 열어본 편지에서 나온 글. 나에게 보내는 응원편지와 함께 들어 있었다. 탄원서 서명은 많이 받았지만, 직접 판사에게 보내는 탄원서는 이번이 처음. 고마운 마음과 함께, “무죄”라는 단어를 보고, “혐의자”로서의 자의식이 꼭 과대망상만도 아니었단 걸 알 수 있었다. 26세. 전남 광양시의 청년으로부터의 편지.

어젠 일하는 사이사이,그동안 지지하고 응원해 준 페친의 글들을 비로소 다시 보았다. 서평조차도. 그런 두 달이었다.

본문: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940005559359692&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8/7

소장에 있었던 <문제>시 된 부분에 대한 반론을 쓰는 중. 한번 공개된 글은 특별한 경우 아니고는 거의 다시 안 보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이 여름,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더웠던 여름으로 기억될 것 같다.

民事裁判用の資料を作っている。100箇所以上の「問題」とされたところにすべて、いちいち反駁しなければならない。人生で、もっとも暑かったと記憶されることになるだろう夏の日々。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934231029937145&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4/8/12

재판자료 준비로 일주일 이상 이어졌던 근신상태에서 잠시 벗어나 가졌던 보양식&술자리는 즐거웠다. 사진가와 시인과 피아니스트. 그들은 웬만한 학자들보다 훨씬 명민한 사고의 소유자들이었는데, 아마도 그들의 예술과 책의 힘일 것이다.
최근에 그런 경우를 자주 본다. 어떤 분야든 자신의 일에서의 경지가 그대로 세상을 보는 눈의 깊이가 되어 있는 것을. 그런 이들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갈 수 있으니 행복한 일이다.

본문: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38202442873337

渦中日記 2014/8/12-2

며칠전에 했던 모월간지 인터뷰가 결국 게재되지 않게 되었다고 기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에 그런 결정을 내린 건 데스크가 아니었다고. 기자는 죄송하다 말했지만 그의 선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섭섭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언론왜곡”을 문제시한 그의 노력을 짓밟은 해당언론이 안타까울 뿐.

나에 대한 고발사태가 안타까운 건, 혐한주의자들이 “한국엔 언론의 자유조차 없다”면서 한국때리기의 또하나의 근거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이 개인적인 일을 넘어서 한국의 위상을 떨어뜨렸다는 사실을 관계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본문: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38207342872847

渦中日記 2014/8/13

낮에 잠깐 올렸던 <실리지 못한 인터뷰>를 몇시간 후에 내렸다. 한번 수락했던 기자가 그래 주기를 다시 요청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야 할 의무는 없었지만, 진지함과 선의로 기사를 만든 그가 불이익을 당하는 건 원치 않았기에 그렇게 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다른 곳과 인터뷰. 마지막에 말했다.
“내가 한일관계에 대해 말하는 건 냉전을 넘어서고 싶어서입니다. 우리는 제국과 냉전을 경험했고 유일한 분단국이기도 합니다. 강대국의 세력다툼에 말려들어 제국과 냉전을 경험한 우리에겐, 그런 역사성을 극복하고 동아시아 평화를 만드는 주체가 될 필연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말하고 싶었던 것도 이 책을 써야 했던 이유입니다.”

며칠전에 70세 넘으신 지인이 후원하고 싶으니 계좌번호 알려달라 해서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는데, 오늘은 새로 페친이 된 16세 중학생이 느닷없이 후원하고 싶다고 했다. 우선은 마음만 받겠다 했지만, 살아오면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경험을 또하나 했던 날.

본문: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938404049519843&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8/10

비바람이 친다. 보통때 같으면 그 풍경에 그냥 자신을 내맡겼을텐데 오늘은 감상에 빠질 수도 없다. 광화문에서 단식투쟁할 이들의 곤혹스러움도 함께 떠오른다.

재판자료준비를 하면서 우울한 건, 책을 쓰면서 사용하지 않았던 자료들까지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쓴 얘기가 부정, 혹은 곡해당하니, 소송에서 지지 않기 위해서는 굳이 사용하고 싶지 않았던 자료까지 사용해야 한다. 그런 아이러니 앞에 놓이게 된 것이 많이 우울하다.

사진은, 위안부에게 의뢰받아 모르핀 외 군용약품을 반출하려다가 “영창20일”의 처분을 받았다는 자료. 1941년, 일본 육군군인/군속들의 <非行표>.
수많은 일탈행위들 속에서, 수많은 드라마를 본다.

본문: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936355716391343&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와중일기(渦中日記)를 시작하면서

“와중일기”를 쓰기로 했다. 존경하는 지인이 보내준 “난중일기를 써 보라”는 메시지를 받고 든 생각이다.

위안부할머니들에게 고발당한지 한달 하고도 스무날. 이제 고발사태에 관한 해명이나 심경이 아닌 다른 글을 올릴 수 있을 만큼은 마음의 안정을 찾은 기념이기도 하다. 이 사태가 종결되는 시점까지가 될터인데,5년이 될지,혹은 한 달이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사태”추이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앞으로 <와중일기>만 봐 주셔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일본이니 미국에까지 알려지는 바람에 사태를 알고 걱정해 주고 있는 일본인 지인들을 위해 가능한 한 일본어로도 쓰기로 한다.

사태에 관련된 일들은 가능한 한 기록할 생각이지만,모든 일기가 그렇듯 누락되는 일도 있을 것이고
공개일기인 만큼 쓰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능한 한 빠짐없이, 공개가능한 범위의 일은 기록할 생각.
독백으로서의 “일기”인 만큼 어쩌면 댓글을 써주셔도 답글을 다는 “대화”는 생략할지도 모르겠다. 혹 그렇게 되더라도 이해해 주시기를. 물론 감상을 남겨 주시면 어떤 의미에서건 “우리시대의 한 기록”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日本語ユーザーのみなさまへ

もと慰安婦の方々から告訴されてから一ヶ月と20日が経ちました。日本語ポスティングは基本的にはFacebookページとツイッターに限ってましたが、それさえもあまりできない状態でした。
ようやく少し落ち着いてきたので、訴訟に関係する日々の出来事や思いを<渦中日記>とのタイトルで書いていこうと思います。全部ではないかもしれませんが、できるだけ日本語でも書いていくつもりです。
ただ、対話ができるかどうかはまだわかりません。それでも感想を残してくださるなら、それもひとつの時代の記録になる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작성일:2014.08.07
본문: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34226483270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