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환씨 입국불허 관련

어제는 과잉반응을 했다. 많은 분들께 걱정 끼쳐서 죄송한 마음이다.
재판이 없었다면, 또 신뢰했던 이가 한 일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반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충하고 싶은 말이 많으나, 불필요한 곡해가 또다시 재생산되고 있는 것 같아 우선 그 부분에만 언급해둔다. 내가 서글프고 힘든 건, 이런 왜곡들이 문화권력을 갖는 이들에 의한 것인 이상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하다못해, 이들의 목적이, 내가 지치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고 싶다.

정영환씨의 입국불허문제에 대해 나는 이렇게 썼다.
`정영환씨는 한국과 북한에서 정치적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한국입국이 불허된 사람이다. 국가가 개인의 이동의 자유를 관리하는 일에 나는 비판적이지만, 이들이 한일화해에 강한 두려움을 내비치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런데 박노자씨등 몇몇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비판에 나섰다. 그 글에 어떤 비약과 왜곡이 있는지는 글을 정확히 읽을 수 있는 이라면 금방 알 수 있을테니 굳이 지적하지 않겠다.
정영환이 아니라 정부를 비판했는데도, `대북마녀사냥`이고 `마각이 드러났다`는 식으로 `멋대로, 깊이, 비틀어 읽기`가 이루어지는 현장은, 아마도 냉전후유증으로 병들어 있는 우리사회의 단면일 것이다.
어떤 젊은 연구자는 내가 재일교포를 `연구자로서가 아니라 조선적재일조선인으로 호명해 북한과 연계시키는 짓`을 했다면서 `표현의 자유를 입에 담는 연구자가 할 짓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고까지 비난했다.(젊은 연구자들은 언어예의교육을 좀 받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나의 책을 표현의 지유라는 말로 변호한 적도 없다.)

북한과의 연계를 언급하는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기회가 될 때마다 나와 일본우익과의 관계를 증명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일본과 분명 깊은 연계관계가 있다. 그리고 누가 그걸 지적한다고 해서 문제삼지 않는다. 문제는 사실에 반하는 지 여부일 뿐.
집단명사로 호명당하는 일과, 표현의 자유문제에 민감한 이들이, 왜 나에 대한 사태에 대해서는 침묵했고 이제 직접 거들기에 나선 것인지도 묻고 싶다.

나는 국적을 갖지 않는 것을 택한 조선적 분들을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정점에 작가 김석범 선생이 있고, 내가 `조선적`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도 그 분을 통해서였다.
내가 언급한 건 오로지 `한국정부의 판단`이다. 쓰여 있지 않는 비난을 굳이 읽어내 비난하는 이들의 행위는, 위안부는 원래 일본인이 대상이었고 국가에 의해 이동당한 가난한 여성이라는 의미로 `조선인 위안부는 가라유키상의 후예`라고 썼더니 `그건 매춘부라는 뜻! `이라면서 판금을 요구한 지원단체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현 사태를 지식인의 대중화,라고 내가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쓴 글 들을, 비판자들은 멋대로 비틀어 확산시킨다, 하지만 언어를 사용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으로서, 언어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의식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나를 옹호해 준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과의 차이는, 대상과 글 자체에 대한 존중이 있는지 여부였다고 생각한다.

정영환문제에 대한 참고자료로 조관자 선생의 논문을 올려 둔다. 재일교포/조선적에 대해 말하려면 이 논문은 필수적으로 읽혀야 할 것이다. 입국제한문제에 관해서는 특히 6절이 자세하다.

https://onedrive.live.com/?authkey=%21AHZnee0gS38QXRI&cid=9F10CD072717D734&id=9F10CD072717D734%21960&parId=9F10CD072717D734%21959&o=OneUp

우리 안의 식민성

나의 책을 혹 “일본의 우익이 환영”했다면, 그리고 그들이 내 책을 읽고 반성적인 입장을 취했다면 나는 그들의 환영을 거부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이런 식의 소개는 명백한 왜곡이자 거짓이다. 물론 한 사람의 성실한 서평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쓰기에 이르렀다는 건, 2년에 걸친, 정영환을 비롯한 비판자들의 왜곡작업이 충분히 성공했다는 것일 터이다. 내가 견디기 힘든 건, 비판이 아니라 왜곡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보여주는 비겁함이다.

이미 여러번 말하고 썼지만, 나에 대한 기소반대에 나선 이들은 대부분 진보지식인이고, 나에게 상을 수여한 곳도 산케이나 요미우리가 아닌 마이니치신문과 아사히 신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평가한 건 위안부문제를 식민지 지배책임으로 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든 나를 우익과 이어져 있는 사람으로 몰고 싶어한다.

문제는 그 자체보다, 오로지 일본의 누구와 이어져 있는지로 자기정당화를 하거나 누군가를 내치는 이런 심성이다. 이거야 말로 우리 안의 식민성이 아니고 무엇일까. 해방후 70년이 지나도록 일본과의 연관성으로만 자신을 파악하는 이들이나, 나와 가까운 건 진보쪽이라고 외쳐야 하는 나나, 서글픈 건 마찬가지다.

정영환을 비롯한 비판자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당신들은 내가 당한 전국민적 비난과 재판에 따른 고통만으로는 내가 겪는 일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가.
그토록이나 집요한 증오를 드러내는 이유는, 당신들이 말하는 대로 “일본이 사죄하고 보상했다”고 썼기 때문인가. 나의 책이 오로지 그런 책인 것도 아니지만 설사 그렇다 한 들, 그건 형무소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인가.
그래서 기자회견까지 해서 나를 죄인으로 고발하려 하는가.

좌파든 우파든, 중요한 건 타자에 대한 상상력과 윤리적인 태도다.
짧았던 평화로운 시간이 끝나고, 이제 다시 총성이 들려 온다. 총을 겨누는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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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불화인가

고발 직후부터 집요하게 나를 비판해 온 재일교포 정영환의 책이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다른 것보다, 푸른역사에서 그 책이 나왔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나의 페친이어서가 아니라, 그곳을 훌륭한 출판사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번 재판에서, 검사는 김부자교수의 책을 들고 와서 나의 범죄사실을 증명하는 “범죄증거”라 했었다. 이미 일부 논문이 제출된 바 있지만, 다음번 재판에는 이 책이 제출될 가능성이 높다. 관계자들이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민변회장이 정영환 책의 출판기념강연회에 등장하고, 학자들이 재판중인 사람에 대한 왜곡과 규탄에 나서는 현황이,나의 일이지만 한국의 일이기도 해서, 우려스럽다.
지켜야 할 대상이 일(학문 혹은 법)자체가 아닐 때,그 공간은 낙후되거나 부패한다.

정영환씨는 한국과 북한에서 정치적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한국입국이 불허된 사람이다. 국가가 개인의 이동의 자유를 관리하는 일에 나는 비판적이지만, 이들의 담론이 한일화해에 대한 강한 두려움을 내비치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정영환의 두려움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남들이 나를 빼고(그의 표현에 따르면 망각하고) 화해할까 봐 두려워 하기보다는, 재일교포사회와 일본과의, 혹은 북한과 일본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다.

이들에게, 바로 얼마전에들은,정대협의 한일합의비판을 비판하던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이들이 만들려 하는 건, 누구를 위한 불화인가.

반론 1(2015/8, 페이스북 노트)
https://parkyuha.org/%eb%b9%84%ed%8c%90%ec%9d%b4-%ec%a7%80%…/

반론 2(2015/8, 역사비평 112호)
https://cldup.com/mt2lV_7iqt.pdf

장정일 작가의 정영환 비판(2016/5, 허핑톤포스트)
https://parkyuha.org/%eb%b0%95%ec%9c%a0%ed%95%98-%ec%a3%bd%…/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401263399900570

고발 2년을 맞으면서

내일은 다시 재판이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국민참여재판여부가 최종결정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연히도 내일은 고발에서 꼭 만 2년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재판 뿐 아니라 멈추지 않는 비난들 때문에 제겐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었지만, 그런 만큼, 그 과정을 지켜 보시고, 지지하고 응원해 주신 분들께 다시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8월말 재판까지는, 재판과 그동안 쓰지 못했던 반론을 쓰는 일에 집중할 생각이지만, 그동안 생각만큼 하지 못했던 일–페친들과의 만남의 시간도 가능한한 가질 생각입니다.

친구신청해 주신 분들께도, 조금만 더 너그로운 마음으로 기다려 주십사 부탁 드립니다.
짬짬이, 페친을 줄여볼 생각입니다. 혹시 교류가 있었는데도 제가 실수한 경우, 메시지로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본재판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 해도, 여론이 바뀌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일은 홈페이지도 새로 공개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 주시고, 앞서서 저를 이해해 주신 페친 여러분들께서, 더 많은 분들이 또다른 여러분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책이 나온 직후에 긍정적인 서평을 써 주셨던 사진가 이상엽 선생님과도, 이후 페친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나 괜찮아” 사진을 찍어 주셨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2년이라는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같이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6년 6월 14일 박유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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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비녀 애국심

한 페친이 올린 흥미로운 영상을 공유해 둔다.
1938년영상이니 중일전쟁발발 직후인 듯 하다.

진해해군사령부가 만들었으니, 이 필름은 국민모두가 이랬다기 보다는 이래야 한다고 하는, 당위를 강조하는 영상인 건 틀림없다. 이른바 국책필름.

그렇다 하더라도 이 풍경을 이른바 친일파의 것으로만 볼 수는 없다. 여기에 나오는 한 여성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조선의 여성들은 자신을 그저 “일본여성”으로 생각했을 뿐이니까. 거기엔 그저 협조해야 할 “국가”가 있을 뿐, 따로 “親”해야 할 “日本”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진심이든, “비국민”소리를 들을까 두려워서든, 밥을 지을 때마다 쌀 한줌 덜어 모아두었다가 헌금하고, 머리에 있어야 할 “금비녀”를 아낌없이 뽑아 바친 “애국심”은, 60년 지난 1997년 IMF사태때까지 유지되었다. 그러니 이런 국민동원적 애국심이야말로 “일제잔재”의 핵심이었다.

조선인 포로 심문조서가 보여주는 가혹한 노동과 차별대우는, 이런 금비녀애국심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발적애국심이야말로 그 시스템이 차별적이었음을 증명한다. 일본인 이상으로 일본인이 되는 일. 권력을 갖지 못한 자가 권력을 가진 자를 모방하도록 만드는 일. 식민지화의 죄는, 바로 거기에 있다.

영상 링크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88954011131509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

어제 올린 포로심문 조서 기사를 게재한 한국 언론은많지 않은 듯 하다. 그나마, 우리한테 중요할 수 있는 위안부관련 기술까지 공정하게 언급한 곳은 경제지 한 곳 밖에 없었다.

낯선 인식을 무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이미 국제문제화된 문제다. 우리가 마이니치를 무시해도, 세계는 마이니치신문을 본다. 이런 식의 자폐성은 한일 국민간 공통인식공유를 더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세계 속의 고립을 부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편향성 속에서 자란 우리아이들이 훗날 겪을 일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물론 현재 역시 이미 20년전의 “훗날”이다. 내가 지원단체의 책임을 물어 온 이유는 거기에 있다.

“부모에 의해 팔려간” 사실을 너무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일본에서도 그런 일은 있었고, 오늘날도 부모에 의해 팔려가는 소녀는 전세계에서 적지 않으니까. 중요한 건, 그들의 공통점은 빈곤이라는 사실이다.

더구나 나는, 이들이 말하는 “부모”에는 “수양부모”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기본정보를 공유해야 토론도 반박도 가능할 것 아닌가. 우리가 모르는 척 하는 동안 일본의 혐한파들은 또다시 한국을 조롱중이다.

역사란, 조상의 “후예”로서의 긍지를 찾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과거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지혜는 계승하고 잘못은 직시하는 일. 당시와는 다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고민을 이어가는 일. 그게 아니라면, 역사와 마주하는 의미는 없다.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388808021146108&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theater

근대적 혼돈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비판 중에는 “논문으로 쓰지 왜 ‘대중서'( 그들은 굳이 대중서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로 냈느냐는 것이 있었다. 말하자면 학계에서논의하면 되는 문제를 왜 갑자기 일반인들 앞에 내놓았느냐는 것이다.

주석등 형태를 갖추고 논문문체로 썼으면 그럴듯한 학술서로 보였을 이 책을 굳이 일반서 형태로 쓴 것은, 위안부 문제가 한일양국국민들에게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어서, 더 이상 정부나 학자들의 논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양국민의 국민적 합의 없이 위안부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대립하는 학자들의 협의체를 만들어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동시에 그 논의가 밀실논의여서는 안되고, 언론과 관계자가 논의자체를 국민들에게 전해 학계에서 어떤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 왔다. 학자들은 웬만해서는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으니 양측 이야기를 잘 듣고 제3자가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학계에선 더이상 위안부동원을 강제연행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관계자들이 언론과 국민을 향해서 그렇게 말하는 일은 없다. 다시 말해 초기에 강제연행으로 생각했던 것은 잘못이었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전시관 같은 곳엔 비교적 사실에 가까운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결국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대한민국의 일반상식은 일원화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아직도 “군인이 강제연행”했다고 믿고 누군가는 “업자가 끌고 갔다”고 알고 있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어느 쪽이 옳은지 여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만드는 거국적소모 쪽이다.그리고 이 모두가, 학자가 대중을 우습게 보고, 지원단체 역시 대중을 동원해 운동을 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정보는 독점해 온 결과라는 점이다.

성남시 도서관이 나의 한일관계 관련 책 중 세 권을 “19금 도서”로 만든 것 역시, 정보를 독점하려는 어른들의 오만이 만든 일이다. 그러는 사이, 일본에선 18세가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오늘, 한일 합의에 반대하는 이들이 정부와는 다른 재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느 쪽이 옳은지 여부를 떠나,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많지 않은 힘과 돈의 분산과정이다.
근대의 차가운 합리주의조차 아직은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 탈근대 커녕, 근대의 혼돈 속에 있다.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86835634676680

19금 도서 지정 관련 보도

성남도서관에서 나의 책들을 19금 도서로 지정한 배경을 취재해 준 기자분이 있었다. 깊이 감사드린다.

우연히도 오늘, 서울의 한 남자 고등학생 둘이 <제국의 위안부>가 “방과후수업”의 과제도서였다면서 남은 질문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었다. 고등학교 1학년. 책을 읽고 찾아온 학생중에는 최연소다.

책을 너무 좋아한다는 두 학생한테 성남시 조치 얘기를 했더니 학생들도 기막혀 했다.

아이들은 때로, 어른들을 훌쩍 앞서간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06090107263917300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86654784694765

 

급진의 보수화/정의의 악의

이 며칠 도를 넘어선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뒤늦게 시사인 기사를 보았는데, 자료에도 없는 소리를 내가 지어낸 것처럼 쓰고 있어서 충격을 받았다.
와카미야 선생 사망 소식을 그 밤에 들었으니 내겐 최악의 날이었다.

비판자들은, 자신이 단 한사람을 향해 집단 공격에 참여중이라는 걸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재판 중이라는 것도 잊고 있을 것이다. 재판내용과 상관없는 비판마저 “박유하의 책은 문제있는 책”이라는 담론이 되어 재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도.
물론 이 모든 것이 의식적으로 하는 일이라면 더 할 말은 없다.

정영환 비판조차 잘못 옮긴 것으로 보이는 이 “편집위원”은 알고보니 아직 박사과정 재학중인 학생이라고 한다. 아사히신문출판사에 정정을 요구하는 패기는 좋았지만, 그전에 배워야 할 것이 많아 보인다.

“제국의 변호인-박유하에게 묻다”는 책도 나왔다.
제목을 붙인 이는 페이스북에서도 나를 비난했던 손종업씨라는 걸 알았다. 그는 고발 직후에 내가 일본에 돈을 받은 것처럼 쓰고 금년 들어서는 나를 아이히만에까지 비교하며 비난했던 이다.
비판보다도, 제목의 함의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비평가”를 데려다 책을 만든 이들의 존재에 더 한숨이 나온다.
이미 여러번 말했지만 “제국의 위안부”란 “제국에 동원된 위안부”라는 뜻이다. 설사 주체적으로 보였거나 행동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책은, 내용의 오용에 이어, 이제 제목마저 오용되고 있는 중이다.

대중선동이 “비평”의 얼굴을 하고 세상에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혹은 정의의 얼굴로.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정의와 악의는 고작 한 글자 차이다.

나뿐 아니라 나를 옹호해 온 이들에 대한 비판도 담았다니 사태는 이제 나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일본에서 2007년부터 시작된 갈등이 10년후 한국에서 본격화된 양상.
그때와 다른 것은 그때는 비판자들이 극소수였지만 지금은 수십수백명이(그 뒤엔 수천명이) 한미일 연대망을 이용해 나 하나를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물론 현실적패배감이 부추기는 일일 것이다.

< 제국의 위안부>는 지원단체와 일본의 일부 지원자를 비판한 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응답”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들의 응답은, 10개월에 걸친 침묵끝의 고발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학자들마저 본격적으로 지원단체에 발 맞추고 있다.
연구와 학문이 운동논리를 사유하지 못했던 건 사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운동이든 이론이든, 지키는 것이 목적이 되면 보수화 될수밖에 없다.

급진의 보수화는 피해자로서의 마이너리티 의식이 만든다. 하지만 마이너리티가 온전히 정의일 수 있는 것은,그들이 적으로 간주한 이에게도 정의로울 수 있을 때다.

나를 두고, 한편에선 “제국의 변호인”(손정업)이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제국에 대적해 온 “일본 리버럴(진보)의 비겁한 무기”(정영환)라고 한다. 이들에겐 내 책이 대단히 혼란스러운 것 같다.
혼란은 선입견이나 목적이 있었을 때 일어난다. 기존인식에 꿰어 맞추려 하는 한, 거기서 일탈하는 기술들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금년들어 이들의 공격이 강해진 건, 일본어판의 수상과, 오에겐자브로/우에노치즈코/고노&무라야마 등의 지식인 성명, 그리고 한일합의에 원인이 있는 듯 하다. (한국은 물론 일본판 위키페디아마저, 정영환을 비롯한 이들의 시각으로 채워져 있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내겐 남의 일이 아니다)

위기의식은 이해하지만, 사태를 정확히 파악 해야 이길 수 있다. 일본을 20년 이상 비판해 왔으면서 운동이이길 수 없던 건, 정확하게 비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냉전 이후 시작된 한일진보시민연대의 문제와 한계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민주”라는 개념이 국가에 대한 저항으로 기능했던 시대에서 30년이 지났다. 군사독재국가를 넘어선 시대의 “민주”란,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어야 한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59084934118417

이미지와 폭력–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한일합방 36년이라고 하지만, 일본이 이 땅에서 본격적인 권력을 누리기 시작한 것은 이미 청일전쟁때 부터였다. 그리고, 청일전쟁에서의 전쟁터는 일본도 아니고 중국전체도 아니고, 중국의 극히 일부와 조선땅이었다. 민비암살이라는 끔찍한 폭력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도、그런 유린의 연장선상의 일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민비가 암살당했을 때、일본언론은 그 사실을 충격이 아니라 당연한 일처럼 보도했다. 심지어 훗날 일본의 문호로 추앙받게 되는 26살청년, 나쓰메 소세키조차 “최근에 가장 고마웠던 일은 왕비 살해…”라고 친구 마사오카 시키에게 감상을 적어 보낸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일본인들이 원래부터 냉혈한이기 때문일까.

일본언론은 일찍부터 민비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도했다. 질투많고 권력욕 강한 악녀. 그것이 민비에 관한 보도들이 만들어내 일본인 안에 심어놓은 이미지였다. (<암살이라는 스캔들>.나이토 치즈코)
젊은 엘리트로 하여금 자신이 무엇을 한건지 모르도록 만든 것은 그런 식의 편향적 보도들이었다. 또 훗날 일본군이 중국 전쟁터에서 중국인을 대상으로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도록 만든 것도, 편견을 바탕으로 교육되고 확산된 차별의식이었다.
폭력행사는,타자를 고통을 모르는 물건으로 봐야 가능한 일이다. 미움과 차별은, 때로 그 필수조건이 된다.

어제 한국정부가 구마모토에 뒤늦게 구호물자를 보냈다고 한다. 또 위안부할머니의 성금을 둘러싸고 찬반이 격렬한 듯 하다. 뒤늦은 대응과 기부에조차 차갑게 닫힌 2016년 대한민국의 심성에 대해서 일부언론이 비판적인 칼럼을 내놓았지만, 그런 신문들조차 “일본에 대한 미움”은 당연한 듯 전제된다.
그리고 미움의 크기는 늘 위안부문제에서 가장 크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하는 파렴치한 태도, 과거의 잘못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뻔뻔스러움”(2016/4/21.국민일보)이라는 말이 보여주는 것처럼.

90년대 들어 시작된 위안부문제해결운동은, “파렴치한” 일본상, 그리고 이제 악마같은 일본상 구축에 성공했다. 미운 건 일본이 아니라 일본정부라고 뒤늦게 말해본 들, 이대로 가면 일본과 전쟁을 한다 해도 기꺼이 참여할 피끓는 청년들과, 그들을 등두드려 내보낼 국민들이 대다수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현재의 북한이 그런 것처럼.

이 모두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이 20여년의 보도–독자적인 조사도 관계자들에 대한 취재도 없이 그저, 지원단체가 주는보도자료들을 언론이 받아써 온 결과다.
물론 그런 보도들을 추인하거나 리드하기조차 했던 지식인들이나 전문가들의 책임 역시 작지는 않다 . 또 최근 몇 년동안 위안부문제를 어떻게 끔찍하게 형상화할지에 골몰하고 졸속공부에서 경쟁했던, 그림과 영상 제작자들 역시 책임이 없을 수는 없다.

대한민국 국민다수의 생각을 만드는데 일조한 이들이라면, 이미지와 지식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일상속에서의 적대와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더 큰 폭력에 대한 책임의식을 뒤늦게라도 가져봤으면 좋겠다. 물론 수용하고 전달해 왔던 우리 모두도.
악마화 하지 않고도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니 악마화는 오히려 본질을 놓친다.
“뻔뻔한 일본””사죄않는 일본”이미지의 재생산 속에서 우리가 해 온 일은 고작,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며 죽었다는 이승복 소년을 소녀상으로 대치한 일 뿐이다.
어른들은 언제나,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이들을 이용한다.

우려되는 것은 사실 일본에 대한 몰이해가 아니다. 그 몰이해가 만든 미움이, 우리를 조금씩 냉담하게 만들고 있는 정황이다. 또 우리를 그렇게 편협하고 차가운 한국인으로만들어버리고 만 상황이다.
인간의 죽음에조차 쾌재를 부르는.
26 살 나쓰메소세키처럼.

일본인들을 돕는지 여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2016년 봄, 대한민국은 대만과 달리 구마모토에 냉담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정황이, 20여년동안 남의 말에 결코 귀를 기울이는 법 없이, 양극단 사람들의 적대와 과장과 은폐에 휘둘린 결과라는 점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건 바로 그런 적대와 증오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 증오를 누가 만든지도 모르는 채 먼저 희생된다. 불화 역시 마찬가지. 적대담론의 폭력성을 봐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추신)
재해때마다 화제가 되는 “일본인의 아름다운 모습”은 재해가 많아 체념적이 되어서도 아니고, 그저 어릴 때부터 방재훈련을 많이 받았기 때문만도 아니다.
일본어머니들이 자식에게 가장 많이 말한다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배려심이 몸에 밴 결과일 뿐이다.
긴급한 순간에 남을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제어해야 가능하다. 자아보다 조화, 나의 욕망보다 타자의 평안에 가치를 두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50782178282026

혐오의 방정식

일본의 위안부문제 지원자들도 더이상 하나가 아니다. 한일합의에 관해서도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
이 기사에 언급된 이들은 가장 강경한 입장을 고수 중인 이들이다.

분명 이들이 말하는 대로, 일본인들 일부가 내 책을 자신들이 하고 싶은 얘기에 멋대로 이용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독해력과 무절제한 왜곡욕망의문제. 심지어 영어요약을 멋대로 만들어 내가 한 요약인 것처럼 유포중인 블로그조차 있었다. (일본쪽 출판사에 대응을 의뢰중)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위해 내 책을 멋대로 왜곡하는 건 이들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이 20수년간의 한일갈등은 이 양쪽이 그런 식으로 세간에 제공해 온 정보의 과장과 은폐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책이 평가받은 건 일본의 책임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제국의 책임”임을 말했기 때문이고, 이 양쪽 세력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그런 나의 논지에 공감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언젠가 전여옥이 “일본에는 추녀만 많다”면서 “일본은 없다”고 했던 것처럼, 소수 문제적인 이들에게만 주목하면서 그들을 “일본”이라고 생각한다.
불행한 사람들이다.
더 불행한 건 이 양쪽은 똑같이, 자신들이 확산시킨 혐오에 대해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

이들은 위안부 할머니의 인권을 말하지만 나의 인권은 개의치 않는다. 이들이 며칠 전, 내가 감옥에 갈 수도 있는 형사재판을 반대하지 않는 자세를 분명히 한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기사 오류를 바로 잡아둔다. 물론 이번 경우 기자가 아니라 발표자가 이렇게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군관여부정–일본군 조선반도 “공식적 강제연행”부정
*책임부정–“법적” 책임 부정

타자에 대한 적개심과 처벌을 부르려는 행위가, “정의”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던 슬픈 봄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1&aid=0008315212&sid1=00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38957019464542

거짓말처럼, 위안부문제가 타결되었다.

거짓말처럼, 위안부문제가 타결되었다. 정부끼리도 시작전부터 삐그덕거리기에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회적합의라는 의미에서의 “해결”로 가기까진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벌써 지원단체와 당사자간의 이견마저 보인다. 너무 서둔 감이 있다.

이런 일이 없도록, 나는 대립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협의체를 만들어서 몇가지 논점에 대해 토론하도록 하고 그 논의를 언론과 관계자들에게 공개해 당사자와 양국국민이 “인식에서의 합의”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 결과에 근거해 해결책도 찾을 수 있도록.
(“국회결의”가 있기를 바랐지만 그건 위안부문제 뿐 아니라 식민지배 전반에 대한 것이었으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기다려봐야겠다. )

아무튼 결정된 이상, 이제 남은 일은 이런 결정이 얼마나 정당한지에 대해 검토하고, 뒤늦게라도 납득에 기반한 국민적합의에 이르는 일일 것이다. 위안부할머니들 “당사자”의 생각과 선택과는 별개로.
일본의 경우는 오늘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사죄/보상에 부정적이었던 일부 우익과 지원자들의 일부인 듯 하다. 말하자면 대다수 일본국민들은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에 공감한다.

따라서 앞으로 중요해 지는 건 한국의 언론과 여론일 것 같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이 필요하다. 좌우로 나뉘는 게 아니라 그저 합리적이면서 윤리적인 판단에 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반으로 갈려 대립하는 게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의 공통시각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위안부문제 뿐 아니라 다른 국내문제에서도 그런 일이 가능해진다면, 분열과 대립으로 소모하지 않는 공동체만들기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그런날을 나는 여전히 꿈꾼다.

위안부문제가 갑자기 타결된 날에.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56280397732205

한일회담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한일회담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한국정부는 일본과 나눈 얘기를 다 말하지 않았다. 이 정부는 국민에게 감추는 게 너무 많다. 세월호 때 드러난 것처럼, 해결을 하지도 못하면서 정보를 독점한다.

“뒤통수친다”는 생각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정부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일본은 한번도 그들의 “원칙”을 바꾼 적이 없다. 어젯밤에 아베수상이 일본의 TV에 나가 “원칙을 고수한다”고 강조했던 것도 그 일환일 뿐이다.
한국언론들은 듣고 싶은대로 들었지만, 아베수상이 했다는 얘기를 내 이해대로 번역해보면 이렇다

“솔직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일본의 세계유산등재 때 징용문제로 한국이 용어사용에서의 약속을 뒤집은 일, 산케이 지국장문제,수산물수입금지든 그동안의 불만을 다 말했다.)

“해결을 위한 협의를 가속화한다”
(일본이 요구한대로 대사관 앞 소녀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미국등에서의 일본 비방과 소녀상 설치를 자제한다고 합의하면 사죄/보상을 할 수 있다. )

“차세대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한다”
(위안부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이 문제는 더이상 문제삼지 않는다. 과거에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더이상 묻지 않겠다고 했는데 언제까지 말을 바꿀 것인가.)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511022228125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24204917606420

이번 정부에서는 처음으로 한일회담이 열린다

이번 정부에서는 처음으로 한일회담이 열린다. 나는 외교전문이 아니지만, 최근 3년간 대일외교는 내가 보기엔 빵점이다. 심지어 오늘도 그 수준을 유지중이다. 손님을 불러 대화를 하는데 식사대접을 안 한다는 건 어느나라 풍속인가. 우리의 대통령은 영어나 불어는 가능한 것 같지만 외교나 인간심리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대통령은 위안부문제 해결이 먼저라면서 그동안 대화를 거부해 왔다. 하지만 해결을 하려면 진작 만나 대화해야했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도 회담을 하는 건 아마도 미국에 등떠밀린 결과일텐데, 이제, 한일 FTA에도 부정적이었던 입장을 바꾸어, TPP참여문제를 일본에 부탁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자존심은 좋지만,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자존심은 오히려 자신을 비굴하게 만든다. 오늘, 위안부문제에서도 기대하는 대답을 듣지 못할 게 분명하다.

덧붙여 말해 두자면, 대부분의 언론이 “일본이 1965년에 (보상은)끝났다면서 위안부문제해결을 거부하다”는 식으로 보도했지만, 그건 정확하지 않다. 일본이 “원칙”을 말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해결할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최근 국장협의에서 주로 논의된 건 소녀상문제인 듯 하다.

상대의 생각과 주장을 정확히 알아야 대응도 제대로 할 수 있다. 거부하든 받아들이든. 오늘 대통령은 그 이야기를 들을 지 모르지만,아마도 대답을 못할 것이다. 소녀상은 정대협이 만들었지만 이미 “국민 소녀”가 되었기 때문에.

http://m.ichannela.com/news.do?mode=viewsec&cid=11&nid=374948&news_date=20151028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23558134337765

국민세뇌는 국정교과서만 하는 건 아니다.

국민세뇌는 국정교과서만 하는 건 아니다. 전시관도 기념비도, 대개는 “하나의 기억”을 주입한다. 그리고 중요한 건 “하나의 기억”인지 여부가 아니라, “어떤” 기억인지, 배경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기억인지 여부에 있다.

1970년대 이후, 전국곳곳에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는 9살짜리 이승복의 동상이 세워졌었다. 이제는 80퍼센트 이상이 철거되었다는데, 그로부터 40년후, 2010년대에는 위안부”소녀”상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 그 상들은 어떤 운명을 걷게 될까.

문제는 상 자체가 아니라, 당사자를 넘어선 “생각과 욕망”들이 상에 담기면서 영웅화되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고요한 추모와 슬픔이 자리할 공간이 사라진다는 데에 있다. 그곳에 있는 건, 희생된 소년/소녀들의 아픔이 아니라 형해화된 어른들의 욕망일 뿐이다. 교과서든 기념비든. 국가든 민간이든.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20516641308581

미국이 한국이 한 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한국이 한 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안으로는 미군기지촌위안부문제, 밖으로는 베트남에서의 성폭행과 위안소이용문제를 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도,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해 그런 자신을 돌아보며 대처하기를 바랐었다. 언젠가 그 외침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전에.
물론 문제가 알려지는 것 자체야 문제될 것 없지만, 한국이 가장 열심히 일본을 규탄했을 무렵, 이 문제는 전혀 자각되지 않았었다. 일본의 사죄와 보상시도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을 몰랐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10년전에 쓴 <화해를 위해서>에서 나는 한일간 네가지 문제를 다루었지만,가장 알리고 싶었던 건 그런 뒤틀린 모순구조였다. 하지만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나는 여전히 그들의 억압아래 있다.

미국은 이미 한국전쟁때 UN을 위한 한국인 위안부를 이용했고, 강간도 했다. 따라서 미국역시 한국문제를 거론할 처지가 아니다. 하지만 우선은 이 문제를 세계에 알려온 한국의 대처가 주목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문제를 보도한 곳이 경향밖에 없는 듯 하다. 그조차, 다음날엔 일본의 로비를 의심하는 기자의 글이 실렸다.

손가락이 나를 향했을 때 필요한 건, 의도에 대한 의구심이 아니다. 다른 이의 책임을 묻는 일로 “물타기”하는 일도 아니다. 개인도 국가도,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깊이 타자를 볼 수 있다.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510160053461

http://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151018_0010356275&cID=10100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15735585120020

연구자의 윤리

이미 페친이 아니지만 “젊은 학자”김헌주는 학술지<역사문제연구> 에서, 내가 웃는 얼굴의 조선인 위안부 이미지를 사용한 곳이 “위안부는 20만명이 아니고 상대한 일본군의 숫자도 적으며 연애도 했다”는 내용을 말한 곳이라면서 “명백”히 “의도적”이고 “비겁”하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33쪽은 물론 사진에 대해 언급한 31쪽에도, 32쪽과 34쪽에도 그런 내용은 적혀 있지 않다. 설사 내가 그런 의도로 사진을 사용했다 해도 사진을 어디에 넣을지 정한 건 출판사지 내가 아니다.

내가 이 사진을 사용한 건 “강제로 끌려간 소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자료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사진을 찍은 일본인 기자가 조선인 위안부의 웃음을 “망향의 념을 떨치버리기 위한” 모습으로 읽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십년전에 <화해를 위해서>를 쓸 때는 나는 이 사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강제로 끌려간 소녀”의 이미지에 균열을 만드는 자료로서 언급했다. 하지만 <제국의 위안부>를 쓸 때 사진이 실린 원본을 찾아보니 그동안 이 사진이 기자의 설명이 빠진 채 유통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내가 굳이 사진을 사용한 이유는 표면적인 것만 보지말고 빠진 설명까지 참고해서 보자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헌주는 이 설명은 빼고 게재할 뿐 아니라, 표면적인 내용에만 언급해 나에 대한 적대를 유도한다.

그의 “불편”함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여성”을 벗어나는 이미지를 벗어나는 여성들을, 바로 그자신이 부정하고 배제하고 혐오하기 때문에 생긴 불편함이다. 다시 말해 그 사진에서 오로지 표면적 “자발성”만을 읽어낸 건 내가 아니라 오히려 김헌주다. 일본인기자조차 갖고 있었던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우리의 “젊은 학자”들에겐 없다.
물론 나눔의집 관계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내가 제시한 또다른 이미지를 오로지 부정해야 하는 무엇인가로 여겼다. “박유하는 위안부를 자발적인 매춘부라 했다”고 보도자료에 써서 배포했지만 그렇게 본 것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다.

이미 수십번 쓴 얘기지만, 내가 “자발적 매춘부”라는 단어를 사용한 건 위안부문제를 부정하는 이들이 그렇게 사용했기에 인용하며 비판한 문맥에서였다. 서경식선생조차 “구조적강제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나를 비판했고 이후 같은 비판을 반복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 개념은 바로 내가 십년전에 제시한 개념이다. 이들이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지만 명백한 표절에 해당한다.

자신들이 기대하고 희망하는 여성상을 벗어난 여성에 대한 혐오는 여성자신도 공유한다. 지원단체관계자들이 내 책이 할머니들을 비난한 책인 것처럼 간주한 것도 그 때문이다. 매춘이라는 주장도, 아니라는 주장도, 매춘을 혐오하고 차별한다는 점에서는 닮은 꼴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만든 왜곡된 보도자료와 고발때문에 나는 일년 3개월동안 전국민적 비난에 시달려 왔다.

내가 제국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인 위안부와의 위계도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들의 비난은 일본을 비판한 부분을 완전히 도외시한 비난이다. 다시한번 읽고 사과해 주기 바란다. 책을 편파적으로 읽고 비난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발이 당연하다고 말한 것을, 부끄러워 해 주길 바란다. 물론 다른 “젊은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김헌주의 발언이야말로 위안부할머니에 대한 명예훼손이자 나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한 학자의 고민에 대해 아무렇게나 말하고 “아니면 말고”로 끝내기엔 내가 받은 고통이 너무나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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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05284136165165

일본단상

일본에 관해 쓴다 해 놓고 한동안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얘기만 올렸다. 이제 가끔 본론을 쓰기로 한다.,

——–
1. 망각된 “전후일본”

아베정권의 집단자위권에 반대하는 일본인이 60퍼센트가 넘는다는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중 어디도, 놀랍다는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늘 생각해왔던 “군국주의국가”라면 국민들이 나서서 찬성해야 하는데, 그런 국민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편”이 되어 준 듯한 일본을 어여삐 여기는 보도들만 넘쳐날 뿐이다.

하지만 정말은 그런 일본이, 일반적인 일본인 다수의 모습이다. (집단적자위권 문제에 관해선 더 섬세하게 논해야 할 부분이 있으니 다시 쓸 생각이다.)
심지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무라야마수상의 여러정책도, 그저 악의 화신인 것처럼 얘기되는 자민당의 국제정책을 이어받은 것이었다(아사노토요미). 그리고 내가, 십년전에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에서 중점적으로 쓴 건, 그런, 전후일본과 그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였다.

물론 전후일본의 한계나 문제를 몰라서가 아니다. 하지만 한계를 말하려면 우선 대상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충분히 알아야 한계를, 그리고 정확히, 말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전에 쓴 적이 있지만 한일협정을 맺고 국교정상화를 했어도, 우리가 일본의 맨얼굴(문화/일반인)을 보기 시작한 건 아직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내가 썼던 얘기는, 일본전후는 기본적으로 이전과의 단절을 결심하며 시작된 시대였고, 그러다 보니 국민들에게 반전사상/평화주의가 정착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애국심이 없어진 국민들을 우려하거나 미국으로부터의 자립등을 생각하는 우파들의 목소리가 그에 반발해 커진 시기가 가끔 있었고, 그걸 일본의 “본질”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의(주로 일본좌파가 견인. 기본적으로는 정치적위기의식과 자성에서 비롯된) 목소리만 보도되면서 그것이 “전후일본”인 것처럼 간주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십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전후일본”에 대해 아직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전후사상”의 핵심에 있었던 지식인으로 꼽히는 가토슈이치가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있는 게 그 증거다. 물론 그렇게 된 건 나를 비롯한 일본학연구자들의 책임이다. 나역시도,가라타니고진등 현대지식인은 소개했지만( 일본에 이른바 “양심적지식인”이 있다는 것도 알려지지 않았을 때 얘기다), 마루야마마사오, 가토슈이치, 요시모토다카아키등의 존재를 소개하는 일엔 태만했다(마루야마는 많이 번역되었지만).
문학조차도, 우리 앞에 놓인 건 소세키니 미시마등 근대작가에서 갑자기 현대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중심이고, 그 사이에 놓인 노마히로시나 오오카쇼헤이(그에 관해선 문학시리즈에 넣었지만)에 대해선 알려지지도 읽히지도 않는 것이 현황이다.

물론 타국의 문학과 사상을 꼭 체계적으로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현대일본을 알기 위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전후일본”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것은 우리의 일본이해를 결정적으로 왜곡시켰다. 그러는 사이에 “전전일본=전후일본”이라는 지극히 단선적인 이해만 팽배하게 되었다.
일본과 다시 마주하려면,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아는 건 아주 적거나 왜곡되었었다는 자각부터 필요하다.

지난 주말심포지엄은, 일본에서조차 포스트모던이후 비판에 급급해 그런 전후사상을 잊거나 폐기하려하는 현대일본정치에 대한 위기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었고 그런 연장선상에서 다시한번 “전후일본”의 근간을 만든 “전후사상”을 재검토해 보자는 취지의 심포였다. “빛과 그림자”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고 11살때 패전을 맞은 81세 노학자와 “영속패전론”을 쓴 37세 학자가 한자리에 모여 선배들의 “지의 양상”에 대해 검토하고 고민하는 모습은 감동적이기조차 했다.

깊이 알아야, 폐기든 망각이든 계승이든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과거를 마주하는 방식”은, 잘 알지 못하는 채로 그저 폐기하려 하거나 옹호할 뿐이다.
하지만 후대가 할 일은 전부 버리거나 전부 취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죽은자를 둘러싸고 그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빛과 그림자”를 냉철히 들여다 보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후대이기에 가능한, 특권이기도 하다.

주말심포에서 만난 역사학자 나리타 류이치 선생은
1919년에 태어나 7년전에 작고한,”9조의 모임”의 발기인이기도 했던 가토슈이치에 대해 쓴 책<
가토슈이치를 기억한다–일본의 대표적 지식인은 일본의 “패전후”에 어떤 물음을 던져왔는가>는 제목의 책을 건네 주었다.
이 모임을 주최한 70세 불문학자 미우라선생은, 가토의 생일인 9월19일에 가토에 관한 강연회를 연다고 했다. 금년 강연자는 우에노치즈코선생이라고.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60243804002532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이런 일이 반복된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이런 일이 반복된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은 일본이 꼼수를 부리려는 것으로만 보도하지만, 이번 대상은 어디까지나 “메이지시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이다. 1868-1912,즉 메이지 천황이 통치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시설들이다. 말하자면 정확히는 일제시대 이전의 설비들이니 한국이 꼭 직접적인 관계를 주장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다. 그리고, 1925년에 나온 “女工哀史”라는 책이 말하는 것처럼, 당시의 노동자 착취는, 조선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곳에 조선인노동자의 땀과 피와 눈물이 존재했다면 , 비록 시기가 다르더라도 기억되고 보존되는 일의 의미는 크다. 그랬기에, 시설들 어딘가에 그런 설명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나도 생각했다. 그래서 6월말 한일 외교당국자들이 “주석”을 다는 형태에 합의했다기에 안심했었다. (최근 기사들을 보면 설비가 아니라 등재 신청서에 적는다는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그런데 직전에 한국당국자들이 생각을 바꾼듯 하다.
민족문제연구소등이 본까지 가서 반대시위를 했으니 그런 영향을 받은 걸까. 민디코틀러씨가 등장한 걸 보면 위안부문제 관련자들도 가세한 듯 하다.
코틀러씨는, 2007 년미하원에서 위안부문제 결의안이 통과되도록 힘쓴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일본이 미워도, 사안사안에 따라서 신중하게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결과로, 이 문제는 더 이상 역사문제도 아니고 정치문제도 아닌 “신뢰문제”가 되고 말았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간 협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중 하나는, 뭔가 조치를 취해도 최종적인 해결이 되지 않고 또다시 사죄요구를 해오지 않을까 하는 불신에 있다. 이번 일로, 한국과는 어떤 약속을 해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일본 사회에 더 확산될 것이다. 8월 이전에 어떤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도 한걸음 더 멀어졌다.

물론 옳기만 하다면 한번 정해진 일이라도 번복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일본에 관한 한국의 생각은, 충분치 않은 정보와 인식과 적대의식이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

몇 년 전에 미국에 있었을 때 느꼈던 일 중 하나는 한국도 일본도 아주 작은 나라라는 거였다. 중국만 약간 존재감이 있었을 뿐.
불행한 일이다.

http://m.mk.co.kr/news/headline/2015/638250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

http://sp.mainichi.jp/select/news/20150705k0000m040048000c.html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50534851640094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70퍼센트 이상이 일본을 싫어하고, 그 이유는 “역사를 반성하지 않아서”이고 일본을 “군국주의국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총체적/평균적으로 본다면 이런 일본관은 결코 정확하지 않다. 이런 일본관을 정착시킨 건 불과 이 이십여년이고, 위안부문제, 혹은 독도문제 주변인들의 선입견과 편견이다. 또 그런 편견을 확산 시키는데 앞장서 온 언론과 지식인들이다.

내가 정대협을 비판한 건 그런 편견확산에 가장 먼저, 열정적으로 앞장서 온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대협은 위안부문제에 대해 발언할 때마다 “군국주의 일본”을 강조해 왔다. 반크,서경덕,김장훈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군사대국이 꼭 군국주의가 되는 건 아니다.

문제는 이십여년의 그런 외침이 작금의 불안정한 동아시아정세에 일조했다는 점. 국가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건 시민들인데 지금의 동아시아 시민들은 불신과 경계심(담론)에 휩싸여 그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불화와 전쟁은 불신과 경계심이 만든다. 근거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고, 그런 불신의 밭에서 희생되는 건 꽃같은 젊은이들. 오늘도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그렇게 불신과 경계심의 덫에 사로잡혀 가고 있는 중이다. 정말은 서로를 알지 못하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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