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대법원 판결문 전문

<언론및 각종 담론주체분들께 부탁드립니다>

판결문 전문을 텍스트화 해 보았습니다.

검찰의 공소내용과 2심(원심) 판결도 앞부분에 적혀 있지만 (가. <이 부분 공소사실의 요지>와<나. 원심 판단의 요지>)익히 알려진 내용이니 가독성을 위해 생략합니다.

필요하신 분 연락 주시면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바쁘신 분들은 아래 인용부분만 읽어 주셔도 충분합니다.

소송이후 오늘까지 “위안부를 매춘부라 주장한 박유하” 라는 맥락으로 쓰고 말해 온 분들은 수정 혹은 삭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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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

“피고인은 오랜 기간 대학의 일어일문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 문학과 한일 근현대사를 연구하였다. 피고인은 한일 갈등의 핵심에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구축할 수 없다고 보고, 그 해결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여 연구결과를 저서로 출판하였다. 이 사건 도서는 위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학문적 표현물로 보인다.”

“이 사건 도서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검사의 주장처럼 일본군에 의한 강제 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하였다거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하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 사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이 사건 각 표현이 그러한 주장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에서 강제로 끌려가는 이들을 양산한 구조를 만든 것이 일본 제국 또는 일본군이라는 점은 분명하고,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 제국의 구성원으로서 피해자인 동시에 식민지인으로서 일본 제국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모순된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점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밝히고 있다.
이는 공소사실에 기재된 것과 같은 ‘위안부의 자발성’, ‘강제 연행의 부인’, ‘동지적 관계’와는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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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주문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 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피고인의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중략)

다. 대법원의 판단
1) 관련 법리

가) 정신적 자유의 핵심인 학문의 자유는 기존의 인식과 방법을 답습하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비판을 가함으로써 새로운 인식을 얻기 위한 활동을 보장하는 데에 그 본질이 있다(대법원 2018. 7. 12. 선고 2014도3923 판결 참조). 학문적표현의 자유는 학문의 자유의 근간을 이룬다. 학문적 표현행위는 연구결과를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학술적 대화와 토론을 통해 새롭고 다양한 비판과 자극을 받아들여 연구 성과를 발전시키는 행위로서 그 자체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적 과정이며 이러한과정을 자유롭게 거칠 수 있어야만 궁극적으로 학문이 발전할 수 있다. 헌법 제22조제1항이 학문의 자유를 특별히 보호하는 취지에 비추어 보면, 학문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따라서 학문적 표현행위는 기본적 연구윤리를 위반하거나 해당 학문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 학문적 과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행위의 결과라거나, 논지나 맥락과 무관한 표현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학문적 연구를 위한 정당한 행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헌법 제10조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하고 있고, 인격권에 대한 보호 근거도 같은 조항에서 찾을 수 있다. 학문 연구도 헌법질서 내에서 이루어질 때에 보호받을 수 있으므로, 인간의 존엄성 및 그로부터 도출되는 인격권에 대한 존중에 바탕을두어야 한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연구 주제의 선택, 연구의 실행뿐만 아니라 연구 결과발표에 이르기까지 타인의 명예를 보호하고, 개인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며, 사생활의 비밀을 보호하는 것을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된다. 특히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와같이, 연구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거나 연구 결과를 반박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개인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는 경우에는, 연구의 전 과정에 걸쳐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여야 할 특별한 책임을 부담한다.
나) 대법원은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사회적평가를 저하시키는 사실에 관한 발언이 보도, 소문이나 제3자의 말을 인용하는 방법으로 단정적인 표현이 아닌 전문 또는 추측의 형태로 표현되었더라도, 표현 전체의 취지로 보아 사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사실의 적시로 인정하여 왔다(대법원 2008. 11. 27. 선고 20075312 판결 등 참조).

하지만 학문적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연구 결과 발표에 사용된 표현의 적절성은 형사 법정에서 가려지기보다 자유로운 공개토론이나 학계 내부의 동료평가 과정을 통하여 검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 또는 역사적 사실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학문 영역에서의 ‘역사적 사실’과 같이, 그것이 분명한 윤곽과 형태를 지닌 고정적인 사실이 아니라 사후적 연구, 검토, 비판의 끊임없는 과정 속에서 재구성되는 사실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

다)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은 그것이 주관적 요건이든 객관적 요건이든 그 증명책임이 검사에게 있으므로, 해당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하여야 한다.

2) 판단

가) 피고인은 오랜 기간 대학의 일어일문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 문학과 한일 근현대사를 연구하였다. 피고인은 한일 갈등의 핵심에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구축할 수 없다고 보고, 그 해결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여 연구결과를 저서로 출판하였다. 이 사건 도서는 위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학문적 표현물로 보인다.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 집필 과정에서 국내외의 다양한 문헌과 사료를 조사하여 이 사건 도서에 직·간접적으로 인용하였고, 기록상 피고인이 이 사건 도서 집필 과정에서 인문 · 사회분야 연구자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연구윤리를 위반하여 사료 등 연구자료를 위조,변조하였다거나, 학문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는 부정행위를 하였다는 사정은 확인되지 않으며, 피고인이 이 사건 도서의 기획, 집필, 발간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인 피해자들의 자기결정권이나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이들의 존엄을 경시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도 확인되지 않는다.

나)이 사건 도서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검사의 주장처럼 일본군에 의한 강제 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하였다거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하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 사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이 사건 각 표현이 그러한 주장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에서 강제로 끌려가는 이들을 양산한 구조를 만든 것이 일본 제국 또는 일본군이라는 점은 분명하고,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 제국의 구성원으로서 피해자인 동시에 식민지인으로서 일본 제국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모순된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점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밝히고 있다. 이는 공소사실에 기재된 것과 같은 ‘위안부의 자발성’, ‘강제 연행의 부인’, ‘동지적 관계’와는 거리가 있다.

이 사건 각 표현 전후의 맥락이나 피고인이 밝히고 있는 이 사건 도서의 집필 의도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 전체를 통해 피고인의 주제의식, 즉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하여 일본 제국이나 일본군의 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제국주의 사조나 전통적 가부장제 질서와 같은 다른 사회 구조적 문제가 기여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으므로, 전자의 문제에만 주목하여 양국 간 갈등을 키우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점을 펼쳐 나가는 과정에서 그 주제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이 사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 학문적 표현행위로 인하여 피해자 개인이 입는 인격권 침해의 정도는 그 표현이 가리키는 대상이 넓어지거나 표현의 내용이 일반화, 추상화될수록 희석될 수 있고, 이는 역사적 사실에 관한 표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이나 구성원 개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이나 비교적 균일한 특성을 갖고 있는 집단에 관한 과거의 구체적 사실의 표현은 비교적 진위 여부의 증명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표현으로 인한 인격권 침해의 효과가 희석되지 아니한 채 피해자에게 그대로 미치게 된다. 반면 이를 넘어서는 범위의 집단에 관한 일반화되고 추상화된 표현은 증명 가능한 구체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시대상(時代相)을 정의하는 것과 같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연구자 개인의 종합적 해석이나 평가로서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볼 여지가 커진다.

일본군 위안부의 전체 규모는 적게는 30,000명에서 많게는 400,000명까지 추산되고 있으며, 그중 조선인이 차지하는 비율 역시 50% 이상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를 구성원 개개인이 특정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으로 정의하기는 어렵고, 피해자들이 증언하고 있는 다양한 연행 경위나 피해 양상에 비추어 균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라고 볼 수도 없다. 또한 이 사건 각 표현이 피해자 개개인에 관한구체적인 사실의 진술에 해당한다고도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 사건 각 표현은 개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전체에 관한 일반적, 추상적 서술에 해당하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피고인의 종합적 해석이나 평가로서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볼 여지가 있다.

라) 범죄일람표 순번 5, 16, 20, 26 표현에 사용된 ‘공적 강제 연행’의 개념에 관하여, 이를 일본 제국의 공식적인 정책에 의한 강제 연행으로 볼 수 있다는 검사의 주장과 달리, 피고인은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의 연행 과정에서 일부 군인의 일탈행위가 있었으나, 그것만으로 공식 계통을 통한 ‘공적 강제 연행’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학문적 표현에 사용된 용어의 개념이나 범위에 관하여는 다양한 입장이 존재할 수 있다. 이 경우 국가가 다양한 학문적 견해 중 어느 하나의 견해만이 옳다고 선언하는 것은 학문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침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학문적 표현이 사실을 적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용어의 개념이나 포섭 범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해당 표현에서 취한 개념이 실제 학계에서 통용되는 것이거나, 통용되지 않더라도 문언의 객관적 의미나 대중의 언어습관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으며, 해당 표현이 용어에 대한 특정한 학문적 개념정의를 전제로 한 것임이 표현의 전후 맥락에 의하여 확인될 수 있는 경우에는, 사실의 적시가 아닌 학문적 견해 표명 내지 의견 진술로 보는 것이 학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들어맞는다.

‘공적 강제 연행’ 역시 국가나 군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개입이 존재하여야 이를 ‘공적 강제 연행’으로 부를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다양한 해석이나 주장이 가능하고, 피고인이 한 주장이 학계에서 주류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문언의 객관적 의미나 대중의 언어습관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해당 표현이 ‘공적 강제 연행’에 대한 학문적 개념 포섭을 전제로 한 것임은 표현 전후의 맥락에 의하여 충분히 확인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 각 표현 중 ‘공적 강제 연행’에 관한 서술 부분은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마) 학문적 표현, 특히 역사적 사실에 관한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에만 주목하여 손쉽게 암시에 의한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는 없으므로, 최소한 학문적 표현에 포함된 특정한 문구에 의하여 그러한 사실이 곧바로 유추될 수 있을 정도의 표현은 있어야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할 여지가 있다. 그런데 범죄일람표 순번 7, 10, 11, 27, 30, 34 기재 표현의 경우, 그 표현 내의 문구만으로는 검사가 공소사실에서 ‘적시 사실’이라 주장한 ‘자발성’이나 ‘동지적 관계’에 관한 명제를 곧바로 이끌어 내거나 유추하기 어렵다. 범죄일람표 순번 23 기재 표현의 경우, 그 전후 맥락에 비추어 해당 표현은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 제국의 구성원으로서 피해자인 동시에 식민지인으로서 일본제국에 협력할 수밖에 없는 모순된 상황에 처한 존재였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의 처지와 역할에 관한 피고인의 학문적 의견 내지 주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일 뿐, 검사의 주장과 같이 해당 표현이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들은 일본군과 동지의식을 가지고 일본 제국 또는 일본군에 애국적 자긍적으로 협력하였다’는 명제를 단선적으로 전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3) 소결

그런데도 원심은 이 사건 각 표현이 명예훼손죄에서의 사실 적시에 해당함을 전제로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판단에는 형법 제307조 제2항에서 정한 명예훼손죄의 사실 적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2. 검사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범죄일람표 순번 1, 2, 3, 4, 6, 8, 9, 12, 13, 14, 15, 17, 18, 19, 21, 22, 24, 25, 28, 29, 31, 32, 33, 35 71에 관한 원심 판단에 명예훼손죄에서의 사실 적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3. 파기의 범위

위와 같은 이유로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은 파기되어야 한다. 그런데 위 파기 부분은 원심이 이유에서 무죄로 판단한 부분과 일죄의 관계에 있으므로, 결국 원심판결은 전부 파기되어야 한다.

4.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 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 대법관 오석준
대법관 안철상
주심 대법관 노정희
대법관 이흥구

 

원문

– 박유하 – <언론및 각종 담론주체분들께 부탁드립니다> 판결문 전문을 텍스트화 해 보았습니다. 검찰의 공소내용과… | Facebook

대법원 판결문

박유하 최종 진술

‘제국의 위안부’ 대법원 판결 관련 보도

대법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무죄…명예훼손 아냐”(종합) | 연합뉴스 (yna.co.kr)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유죄 파기… 대법 “무죄로 봐야” (chosun.com)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교수 “사상 자유에 관한 판결…감사하다” (chosun.com)

[광화문·뷰] 박유하를 때려잡던 그 몽둥이 (chosun.com)

신당 새로운선택 “박유하 무죄판결 환영”…민주당은 침묵 (chosun.com)

“친일 교수 박유하” 몰아갔던 인사들… 판결엔 입장 안 내 (chosun.com)

 

저자 소회문 – ‘제국의 위안부’ 대법원 판결에 부쳐

2014년 6월에 명예훼손고발을 당했습니다. 제가 굳이 ’고소‘아닌 ‘고발‘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미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는 것처럼 이 싸움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저와의 싸움이 아니라 할머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저와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판결이, 그 사실이 보다 명확히 인식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변인들이 저의 책을 문제 삼은 이유는

첫째,
<제국의 위안부> 출간 이후 제가 나눔의집에 거주하시던 할머니들을 만나 일본의 사죄와 보상에 관한 그분들의 생각을 직접 들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접근 금지를 요구당한 이유입니다)

둘째,
저의 책이 세상에 받아들여 지는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출간 이후 개최한 심포지엄에 대한 한일 언론의 비상한 관심 직후에 고발이 이루어진 이유입니다. 또한 이후 나온 일본어판이 두개의 상을 수상한 직후에 기소가 이루어진 이유입니다)

주변인들은, 저의 책이 위안부를 ’매춘부’라 했고 ‘강제연행‘을 부정했다는(물론 이 역시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는 말로 위안부를 둘러싼 ’사실‘을 문제시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은 그들은 위안부 문제에 관한 그들의 해결방식에 대한 저의 이의제기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재판과정에서 내내 ’법적해결‘을 부정하지 않았느냐면서 추궁당한 이유이기도 합니다.바꿔 말하면, 강제연행 주장은 자신들의 해결방식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주장이었습니다.

저는 여러해가 지나고 나서야 그런 주장의 실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북한과 일본이 수교할 경우 ‘법적배상’을 받기 위한 목적이, 그토록 오래 이어진 위안부문제의 배경에 있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한국이 공식적으로 받지 못했던 식민지 배상을 북한이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 위안부 문제 운동의 감추어진 목적이었습니다.

그 목적 자체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건 그런 주변인들의 주장이 어느새 국민상식이 되고 국가의 견해가 되면서, 그에 반하는 의견을 국가가 처벌하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국의 위안부>소송사건입니다.

물론 이미 세간에 밝혀진, 개인적 혹은 소속단체의 이익구조 유지를 위한 목적도 주변인들에게는 있었습니다. 저를 고발한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이 횡령죄혐의로 감옥에 구속중이고, 윤미향 전 정대협 대표 가 같은 혐의로 징역형 선고를 받은 사실, 그리고 저와 가장 가까웠고 이 두사람에게 비판적이면서도 그 말을 공적으로는 하지 못했던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에 고발당한 사실 역시, <제국의 위안부>사태의 또하나의 배경을 짐작하게 해 줄 것입니다.

’학문의자유‘를 둘러싼 판결이었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고 말할 자유, 그러니까 근본적으로는 사상의 자유를 둘러싼 판결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판결은 대한민국에 국민의 사상을 보장하는 자유가 있는지에 관한 판결이었다고 저 자신은 생각합니다.

저는 한번도 <제국의 위안부>사태가 ‘학문의 자유’를 둘러싼 소송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말로 보호받아야 할 만큼 위안부 할머니들의 대척점에 있는 책이 아니라, 오히려 위안부 할머니들 편에 서서 쓴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은 책이 나온 직후의 언론반응이 일찌기 말해 준 바 있습니다.

오늘 판결은 아직 끝이 아닙니다. 민사 재판이 남아 있고 어쩔 수 없이 책을 삭제해야 했던 가처분재판을 다시 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이 다 끝나고 저의 책과 저의 인생이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국민의 자유로운 생각이 보장되는 민주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급적 고발 10년이 되는 내년 6월 이전에 이루어져, 운동가들과 일부학자, 그리고 국가가 그에 동조해 묶어 두었던 저의 손과 발이 이제는 자유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양극단이 목소리가 큰 가운데, 저는 그 양쪽을 비판하면서 제3의생각을 내놓았습니다. 역사는 단순화하면 할수록 오히려 우리자신을 볼 수 없도록 만듭니다. 그 복잡한 결을 따라가 보려 했던 저의 시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10년 가까이 되는 긴 세월을 한결같이 지지하고 응원하며 함께 해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오늘의 판결을 제가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분들 덕분입니다. 그분들이 제겐 대한민국의 희망이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목소리가 작지만 그런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국내외에 자랑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제 책이 그런 흐름에 일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한국사회가 바뀔 수 있다면, 이 오랜 기간에 걸친 고통도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2023년10월26일

박유하

판결문

 

원문

 

보충설명

 

[주장] 박유하 교수에 대한 비난은 과연 타당한가

세종대학교 박유하 교수의 2013년작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논란은 오랜 세월 표류 중이다. 논란은 학문의 장을 넘어 법정으로까지 번졌다. 명예훼손죄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던 박유하 교수는 2017년 2심에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최종판결을 내려야 할 대법원에서는 2022년 현 시점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주장] 박유하 교수에 대한 비난은 과연 타당한가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한양대 김종걸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평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그리고 [제국의 위안부, 지식인을 말하다]를 읽어보았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비공식 문헌과 인터뷰를 참 잘 정리한 훌륭한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위안부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고소당하고 재판에 걸려있습니다. 1심에서는 무죄였으나, 2심에서는 34곳을 삭제하도록 판결이 있었습니다. 대법원 판결은 몇 년이 지나도록 그냥 질질 끌고 있는 듯합니다. 비겁한 일입니다.

저는 그 삭제 명령이 난 곳을 [책]과 [재판기록]을 대조해 가면서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34곳이나 삭제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 [그 어디에도] [위안부 할머니들을 폄하]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가난에 팔려가고, 중간상인에 사기당하고, 포주에게 폭행당하고, 만주와 남태평양 땅에서 고생했을 그분들의 삶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이 책이 불편해했던 이유는 아마도 다음의 3가지 정도였을 것입니다.

첫째로, 소녀들이 군인들에게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가 되었다는 그동안의 [인식]을 정면으로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은 조선인 중계업자와 포주에 의해 사기당해 끌려갔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면 비난의 대상이 구체적인 일본 정부/군부가 아니라 제국/식민지/가난/인간의 추악함 등 일반적인 대상으로 전환됩니다. 일본정부/군부가 의도적/조직적으로 개입해서 강제로 끌어가지 않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나 [위안부운동] 차원에서 본다면 난감했을 것입니다.

둘째로, 위안부들이 일본 군인과 일종의 정서적 [동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식민지 속에 살았던 조선 처녀들에게 있어서 비록 억울하고 참담했으나, 일본 군인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에 대해서는 일종의 [동지 의식]을 가졌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측 가능합니다.
위안부들에 대한 폭력은 주로 조선인 포주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일본 군인들은 그들을 위로하기도 했다는 것 또한 수많은 증언이 있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셋째는 위의 불편한 진실을 무시한 [정대협] 등 관련 운동단체에 대한 비판입니다.

애초부터 [위안부]와 [정신대]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역사적 지식이 부족했던 점. [위안부 운동단체] 그리고 [위안부]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는 점을 이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박교수의 책은 누구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다양한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설명했을 뿐입니다.

단 하나의 주장(일본군부에 의해 강제 연행된 소녀 위안부)만이 진실이며 나머지는 [일본 우익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악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
그것은 무척이나 오만한 일이며, 당시를 살았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다양한 삶과 기억에 대한 폭력입니다.

박유하 교수의 주장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박교수는 문학평론가와 번역가로서 레알 A급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응시하는 지식인으로서도 그렇습니다.
탄탄한 학문적 기반을 가진 일문학자가, 자신의 양심을 걸고 쓴 책을, [형사] 고발하고, 재판하고, 언론과 SNS를 통해 마녀사냥했던 우리의 ‘반지성주의’는 무척이나 창피한 일입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근대 문명사회의 기본가치입니다. 그것이 인류 진보의 동력이기도 하죠. 제가 좋아하는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의 핵심입니다.
새삼 용기 내어 책을 쓰고 당시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 박유하 선배에게 감사드립니다.(2023/8/2) https://www.facebook.com/100081046535428/posts/pfbid02urfCsAtzk17oAyZzbMU3Yp6AdwTS7gkht8JLjM53hTiCe11sBAXhRdphFx6WbKQel/?mibextid=K8Wfd2

‘제국의 위안부’ 소송 현황과 한일관계 긴급제언 (8월30일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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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 소송과 한일관계에 관한 박유하 기자회견문

(2022년 8월 31일, 한국프레스센터)

바쁘신 가운데 이렇게 모여주신 언론사 관계자 여러분들, 그리고 저를 둘러싼 일에 관심 갖고 참석해주신 분들께 먼저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저는 오늘로 저의 직장이었던 세종대를 정년퇴직하게 됩니다. 30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한 사람의 학자로서 연구와 교육에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2014년 6월 16일에 고소·고발당한 이후, 평온했던 저의 일상은 깨졌고 이후 8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 8년 동안 저의 책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의 강제연행을 부정했다거나 위안부 할머니를 폄훼했다는 등, 제 기억에 없는 일로 비난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정년을 맞게 된 오늘까지도 책은 아직 법정에 갇혀 있고 제가 아직 ‘피고인’ 신분을 벗지 못한 건 그런 비난들 때문이기도 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1. 고발은 운동비판의 결과

그런데 저의 책은 발간 당시에는 언론에 오히려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었습니다. 고소·고발당한 건 무려 10개월이나 지난 후입니다. 이 10개월 동안 저를 둘러싼 새로운 변화는 ‘나눔의집’에 거주하시던 한 위안부 할머니와 친해졌다는 사실밖에 없습니다. 그런 저를 나눔의집 소장이 경계했고, 책의 검토를 의뢰받은 한 변호사가 위안부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을 시켜 <제국의 위안부>에 관한 보고서를 만들어, 무려 109곳을 삭제해야 한다면서, 형사, 민사, 그리고 판매금지 등 가처분신청, 이 세 가지 소송을 건 것이 이른바 <제국의 위안부> 고소·고발 사태입니다.

그런데 실은 이보다 앞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연)도 고발을 검토했었다는 사실을 저는 훗날 알게 되었습니다. 정대협 대표였던 윤미향 씨가 상의했다는 전 민변 회장 정연순 변호사는 <제국의 위안부>가 “정대협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명확히 말하고 있습니다(정연순 페이스북, 2015년 12월 31일).

이 두 가지 사실은, <제국의 위안부> 소송이 위안부 할머니가 아니라 주변인들이 일으킨 소송이라는 것을 명확히 말해줍니다.

그리고 징용문제에서 정대협만큼 오래 활동해온 최봉태 변호사가 나눔의집 소송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저는 올해 3월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최 변호사는 이용수 할머니의 변호사이기도 한데, 당사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저의 책을 읽은 적이 없다고 저에게 두 번이나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2. 때를 놓친 판결

“정대협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말이 보여주는 것처럼,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가 아닌 지원단체를 비판한 책이라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관계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삭제를 요구한 109곳 중 3분의 1 이상이 정대협 관련 기술이기도 합니다.

이후의 싸움에서, 저는 형사 1심에선 승소(무죄 판결)했지만 2심에서는 패소(유죄 판결)했습니다. 당시의 판결 요지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박유하가 위안부를 매춘부라 한 건 아니지만, 독자들이 그렇게 읽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독자의 독해력에 대한 책임이 저자에게 씌워진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당연히 상고했습니다. 2017년 10월의 일입니다. 이후 대법원 계류 세월만도 곧 5년이 됩니다. 만약 무죄(파기환송) 판결이 나온다 해도 2심을 다시 진행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2억 7천만원(원고 1인당 3천만원)의 손해배상이 청구된 민사소송, 그리고 책 일부를 삭제당한 가처분신청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 재판도 아직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이대로 가면 10년을 넘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늘 이 회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다못해 정년퇴직 전에는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결국 제 바람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이 어떤 의미와 무게를 갖는지는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이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8년의 세월 동안 저는 SNS와 홈페이지, 세 권의 책을 통해, 그리고 인터뷰 등의 기회를 얻을 때마다 <제국의 위안부>는 고소·고발자들이 말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선 지지자들도 두 번의 항의성명, 세미나, 심포지엄, 책 등을 통해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이른바 진보 지식인들입니다. 제 홈페이지(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광장으로, https://parkyuha.org/)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기간 동안, 저도 고령화되었지만 지지자들도 고령화되었습니다. 그중엔 돌아가신 분도 몇 분 계십니다. 그만큼이나 긴 세월이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함께해주신 분들도 지칠 수밖에 없는 긴 시간이었습니다. 결자해지라는 말이 있듯, 저를 이런 상황에 몰아넣은 것은 이른바 ‘진보’진영 사람들이기 때문에, 저는 문재인 정부 때 무죄 판결이 내려지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래야만 정치적 판결로 간주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법원에 심심한 유감을 표합니다.

3.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근본적 오해

(1) 학계에서 부정되고 있는 ‘강제연행’

저는 강제연행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공적으로는’ 강제연행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실은 학계에서도 더이상 ‘강제연행’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학자가 ‘(위안부)운동부터 시작하다 보니 정확하지 않은 사실이 많았다는 것을 연구를 하면서 알게 됐다’고 말하기도 하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다 금년 5월에 나온 한 일본인 진보학자의 위안부 논문도 일본 군부에 의한 “직접, 그리고 계획적인”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말합니다(도노무라 마사루[外村大] 도쿄대 교수). 이제야 이른바 진보진영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본격 논문이 나온 것입니다. 또한 위안부문제의 1인자로 일컬어져온 일본인 학자의 주장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이었는지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한국인 학자의 논문도 역시 금년 3월에 나왔습니다. 두 논문 다 실력 있는 중견학자에 의한 중후한 학술논문입니다.

하지만 위안부문제 주류학자들이 이 논문들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런 목소리는 소수이니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안으로는 논의하면서도 바깥으로는 함구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사회의 위안부 인식이 30년 전 인식과 거의 변함이 없는 것은, 관계자들이 그 이야기를 단 한 번도 언론이나 대중 앞에서 공식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학자들과 운동가들은 강제연행에서 강제성, ‘동원’ 아닌 ‘위안소에서의 부자유’로 ‘강제’의 내용을 바꿔가며 ‘강제’라는 단어를 유지시켜왔습니다. 심지어 위안부문제에서 제1인자로 거론되는 학자조차 그런 기만의 선두에 서 있었습니다. 왜 이들은 이토록 ‘강제’라는 단어에 연연했을까요? 강제든 아니든 위안부 피해가 달라지는 일은 없는데도 말입니다.

(2) 위안부문제와 북한

주지하다시피, 위안부문제는 1990년대 초에 ‘문제’로서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북한은 일본과 국교정상화 교섭 중이었습니다. 북한은 위안부문제를 일본에 대한 ‘배상’을 받아낼 수 있는 문제로 간주했습니다. 냉전 시기에는 교류하지 못했던 남북은 이 시기에 일본, 중국, 유럽 등지에서 만나면서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했고, 북한의 대일배상문제는 어느새 한국의 위안부운동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실제로 1992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윤미향 전 정대협 대표는 북한이 배상을 받아낼 수 있도록 위안부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배상’을 받으려면 대상 행위가 불법이어야 합니다. 유엔의 위안부 인식을 담은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는 위안부의 목을 잘라 국을 끓이라 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증언은 북한 출신 위안부의 증언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한국사회에 퍼져 있는 가장 끔찍한 위안부 이야기들은 북한 출신 위안부의 이야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언론에서 자주 거론되는 이른바 ‘국제사회의 인식’이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불법행위’ 가 되어 ‘배상’을 받으려면 위안부 동원이 군인=국가기관에 의한 ‘강제연행’이 되어야만 합니다. 함의를 바꾸어가면서까지 ‘강제’라는 단어가 유지되어야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3) 이민족간 강간과 동일시

위안부문제는 유엔 등 국제사회를 향해 동시대의 유럽이며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부족/민족간 강간’인 것처럼 어필되었습니다. 원래 과거문제는 다루지 않았던 유엔이 위안부문제에 관심을 표명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부족간 강간이 ‘불법’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두 집단간 관계가 ‘교전국’이어야 합니다. 동등한 위치에서 ‘전쟁’을 수행 중인 관계여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북한은 독립투쟁을 바탕으로 국가를 만들었다는 자기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자신들을 ‘교전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을 당시 활발히 교류했던 한국도 이어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윤미향 전 정대협 대표뿐만 아니라 일찍부터 위안부문제에 관여해왔던 법학자 등 다른 관계자들도 ‘북한의 대일배상’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2002년 ‘평양선언’에서 북한은 일본의 경제지원을 받기로 합의합니다. 그때의 평양선언이 이후 현실화되었다면 위안부문제가 그 이후로도 20년 동안이나 갈등을 이어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하지만 북한의 핵문제와 납치문제가 불거지면서 평양선언은 유명무실화되었고, 이후 20년이 지나도록 일본과 북한의 국교정상화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한일갈등도 이어졌습니다.

(4) ‘식민지’ 아닌 ‘교전국’이 된 한국

작년 봄에 나온 위안부 재판 판결문에는 “교전국”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재판부는 한국을 교전국으로 간주하고,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를 적대시하는 민족 간의 집단강간으로 규정지었습니다. 물론 이런 판결은 원고의 주장에 따른 판결일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위안부문제는 식민지범죄 아닌 ‘전쟁범죄’로 인식되게 되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상당히 회자되게 된 “법적 해결”, “법적 책임”이라는 단어는 사실 위안부문제를 전쟁범죄로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일본의 관계는 전쟁범죄가 성립될 수 있는 교전국이 아니라 엄연히 종주국-식민지 관계입니다. 설령 국지적 전투가 있었다고 해도 그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싫든 좋든 현대 한국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제도가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지고 시행된 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인 위안부는 식민지지배가 만든 존재입니다. 저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그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그 사실이 직시되어야 한국이 시작한 위안부문제 운동의 의미가 온전히 살아날 것이고 올바른 해결도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목에 굳이 ‘제국’을 넣은 이유입니다. <제국의 위안부>란, 제국에 동원당한 위안부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이 사실을 오랫동안 말해오지 않았습니다, ‘전쟁범죄’로서의 강조가 훨씬 자극적이고, 무엇보다 ‘강제연행=불법’이라야 이른바 ‘배상’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90년대에 이어 두번째로 사죄와 보상을 시도한 ‘한일합의’에 관계자들이 반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사죄와 반성과 기억은 ‘법’에 의존하지 않고도 가능합니다. 설사 ‘배상’을 받는다 해도 상대가 납득하지 않는 배상이 기억의 계승으로 이어질 리도 없습니다.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지만, 지금이라도 사태를 바로잡지 않으면 결국 가장 고통을 받는 건 위안부 할머니들일 것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이유입니다.

북한 이야기를 했지만, 저는 이른바 ‘종북’ 운운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북한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하기를 바라고 있고, 이제라도 그것이 추진되기를 바랍니다. 달리 말하자면 1990년대 초, 혹은 2000년대 초에 북일수교가 가능했다면, 위안부문제가 이토록 오래 지속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징용은 ‘국가’가 주도

징용문제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기업자산의 현금화가 우려되고 있지만, 징용은 국가가 주도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징용은 준(準)징병 같은 것이었고, 조선인도 기업의 노동자를 넘어 ‘신민’으로서 동원되어 ‘국가를 위해’ 일할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임금의 일부를 국가가 지급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따라서 기업을 대상으로 소송을 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사태입니다. 원래 일본과 미국에서 제기된 소송은 국가가 대상이었습니다. 패소로 끝났기 때문에 대상을 기업으로 바꾼 것이지만, 그런 식의 대응은 징용이라는 사태의 본질을 도외시한 대응에 지나지 않습니다.

설사 기업자산을 현금화해서 얼마간의 보상금이 지급된다 해도, 정작 중요한 일본인들이 징용 피해에 대해 기억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중요한 건 일본인들이 위안부문제에서 그랬던 것처럼 징용에 대해서도 그 본질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일일 터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오늘 날짜로 발간된 이 책 <역사와 마주하기>에 자세히 썼으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일본인들이 이 점을 생각하고 제대로 마주해주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일본어로 먼저 냈습니다.

이 30년 동안 역사문제에 법정이 관여하게 된 것은 위안부를 둘러싼 일본군의 행위를 강제연행, 학살로 이해한 법률가들이 이 문제를 전쟁범죄로 간주하고, 전쟁범죄를 처벌한 뉘른베르크 재판과 도쿄 재판을 참고하며 대응책을 강구해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사태를 ‘역사의 사법화’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법정은 학자들의 논의를 참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학자들조차 역사전쟁에서 진영에 따라 사안을 판단하는 ‘학문의 정치화’ 현상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위안부문제 등의 역사문제가 30년이나 이어지고 있는 건 그 결과이기도 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 흐름을 바꾸려는 이들이 나타났지만, 이번엔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가져가려는 움직임이 농후합니다. 하지만 그런 정황은 과거 30년을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는 일이 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입니다.

고발을 주도한 최봉태 변호사나 박선아 변호사는 현재 위안부를 둘러싼 담론장에서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나눔의집 소장은 횡령 혐의로 해임당했고, 기소 중입니다. 원고로서 이름이 올라간 위안부 할머니 열한 분 중 현재 생존해 계신 분은 이미 몇 분 되지 않습니다.

도대체 이 고발의 주체는 누구입니까? 저에게 청구한 1인당 3천만원은 제가 패소할 경우 누구에게 가는 걸까요? 작년에 있었던 위안부 재판에서 당사자 대신 원고로 이름이 올라와 있던 건 전 정대협 대표 윤미향 씨였는데, 저의 재판도 그런 식이 되는 걸까요?

한일관계가 경색된 것이나 제가 여전히 재판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간의 ‘주류’의 목소리가 아직 크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언론이 그동안 그들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여왔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위안부> 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런 목소리가 한국사회에서 아직 힘이 더 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여론입니다. 우리 사회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한일관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저의 책도, 법원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목소리 큰 양극단의 목소리가 아니라 작더라도 중요한 목소리들에 여러분들이 귀를 기울여주시면 우리 사회도 변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제국의 위안부>를 쓴 건 한국에 대한 실망과 혐한 감정이 일본사회에 확산되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발당했고, 한일관계는 이후 해방 후 최악이라고 얘기되는 시대가 이어졌습니다.

행동은 정치가가 하지만, 사회를 바꾸는 건 여론입니다. 한일관계 개선은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식전환이 있어야만 가능해질 것입니다. 제가 일본을 향해 위안부문제에 관해 “사죄와 보상이 필요하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써왔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국의 위안부> 역시 그런 책입니다

(박유하 페이스북 참조, 2022년 8월 29일)

지난 8년 동안, 숫자는 많지 않았어도 저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주는 분들이 계셨기에 그래도 인식은 조금은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더 많은 분들이 귀기울여주시면 우리 사회도 한일관계도, 그리고 저를 둘러싼 상황도 변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라면서 오늘 회견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종대 국제학부 교수, 박유하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제국의 위안부

「제국의 위안부」는 이처럼 앞으로도 무한 반복될 것처럼 보이는 양국의 갈등에 대해 아직 알려지지 않았거나 소거됐던 사실관계와 책임을 분명히 하고, 한국과 일본 국민들간 놓여진 적대(敵)對의 밀림에 이해의 소로(小路)를 내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 여주신문(http://www.yeojunews.co.kr)

원문 : https://www.yeoju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148

김도형, 전 한겨레기자의 글

우리시대 선각자이자 그때문에 터무니없는 고초를 겪고 있는 박유하 교수님이 오늘 부로 세종대 정년퇴임을 맞이했다.

박 교수님의 문제작 ‘제국의 위안부’는 여러 시각으로 읽을 수 있지만 내가 보기엔 최고 수준의 페미니즘 작품이다.

“분명한 것은 보수가 주어졌건 아니건 ‘위안부’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윤간이 국가에 의해 허용된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허용한 의식은 여성을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 도구로 대할 수 있게 만드는 차별의식이었다. 특히 ‘조선인 위안부’는 그런 인식이 명확히 드러난 경우다.”(제국의 위안부 143쪽)

“말하자면 강간을 피하기 위해 위안소를 만들었다는 (일본) 군 상부의 의도는 군대의 숫자를 생각하면 처음부터 문제해결에는 도움이 될 수 없는 시도였다. 그리고 실제로 여기서의 강간욕망은 그녀들이 고작 ‘조선삐’였기 때문에 생긴 욕망이었다. 말하자면 단순한 여성 경시 뿐만 아니라 민족경시가 그들에게 강간을 허용한 것이다.”(같은 책 147쪽)

책도 안읽어본 사람들이 맹목적인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없는 죄를 만들고 심판하려 들고, 재판회부 7년이 지나도록 박 교수의 정년이 지나도록 사법부는 비겁하게 재판을 끝내지도 않고 있다.

그녀의 작품을 뒤늦게라도 꼭 읽어보길 바란다. 특히 2030젊은 여성들은 위안부 문제를 ‘소녀상’이란 한가지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국가폭력과 가부장제 사회의 맥락 속에서 바라본 박 교수의 접근법에 주목해 텍스트를 읽어보길 권한다.

후속작 ‘역사와 마주하기’ 한국판도 최근 출간됐다. 나도 오늘 주문했다.

텍스트의 문장 때문에 그 문장도 제대로 독해못한 자들에 의해 고소당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7년이란 세월속에 재판을 방치한 야만의 세월은 끝나야 한다.(김도형, 전 한겨레기자. 2022/8/31, 페이스북)

[시론] 한·일 역사 화해 5개년 계획 만들자

지원 단체와 문 정부가 주장해 온 법적 책임이란 연구가 아직 불충분했던 시대에 도출된 주장이다. 법적 책임만이 최고의 가치인 것도 아니다. 1990년대 다수가 사죄하는 마음을 가졌던 일본 국민이 지금은 그렇지 않다면 일본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제 위안부 운동의 실패도 돌아봐야 한다. 지원 단체들의 목소리에 가려 당사자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일은 이제 없어야 한다.

원문 :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mparticle/25068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