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1/13

멀리 사는 페친이 아름다운 찻잔을 보내 주었다. 황금빛찻잔. 바깥이 아니라 안쪽이 황금빛이어서 마음에 든다. 귀모양으로 살짝 구부러져 있는 건, “차를 마실 때 귀기울이는 순간을 떠올리며”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페친이 늘어나다 보니 진득하게 “귀기울이는 순간”이 적어진다. 읽었다는 표시로(공감했다는 표시조차)”좋아요”를 누르지만 가볍고 가벼운 소통에 회의가 든다. 아무래도 페친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어제 대통령기자회견은 다 들어 볼 생각이었는데 그만 십분을 못 넘기고 꺼 버렸다. 대통령에게 부족한 건 말하는 기술이 아니라 “귀기울이는” 자세였다. 소통은 귀기울여, 정성껏 듣는 일에서 가능해진다. 대통령은 会見을 했지만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보지 않았다.

대통령 뿐 아니라, 나와 다른 이의 말(생각)은 듣지 않고 배제하려는 욕망이 진영과 상관없이 넘쳐난다. 그래서 내겐 경제적 양극화 이상으로 심리적 양분화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프랑스테러사건이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 것도 그 때문이다. 갈등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소리없는 총성을 매일밤 듣는 기분. 대체적으로 따뜻하고 지적이지만, 페북에도 조롱과 냉소와 욕설이 넘친다.

어제 나는 책의 초고를 보여주기까지 했던 가까운 지인에게 아주 약간 비판을 받고, 배신감에 잠시 분노했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건 내가, 책에 대한 모든 비판이 현시점에서는 고발을 지지하는 일이 된다는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물론 고발취지가 이제 “논지”를 문제시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그건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문제시해 왔던 “강자로서의 피해자”가 된 순간이기도 했다.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어떤 비판도 들으려 하지 않는 자세. 피해자의 오만.

어쩌면 우리의 대통령의 “불통”도 거기서 온 건지도 모르겠다. 압도적 폭력을 만났던 트라우마가 만든 도덕적 우위.

아무튼 분열과 혐오가 넘치는 사회를 차세대에게까지 물려줄 수는 없으니 “귀기울이는” 일을 좀 더 해야 할 것 같다. 깊고 고요한 밤과 마주하는 것처럼. 우주처럼 이해불가한 안팎의 타자들에게.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40619592631621

渦中日記 2015/1/10

페북에 <받은 메시지함>외에 <기타메시지>함도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고발사태 직후에 받은 메시지들을 반년이 넘도록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제서야, 반년이나 늦은 답장들을 보냈다.
그런데 이 메시지를 주신 분은 이미 계정이 없었다. 너무 죄송한 마음. 혹 이 분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고 연락이 닿는 분이 계시다면 알려 주시면 좋겠다.
당시 받은 메시지들을 뒤늦게 읽으면서 약간 가슴이 싸아했다.
이제 곧 7개월이 되어간다.
——————————————————————-
교수님, 저는 미국에 30년을 거주하고 있는 ……라고 합니다. 메시지를 보내고자 마음 먹은 이유는, 한국인의 일반적 “정서”에 반하는 이슈에 대해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여 책을 저술하신 교수님의 노고와 용기에 감사드리고, 현재 교수님께 가해지는 수많은 비판과 질타에 굴하지 마십사고 응원하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제가 살았던 Pasadena 에서 20여분 거리의 글렌데일에 위안부 동상을 세운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부터 였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 왜 애정이 없겠으며, 일본의 침략에 왜 분노하지 않겠습니까마는, 글렌데일이 자매도시들을 소개하기 위해 할애한 공원에 한국이 제일 먼저 위안부 소녀동상을 세웠다는 사실은 시의 취지와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는 동상건립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이 문제에 대해 여러 자료들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중 제가 가졌던 가장 큰 의문점은 위안부가 차출되었던 다른 나라들은 조용한데, 왜 유독 한국만 이렇게 난리를 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러다 약 한달 전 웹에서 <제국의 위안부>의 발췌부분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비로서 많은 부분들이 이해되었습니다. 특히나, 책은 위안부 이슈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전개되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사신 저의 어머님이 말씀하셨던 부분들과도 일치했습니다.

현재 교수님께 비판을 가하는 많은 지식인들은, 교수님이 들춰내신 팩트가 불편한 듯 합니다. 팩트의 일부만 조명했다는 사람들은, 이전에는 알려진 팩트가 거의 없었고 감정만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고, 일부 사람들은 “강제 vs. 자발” 이란 이슈가 칼로 무우쪽 자르듯이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상황임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강제라고만 억지부리며 “매춘”의 측면에는 한점의 고려없이 무조건 비방만하고 나서는 듯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수님이 책에서 기술하신 한국측 실수/조작/통제 등은 아예 무시합니다.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이 이런 편파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 특히나 그 감정이 적개감일 때, 사실에 근거하고 이성에 입각하여, 이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라 봅니다. 교수님의 저서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는 만드셨지만,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의 의문을 해소해 주셨다는 점을 어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앞으로 다가오는 어려움들을, 책을 저술하셨을 때 가지셨던 동일한 용기로 지혜롭게 극복해 나가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어눌한 한국말로 두서없는 글을 쓰서 죄송합니다만, 소리없이 교수님을 응원하고, 저서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2014/6/2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38835126143401

渦中日記 2015/1/5

연말에 했던 최종 답변서에 대해서 원고측도 답변서를 제출했다. 여전히, 문서가
제출되었다는 문자가 법원에서 오면 약간 긴장한다.
23쪽 분량. 하지만 내용은 지금까지 주장과대동소이했다.

다시 읽으면서 확인한 것은 이들이 나를 “일본의 나팔수”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
일본인 위안부와 다른 방식으로 모집되었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일본군의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

책이란 한번 저자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것이기는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로 하여금 이렇게 읽도록 만드는 건 무엇일까.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33792889980958

渦中日記 2015/1/5-2

일본어판을 만든 편집자가 보내준 어제날짜 마이니치신문사설을 보면 일본인들이 내가 던진 공을 받아 주었다고 느낀다.
이런 자료들을 법원에 제출하면 다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한들, 원고측은 일본인들이 내 책에 호응하는 건 내가 일본의 나팔수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겠지. 재판이란 서로 소설을 쓰는 거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는 우울한 저녁.
———————-
(전략)
70년 담화에 필요한 것은,전후 50년 때 발표된 무라야마담화를 전후일본의 흔들림없는 기반으로 삼고,그에 입각해 미래를 전망하는 자세일 것이다. 무라야마 담화는 <과거의 한 시기에 국가정책을 잘못 정하여><식민지지배와 침략으로><아시아국가들에 커다란 손해와 고통을 끼쳤다>라는 인식이 핵심이다 .
(중략)
일본에서는 아사히신문의 오보를 계기로 위안부문제 제기자체를 부당하다고 하는 논조가 생겨나고 있다. 사실관계를 수정하는 건 필수적이지만, 위안부를 필요로 했던 사회의 추악함은 어떤 반론으로도 변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박유하 세종대 교수는, 최근저서<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설을 비판하면서 <전쟁에 동원된 모든 이들의 비극 안에 위안부의 비참을 위치시켜야 성까지도 동원하는 “국가”의 기괴함이 드러나게 된다>고 쓰고 있다.
(중략)
이제 역사를 배타적인 민족주의로부터 차단할 때다.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가져야만 그 주장은 받아들여진다. 일본의 정치지도자는 편협한 자기중심역사에 갇혀서는 안된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33801089980138&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4/12/30

<제국의 위안부> 일본어판을 11월초에 출간했었다. 두 달이 안되는 사이, 예상 이상으로 주목해 주고 있어 마음이 놓인다.
일본인 페친들이 태그해 주거나 내가 올린 적도 있지만 오늘 마침 아사히신문의 <2014년 논단회고>에서 다시 다루어져서, 정리겸 이 두 달 사이에 나온 서평/인터뷰를 같이 올려 둔다.

이 중 두개를 한국일보가 번역소개해 주어 많이 고마웠다. 금년의 베스트3에 올려 준 이가 두사람이나 있는 것도 예상밖의 일. 아무튼 나의 문제제기를— <전후70년>이 아니라 <제국후 70년>이라는 발상이 필요하다는–일본인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 준 것 같아 기쁘다.

가처분심리용최종답변서에도 썼지만 한 학자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문제제기에 일본이 어떻게 대답해 나갈것인지의 물음이 일존을 향하고 있다>고 했고, 한 논설위원은 <만약 일본이 `위안부 문제는 어디에나 다 있었다`라고 주장하지 않고 제국주의적 팽창을 넘어서는 사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세계사적 의의는 크지 않은가?>라고 나의 말을 정리하면서 <반대할 이유가 나로서는 생각나지 않는다>라고 응답해 주었다.

한국어판의 수난때문에 우울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래도 역시 금년은 괜찮은 해였다고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이 호응이 내년에는 좀 더 구체화 되어 문제해결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28422677184646

渦中日記 2014/12/26

정정/반론보도 신청을 했던 네 군데 언론사중 세 곳과는 합의하고 취하했었다. 그런데 연합뉴스가 처음 태도를 바꾸어 합의하지 못하겠다고 해서 오늘 다시 언중위에 와야 했다. 합의가 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소송으로 가는 시스템이어서 다소 고민스러웠는데, 다행히 중재위 위원들의 권고에 따라 본부와 여러번 통화하더니 짧은 반론보도를 내 주기로. 이로써 언론중재위원회 일은 끝났다. 다행히 해가 가기 전에.

7시 약속이 있어서 근처카페에서 레몬티 마시며 시간 보내는 중. 낮부터 가슴이 조여드는 느낌이었는데(마치 연애할 때처럼) 컨디션이 좀 안 좋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25248354168745

渦中日記 2014/12/17–상념

영하10도라는 추운 아침, 다시 검찰에 왔다. 무심하게 파란 하늘을 보면서 문득 “부재”에 대해 생각했다.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서 가까운 이들을 잃은 사람들은 오늘, 이 추위와 하늘이 얼마나 시릴까.

오전조사를 끝내고 밖에 나와 뜨거운 콩나물국밥을 먹고 카페에 들어왔다. 여기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조사 받으러 들어가야 한다. 오늘은 늦게까지 걸릴거라고 했다.
수사관이 고소장 내용을 하나씩 질문하면서 대답을 입력하는 방식이니 그럴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낸 세금이 낭비되는 또하나의 현장을 본다. “세금낭비 반대!”라고 1인시위라도 하면 코미디가 될까. 할머니가 한사람 더 추가되었다니 민사손배청구도 3억3천만이 되었을 터. 할머니들은, 일본한테 보상받는 것보다 나한테 보상받는 것이 더 쉽겠다고 생각하신 건지도 모르겠다. 다른 분들이 추가되지 않았다는 건, 나눔의집 이외의 지원단체는 이 사건에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겠지.

아무튼 구두조사는 답변서 쓰는 것보다 어려웠다. 하나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책을 썼는데, 단순화된 고소인들의 질문은 나에게도 단순화를 요구하는 것이었기에.
빨강과 초록의 컵을 보니 문득, “노르웨이의 숲”이 생각난다. 두권의 표지를 각각 빨강/초록으로 하고 황금빛 띠지를 둘렀더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책. 눈으로 뒤덮인 숲에서 토나카이를 보고 싶어진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19088544784726

渦中日記 2014/12/16

<노골적불평>을 포스팅하는 건 위로받고 싶어서인 게 내가 봐도 뻔하다. 그런데 실제로 위로를 받으면 많이 민망하다. “나 힘들어요!”를 한정된 관계가 아닌 만천하를 향해 외치는 일이란 옷벗고 거리에 나선 거나 마찬가지일 터. 페북에는 수많은 거리관계가 공존하기 때문에 드는 감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명색이 <渦中日記>이니 재판의 <과정>뿐 아니라 심경과 상태도 남겨 두어야 맞다는 생각은 한다. 씩씩한 모습, 의연한 모습만 남긴다면 좋은 모습만 남기려는 의도가 노골적인 “역사교과서”와 뭐가 다를까. 역사도 좋아하지만 문학을 좋아하는 건, 문학이 모든 악을 포함한 인간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보이기 위한 일기가 아닌 바에야, 역사 아닌 문학을 지향하고 싶다. 해피엔딩이 될런지 <옥중일기>로 이어질런지 알 수 없지만.

“인권”–“나의 본연의 삶을 누릴 권리가 필요해!”라고 외쳤더니 일본인친구가 아마존의 사진을 보내 주었다. 며칠 전부터 내 책이 <일중/태평양전쟁>분야에서 베스트셀러1위를 오르내리고 있다고. 음.책 팔리면 평화운동에 쓰겠다고 공언한 바 있는데. 우선은 나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 주셨던 김관기변호사님과 친구들에게 한턱 쏘아야겠다.

고발당한 날짜, 그 소식을 듣고 “목이 탄다 “는 것이 무언지 처음 알았던 그 날짜에서 꼭 6개월이 지났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18426094850971&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4/12/15

일본에 가기 전에도, 가서도, 그리고 다녀온 이후에도, <재판자료>라는 걸 여전히 붙들고 있다. 이제 익숙해져서 쓰여 있는 말들을 분노와 답답함보다는 이해로 대할 수 있게 조차 되었지만, 무의미한 심적/신체적 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가중중. 그렇게 반년이 지났다.

일본에서 만난 아들이, “명예훼손”재판을 방청하고 왔다면서 그랬다. “엄마도 명예훼손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가 필요한 거 아니야?”라고.

아니,아들아. 엄마한텐 지금 “인권”변호사가 필요해.. 이런 일에 시달리느라 잃어버린 시간들을 되찾아 줄. 책이나 음악이나 사람이나 풍경에 오롯이 빠질 수도 있었던, 인생의 한 때를.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17978541562393&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4/12/7

하루종일, 곡해와 오해, 심지어 하지 않은 말까지 했다고 주장하는 글들과 마주하다 보니 피로가 극에 달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이 쓴 논문이나 책에 의문을 가진 이가 있다면 대답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하거나,독해 자체에 문제가 있는 질문에 대답하는 일은 심신을 지치게 한다. 심지어 공적인 장이 아니라 수사관이나 재판정에 내기 위한 것이라면. 더구나 다른 할 일도 기다리고 있는 일요일을 그런 작업에 온전히 바쳐야 하는 것이라면. 법의 힘으로 “의무”로 다가온 일이라면.

진 기억이 없는 3억의 채무를 요구하는 서류에 대답하면서,도로감에 심신이 갉아먹혀지는 느낌. 사죄하러 가지 않은 내게 그들이 원한 건 이런 것이었을까. 피로가 아니라 도로감때문에 손드는 일.
12월 첫 일요일. 우울한 오후에.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13002972059950&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4/12/2

“…..단 거 좋아하실지 모르지만 이거 드시고 좀 편안해지시라고 저의 아침겸 점심을 ㅋㅋ저의 양식을 응원과 함께 드립니다.
교수님, 정신적으로 무너지시 마시고 굳건히 서 주세요!! 뒤에서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교수님 화이팅!!
저는 교수님 생각을 지지하고 맞다고 생각하고 있고 교수님 응원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필사하듯(내 생전 처음이다) 학생의 글을 옮겨 적는다. 이런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내일 검찰에 조사 받으러 간다고 강의때 말했더니, 한 학생이 연구실로 찾아와 과자와 편지를 건네 주었다.
50년 이상 살았지만 자신의 양식을 선물로 받은 건 처음이다. 이 싸움에서 질 수 없는 이유.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09709099056004&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4/11/30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요구했던 반론기사가 나왔다. 고발에서 꼭 5개월 반. 페북상에서 공개적으로 지지목소리를 내 주신
노혜경 선생님,김규항 선생님, 대책논의팀을 만들라고 조언해 주셨던 Miyong Kim-To선생님, 다시 감사드립니다. 김도언 선생님께도.
박삼헌 선생님, Jongyil Ra 대사님, 김관기 변호사님,그리고 지지해 주셨던 모든 페북친구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고 드립니다.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4113000439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08427309184183

渦中日記 2014/11/30-2

조선닷컴에 관한 언론중재위원회의 결정은 고발당일과 다음날 이틀동안 쏟아냈던 9개의 보도를 삭제하고 반론보도를 낸다는 내용이었다. 7월에 올렸던 포스팅링크들를 다시 보니 이미 삭제되어 제목조차 확인할 수 없는데, 거의 같은 내용을 <제국의 위안부, 충격을 넘어 경악><박유하 교수,알고보니 와세다대학 출신>이라는 식으로 제목만 바꾸어 내보낸 기사들이었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기록을 위해서다. 조선일보와 조선닷컴은 같은 회사는 아니라지만, <조선>이라는 이름을 단 매체이니 이제 이름에 값하는 품격있는기사를 써 주었으면.

http://m.chosun.com/svc/article.html

http://m.chosun.com/svc/article.html

http://m.chosun.com/svc/article.html

http://m.chosun.com/svc/article.html

http://m.chosun.com/svc/article.html

http://m.chosun.com/svc/article.html

http://m.chosun.com/svc/article.html

http://m.chosun.com/svc/article.html

http://m.chosun.com/svc/article.html

http://m.chosun.com/svc/article.html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08520755841505

渦中日記 2014/11/29

어젯밤엔 멀리서 날아와 일부러 서울에 들려주신 Miyong Kim-To 샘을 만났다. 이 분은, 고발직후에 나에게 “대책팀”을 꾸리라고 조언하신 분이다. 그래서 엄청난 비난의 집중포화 속에서 나를 지켜 주려 애써 주셨던 분들과 이 몇달동안 긴밀한 대화를 나누어 왔다. <동아시아 평화와 화해를 위한 제3의 목소리>라는 페북그룹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오늘 오프모임을 한다.

사실, 비슷한 시도를 한일학자들과 십년 전에도 했었고 그들과 함께 심포지엄을 하고 책을 만들어 냈었다. 금년 4월에는 일본관련학자들, 언론인들과 함께 <위안부문제, 제3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을 열었었다.

지난 밤, 김미영선생님 덕분에,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좀 더 명료하게 보였다.
그런 아침에 열어본 페북에서 잠시 놀아본 결과. 우연이겠지만 우연의 결과가 반가운 아침. 아무래도 나 이런 놀이 좋아하는 것 같다. ㅎ

http://ko.what-character-are-you.com/m/ko/601/index/3131.html?utm_source=Facebook&utm_medium=desktop&utm_campaign=trafficcheck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07422509284663

渦中日記 2014/11/27

어젯밤엔 오랫만에 잠을 설쳤다. 보고 싶지 않아 미루어 두었던 한달 전 영상을 봐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끔,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이 사태가 정말 현실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어쩌면 내가 아직 버티고 있는 건, 그 현실성(적의)에 “제대로” 직면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제 세번째 재판이 있었고 가처분심리는 이제 끝났다.
원고측은 6월16일 첫고발장에서 “박유하의 책은 거짓말투성이”라는 식으로 말했었다. 7월과 9월초에 답변서를 제출했더니, 9월중순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심리를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한달후,10월21일에는 고발취지를 바꾸는 신청을 하면서, “박유하의 책은 거짓말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논지가 자신들이 생각해 온 것과 다르다. 그렇게 쓴 박유하의 인식은 한국사회가 추구해온 정의에 반한다”고 했다. 웃지 못할 일은 센댈의 <정의론>까지 인용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11월 24일, 다시 추가된 세번째 문서에선 이렇게 썼다. “박유하의 생각에 대해 말하는 건 조심스러우나 해결을 위한 방식이 우리와 다르다. 그래서 그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 5개월동안, 그들은 이렇게 말을 바꿔왔다. 싸움을 걸었으니 이겨야 할테고, 그러기 위해 말을 바꾸는 건 사실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한번쯤은 언급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남의 책을 함부로 훼손한 데 대한 잘못정도는 언급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 아닐까. 책을 왜곡요약해 전국민의 비난이 몰리도록 만든데 대한 사과쯤은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싸움을 하더라도 지켜야 할 룰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내가 이 재판에 대한 절망적인 기분이 드는 건 이런 부분이다. 그들의 생각과 맞지 않으니 허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같은 건 오히려 웃어넘길 수 있다. 말하자면, 오류는 용서할 수 있지만, 비겁한 건 견디기 힘들다.

담당변호사들과 고발장작성을 도왔을 연구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원하는 건 무언가? 정말로 “할머니의 명예”인가? 지원단체나 기존 연구의 명예인가? 자신들의 “생각”자체인가? 유일선”으로 생각한 그걸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의 명예를 짓밟아도 되는가? 당신들이 말하는 “정의”란 그런 것인가?

제국의 위안부 소송 2차심리 나눔의집 기자회견 / 박선아

http://youtu.be/wfqeQ0qXGJo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06078016085779

渦中日記 2014/11・27ー2

아침엔 많이 외로웠다. 가처분심리가 종결되면서 심란했던 여파일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지인들이 아사히신문에 서평이 났다면서 여기저기서 보내 주었다.

서평을 쓴 다카하시 겐이치로씨를 처음 만난 건, 1995년에 시마네에서 했던 한일문학심포지엄에 참석했을 때다. 나는 그 무렵 웅진출판과 <21세기 일문학의 발견>이라는 시리즈를 기획/편집해서 내는 작업을 했었고 그 시리즈에 그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라는 책을 넣었던 참이었다. 그래서 더 반갑게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013년 여름, 정말 오랫만에 이번에는 그가 재직하는 일본의 대학에서 만났다. 나는 위안부문제를 테마로 강연을 했고 그는 토론자로서 코멘트를 해 주었다.

하지만 그와 따로 만날만큼 교류가 깊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나는 이토록 고독한 책을 읽은 적이 없다

고 쓰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과분한 서평. 하지만 아마도 이 한마디때문에, 나는 이 서평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쓴 이가 일본인이어서 서글프기도 했던 하루.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06431722717075&set=a.1006431706050410.1073741834.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4/11/24 – 모럴의 상실

모레, 26일에 제3차 공판이 있다.

지난 주에 시작한 <위안부문제 미니강좌>에서는 “위안부=소녀”라는 인식이 왜 생겼는지를 썼었다. 이번주엔 “강제성”에 대해 쓸 생각인데 원고측이 제출한 서면을 읽다 보니 이런 구절이 보인다.

“일제하 조선에서의 징집형태는, 식민지배와 불가분 관계를 갖고 있는데, 필리핀이나 중국등 점령지에서는 군인이 전면에 나섰지만, 식민지에서는 군인이 대대적으로 총검을 앞세우고 나물캐는 조선처녀를 트럭에 강제로 실어서 끌고 가는 것과 같은 형태의 징집보다는, 취업사기나 인신매매와 같은 이미 조선에 이식되어 있던 공창제도의 매커니즘이 이용되었습니다.
즉, 식민지 동원 체제를 통해 조선인 여성의 성을 용이하게 착취할 수 있는 구조가 이미 구비되어 있는 상태였으므로 굳이 조선인여성에게 물리적으로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점령지와 식민지의 차이는, 바로 내가 한 이야기다. 그리고 사실, 내가 한 이야기를, 인용출처를 밝히지 않고 사용하면서 오히려 나를 비난하는 근거로 쓰는 경우는 이미 여러번 겪었다. 이럴 때 나는, 그들의 “모럴”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건 원고측이 더이상 “군에 의한 강제연행”설을 택하지 않고 있다는 점, 그러면서도 앙굴렘만화제에 출품한 만화가들이 그런 인식을 갖도록 유도하고, 한국과 세계에 유통시켜 왔다는 점이다.

일본의 반한감정은, 사실 과장/왜곡된 기억이상으로, 이런 식의 “모럴의 상실”에도 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04172146276366

渦中日記 2014/11/22

감기약 먹은 몸에 술을 붓는 만행을 참았더니 몸이 많이 가뿐해졌다. 나이 먹으면 절제가 가능해진다. 동시에 지극히 “올바른”생활을 하다 죽어간다는 얘기겠지.

소송이후의 나날을 <渦中日記>라는 이름으로 써 왔지만 사실 기억과 마찬가지로 일기도 선택된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무난한”얘기만 써 왔던 것 같다. 혹은 공개가능한.

남은 삶을 “여명”으로 의식하거나 죽음을 의식하며 말하고 행동한 적은 적지 않지만, 역시 기본적으로는 잊고 지내는 일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渦中日記>도 진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실은 언젠가 이 사태가 끝나고 나면 따로 정리할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좀 더 진지해져야겠다. 우리는 모두 역사적 문맥을 신체에 담은 아카이브이니까.

어제는 오전에 나를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페친들의 모임, 그러나 이왕이면 나 하나를 응원하는 것을 넘어 동아시아평화운동으로 가자고 말했던 모임의 멤버들 중 몇사람과 “고발사태를 이해하기 위한 책”을 만들기 위한 회의를 했다.
오후엔 “한반도에서 강제연행을 했다”고 했던 이른바 “요시다증언”이 한국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를 조사하러 왔다는 아사히신문기자에게 생각 전달. 여러 관계자들에게 취재중이라고.

사족.
사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내가 그에게든 그가 나에게든) 삶은 이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자의 순애보가 더 애틋했던 이유. 그리움은 늘 눈/비와 함께 온다.
비오는 아침, 어젯밤에 본 영화 <5일의 마중>감상.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02443579782556

渦中日記 2014/11/7

한겨레신문에 나를 비난하는 칼럼이 실린 걸 뒤늦게 알았다.
읽고 쓰는 (혹은 지적생산물을 만드는)일만 하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런 작업을 바탕으로 월급을 받으니, 대학교수란 읽고 쓰는 일에서 다른분야 사람들보다 탁월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 분은 내 책을 심각하게 오독한 것 같다. 설마 안 읽고 이런 글을 쓸리는 없을 터이니.
아무튼 이 글은 이 문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지원단체의 말을 그저 대변한 것 같다. 그래서 내용자체보다도 그 만용과 역할이 서글프다. 페친 중에 한겨레독자들이 많으실 것 같아서 굳이 언급해 둔다.

고발사태 이후 위안부문제에 대해 많이는 쓰지 않았다.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늘 그런 일을 쓰는 건 우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원단체와 언론뿐 아니라 교수들조차 빠져 있는 지적태만과 제대로 싸우려면.

사실 나는 만약 가처분재판에 진다 해도 그건 이시대의 한국이 만든 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겠다고 생각 중이다. 시대가 늘 올바르게 돌아가는 법은 아니니까.
그러니 내가 앞으로 쓰는 이런 문제 관련 글들은 꼭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얼마 전에 연락 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을 위해서,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변함없이 응원해 주시는 분들을 위한 것으로 생각해야겠다. 그러면 조금은 더 부지런해질 수 있겠지.

http://m.hani.co.kr/arti/opinion/because/663088.html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92730687420512

渦中日記 2014/11/14

어느새 다음 재판 기일이 다가와, 대충 보고 놔두었던 서류들을 다시 본다. 책의 기술을 “범죄”라고 썼던 서류는 미처 못 봤었다. 내가 책에서 비판했던 자료들 뿐 아니라 “홀로코스트를 부정한 이가 처벌된 사례”까지 자료로 제출한 걸 보니, 원고측 변호인들은 “논지”를 법정에서 다투고 정말로 나를 민족반역자로 몰아 처벌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 변호사들이 정말 책을 읽고도 그렇게 생각한 건지 읽지 않은 채로 이름만 올린 건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그들이 이제 사상검열에 들어갔다는 사실. 심지어 과거에 빨갱이든 아니든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 국가의 힘으로 처벌했던 구도를 빌어. 이 중엔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이도 있을 법 한데 자신들의 모순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다음 재판은 11월 26일. 변호사님은 재판소에 나가지 말라 하시지만 나가보고 싶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97474416946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