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교수, 신간 2권 내놔 [한겨레]
2018년 6월 12일
조일준 기자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교수, 신간 2권 내놔 [한겨레]
2018년 6월 12일
조일준 기자
‘제국의 위안부’ 소송 4년…박유하, 비판 반박한 책 출간
2018-06-11 18:01
연합뉴스
나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사람중에 남성이 많은 이유를 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좀 심한 거 아닌가 싶다. “형사처벌에 반대하지만 책은 엉터리”라는 말은 그럴 듯 해 보이지만 말로서의 힘은 전혀 없다. 고발한 이들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바로 그 엉터리(허위를 책에 쓰는 뻔뻔함!)성과 할머니를 상처준다는 비윤리성에서 찾고 있으니.
학자라는 이름의 이나라 일부 남성들의 윤리성이란 고작, 형사판결에서 패소한 직후, 반대를 말하면서 우아하게 가슴 속 깊은 곳의 처벌욕망을 드러내는 수준인 것 같다.
나의 “붕괴와 몰락”을 지켜보겠다는 말로 돌을 던지라고 선동하는 이 글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은 많은 공통페친들께 감사드린다. 마침 페친 정리 중이라 좋아요를 누른 분들을 모두 삭제했다. 이런 말에 수긍하는 이들까지 친구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을, 삭제당한 분도 이해해 주실 거라고 믿는다.
여기서 언급된 녹음은 “돌아가시기 바로 전”이 아니라 몇개월 전이다. 물론 허가도 받은 녹음이다. 나는 위안부문제 관련 책을 또 쓸 생각이 없었고, 따라서 “연구”용도 아니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눔의 집에서 나를 경계했고, 만나러 갈 수 없었던 나에게 할머니가 자주 전화하셨고, 유언처럼 하시는 말씀이 많았기에 (만났을 땐 오히려, 당신의 말을 받아적으라고 하셨다)녹음했을 뿐이다. 모두 <제국의 위안부>를 내고 나서의 일이다.
이런 이들은 대개 자신의 잘못을 알아도 사과하지않는다. 명백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도. 그에게 “윤리”라는 게 남아 있다면, 자신의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부터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이들을 명예훼손 고소하러 다니기엔 내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대화를 해야 할 이들은 침묵하고, 대화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 토론하자고들 하니, 난감하다. 통화록 전체를 공개하는 날이 온다 해도, 그에게 나를 “증명” 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하지만 박교수의 저작은, 식민지의 여성을 전쟁에 동원한 “제국”이라는 시스템에 착목한 학술연구다.
박교수는 “많은 소녀들이 일본군에게 강제연행당했다”는 획일적인 이미지를 부정했다. 동시에 위안부를 필요로 한 제국주의 일본도 엄중한 시선으로 대한다.”
(2017/10/30, 마이니치. 毎日新聞 사설)
“박교수의 저서는, 위안부에 관한 한국에서의 단면적인 관점에 이의를 제기했다. 다른 한편으로 위안부의 가혹한 처지를 만들어낸 “대일본제국”의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2017/10/31, 요미우리. 讀賣新聞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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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기소, 패소. 이런 일들로 주목 받을 때마다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우익의 주장과 같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물론 승소했을때조차.
3년이상 해명하고 설명해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변하지 않는 사람들은 많지만 변하지 않는 이유는 각각 다르다.
내가 알기로 보수성향인 요미우리는 지금까지 한번도 <제국의 위안부> 서평이나 인터뷰를 실은 적이 없다. 우파신문인 산케이도 마찬가지. 그건, 이들 신문에게 나의 책이 불편했다는 증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싣는다 해서 거절할 생각은 없다. 나는 오히려 그 독자들 중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일본인들에게 다른 생각을 전하고 싶었던 거니까.
이들의 언급에서 “획일적인 이미지를 부정” 했다는 것에만 주목할 사람도 있겠지만, “일본의 책임을 추궁”한 부분에 언급한다는 건, 내가 던진 공을 받아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미우리의 이런 언급은 내게는 기쁜 일이다. 물론 비판자들은 “요미우리가 긍정적으로 언급한 건 <제국의 위안부>가 우파의 입맛에 맞는 얘길 썼기 때문이다!”라고 다시 외치겠지만.
11월이군요. 저 이제 괜찮습니다.
이하에 인용한 부분은 지난 금요일 판결문에 쓰여 있는 내용입니다.
반복된 부분도 있지만 아무튼 이 요약을 보면 재판부는 저의 책을 어느정도 제대로 읽은 듯 합니다.
그런데 왜 유죄라고 했을까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명백하게 짓밟힐” 저의 인권보다 “훼손될지도 모르는” 기존연구와 운동의 권위를, 그리고 국내학자의 새로운 의견보다 나온지 20년이 넘은 국외의견을 중시한 결과입니다.
혹은
아래의 인용이 보여주는 것처럼
재판부를 포함 “제대로 읽은, 이미 존재하는 독자”보다, “잘못 읽을 지도 모르는 미지의 독자, 그리고 그렇게 유도한 지원단체및 일부학자”를 중시한 결과입니다.
자세히는 다시 쓸 생각입니다.
아무튼 이하 인용부분이 형사2심 재판부의 <제국의 위안부>독해입니다. 이렇게 받아 주었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고 기운차리려 합니다.
언론과 국민들, 무엇보다 비판자들이, 재판부의 이 견해를 우선 공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저는 “군수품으로서의 동지적관계” 라고 썼습니다. 물론 그 말을 반복해서 쓴 건 아닙니다.
이 판결은 결국, “모든 문장에서 이런 부분을 반복 해야 했다”는 판결입니다.
10월30일에 상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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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이 이 사건 도서에서 모든 조선인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된 것이 아니고 직접적인 폭행•협박 또는 기망•유혹에 의해 위안부가 된 경우가 있으며, 일본국이나 일본군이 공식적으로 강제연행을 한 증거가 없으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고, 민간인 포주나 업자에 의하여 강제력이 행사되었으며, 성적학대의 대가로 지급된 것은 소액인데다 그나마도 착취당했고, 일부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군과 협력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등 내용을 함께 서술하고 있다.”(32)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을 모집한 주체는 일본군이 아니라 업자들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불법적인 모집방법이 사용되었다. 일부 위안부들은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연행된 경우도 있었다. 조선인위안부들은 가난, 가부장제, 국가주의에 의하여 위안부가 되었다. 위안소 내에서 민간인 포주나 업자에 의해 강제력이 행사되었고, 성적학대의 대가로 지급된 것은 소액인데다 그나마 착취당했다. 조선인 위안부들은 식민지인으로서 애국이 강제되었고, 일부 위안부들은 일본군과 동지적관계에 있었다’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37)
“피고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일본군 위안부문제에는 사회구조적 요인이 존재하고 조선인일본군 위안부들의 모습이나 처지가 매우 다양하며, 이 사건 도서는 피고인이 기존 자료를 토대로 현재 우리사회 주류적인 시각과는 다른 입장에서 위안부문제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는 내용이고 ,이사건 도서 곳곳에서 여러 예외적인 경우와 다양한 위안부들의 모습이나 처지가 서술되어 있다.”(41)
자유로워야 할 학문 활동에 검사가 개입하고 재판소가 유죄판결을 내린다. 한국의 민주주의에 있어서 불행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서울 고법이 유죄판결을 내렸다.
저서의 많은 부분에 허위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고 인정하고, 전 위안부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는 결론을 내렸다. 박교수에게는 벌금 100만엔(1000만원)을 언도했다.
허위라고 본 것은, 전시에 전 위안부들을 모집하는 방법에 관한 기술 등이다. 연구의 대상이 되는 역사적 사실을 둘러싸고 공권력이 독자적으로 진부를 단정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1심에서는 대부분의 기술에 대해서 저자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무죄라고 하였다. 고법에서는 이를 뒤집고, 유죄라고 하면서도, 학문과 표현의 자유는 위축 되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는데,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학문의 자유가 보호 되어야 할 연구의 영역에까지 들어와서 형사처벌을 하는 사법을 앞에 두고 학자와 시민들이 위축되지 않을 리가 없다.
한국에서는 식민지시대에 관련한 문제는 민감해서, 미디어의 보도나 사법 판단에도 국민감정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박교수는 일본 관헌들이 어린 소녀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했다라는 한국내의 뿌리깊은 이미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물리적인 연행조차 필요하지 않았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 한다.
사회에 침투한 ‘기억’이 학문상의 ‘옮음’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굳이 사실의 다양성에 주목하여서 식민지지배의 모순을 추궁하려 한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폭력적인 연행은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견해가 최근 한국측의 연구성과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도 고려하지 않은채, 허위라고 단정한 사법판단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한국에서 민심(民意)중시를 간판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발족한지 곧 반년이 된다. 정부는 역사문제에 대해 일본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창하고 있는 단체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다. 혹시라도 고법이 그 영향을 받은 것이라면 논할 가치조차 없다.
한일간의 최근 행보를 되돌아보면 역사문제의 정치 이용은 엄금(厳禁)이다. 화해를 위한 교류와 이해의 심화를 장려하고, 자유로운 연구와 조사활동에 의한 역사적 사실 탐구를 촉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정부는 구 일본국의 관여하에, 고통스러운 체험을 강요당한 여성들의 존재를 숨기지 말고, 정보를 부단히 공개해 갈 필요가 있다.
한일 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도, 숨막히게 고정되어버린 역사관을 최대한 불식시키고, 자유로운 연구를 중시하는 가치관을 강화해가고 싶다.
(번역: 오선영, 페이스북)
아사히 신문 원문 링크
(社説)「慰安婦」裁判 韓国の自由が揺らぐ [朝日新聞] Link
판결이 나고 이틀이 지났네요. 당일 아침에 데리러 와 준 후배를 비롯해 재판, 점심, 그리고 저녁시간을 마음 졸이고 슬픔 혹은 분노로 함께 해 주신 분들, 소회를 이런 저런 형태로 써 주신 분들, 또 저의 포스팅에 댓글과 감정표현으로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아직 기사들도 찾아 보지 않았기 때문에 판결직후 제가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들이 얼마나 기사화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심때처럼 수많은 기자분들이 있었는데.
누가 보내준, 조선일보 기사가 저의 말은 싣고 있지 않았지만 그나마 사태를 중립적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실한 기사조차 1심 판결이 “틀린의견이라도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고 썼더군요.
그럴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그 기사를 볼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에게 제가 엉터리학자일 수 있다고 말하는 게 되니까요. 1심판결문이 말한 건 “틀린의견인지 여부를 법원이 알 수 없으니 보호해야 한다”였습니다. 그 신중하고도 명쾌한 인식을 제대로 전달한 곳은 거의 없었고, 여전히 잘못된 기사가 다시 재생산됩니다.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싸고 명예가 훼손된 건 위안부 할머니들이 아니라 저입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명예를 훼손시켰고 여전히 훼손중인 건 제가 아니라,
저의 책이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썼다고 주장하면서 고발해 결과적으로 언론이 반복해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말하도록 만들었던( 그때마다 할머니들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겠지요),
차별의식 때문에 우리가 외면해온 그 옛날 소녀들의 삶과 실존을 여전히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나눔의집등 지원단체 관계자들과
그에 선동당한 언론과,
저에게 “자위대 위안부나 되라”고 말하는 이들을 방치하는 일로 이 사회의 여성혐오를 오히려 조장중인 이들입니다.
어젯밤에야 페북을 둘러 봤는데, 그동안 페북에서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던 적의가 다시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냈더군요.
이 사건에서 가장 큰 아이러니는 <제국의 위안부>의 “학술적수준”이 어떤 건지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즉 직접 자료와 증언집에 접하지 않은 이들이) 학술적논의대상이 아니라는 등의 말을 서슴없이 하는 정황입니다.
물론 그 역시 학자들의 말을 옮긴 거지만 그렇게 말한 대표주자인 재일교포 정영환은 위안부문제 연구자가 아니고(즉 스스로 자료로 판단한 게 아니라 남의 연구에 의존해 발언), 제 의견이 틀렸다고 말하면서 구체적인 지적은 못하고 있는 강성현은 프로젝트 일원으로 연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고,
위안부문제를 가장 잘 아는 이들은 침묵하거나 인성공격에만 집중합니다.
그런데 그 정황을 모르는 이들이 저를 “무지””대단치 않다”는 등의 말로 저를 폄훼하는 것이지요.
사실 그런 말들은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의 구조가 이제는 너무나 명료하게 보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그게 제가 속한 한국사회의 문제여서 슬플 뿐입니다.
조만간 이 기간동안, 그리고 여전히 목도중인 정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쓸 수 있겠지요.
덧붙이자면, “내용에 반대하지만(엉터리지만/혹은 마음에 안 들지만) 법정판결에 반대”라는 말도 그 의도와달리 저의 책이 법정에 가게 된 걸 당연시하는 구조를 공고히 하고 만다는 얘기도 해 두고 싶군요. 저의 책을 “허위”라고 한 원고와 검찰과 재판부처럼요.
물론 마음은 감사하게 기억해 둡니다.
아무튼 책을 법정으로 보내고, 유죄판결을 부추기고, 그에 부응해 자료준비와 검토에 소요된 1심에서의 그많은 시간들, 저와 변호사의 노력과 판사의 진중하고도 섬세한 판단까지의 시간을
“전혀 고심/고려하지 않고 완벽하게 무시한” 2심 재판부의 인간에 대한 경시보다는 수백배 지적이고 겸허한 인식이니까요.
이제 판결에 대한 간단한 반박문을 쓸 생각입니다. 주심인 김문석 판사가 김영란 전 대법관의 동생이라 듣고 더욱 착잡한 심경입니다.
형사2심, 패소했습니다.
1000만원 벌금 선고받았습니다.
刑事二審、敗訴しました。千万ウォン(100万円程度)罰金を宣告されました。
추가:상고할 겁니다.
IMF총재가 한국을 “집단자살사회”라고 말했다고 한다. 의미가 다소 애매하고 어감도 좋지 않지만, 이화여대생들과의 대화에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나온 소회인 듯 하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 것 같다.
저출산고령화가 문제시 되기 시작하면서 그래도 중국교포를 비롯한 이주민들이 들어오니 인구문제는 큰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얼마전 어떤 기사를 보니 유입되는 이주민조차 줄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한국은 자국민에게도 그렇지만 이주민들에겐 그 이상으로 따뜻한 나라가 아니니. 더구나 가난한 이주민들을 그저 자국의 “경제이익”이나 “재생산(출산)” 목적을 충족시켜줄 도구로만 대하고 있으니.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성애자들은 동성애가 재생산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타박하지만, 그 문제 역시 입양으로 해결될 수 있다. 사실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제도로 바뀐 근대가 둥그런 앉은뱅이 식탁에서 4인용 식탁으로 바뀐 시대였다면, 그리고 그 시대가 여전히 “혈연”을 중심으로 한 親가족주의시대였다면, 홀로 사는 가구가 가구전체의 4분의1을 넘었다는 이시대야말로 “함께 혹은 홀로” 의 식탁의 면면이 바뀌는 게 당연한 시대가 아닐까. 물론 혈연중심 대가족제도로의 회귀도 포함한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동네살리기/지역살리기의 천편일률적인 발상과 정책에 대한 이의제기다. 대부분이 그저 역사나 자연에 의존하거나( 그러느라 남의 역사를 뺏어오고 보잘것 없는 자연을 과대포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사실 관광지로서의 일회성 만족을 충족시키는데에 그친다) 관공서/기업유치와 거대건물로 눈길을 사로잡아 보려 하지만, 오히려 “오늘”과 “일상”과 미래”에 초점을 맞추어 봤으면 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마을, 장애인이 살기 좋은 마을, 노인이 살기좋은 마을, 취직못한 젊은이들의 자활을 돕는 마을, 개나 고양이가 살기 좋은 마을..
이런 것들을 만들다 보면 자치단체도 집중할 수 있으니 마음다해 꾸려 갈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 특징이 자신에게 보다 소중한 사람들이 모일 것이고, 그러다보면 아이와 노인과 동물을 위한 삶에서 새로운 철학과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 것이고, 그 대상과 자신의 쾌적한 삶을 위한 상품아이디어/기업도 나올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다른 지역과 세계가 벤치마킹을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모든 지역이 그만그만하게 모두에게 쾌적한 (최소한 가혹하지 않은) 공간으로의 탈바꿈을 할 수 있지 않을까…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발상은 거꾸로여서(그나마 모두가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 모두가 주목하는 곳을 만들려는 현시욕이 앞선 탓에) 결국 모두에게 각박하고 결국 모두가 고독한 사회/국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를 살고 싶지 않은 사회로 느끼는 사람들이 안팎으로 많아져 가는 한 “집단자살”까진 아니더라도 “집단자폭” 사회는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사실, 사람을 문 개사건을 보면서 든 생각이기도 하다.
말 나온 김에 말하자면 저녁마다 걸어서 작은 음악회에 갈 수 있는 곳, 작고 아름다운 영화관이 있는 곳, 동네사람이 셰프이자 음식점 주인이어서 반가운 인사와 함께 가벼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 내 책도 받아줄 작은 도서관이 있는 곳, 개와 고양이를 좋아해 개와 고양이 판이지만 남에 대한 배려와 자치체의 관리가 충분해서 기분좋은 산책을 가능케 해 주는 곳, 산책 길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미술관/갤러리들이 박혀 있는 곳, 그런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동네에 많아 언제고 같이 밥먹고 차마실 수 있는, 배려와 미소가 넘치는 그런 동네/도시에, 나는 살고 싶다.
9월초에 있었던 피고인심문의 속기록을 오늘 메일로 받았다. 검사와 변호사의 심문이 하나의 파일로 되어 있어서 50쪽 가까운 내용.
검사의 질문은 내가 일본군의 강제연행을 부정했는지, 일본의 사죄를 둘러싸고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에서 다르게 쓰는 식의 교활함을 발휘했는지, 위안부가 “미성년”임을 부정했는지, 동지적관계를 지적한 의도가 내가 생각한 해결방법 주장에 있었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질문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거나 전후관계조차 뒤집어 놓은 어처구니 없는 것들이어서 일일이 바로잡으며 대답해야 했던 시간들. 왜곡과 모순으로 가득해 비논리적이면서도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의도만은 명확해서 그저 허망했던 질문들. 왜 그런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지 의미를 알 수 없어서 고통스러웠던 시간들.
그러면서도 그 모든 의미를 알 수 있을 것도 같아서 담담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곧 일단락되게 된다.
10월27일 금요일 오전 10시.
서울고등법원 서관 403호.
이날, 지난 6월에 시작된 형사2심 판결이 나옵니다. 판결 후에 기자회견을 할 생각입니다.
기자님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저의 “멘탈”이 궁금하거나 “본질”을 알았다고
하는 이들에게 굳이 설명할 의무는 없지만 신경쓰이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 덧붙입니다. 즉 이 글은 호사카교수나 그분의 선동에 동조하는 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호사카사태”를 걱정해 주고 계신 저의 페친과 학교동료들을 위해 쓰는 글입니다.
<학술모임 자금에 대해>
1. 호사카 교수가 의심하는 13년전,2004년 한일심포지엄은 대한민국 외교부의 지원을 받아 실시했습니다. 주제는 교과서문제였습니다.
2. 호사카 교수에게 “합숙세미나”라면서 이 역시 자금을 추궁당한 또하나의 모임은 2001년에 실시된 것이고 제가 아니라 당시 한양대에 있던 임지현교수가 주최한 겁니다. 엉뚱한 화살을 저에게 돌린 셈입니다.
3. 호사카 교수는 제가 주최한 2004년 모임에 이영훈교수가 참석했다는 이유로 뉴라이트 운운하며 일본의 검은돈 지원을 받았을 의혹을 강화시키려 하지만, 당시는 아직 뉴라이트라는 단어조차 나오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검색해 보니 이해 말에 결성되었군요.) 당시 함께 했던 한국멤버들은 이후, 사상적/정치적 입장에서 대충 세갈래로 나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영훈교수를 학자로서 존경하지만, 2004년 모임 이후로는정치/학술모임을 함께 한적이 없습니다.
4. 호사카 교수는, 이 모임의 두번째 모임에 위안부할머니가 참석해 고함을 쳤다면서 할머니한테 ” 치욕적인”모임이었다고 했지만, 할머니의 고함은 일본, 구체적으로는 와다하루키교수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이 분은 저의 재판에도 출석하셔서 저에게 욕을 하신 분인데, “치욕적인” 느낌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이 분이 아니라 저나 와다하루키교수일 겁니다.
5. 이 모임은 일본 도쿄대 교수이자 우익교과서를 반대하는 모임에 앞장섰고 “헌법 9조를 지키는 모임”사무국장인 고모리요이치교수와 제가 같이 만든 한일지식인 모임이었습니다. 따라서 학회도 아니고 제가 회장인 모임도 아닙니다. 어떤 모임인지, <한일 역사인식의 메타히스토리>라는 책에 정리되어 있으니 보실 수 있습니다.
<"협박"메일에 대해>
1. 호사카교수는 저에게 문자를 보내 추궁한 이후로도 또다시 연속 다섯번이나 메일을 보낸 끝에 “저를 협박했다는 내용을 정식으로 검찰(지금 교수님의 재판을 담당하는 검찰팀)에게공식문서로 제출하겠습니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물론 이미 밝혀진 것처럼 그 메일은 제가 보낸 것도 아니고 사주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곳도 아니고 “재판을 담당하는 검찰”에게 제출하겠다는 말이야말로, 천박한 위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밤중 12시 넘은 시각까지 문자를 보내고, 다시 메일로 엉뚱한 의혹과 추측, 그리고 위협을 이어간 행위, 그리고 여기에 차마 쓰지 못하는 또다른 언사는 법적대응이 필요한 정도로 보이지만 에너지절약을 위해 하지 않기로 합니다.
다만 이번 일로 호사카교수의 인격을 근본부터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대한민국국민들께서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2. 호사카교수에게 선동당한 모르는 이들의 언사에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주변에 이나영/강성현교수가 나서서 거든 일에 다시한번 실망했습니다. 제가 “열성 지지자들을 활용해 싸우게 만들었다””아주 나쁜 선동과 대화 방법을 능수능란하게”사용한다고 말한 강성현씨는, 얼마전에 제가 “틀린 소리”를 했다고 신문 인터뷰에서 말했기에, 어디가 틀렸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지만 응답이 없었지요.
호사카교수및 그의 어처구니 없는 선동에 동조한 이들과는 더이상 엮이고 싶지 않으니, 해명도 사과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 학계의 참담한 모습을 보고 만 것 같아 자괴감이 드는군요. 이 좋은 가을에.
이슬람교를 모독했다는 이유로(물론 작가는 그런 책이 아니라고 하는데) 공개살해선고를 받고 책이 불태워졌으며 일본인 번역가가 살해당하기도 했던 살만 루슈디의 자서전을 읽었다. 무려 800쪽 이상되는 책.
태어난 나라에서 추방당하고, 도피생활을 10년 이상 해야 했던 루슈디를 생각하면 내가 당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튼 나는 아직, (모자를 쓰고서라도)거리를 활보할 수 있으니까.
루슈디가 받았다는 비난들https://parkyuha.org/wp-admin/post-new.php이 그 구조와 내용에서 너무 비슷해서 실소가 나왔다. 내 경우 책은 팔리지 않았지만.
인간은 늘 어리석은 일을 반복한다.
품위란, 타인의 불행에 어떻게 마주하는지, 스스로조차 속이려는 욕망을 어떻게 다루는지에서 드러난다.
슬프고 힘든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은 여성신문의 공격. 어제 나온 기사인데 오늘 봤다.
“성매매 여성의 주체성 강조하는 일본의 성노동론,
일본군‘위안부’ 주체성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과 연결돼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이어져 ”
라는 기사. http://m.womennews.co.kr/news_detail.asp…
내가 페미니스트인 걸 아시는 분들은 왜 내가 여성신문한테 공격을 받는지 의아하실 수도 있겠다. 여성 신문은 이 3년 동안 지속적으로 나를 비난하는 기사를 써 왔다. 말하자면 한겨레신문처럼.
나를 둘러싼 사태에서, 진보가 하나가 아니라는 건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여성주의도 하나가 아니다. 이하는 기사에 대한 간단한 논평.
1)<제국의 위안부>에서 “강조”한 주체성은 성매매에 관한 주체성이 아니라 “감정”(개인/여성)의 주체성이다. 우에노교수가 평가한 것도 그 맥락에서였다.
2)나는 조선인위안부가 “일본군을 자발적으로 지지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3)일본 지식인들의 <제국의 위안부>지지는 오노자와씨등이 주장하는 성노동론비판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4)내가 행한 정대협 비판과 일부 일본인들의 지원단체 비판 역시 성노동론비판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5)오노자와 담론은 내 책이 위안부의 (매춘에 대한) 자발성을 “강조”한 책인 것처럼 왜곡한다. 나와 나를 지지하는 지식인들이 성매매에 찬성하거나 “성매매비판”을 오히려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5)오노자와가 인용한 우에노의 말은 신문 인용이기 때문에 앞뒤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게 만든다. 인용내용이 잘못된 것 같진 않지만, 이 중요한 논점을 말하는데 사용 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오노자와는 비판대상의 “책”이 아니라 신문 논평 한마디로 비판하는 태만을 저지르고 있다.
무엇보다, 우에노 신문논평조차, 제대로 읽으면 성매매를 “찬성”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도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주의자의 생각이 일본 포르노 여배우의 인권문제개선이 안되는 이유인 것처럼 왜곡하는, 아주 악의적이자 (미안한 말이지만) 바보 같은 논리다.
6)”성매매”(매춘)에 관해서는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나는 성매매를 “찬성”하는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2000 년대 초반에 한국지식인 여성들이 성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한 일은 수많은 폐단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추진한 이들이, 그 선의와 정의감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7)오노자와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주장을 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의 논지를 왜곡해 가져다가 그것이 자신들의 실패의 원인인 것처럼 쓰고 있다.
<결론>
1)
오노자와의 비논리적 비약을(지적하지 못하고) 그럴듯한 논리인 것처럼 보도하고, 심지어 <제국의 위안부>공격에 사용하는, 학자들과 여성신문의 악의적 태도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2)
여성주의-페미니즘도 변해야 한다.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쓴 <제국의 위안부>를 “우파가 지지하는 제국의 위안부”로 왜곡 혹은 축소시켜온 이들의 담론을 통해, 과거역사문제를 넘어 진보의 사고/사상문제도 얽혀 있다는 걸 알게 된 분도 적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서경식 /정영환 등의 문제를 급진진보의 문제로 말해 왔지만, 오히려 이들의 “보수성”을 말해야 할 것 같다.
모든 급진은 무언가를 원리주의적으로 지키려고 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그 귀결점이 어디일지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
오노자와 담론에서도 같은 경향이 보인다. 이나영교수가 칭찬하는 “영페미”들이, 좀 더 깊은 사고로 이런 상황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해 주기를 기대한다.
3)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정황–총우경화로 보이는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게 재단할 일이 아니다. 선거 결과를 보고 나서 필요하면 다시 쓰겠지만, 우선 말할 수 있는 건, 지금 일본에서 나를 비판하는 급진진보들은 우경화가 박유하를 지지하는 “리버럴”(여러번 언급했지만 자유주의라는 뜻이 아니라 진보다) 탓인 것처럼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보수적/원리주의적 급진 진보의 탓이다.
누구 탓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원인을 정확하게 알아야 현재의 판단과 미래행동에서 오류가 적을 것이기에 쓴다. 이들의 담론이 모두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나만의 위기이지만.
4)
이들은 내 책이 그런 “사상의 자장”안에서 논의되어야 할 책이라는 걸 알면서도,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한 “쓰레기” 책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의 과다한 비난과 “징역3년”이라는 국가의 요구를 방치/방관을 넘어 가담중이다. 심지어 집단적으로.
내게는 이제, 검찰과 대중이 오히려 죄가 없어 보인다.
이른바 일부 페미니스트와 급진진보들에 대한 나의 실망과 분노는 거기에 있다. 이들의 잘못된 논지가 아니라.
5)
이덕일류의 역사기술문제에 대한 지적이 젊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시작되어 무척 고무적이다. 그런데 왜 위안부문제에 관해서는 그런 이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내 경우, 오히려 “젊은 역사학자”들이 한국학계에서는 가장 먼저 목소리 높여 나를 비난했다. 이런 정황에 대해서도 분석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페북포스팅을 잠시 쉽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격을 만나면서, 다시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이 드는군요. 혹은 두더지 때리기를 하고 있는 듯한.
정대협에 대한 생각, 한일합의에 대한 생각, 해야 할 말은 많지만, 판결 이후에 하겠습니다.
대신,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시게 한 친구신청하신 분들 수락하기 위해, 페친 정리하겠습니다.)
노벨문학상, 영화로도 나와 있는 <남아있는 나날>을 쓴 가즈오 이시구로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거 아닌가 모르겠다.
일본계 영국인.
번역도 여러권 있어서 다행이다.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두개의 아이덴티티를 가진 사람의 수상
渦中日記 20171005
“박유하교수님이 그동안 운영하셨던 학회의 운영자금은 어디에서 지원받으셨나요?
이것은 공개대상 질문입니다.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호사카드림”
(10/5 pm 2:25)
더이상 소모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오늘 다시 이런 메일까지 받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쓴다. 2017년 가을 한국 사회의, 너무나도 얄팍하고 천박한 풍경.
다른 날도 아닌 어제–추석날에 페북에서 호사카유지 교수와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내가 답했던 댓글들이 삭제되었기에, 그것도 여기에 올려둔다.
심지어 밤 10시 반 넘은 시각에 다시 문자. 그때부터 나눈 대화는 차마 여기에 적지 않겠다. 오랜만에 순수한 분노가 치미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문자 차단. 
이후 호사카 교수는 내가 재판 때문에 토론에 응하지 못한다고 했다면서(물론 이것도 왜곡이다) 미루기로 했다고 포스팅에서 썼었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 다시 메일이 온 것.
이메일을 보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얼마전부터 호사카교수가 “한국내에 일본 돈 받아 연구하는 신친일파가 있다, 조만간 명단도 밝히겠다”는 글을 뿌리기 시작했었는데 그가 사냥하려는 첫 번째 대상은 바로 나였다는 것을. 그는 “위안부를 매춘부라고 하는 P교수”라는 식의 얘기도 해 왔었고, 내가 그를 페친으로 받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쪽에 있었는데.
물론 나는 당장이라도 답할 수 있다. 그가 말한 “학회”란 아마도 여기서도 가끔 모임을 공지했던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의 목소리”얘기인 듯 하고, 그가 의심하는 일본돈 따위는 한푼도 들어있지 않으니까. 더구나 투명하게 운영했기 때문에 모임 멤버들이 내용을 다 알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대답을 거부한다. 알고 싶으면 직접 조사하시기 바란다. 의심할만한 중요 기밀이라면 호사카교수께서 직접 발품을 팔아도 판 만큼의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오만하고 해괴한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모두가 국가화하고 있다. 최근에도 이상호사태가(김광석이나 서해순이 아니라 이상호 사태로 불러야 맞다) 보여준 것처럼, 이른바 “민주화”된 우리사회는, 이제 모두가 스스로 국가의 얼굴을 하고, 누군가를 기소하고 처단하고 싶어한다. 연휴든 뭐든、누군가의 평온한 일상이 깨지든 말든, 그들은 자신이 만든 “신념”을 완수하려 한다. 아주 부드러운 얼굴로.
사실 나는 이런 “말”들이 슬프다. 물론 나의 말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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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교수가 지운 나의 댓글과 문자내용 일부 올려 둔다 . 그리고 호사카 교수의 글에 대한 그의 페친과 정대협 이나영 교수의 반응캡처.
“차단이 아니라 페삭했습니다. 저를 직간접으로 많이 비난하시면서 페친이 되자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제가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말했다는 왜곡주장에 깊이 실망했습니다. 이어지고 싶지 않습니다.”(7:05 pm 10/4)
“그런 말을 한 기억도 없지만 했다 해도 ‘설사 위안부가 매춘부 였다고 해도’ 겠지요. 한국어 잘 아시니 그 차이는 아실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저의 책도 아직 안 읽고 발언만 가지고 비난하셨다는 건가요. 제 책을 이제부터라도 읽어 주신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비판을 위해서 읽겠다는 거네요. 과거의 비슷한 사례를 보면, 그런 책 중에 귀기울일 만한 지적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비판 할 수밖에 없는 얘기를 하셔서 비판했지만 저는 선생님하고까지 논의할 시간이 없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저를 공격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우선순위를 둔다면 위안부 문제를 잘 아는 사람이어야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할 테니까요. 무엇보다, 제가 재판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페북이 아니라 공식적인 장이 있다면 생각해 보겠지만, 솔직히 말씀드려 저를 비판한 사람들의 비열함이 실망스러워서 얼굴 맞대고 싶지 않은 감정도 강합니다.
위안부 문제를 왜 연구하기 시작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결론이 앞서는 연구중에 훌륭한 연구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우연선생과 저는 같지 않습니다.
조금 전에 페북 봤는데 ‘대학에서 쉽게 그만두거나 하게 할 수가 없었다’라니, 상상도 못했던, 오만하고 난폭한 말이네요.
선생님이 저한테 이러시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아무튼 이만 하겠습니다.
나의 책을 정확하게 읽고 사과하실게 아니라면, 연락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9:32 pm 10/4)
“선생님이 왜 이렇게 되셨는지 슬프군요. 비판은 자유지만 다들 비난하니 나도 비난해야겠다는 건가요. 일본사람들은 그런 거 몰라서 제 책을 높이 평가 했다는 건가요.
유학시절에 돈 아껴서 샀던 우리 아이 그림 책들, 그많은 그림책들을 선생님 아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드렸다는 것도 부끄러워지네요. 일본인 선생님들을 학교에서 자르려고 할 때 제가 선생님을 위해 뛰어다녔던 일을 기억하신다면, 제가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재판중일 때 이러시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10:34 pm 10/4)
“다시 한번 깊이 실망합니다. 두번 다시 연락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판이 문제가 아니라, 대학에서 그만두게 하지 못한다는 발언만으로 얼굴 마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동)
추석날 아침인데 우울한 포스팅을 한데 대한 반성을 담아 다시.
“화해하면 희망이 남는다.”
화해나 용서에 대해, 가해자가 멋대로 하는 게 아니라는 둥 그럴듯해 보이는 얘기들이 언젠가부터 돌아다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진정한 힘이자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비판의 대상일 수 있는 화해나 용서가 피상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좀 더 깊이 있는 화해와 용서를 지향해야겠지요. 그리고 그 두가지는 다른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할 것이고요.
물론 우리는 늘 실패합니다. 또 때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좋은 관계도 있고요.
하지만, 의미있는 화해는 내일 혹은 차세대에 대한 희망을 줍니다. 당장 마음이 편해지니(마음의 평화) 상대를 위한 것이기라기보다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 성서관련 책을 읽다가(저는 신자가 아닙니다), 그런 시도를 방해하는 마음을 사탄이라고 표현한 글을 봤습니다. 크게 마음에 와 닿더군요.
혈연이든 비혈연이든, 따뜻한 관계인 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추석날 되기를 빕니다. 맺혔던 응어리가 있었다면 풀고, 새로운 응어리는 만들지 않는 따뜻한 시간 되기를.
카탈루냐라는 곳은, 내게는 카잘스의 “새의 노래”로 다가온 곳. 그라나도스니 알베니스의 멜랑꼬리한 멜로디들을 좋아했던 것도 아마도 이 곡에 대한 사랑의 영향일 것이다.
카탈루냐 역사를 보면 지금의 독립갈망이 충분히 이해된다.
새소리를 평화의 노래로 듣는 귀를 가졌으면서도 수십수백년이 지나도
록 평화를 만들지 못했으니 역시 인간은 어리석다.
카탈루냐 사람들이 더이상 억압받지 않기를. 더불어 라스베이거스 희생자들과 그들을 사랑했던 이들에게도 이 곡을 보내고 싶다. 바다 건너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내일도 우리와 상관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어젯밤 박은하기자가 올린 글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내겐 그런 의미에서도 “쉬어가는” 명절이 없다.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미묘한 시기에, 직접상관도 없는 테마를 책의 논지를 왜곡해가면서까지 나와 엮어서 일본과 일본의 진보지식인과 나를 비난하는, 심지어 대중매체에 확산시키려는 이들의 심리가 서글프고 역겹다.
하지만 학자들의 그럴 듯 보이는 “진단” 에 대한 젊은 기자의 열광에 무슨 죄가 있으랴. 아니 어쩌면 주최측에조차 죄는 없다. 일부지식인/운동가의 지적퇴행이 우리모두의 실질적 위기를 부르지 않기를 바랄 뿐.
집단적 공격들의 왜곡과 논리적문제를 일일이 지적하다가 그걸로 인생이 끝나고 말 것 같다는 생각에 우울한 아침이다. 그래서 최근에 시사인에 나왔던 서경식교수의 나에 대한 언급에 대해서도 별 언급하지 않았건만. 심지어 이나영교수의 노골적 (근거없는)비방에 대해서도.
동물을 중심으로 사고하면, 말 못하는 사람의 말에 귀기울이는 참을성이 생기고,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인종)에게서도 오히려 공통점이 보여 그와의 소통이 즐거울 것이며, 가진 것 없이도 행복한 삶의 비결을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