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7/9/16

어제 핸드폰이 고장 났는데, 웬일인지 인터넷 전화도 불통. 오늘 인터넷 전화는 해결했지만 핸드폰은 월요일에 수리하러 가야 할 것 같다. 그러면 거의 만 사흘, 라인이며 카톡, 전화와 메세지들이 불통상태가 되는 셈이다.
이 며칠 Facebook 포스팅도 못 했는데, 무슨 일인지 걱정하실 분도 계실 지 몰라 포스팅.
감기가 왔는지 머리가 좀 띵하지만…저 별일 없습니다. 😊
작년 삼월에 후쿠오카에서 했던 심포지엄이 책이 되어 나왔다. 제목이 <한일 기억 전쟁--우리는 무엇을 잊고 있었던 것일까>.
띠에는 “엇갈림과 비틀림의 근원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인식의 갭” 이라고 쓰여 있다. 편집부에서 붙인 걸 텐데, 내용을 잘 파악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인간사도 역사도, 엇갈림과 비틀림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갈등이 생기고, 이별 혹은 죽음, 전쟁이 일어난다. 엇갈림과 비틀림을 만드는 건, 대개는 아집, 편견, 오만, 불관용.

渦中日記 2017/9/11

주말에, 남대문꽃시장에 갔었다. 늘 가던 집근처 꽃집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집근처 꽃집은 자른 꽃들은 물론 철마다 작은묘종을 꽃피운 화분들을 팔던 곳이라, 자주 들렀었다. 경리단 길에 있었던 곳이라, 아마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여파이지 싶다.
이태원동에 이사 온지 9년. 가끔 강남터미널, 아주 가끔 양재 꽃시장으로 가기도 했지만, 그래도 9년동안 꾸준히 나무며 화분들을 샀던 곳이 없어져서 아쉽다. 남산에 매일 가서 종국에는 사슴처럼 뛰어다녀보리라던 내 야심찬 계획은 여전히 “계획중”단계인데, 9년 세월을 없어진 꽃집에서 느끼는 건 오늘아침 비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국화를 옆에 두었으니 가을을 맞을 준비는 끝났다. 이 비가 그치면 가을이 오겠지.
세상과 모든 분들께 평안이 함께 하는 가을 되기를.

渦中日記 2017/9/7

형사 2심 세번째 공판 피고인 신문은 1심때와 대동소이했다. 검사는 내가 응했던 신문인터뷰등을 들고 와 “강제연행을 부정하는(괘씸한) 박유하” 의 이미지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었고, 정영환이 나의 책에 대해 말한 내용들 –일본어판에선 일본이 사죄했다고 썼다( 일본어판 역시,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은 없으니 국회결의가 필요하다고 썼는데도), 일본인위안부의 애국을 조선인 위안부의 애국이라고 했다등–을 가져와 나의 “범죄”를 추궁하려 했다. 심지어 일본지원단체장을 맡고 있는 재일교포 양징자씨가 나의 책에 대해 엉터리로 말한 부분까지 가져와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했을 땐 오히려 맥이 빠졌다.

검사의 마지막 질문은, 12년전 책 <화해를 위해서>를 가져와 ” 이 책에서 ‘생명을 훼손시켜 가면서까지 지켜야 할 영토는 없다’고 썼지요?” 였다. 그의 관심은,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할머니 명예를 훼손했는지 여부보다, 나의 생각이 얼마나 반국가적인지를 증명해 보이려는 사상검증에 있었던 셈이다.

재판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었는데도, 귀가후엔 피로가 몰려와 곧바로 쓰러져서 잤다. 아마도 몸이 힘들어서 그랬을텐데, 밤새 내내 험한 꿈들을 꿨다.
이미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어제는 검사가 질문내용을 보여 주기 위해 가까이 다가 올 때마다 유독 고통스러웠다. 심리적인 것이었을까.

마광수 교수의 발인이 오늘이라는 것을 아침신문에서 보고 잠시 빈소에 다녀왔다. 뒤늦게나마 모인 꽃과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넋을 위로했기를 .
다시 하루가 갔다.

渦中日記 2017/9/6

(또 깁니다..)
어제는, 마광수교수가 자살했다는 소식에 나를 떠올려 주신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분명, 여러 기사들에서 드러나는 마교수의 우울과 고독은, 많은 분들이 염려와 함께 유추해 준 것처럼 나의 것이기도 하다. 마교수가 이십수년 전 사태의 그림자를 세월이 지나도 못 지웠던 것처럼, 나 역시 아마, 3년 전에 일어난 사태의 여파를 남은 인생동안, 피하지 못할 것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행히 내 경우 아직 직장은 유지되고 있지만, 마교수에게 일어났던 일이 내게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아직 없다.
구속이나 해임사태 이상으로, 그가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장 가슴에 아프게 와 닿는다. 직장과 문단에서 “왕따” 당했다고 그는 얘기한 듯 하지만, 정말은 왕따 자체가 아니라, 세상의 억압–한번 세상의 비난을 받았던 사람은 찌그러져 있으라는 식의 억압이, 마교수를 짓눌러 “스스로 왕따” 시킨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이 세상이라는 공간자체에서 자신이 있을 곳을 빼앗아 버렸다.
나에게 쏟아진 것도 사실,”찌그러져 있으라”는 억압이었다. 고발이란 사실 그 방아쇠. 처벌 이전에, 다수의 비난자들을 국민 속에 만들어 공격과 혐오를 반복적으로 쏟아 놓도록 만든 방아쇠였다.
그런 의미에선, 고발자들이 원했던 “처벌”을 나는 이 3년동안 이미 충분히,지나치리만큼 받았다고 생각한다.
얼마전에, 나에 대한 적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바로, 문제시 되었던 “위안부의 아이돌화” 발언을 했던 장소에서.
비공개 세미나로 알고 갔던 나로서는, 세미나장에 들어가자 마자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는 사태 앞에서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주최측에 확인했더니, 주최측도 예상하지 않았던 일인 듯, 기자를 향해 나를 찍지 말라고 말했다. 그건 내가 예상치 않았던 대처방식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기자는 곧바로 얼굴이 험악해지면서 내게 항의했다. 그러면서 한 말은, “사진에 찍히기 싫으면 이런 자리에 나오시면 안되지요!” 였다.
사실,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사람은 오프에선 처음 만났다. 방청석의 원고측 관계자들을 제외하면. 적대적인 사람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말했다. “외부인들이 들으면 안되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언론보도를 피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사전에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된 건지 주최측에 확인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화부터 내는가? (뉴시스기자라고 하기에 “뉴시스는 언제나 나에 관해 나쁜 기사를 쓴 곳인데.” 라고 말했던 것이 그의 적대의식을 키웠을지도 모르겠다. ).”
그런데, 나는 그의 태도나 세미나 참석 없이 쓰였던 적대적 편향기사 이상으로, “이런 자리에 나와선 안된다” 고 했던 그의 말이 더 머릿속에 남았다. 그의 말은 “찌그러져 있을 것이지 왜 이런 번듯한 자리에 뻔뻔하게 나오는가?” 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그 사태에 대해 내 말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면서 호의적이었던 한 TV진행자도, “말로 한번 화를 입었으면 좀 조심할 것이지” 라는 식으로 말하는 걸 들었다. 그 역시, 내가 “문제적 발언”을 했다고 믿고 있었고, 그런 이상 “자숙”이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억압도 원인이 되지만,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여겨지면 말을 잃게 된다. 그런 의미에선 말을 잃는 상태,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는 일 자체가, 사회적/정신적 생명이 조금씩 죽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굳이 나쁜 일을 한 사람까지 가지 않아도, 아이나 노인등 약자들에게 “찌그러져 있으라” 는 식으로 말과 행동을 통제하려는 욕망은 우리 사회에 아주 강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계속 말하고 쓰려고 한다. 누군가의 억압이 존재하는 이상. 아니, 존재하기에 더욱.
나의 입을 틀어막고, 재산을 빼앗고, 심지어 감옥에 넣어달라는 식의 압박을 당연시하는 이들의 욕망이, 옳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억압과 지배와 파괴의 근원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내가 “찌그러져” 있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는 이상, 나는 나자신의 그런 목소리에조차 이겨 볼 생각이다. 물론 재판정에서도.
그런 나의 선택이, 마교수에 대한 작은 공양이 되었으면 좋겠다.

渦中日記 2017/9/5

내일, 형사 2심 세번째 공판이 있다. 내일은 피고인신문. 1심 본재판 진행 때 공판기를 다 쓰면서도 피고인신문만은 쓰지 못했었다. 검사와 변호사가 주로 공방하는 다른 공판과 달리 피고인 신문은 전부 나자신이 대답해야 했던 탓에 검사의 질문을 메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원에서 만든 신문내용 녹취록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70쪽이 넘는 긴 글이지만, 관심 있으신 분들께선 읽어 봐 주시면 좋겠다. 사악한 매국노 취급 속에 내가 무의미함을 견뎌내고 있는 장면을 아마 볼 수 있으실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무의미할 뿐 아니라 악의적인 질문들이,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에 우울했던 시간을.
내일도 그렇게, “피고인” 석에 앉아야 한다. 오후 4시 부터.
(이 글을 막 올리려는데 마광수 교수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두 배로 우울해지는 저녁이다..
이 글 같은 건 안 읽으셔도 좋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피고인(박유하) 신문 녹취서.pdf 바로가기
(* 편집주: 추후 가독성/다운로드 속도 문제로 별도 타이핑하여 재 게재 예정입니다.)

渦中日記 2017/9/4

10년 전부터 들은 얘기를 다시 맞닥뜨리고 보니, 지적퇴행의 주체는 오히려 서경식 교수쪽이 아닌가 싶다.
서교수의 이런 주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이미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는 듯 한데, 북한의 핵실험을 다시 만나게 된 다음날 다시 이런 기사를 접하게 되니, 실망을 넘어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본격적인 비판은 조만간 긴 글로 할 생각이지만, 한겨레를 위시한 한국의 진보층이 이런 식의 주장에 간단히 귀기울이는 현실 또한 우리 안의 지적퇴행현상으로 보인다.
이 기사의 문제를 두가지만 지적해 둔다.
1) “리버럴”이라는 단어를 번역이나 주석없이 사용한 탓에,” 강남좌파” 혹은 요즘 곧잘 지적되고 있는 “처음부터 보수인 진보”와 혼동하게 만든다. 일본에서의 “리버럴”이란 어디까지나 진보좌파를 말한다. 물론 일본 역시 “무늬만 진보” 인사가 없지 않겠으나 서교수의 비판대상이 된 이들은 대부분, 일본 진보담론을 선두에 서서 생산해 왔던 이들이다.
2)2008년 가을부터, 서경식선생은 한국의 독자를 향해 “일본 리버럴”비판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책이 일본에서 평가받은 것이 서교수와 주변인들을 실망시킨 것이 이유라는데, 그 근원에는 1990년대 후반부터, 그러니까 이미 20년전부터 시작된 일본내 진보지식인간의 생각차이가 만든 갈등이 있다.
애초에 그 갈등은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의 갈등이었다. 동시에 급진진보와 온건진보의 갈등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사상싸움. 그런데 일본진보가 “신자유주의의 도래에 투항”했다고 이리도 쉽게 말하고 있으니 당사자들이 들으면 실소할 것이다.
냉전붕괴이후 일본의 진보좌파들은, 곧바로 갈등하기 시작했다.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40년전 학생운동시절의 급진/온건파의 싸움이 있다. 90년대 이후에도, 급진파는 오래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일에만 집착해 왔고, 온건파는 눈앞에 놓인 새로운 정황을 정확히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필요하면 그때까지의 생각을 수정했다. 와다선생이나 우에노선생과 서경식교수의차이는 바로 거기에 있고, 그런 식의 태도의 차이를 만든 건 내가 보기엔 사고의 유연성이다.
자신들을 중심으로 한 “혁명”이 목적이다 보니, 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천박한” 것으로 취급하고, “우경화”한 증거라고 주장하고, “퇴행”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짧은 기사조차, 그 연장선상에서 일본이 위안부문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도록 만들고 불신을 조장하니, 위험한 선동이 아닐 수 없다.그런데도 이런 생각이 이제 대통령도 언급하는 “국민정서”로 자리잡았으니, 한국의 보수정권 10년은 일부재일교포들한테는 결코 잃어버린 세월이 아니다.
나는 위안부문제를 “제국의 부수적 피해”라고 말하지 않았다. 서교수나 정영환교수등 재일교포들의 말을 언급된 자료의 확인없이 옮겨 쓰는 전통, 멀쩡한 사람에 관해 사실과 다른 왜곡된 정보를 흘리는 일은 이미 10년전에 한겨레 한승동 기자가 시작한 것이기는 하지만, 10년이 지나도록 똑같은 논조가 전혀 의심받고 있지 않다는 건, 한국자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의 우려는 나 한사람을 이들의 공격에서 피하게 하려는데에 있지 않다. 이들의 담론이 구조적으로 폭력을 용인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있고, 그런 “사고의 결함”이 나에 대한 물리적 폭력으로 “실제로”나타났다는 체험에 있다. 무엇보다, 그런 식의 폭력이 국가단위로 확대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다는데에 있다.
내가 이들에게 비판을 받았고, 그들이 뿌린 불신의 그물에 걸려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했던 정세판단미스를 또다시 행해 끔찍한 재앙을 만나지 않기 위해 말해두고 싶다.
일본의 진보지식인들에 대한 불신을 끊임없이 한국사회에 유포시켜온 재일교포들의 언설을, 이제부터라도 조금은 의심하고, 검토해 주었으면 좋겠다. 단언컨대, 이들은 서경식교수 정도나 그 주변 인물들에게 이런 식으로 가볍게 다루어져도 되는 사람들이 아니다.
북한의 행태가 보여 준 것처럼, 지금 평화를 위협중인 건 우파가 아니라 좌파쪽이다. 물론 북한은 이제 공산주의국가조차 넘어선, 그저 군국주의국가로 봐야 하겠지만.
배척하고 싶은 상대를 비난하는 최대수사가 고작 “우파”라는 말이라는 건, 그 자체로 우리가 여전히 냉전구도의 한가운데 있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진보인지 보수인지의 구별보다 중요한 건, 어디에 서 있건, 이질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또 그럴 만한 유연성과 인내심이 있는지의 여부다. 그래야만 상대를 지배하거나 제거하고 싶은 욕망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판과 제거욕망은, 아주 다른 차원의 것이다.
와다 교수의 선택이 가장 옳았는지 여부는 얼마든지 검토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와다교수는 늘 생각이 다른 이들의 말에 귀기울이면서, 위안부할머니와 모두를 위한 최선이 뭔지 늘 고민해 왔다는 점이다. 그런데, 와다교수를 비난했던 이들은 이질적인 의견에는 귀를 닫았고, 조롱하거나 무시했다. 지금의 북한처럼.
인간과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는 이들, 폭력을 가하거나 무기로 삼는 이들은, 더이상 진보일 수 없다.

渦中日記 2017/8/31

“스타” 철학자라는 이진경교수까지 나를 이런 식으로비난하는 걸 보니, 대한민국의 지성계 자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듣보잡 여자로 보이도록 하면서 위안부할머니에 대한 효심을 앞다투어 드러내려는 이 심리는, 분명 연구대상이다.
사실, 일찍부터 이유 있어 그에 대한 관심을 끊었던 터라, 더더구나 이런 식으로 그를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타자의 생각을 읽는 일에서 출발하는 “철학”을 하는 그의 비판이, 다름아닌 독해력의 빈곤이 만든 것이라는 것, 이렇게도 가벼운 그의 글이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비싸게 소비되고 있는 곳이 다름아닌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이 아침에 다시, 슬프다.
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제국의 위안부”라는 제목에는 “제국에 동원당한 위안부”라는 뜻도 있다. 표지에 있는 위안부의 기모노 모습이 반으로 쪼개져 있는 것도, 그런 뜻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인으로서 동원당했지만 그 “일본인”이란 허울 뿐이었다는.
무려 “철학”을 하는 이가, 최소한의 독해력만 있어도 알 수 있는 부분을 간과하고 타인의 책을 “정신없는 책” 으로 단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본어 회화와 일본남자”에 관한 성과만 있을 거라는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걸 보면, 이 사태는 어쩌면 지성의 문제조차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의 책은 그렇게 양식부재사태마저 드러내고 말 만큼, 어떤 부류의 남성지식인들의 자존심을 단단히 건드리고 만 것 같다.
그는 “위안부강의”까지 했다는데, 그의 말을 그대로 돌려 주자면 “논평할 가치”는 없을 것 같다.(그 강의를 들은 이에 의하면 너무나 감상적인 강의였다고 하니) 그가 “분노의 칼질”을 한다 해도 마찬가지. 나는 그런 글들에 반론하느라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았다.
이틀 전에 여성학회를 탈퇴했다. 나를 향한 여성혐오적 공격에 대한, 주류페미니스트들의 침묵이 3년이나 되는 긴세월동안 변함없이 이어진 이상, 더이상 그들에게 기대를 걸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의 책이 옳아서라기보다 그들이 옳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떠난다.
다음 재판이 이제 일주일 남았다.
(내 얼굴 사진을 자꾸 올리게 되어 많이 민망하다. 심지어 대개는 악마화된 사진을.)

渦中日記 2017/8/20

잠시 잊고 있었는데, 누가 알려주는 바람에 무려 열흘 전에 나온 기사를 다시 베낀 기사들을 봐야 했다. 험악한 비난으로 도배된 트윗들은, 따라가 보니 역사학자 전우용씨가 광복절 새벽에 올린 트윗이 발단이 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언젠가 이재명시장이 했던 것과 똑같은 수법.
페북에는 올리지 않고 트윗에만 올린 건, 트윗이라면,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30만 팔로워가, 자신에게 던져진 먹잇감에 한치 의심없이 달려들 거라는 걸 알았기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식민지배”를 “옹호”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 그는 좀 실수한 것 같다. 그의 허위사실유포로 인해 나뿐 아니라 재직대학과 학생마저 모욕당한 사태 앞에서(너무 심한 건 올리지 않기로 한다)고발도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잠시 들었다. 멀리 떠나온 곳에서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니, 슬픈 여행이 아닐 수 없다.
사태는 익숙해도, 감정은 늘 새롭다. 나를 그렇게 만든 이번 일은 기자와 학자의 합작품이다.
언론도 학문도,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시대다. 동시에 그 뒤에 엿보이는 무겁고 음습한 폭력성들. 나는 이들이 위안부의 고통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그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올려둔다.
(누구나가 비호감이 될 이 사진은 연합뉴스가 오래전에 찍었다. 나에게 적대적인 매체들은 다들 이 사진을가져다 쓴다. 사진자체보다, 그 게으름과 안이함이 내게는 더 끔찍하다.)

渦中日記 2017/8/16

지금은 “한국인”으로 바뀐 것 같지만, 한국은 공항입국심사대에 오랫동안 “국민”이라고 쓰여 있었다. 일본은 “일본인”. 물론 나머지는 “외국인” 이다.( 일본 경우는 영주권이 있는 이들을 따로 구분한다.)
“국민”이든 일본인”이든, 입국자들을 공동체내외부로 구분하는 그 단어는, 그런 구분이 얼마나 수많은 “외부자”에게 비통한 경험을 하게 만들고 같은 이름으로 내부자마저 억압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런의미에서 그저 “경계”를 말해주는 「Border」는 가벼워서 좋다. 입국이란, 그저 잠시 국경을 넘는 일일 뿐이니까. 그 안에서 내가 외부자라는 걸 이 단어는 굳이 강조하지 않는다. 대영제국시대 의식의 잔재일 수도 있겠지만, 전세계가 이런저런 네이밍으로 사람들을 구분짓고 갈등을 부추기는 이 시대에, 그나마 멋진 표지로 보인다.

지난 목요일에 참석했던 한 세미나에서 했던 나의 발언중 작심하고 단어하나를 강조했던 기사가 노린대로, 이 며칠 또다시 수많은 걸쭉한 욕들을 들어야 했다.(젊은 여성들 역시 그 대열에 있었다는 사실이 가슴이 아프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제 그런 욕들에 3년전만큼 상처받지 않는다(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작심하고 찾아와 사람들을 선동하는 기사를 쓴 뉴시스 기자와(심지어 그 기자는 시작전에 주최측과 잠시 실랑이한 끝에 세미나장을 나가 버렸으니 다른 기자가 달리 없었다면, 자료집만 보고 쓴 기사가 된다), 그의 의도대로 선동에 가담한 몇몇 언론과, 심지어 공식페이스북에 “그 입 다물라”라는 멘트로 페이스북유저들을 선동한 언론사페북관리자, 그리고 그의 선동에 낚인 페북유저들의 다양한 욕설이 보여주는 노골적인 여성혐오적 정황을 방치하거나 간접적으로 선동해 온 이나라의 “인권”운동가나 페미니스트들의 침묵이, 슬플 뿐이다.

아무튼 그래서, 일부러 일정을 맞춘 건 아닌데도 결과적으로 도피한 형국이 되었다. 이번엔 태양이 뜨는 방향으로.

渦中日記 2017/8/14

박원순 시장은 법률가 출신인데 독일의 전후보상이 “법적책임”이 아닌 “도의적책임”이었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 걸까. 모르고 있다면 과거사청산에 관심많은 법률가로서 실격이고, 알고 있다면 이 역시 시민을 기만하는 것이 된다.

위안부 문제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식의 오류와 오해가 너무 많다는 점, 심지어 최고의 지식인으로 꼽히는 사람들조차 그 부분에서 걸리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는 데에 있다.
새정부가 들어선 해 광복절즈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마도 두고두고 회자될 것 같다.

참고기사 : http://m.hani.co.kr/arti/society/area/806735.html?_fr=fb#cb

渦中日記 2017/8/13

김문길 소장이라는 분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이런 식의 기만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새로 발견”한 것처럼 보여 주면서 언론과 국민을 기만하고, 일본이 자료를 “은폐” 하거나 위안부문제를 부정하고 있다는 오해를 만들고 있는 이 자료들은, 이미 20년 전, 고노담화 이후 일본이 몇년에 걸쳐 수집/정리해서 5권짜리 자료집으로 발간했고 지금은 무료로 인터넷에 공개되고 있는 자료들이다.
황우석교수나 박기영 교수만 욕할 게 아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이런 기만이 행해지고 방치되고 있는 정황의 책임은 우선 학자들에게 있다. 동시에, 이 모든 일에 따른 손가락질과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다.
한국에 대한 불신은 한국에 대한 불호로 이어지고, 그 덤터기는 차세대가 안을 수 밖에 없는데, 그 책임은 누가 질 수 있을까. 내가 위안부문제에 대해 쓸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해당 기사 1: http://m.yna.co.kr/kr/contents/?cid=AKR20170118120000051&mobile
해당 기사 2: http://m.yna.co.kr/kr/contents/?cid=AKR20170811113100051&mobile

아시아여성 기금 홈페이지. 전에도 올린 적이 있지만 다시 올려둔다.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4반세기역사를, 제대로 깊이 파는 언론이 있기를. 비판을하려면 일단 정확히 알아야 한다.
http://www.awf.or.jp/index.html

기사에 언급된 자료가 게재된 자료집.위 홈피에 있다.
http://www.awf.or.jp/pdf/0051_1.pdf

渦中日記 2017/8/10

어제, 한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세미나에서 발제했었다. 몇몇 매체가 보도했는데, 비교적 사실에 가깝게 보도한 기사를 올려둔다. 어제 모임과 상관없는 재판출석때 사진이 사용된 건 서글프지만, 그래도 뉴스1이 다른통신사매체보다 정확한 보도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던 기사다.
굳이 올리는 건, 오늘 아침에 또 다시 협박메시지가 왔기 때문. 그건 물론 악의적으로 보도한 다른 통신사의 기사를 여러 언론이 가져가 보도한 영향일 것이다.
그래서, 기사가 말하지 않고 있는 부분을 추가해둔다.
1)이 세미나에 내가 출석한 건, 발제자중에 일본의 위안부지원단체(정대협과 연계된 단체) 의 이사인 학자가 있었기에 그녀와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당연히 “보수”가 아니다. 나역시 보수가 아니다.
중요한 건 주최측이 보수인지 여부가 아니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렀다는 점이다. 나는 그런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
2)”아이돌화”란, 군함도에 대해 썼을 때와 같은 맥락이다. 초등학생과 10대 청소년들에게 “위안부”라는 존재가 너무나 “가볍게”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을 그렇게 표현했고, 그렇게 말하게 된 건 댓글에 첨부하는, 순정만화 주인공 풍으로 표현된 스티커의 영향이 크다.
3)”양국 국민 간의 진정한 화해”와 “지배와 종속”관련 발언은 관계가 없다. 조선인 위안부문제를 전쟁관계가 아니라 종주국/식민지 관계로 이해해야 이 문제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4)나는 위안부를 매춘부라고 말하지 않았다. 비교적 정확한 기사조차 이 부분은 시정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오늘, 다시 슬프다.

<여고생들이 스티커용으로 그렸다는 그림>

http://news1.kr/articles/?3071729

渦中日記 2017/8/6

어제,나에게 이 글을 알려 주려고 전화, 문자, 카톡으로 연락 준 사람들이 여러사람 있었다. 조선일보니까, 라고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매체가 어딘지는 내게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다. 기사를 읽고 기뻐하면서 연락을 준 사람들의 마음 자체가 기뻤으니 , 그런 순간을 만들어 준 것만으로 고마운 일.
더구나 조선닷컴은 고발 직후에 하루에 10개 가까이 나를 비난하는 낚시성 기사를 쏟아냈고, 그때문에 언중위까지 갔던 네 곳 언론사 중 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비록 논지 전개가 썩 와닿지는 않아도 어찌 반가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세 살 더 나이 들었다. 언제 “끝”이 올 지, 몇살이 되어 있을지 문득 궁금해지는 밤.

[터치! 코리아] 양쪽 날개로 날면, 양쪽 날개가 부러지는 세상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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渦中日記 2017/7/19

6월 7월 무렵의 “과거의 오늘 “엔, 대개가 고발직후의 참담한 심경들이 쓰여져 있다. 그때의 모습을 다시 마주하는 심경도,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편하지 않다.
고작 고발 한달만에, 이제 괜찮다면서 증명이라도 하듯 젊은 날의 당차 보이는 모습까지 내 걸었던 3년 전 어느날의 흔적에서, 어떻게든 버텨 보려는 안간힘이 느껴져서, 나의 모습이지만 안쓰럽기까지 하다.
상황이 그 때보다 나아진 건 분명하지만, 정황이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이후 가처분소송에서 졌고, 손해배상소송에서 졌고, 고작 형사1심을 이겼을 뿐이다. 그리고 원고측은 변호사들을 대거 동원해 검사를 통해 여전히 나를 옥죄고 있는 중이다.
이 기간동안 나는 변호사비용등으로 수천만원을 썼고 심신이 훼손되었고, 재판중이라는 이유로 연구년조차 허가받지 못했다. 물론 나를 “국민악녀”로 간주하는 사람들의 비난도 잊을만 하면 접하곤 한다. 학과 학생들 역시 일부는 나를 “친일파”라고 말한다는 얘기를, 최근에야 들었다. 일부 학자들은 나를 엉터리학자취급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제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들 안의 문제를 지적하고, 바로 보고, 소송을 취하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그들 안에서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여전히 그런 사람은 없다. 3년이 지나도록. 오히려 악의적인 칼럼과 인터뷰로 공격에 가담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
나를 둘러싼 거대한 힘들–정치세력, 학회세력, 시민단체세력–을 새삼 다시 인식하게 될 때, 이들의 돈과 힘에 비해 내가 가진 것은 많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될 때, 그동안의 “말”이며 행동을 오히려 회의하곤 한다.
나는 이 싸움을 이길 수 있을까. 그 이전에, 이 싸움은 유의미한 싸움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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渦中日記 2017/7/17

새 정부가 최저임금을 올리겠다고 해서 일자리 81만개 공약과 맞물려 의견이 분분하다. 페친들 의견만 해도 양쪽으로 양분되어 있는 것 같고, 양쪽 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일”과 일에 따른 보수인 “임금”에 대해 논하면서 필연적인 질문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자리를 마련하고 임금을 올리는 건, 당장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을 구제하고 수입을 올려 조금이라도 편안한 삶을 찾도록 하자는 것일 터. 크게는 사회 양극화 해소도 겨냥한 것일 터이다. 그리고 그런 취지자체에는 나역시 당연히 공감하고 지지한다. (이런 담론이 일하는 사람들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을 지적하면서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라는 주장에도.)
그런데, “자영업자들의 반론”에 대해 “임금을 올렸다는 이유로 망할 곳은 망하라”고 말하는 극단론에는 중요한 논의가 빠져 있다. 임금이란 그 일의 “가치(혹은 효과)”에 대해 주어지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고용자가 “일의 질”이 그 임금에 상응하는 것인지를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물음을 고용자가 아니라 피고용자가 묻는 상황이 아닐까. 말하자면, 그 일이 창출하는 효과에 대한 피고용자의 주체성이야 말로 우리가 의식하고 신장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일자리자체보다 “자신에게 맞고 잘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물음과 확인이, 지금의 논의에서는 완벽하게 빠져 있다.
그건 다른 말로 하자면 창의력일 것이고, 창의력이야 말로 일과 자신에 대한 최대의 주체성 표현이다.창의력이란 과학자나 예술가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눈앞에 있는 일-노동자체와 제대로 마주하고 깊이 들여다보고, 가능하다면 철학을 넣어 그 일을 완수할 때 일에는 아름다움과 깊이가 생긴다. 그리고 그때 바로 “일”에 자연적으로 경제성이 따라 붙는다. 무형의 작업이 되었든(청소, 가게 직원),유형으로 표현된 것이든(수공예품, 상품, 건물..), 요구된 것 이상의 “가치”를 띠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우 자영업자든(편의점 직원 경험을 써서 작가가 된 일본여성 케이스라면 편의점 주인)그가 생산하는 “가치”(손님을 주의깊게 관찰해서 필요한 물건을 잊지 않고 주문해 든다던가 키작은 사람을 위해 알맞은 배열을 해 둔다던가 할 것이므로)가 만드는 생산성과 수익에 따라 임금도 올릴 수 있게 될 것이므로. 편의점의 직접적 경제가치와 상관이 없다 하더라도, 그 여성은 “편의점 직원”이라는, 결코 훌륭한 직장으로 인식되지 않는 공간 역시 집중(사고)하는 일로 또 다른 가치를 창출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사실 문명화다.)
그런데 일률적으로 올리거나 일자리를 마련하는 “이상주의”에는 이러한 “가치” 창출에 대한 인식은 전혀 없어 보인다.
동시에, 이른바 효율 중심의 근대적능력사회가 만들어온 “일”이나 “일자리”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그가 가진 능력이 어떤 자리에서 빛날 것인지를 가늠하고 기회를 주고 기다리는 시스템이야 말로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른바 정상적인 사회, 능력추구중심의 사회에서 드롭아웃되거나 당한 이들의 폭발(폭력, 살해..)은 타인을 가해하거나 스스로를 가해(자살) 한다. 우리 사회는 그런 이들의 개인적 삶뿐 아니라 사회적 가능성마저 사장시켰다고 해야 한다.
말하자면, “시급 얼마”라는 기치는, 그 자체로는 이상적일 수 있지만, 실제로 이 사회의 구성원 모두를 행복하게하기에는 역부족인 정책이자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모던타임즈 “(1936)가 나온지 벌써 80년인데
우리 사회 자체는 여전히 정형화되고 빠른 일에 더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일자체에 대한 집중(때로 스피드 다운)과 창의력 발휘가 아니라.
바꿔 말하면 일을 통해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력 발휘(주체성 발휘.개인으로서의 나를 온전히 표현하기)가 일이 되어야만 그 사회의 문화적/경제적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아닐까.
그동안 “느리게 살기”등 근대 사회에 대한 반성이 생기긴 했어도, 그건 그저 일을 줄이고 휴식을 많이 가져야 한다는 식으로 일과 휴식의 이분법을 오히려 강화하고(나는 “노후”에 대한 우리사회의 지향성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한다.) 일에서의 시간적효율성(질적 효율성이 아니라) 추구를 오히려 강화시켜 온 것 아닌가 싶다.그만큼 뒤처지는 사람은 많게 된다.
개인주의란, 자신의 성향대로 있어도 되는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저 국가와 대치되는 개인이 아니라. 그리고 이 일에서는 맞지 않아도 저 일에는 맞다는 것을 스스로 찾게 하고 또 함께 찾아주는 시스템이야 말로 개성을 존중하는 것이고 “시급얼마”의 논의 이상으로 중요한 거 아닌가 한다. 그래야만, 획일적인 고용(고임금),혹은 획일적인 해고(저임금)라는 딜레마에서 양측이 모두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을테니까.
한 사회는 능력자나 천재만으로 구성되지도 않고 운영되지도 않는다. 근대적 효율사회에는 맞지 않아도 또다른 일에서 자기를 표현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긴급한 과제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실은 고교생의 초등학생 살인과, 중학교에서의 집단자위 문제와 아이를 개목걸이로 묶어 두었다가 죽게 한 엊그제 사건에
있었다. 교권문제인지 단순한 통과의례문제인지 페북에서도 논의가 갈렸지만, 중요한 건 그 사태가 교육/학급의 붕괴현장이라는 사실 아니었을까.
아이들을 분노하거나 옹호하는 시각만 눈에 띄었지만, 더 필요한 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 어른 탓이고 사회탓이라는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민주화와 88올림픽 이후 30년을 숨가쁘게 달려 왔지만,그동안 자란 아이들이 폭발하는 모습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이런 현상이, 그동안 함께 진행된 획일적이고 억압적이고 이제 “학대”라는 인식마저 생기게 된 과잉교육, 동시에 정말 필요한 교육(방식)의 결핍(느리게 공부하기)에 그 이유가 있지 않은가 나는 생각한다. 기존학교를 없애 버리거나 대안학교를 따로 만들 것이 아니라, 교육내용과 형식의 변화가 오히려 필요하다.
임금을 올리는 건 급료차별을 개선해 안정성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리고 그렇게 지향하는 이유는 쾌적하고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일 것이다.
그런데 쾌적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개인이 “생긴대로” 있어도 살아갈 수 있는 자유, 혹은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 추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나름대로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일은 잊고 지내 온 것 같다.
사람은 여유로울때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고, 여유롭기 위해서는 자유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지향하는 사회에선 오히려 개인을 파편화시켜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이기적인 개인주의가 횡행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자신답게 존재할 수 있는 일의 스피드와 집중(철학)이 담보될 때 우리는 오히려 서로 손내밀며 연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연계하기 위해서, 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오히려, 획일적인 정책이 아니라 자유롭고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 “개혁”이란 그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저 앞에 있는 것을 치우거나 뒤집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맞는 공부(일)의 내용과 스피드가 보장되는 사회. 그로 인한 주체성과 만족이 한 사회의 삶의방식이 되는 사회. 그런 사회를 지향했으면 한다. 추상적논리나 감정이 견인하는 사회가 놓치는 것들에 주의하지 않는 한, 진보정권이 이끈다 해서 곧 행복한 사회가 되지는 않는다. 진보의 이상을 실현하려면 더더욱 필요한 자각이 아닐까.

渦中日記 2017/7/16

그저께 재판에서 나의 “범죄증거자료”로 제출되었던 “조선인 위안부 당시영상”관련 기사가 페북에서도 많이 공유되고 있는 것 같다. 나의 주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나를 처벌하기 위한 자료로 사용되게 된 것은 유감이지만, 시간과 발품을 판 끝의 연구팀의 “발견”자체에 대해서는 치하를 보낸다.
또 이 인터뷰 기사에서 연구팀은 나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고 쓰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동시에 <제국의 위안부>가 “학술적으로 틀린 내용을 담고 있다”고도 말하고 있다.
그러니 이 인터뷰를 읽는 사람들에겐 나와의 공통점보다는(사실은 민족주의 비판이 아니라 진보좌파 비판이다) “틀린 내용의 책을 쓴(그래서 법정에 가 있는) 박유하”가 다시한번 각인되지 않을까.
결국, 이런 식의 언급은 인터뷰이의 의도와 상관없이 법정재판을 정당화하고 국민재판 역시 강화시키는 것일 수 밖에 없다.
위안부문제에 대한 언급들이 발언자의 의도와 다르게. 소비되는 현상에 대해 말하면서도 정작 내가 그런 현상의 가장 큰 피해자라는 건 잊게 만들고 있는 것도 치명적인 모순.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 위안부문제 관련해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일일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런 공격까지 묵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강성현 선생께 묻는다.(페친이 아니라 태그가 되지 않는다. 누군가 공통페친께서 전달해 주시면 좋겠다.)
1)나의 책의 어디가 틀렸다는 건지 구체적으로 말해 주기 바란다.
2)무책임한 고소로 인해 재판정에 서게 된 사람을 이런 식으로 “너무나도 가볍게” 언급한 데 대한 사과와 시정을 요청한다.
틀린 부분이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식의 언급은 이미 돌을 맞고 있는 사람에게 또다시 돌을 던지는 행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渦中日記 2017/7/14

형사2심 두번째 재판이 있었다. 무더웠던 하루.

검사는 사흘전에 “공소사실 변경신청서”를 제출했다. 겉으로는 큰 차이 없어보이지만, 단어를 바꿔 어떻게든 괘씸죄를 물으려는 목적이 뚜렷한 내용. 그리고 며칠전에 보도된 위안부 동영상 관련 기사, 그리고 일본정부가 강제동원관련문서존재를 인정했다고 보도한 기사를 추가 증거로 제출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둘 다, 검사가 증명하고 싶어하는 나의 “범죄사실”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자료다. 나는 위안부 존재를 부정한 적이 없고, 더구나 이 기사에서 언급한 서류는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네덜란드나 인도네시아 여성 관련 서류이고, 나는 조선의 위안부에 대해 말했던 것이니까.
1심에서도 검사가 국민의 세금을 써가며 해 온 일은 대부분 그런 일이었다.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나자신에 대한 누명과 억압이상으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무의미함을 참아내는 일이다.
아무튼 오늘, 향후 일정이 정해졌다. 한두번만에 기각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기대는 배반당했고, 피고인 심문과 증거설명과정을 다시 반복하게 되었다. 이 여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법정에 서게 된다. 다음 재판은 9월6일 오후 4시. 이 가을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형사재판의 가을”이 되게 되었다.

渦中日記 2017/7/13

그리이스 신전기둥같은 멋진 건물형태를 빌어 억지 논리를 세워놓은 이 자료는, 검찰이 1심형사재판때부터 파워포인트를 사용해 가며 강조해 왔던 논지자료다. 왜 억지왜곡논리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수십번 말해왔는데도, 내일은 다시 이논리와 싸워야 한다.
그런데, 구체적내용은 엉터리지만, 이 논지에 따르면 나는 위안부할머니를 비난한 게 아니라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이 기소와 재판이, 실은 “해결 방법을 둘러싼 생각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역력한 자료이기도 하다.
무죄판결문을 왜곡하면서까지 내 책을 “조악한 연구”라 했던 경향신문 기자의 칼럼 역시 검찰은 “범죄증거자료”로 제출했다.
2017년 7월14일 오후 4시.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서관 제403호 법정 (6번 법정출입구)에서 형사재판 검찰항소심 두번째 재판이 있다.

渦中日記 2017/7/13-2

어젯밤에 김도언 작가 담벼락에 들렀던 걸 계기로, 나를 아이히만에 비교하고 “제국의 변호인”이라는 소리를 서슴치 않았던(이 두개의 비유를 하나의 대상에 쓰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걸 그는 모르는 것 같다)손종업교수가 여전히 나를 비난중이라는 걸 알았다.
국가재판뿐 아니라 여론재판도 여전히 내겐 진행중이다.
비난이든 비판이든, 옳은 내용이면 언제든 경청하고 싶다. 그런데 다른 이의 말을 내가 한 소리로 간주하고 비난하거나, 내가 쓴 말은 손정업씨가 쓴 걸로 생각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댓글들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사실, 내가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일은 처음부터 이런 일들이었다.
내가 그 대상이 되어서가 아니라, 비평가라는 이름을 단 사람조차 저지르는 총체적 경박성이 서글프다. 우리시대 한국을 소모시키고 좀먹고 있는 한장면.
위안부문제에서도 이런 일이 있으니 그런 부분을 지양하자고, 나는 말했을 뿐이다.



渦中日記 2017/7/12

탁현민의 문제는 그의 생각패턴이 변하지 않았다는데에 있다. 자신이 “전쟁광 ” 이라고 판단한 사람이면(라이스 전 미국무총리) 강간해 죽이자는 발언마저 허용하는 식의 인권에 대한 무감각은,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면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그 옛날 탁현민이 만든 “오늘의” 탁현민이다.
송영무 장관후보의 문제 또한, 3000만원의 자문료자체보다(물론 이 부분은 양극화를 빚는 한국적 시스템 문제)그 정황을 “일반사람, 서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로 말하는 정당화에 있다. 서민들이 모르는 “그들만의” 세계를 정당화하는, 내면화된 차별의식과 기존세계에서의 안주욕망을 드러내는 이가 어떻게 개혁을 할 수 있다는 걸까. “개혁”은 언제나,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회의에서 시작한다.
이들의 감각은 진보/보수 할 것 없이 공통된 것이겠지만, 이들이 진보쪽 텃밭에서 성장/성공한 사람들이라는 건 “한국적 진보의 모순”을 여과없이 상징한다.
문재인대통령이 이들에 대한 비호를 멈추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 페미니스트 이전에 서민대통령이자 인권대통령이고자 한다면. “멋진”대통령이, 연출이 아니라 진실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