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uel Lee, 같은 책을 읽고도 정 반대의 생각을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Samuel Lee

1월 22일 ·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팰로앨토 ·

[제국의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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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을 읽고도 정반대의 생각을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나는 이미 여러 차례 내 블로그와 페이스북 게시판에서 이 소름 끼치는 [마녀사냥을 멈추라]고 호소했다. 2016년 벽두부터 또 [박유하 교수 9천만 원 배상판결], [피해 할머니 20억 회유] 등의 마녀사냥이 이어지는 한국 온라인 뉴스를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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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국의 위안부]를 읽지 않았다면 나도 어쩌면 마녀(?)를 향해 돌을 던지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사실 내가 [제국의 위안부]를 굳이 읽은 이유는 마녀(?)에게 바로 즉사할 짱돌을 겨냥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만들어 읽었다. 식상하고 따분한 이야기로 시작한 [제국의 위안부]를 인내심을 가지고 읽고 난 뒤 내 생각은 180도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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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시장바닥 쌈박질 수준의 원색적이고 선동적인 뿔난 빨갱이 때려잡자는 수준의 반일이야기만 접하던 나에게 [제국의 위안부]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일찍이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문제를 이처럼 차분하고 준엄하게 아프도록 지적하고 설득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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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을 입학 한지 2달 반 만에 5.18 최초의 희생자인 이세종 선배의 무참한 죽음 앞에서 금마 7공수에게 잡혀 근 5달에 걸친 불법 감금과 상상할 수 없는 구타와 고문을 당했던 사람이다. 이미 쓰여진 조서를 마치 내가 진짜 그랬던 것처럼 찢어지고 깨진 내 살과 뼛속에 녹여 버리려는 광기를 어찌해볼 도리없이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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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전라도 학생들을 선동하여 학생소요를 일으킬 목적으로 서울에서 김대중에게 50만 원을 받아 전라도 대학에 위장 입학했다”는 게 골자인 그 조서는 살인마 전두환이 대통령이 된 10월까지도 외우질 못해 그들의 조작은 무위로 끝나고 나는 살인마 전두환이 베푼 대국민 화합 차원으로 풀려나 망가진 몸을 이끌고 보안대 인후 공사 정문에서 내 어머니에게 인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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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를 읽으며 1980년 그 투라우마가 떠오르는 것은 차분하고 논리적이고 냉철하게 일본의 잘못을 지적해 가는 [제국의 위안부]를 일본의 앞잡이라 무고하는 꼴을 보기 때문이리라. 그에 그치지 않고 [일본에게 돈을 받았네], [20억으로 회유를 했네] 하며 한국의 사법부까지 한통속 장바닥 개싸움을 벌이는 꼴을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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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은 내가 느끼기에 상식적이고 양심적인 사람들까지 온갖 괴변을 동원해 가며 마녀사냥에 동참하고 있다는 게 슬프게 만든다. 그것은 내가 두 문단이 넘어가는 글을 써보면 한줄도 읽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소설을 만들어 댓글을 다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되는 점도 있다. 마치 모든 한국인이 정신과적인 문제를 가진듯이 말이다. 어쩌면 남의 글 한 문단도 읽어줄 여유가 없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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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한국인에게 적개심을 품고 언젠가 살인마 전두환을 비롯해 한국이 이 지구 상에서 사라질 그 날을 내 눈감기 전에 꼭 보겠노라는 심정으로 한국땅을 떠났으나 2003년 5.18 민주화 유공자로 한국이 화해를 청해오고 살인마 전두환이 권좌에서 내려온 뒤라 다시 한국과 화해를 시작해 오며 페이스북상이지만 감 놔라 배 놔라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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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을 상대하는 정치가나 딴따라들에게는 그리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온 정신을 모으고 자료를 구하고 하나하나 확인해 보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어느 길이 바른 문제 해결인가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나 같은 허접스러운 학문을 하는 사람도 미국에서 분에 넘치는 대접과 보호를 받는 데 국가의 도움도 없이 자기 혼자 마련한 [제국의 위안부]라는 연구 성과를 마녀사냥으로 뭉개버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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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유하(Park Yuha) 의 [제국의 위안부]에서 이런 외롭고 처연한 돌아봄에 분명히 일본의 지성들이 바른 답을 하리라 믿는다. 다시 한 번 이야기 한다. 한국의 원색적인 선동에 길든 인생 들이여, 제발 ‘마녀 사냥’을 멈추고 차가운 가슴으로 한국의 미래를 생각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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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현, 흠잡기 위해 읽어본 ‘제국의 위안부’ (동아일보)

혹시 일본 극우세력의 앞잡이는 아닐까, 한국 내에서는 ‘극우의 애완견’으로 조롱당하지만 매년 일본 입맛에 맞는 책을 출간하는 ‘오선화(일본명 고젠카)’ 같은 인물은 아닐까. 의심이 갔다.

2013년 8월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란 책을 일부러 나오자마자 샀던 이유는 흠을 잡기 위해서였다.

원문: [@뉴스룸/노지현]흠잡기 위해 읽어본 ‘제국의 위안부’ (동아일보)

김남훈, 언론의 자극적 제목에 넘어가 화만 내고 싶은 사람들

 

김남훈

December 30, 2015 ·

오늘자 CBS 라디오 ‘박재홍의 오늘하루’. 한 해를 정리하는 10대 이슈 중의 하나로 나는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기소 논란을 뽑은 것이 사전 녹음을 통해 방송된다. 타이밍이 얄궂다.

이 책은 결코 일본 극우들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책이 아니다. 난 이 책을 다섯 번 읽었고 박 교수를 세 번 만났다. 수 백 페이지에 걸쳐서 수십차례 이상 일본군과 일본정부의 ‘책임’에 대해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위안부의 모집과정에는 각종 기만,폭력,허위,납치 등등이 동원 되었을 것이다. 소녀상으로 표현되는 피해자들처럼 말이다. 난 할머니들의 말을 믿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다른 종류의 아픔을 갖고 계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부분에서 이미 나와 않는 사료등을 통해서 예외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기술했을 뿐이다.

‘똥인진 된장인지 찍어먹어야 아냐고’ 내가 좋아하는 이재명 시장이 이 사건을 일축한 적이 있다. 이런 식의 단순화,이분법으로 수많은 진보 및 야권 인사들이 용공 누명을 쓰고 언론의 융단폭격 및 수사까지 받았던 일들은 모두 잊어버렸나보다.

박 교수의 주장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토론, 논문 등등을 통해서 걸러내고 더 정교하게 서로 간의 주장에 대한 논거를 만들도록 해야하는게 맞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더 치열하고 강력한 합의 과정을 통해서 도출된 주장과 증거들로 일본을 압박하고 세계사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 않았을까.

‘난 그런거 모릅니다! 그저 할머니들의 아픔에 같이 눈물 흘리고 화내고 싶을 뿐입니다!’ 라며 예전에 내가 썼던 포스팅에 댓글을 달고 날 페삭한 분들도 계셨다. 비분강개 좋다. 그런데 내용을 알아보지도 않고 언론의 자극적인 제목에 넘어가면 화만 내다가 그나마 ‘같은 편’에게 저주를 퍼부으면 어찌하겠는가.

이 부분을 조금만 파보면 위안부의 숫자 자체에서부터 시작해서 모집방법 심지어 ‘위안부’라는 용어 자체까지 수 십년 동안 한국 내부에서 통용되는 개념도 계속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할머니들의 용기 어린 증언과 함께 많은 분들의 노력 덕분이다. 그리고 그 작업은 더 지속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기소를 통해 그 누구도 이 작업에 힘을 보태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데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불가역적이고 영구적인 ‘합의’를 덜컥 해버렸고 미국이 추인까지 해줬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장정일, ‘표현의 자유’ 함부로 차지 마라 (시사IN 라이브)

장정일 소설가

표현의 자유는 악용마저 포용하는 면죄부나 방어막이 아니다. 그렇다 해도 진실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나라는 OECD 가운데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앞으로 화두는 명예훼손죄여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무조건 옹호해야 하는 절대 가치인가? ①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②마호메트를 풍자한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 ③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④아이유의 <챗셔> 앨범 표지와 ‘제제’의 가사 ⑤광주민주화항쟁을 북한 특수군이 사주한 것이라는 넷 우익의 발언은 모두 보호받아야 할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일까? ①~④는 보호받아야 하는 표현의 자유라면서 ⑤에 대해서는 돌연 태도를 바꾸어 범죄로 규탄한다면, 그것은 절대 가치(표현의 자유)의 변덕을 폭로하는 것일까?

열거한 다섯 가지 가운데 옹호할 표현의 자유를 고른다고 해서, 이 가치가 원천적인 모순이나 한계를 지녔다고 말하면 안 된다. 예컨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①~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법정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나섰던 자유주의자는 나머지 네 가지 사안에 대해서도 똑같은 대우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조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의 원칙(여기서는 ‘표현의 자유’)이 모든 사례에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사람은 원칙을 물신화한 교조주의자이지 결코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자유주의자는 하나의 원칙에 모든 사례를 복속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개별 사례마다 자신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아이러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교조주의자들만이 ‘세트 메뉴’를 받아먹는다.

<즐거운 사라>(청하, 1992)의 지은이가 기소되었을 때, 나는 이 사안에 표현의 자유가 요청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한국 문학은 성을 이야기할 때조차 죄의식을 버리지 못하며, 죄의식을 한 자락 깔고 있어야만 문학성 있는 작품으로 대접받는다. 반면 마광수의 성문학은 한 점의 죄의식도 찾기 어려울 만큼 낙천적이고 유토피아적이다. 그의 성적 유토피아가 철저히 남성 중심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는 있지만, 나는 그의 소설이 음란으로 처벌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땅콩을 애인의 질 속에 넣어두었다가 꺼내 먹고 싶다는 기행은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던 방중술을 베낀 것이다. 전래의 비기(秘技)에서는 땅콩이 아니라 대추였지만 말이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나는 <샤를리 에브도>를 표현의 자유로 옹호했다. 중학교 때까지 여호와의 증인이었던 나는, 현재도 여호와의 증인이 어떤 기독교보다 나은 기독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괜찮은 종교는 괜찮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종교보다 인간을 더욱 억압한다. 그런 경험을 했던 나는 모든 종교에서 크고 작은 억압을 본다. 인류 역사는 이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구로 이주한 무슬림이 약자인 것은 맞지만, 마호메트는 약자가 아니다. 내가 옹호한 것은 약한 무슬림을 조롱하는 <샤를리 에브도>가 아니라,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풍자하는 <샤를리 에브도>였다.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 2013)가 출간되었을 때부터 검찰에 기소된 지금까지 나는 이 책과 지은이에 대한 일관된 지지자다. 이 책은 지은이를 기소한 검찰이나 비판자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위안부를 ‘자발적인 매춘부’로 규정한 적이 없다. 이 책은 일제의 총칼에 ‘강제 납치된 어린 소녀’라는 고정된 위안부 상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위안부 문제의 실체를 일제의 ‘조선 식민지 지배 성격’과 연관하여 설명한다. 자발적 매춘은커녕, 이 책은 시종일관 조선인 위안부가 인신매매에 넘어간 것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제시하고 있다.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제 딴에는 ‘정치적 올바름’의 화신인 양하는 어느 진보적 문학평론가가 지은이를 향해 “제국의 편인가? 위안부의 편인가?”라고 묻는 것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천안함 폭침’의 진실을 밝히려는 과학자들을 향해 “북한 편이냐? 전사한 애국자 편이냐?”라고 윽박지르는 보수 언론과 저 문학평론가의 포악은 같다. 박유하의 책을 비난하면서 자칭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원한다는 사람들의 뇌세포는 어떠할까? 학문의 윤리는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틈’을 고민하는 것이며, 진실이 생겨나는 자리도 거기다.

<챗셔> 앨범 표지와 그 앨범에 실린 ‘제제’의 노랫말도 표현의 자유로 옹호되지 못할 게 없다. 앨범 표지는 그동안 ‘롤리타’로 소비되었던 아이유가 관음증적 삼촌·오빠들에게 보내는 반격(당신들 이런 것 좋아하잖아?)이자, 여태까지 그 역할을 즐겨 맡았던 아이유의 자기 자신에 대한 풍자(내가 이러면서 인기를 얻어왔지!)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낸 출판사는 ‘우리 제제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며 펄쩍 뛰었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콧수염을 달아준 마르셀 뒤샹의 는 루브르 박물관의 항의를 받은 바 없다. <제제>의 노랫말이 소아성애와 연관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상상하는 것도 자유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배후에 북한 특수군이 있다고 주장하는 우익 칼럼니스트와 넷 우익은 처벌받아야 한다. 우선 이런 주장은 아무런 증거 없는 날조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주체였던 광주 시민의 평판을 고의적으로 해치려는 이런 날조는 당사자들을 북한군의 선동에 놀아난 폭도로 만든다. 또 이런 날조는 5·18을 민주화운동 기념일로 제정하고 그 가치를 기려온 민주 사회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고 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는 이처럼 개별적으로 검토되고 추인되어야 하는 것이지 악용마저 포용하는 면죄부나 방어막이 아니다.

박유하가 기소된 것은 현 정권의 국정교과서 사업이나, 국가의 탄압과 별 연관이 없다. 그가 기소된 것은 이 책으로 인해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생존 위안부 할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법은 공적 관심사와 공적 토론을 제공하는 학술 연구를 폭넓게 보호하려고 하지만, 학술 연구 가운데 특히 역사 연구는 사건이나 인물 해석을 놓고 당사자(혹은 후손)의 이익이나 명예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마다 지은이가 법정으로 불려가야 한다면, 학자는 안전한 연구만 하려 할 것이고, 그들이 낸 책은 암호문이 될 것이다. 게다가 법학자 박경신이 <진실유포죄>(다산초당, 2012)에서 강도 높게 비판했듯이, 한국에 엄존하는 여러 종류의 명예훼손죄는 진실과 허위를 따지지 않고 처벌한다. 이 법에 따르면 학자들은 진실을 말하고도, 타인이 듣기 싫은 말을 했다는 명목으로 유죄를 받을 수 있다. 진실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고 통탄하는 이 책을 보면, 앞으로의 화두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명예훼손죄여야 한다.

원문: ‘표현의 자유’ 함부로 차지 마라 (장정일, 시사IN 라이브)

[민사1심] 박유하, 최종답변서

재판장님

<제국의 위안부>내용중 34곳을 삭제하라는 가처분 판결이 끝나고 민사재판이 시작된 지 벌 써 반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저는 그러한 판결이 너무나도 부당한 것이었음을 답변서와 자료들을 통해 말씀드려 왔습니다. 가처분 판결에 대해서도 이의제기를 신청해 둔 상태입니다. 그런데 2015년 11월18일에는 그동안 이 사건을 조사해온 검찰이 저를 기소하는 사태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1월에 첫 공판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따라서 이 민사재판의 판결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재판장님도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원고측은, 2014년6월에 저의 책 내용이 ‘허위’이자 위안부할머니를 비난한 책이라면서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매춘’‘동지적관계’라는 두 단어를 강조하며 제가 위안부할머니에게 ‘피해자로서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나눔의 집 고문변호사는 저의 책이 그저 ‘한일간 화해’를 위한 책이며, ‘일본극우의 주장과 다르지 않’고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는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저는 전국민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은 오독이거나 곡해에 근거한 허위입니다. 그 사실을 저는 그동안 수많은 자료와 반론을 통해 항변해 왔습니다.

1.

저의 책은 위안부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하는 책이긴 커녕 한국과 일본의 식자들이 “오히려 할머니의 아픔을 더 잘 알 수 있었다”고 말해 준 책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가 책을 낸 목적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이제까지 이 문제를 부정하거나 무관심했던 이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일본정부관계자들에게 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 줄 것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썼던 것입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대편의 주장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20여년 동안 지원단체는 이 문제에 부정적인 이들의 말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책이 지원단체의 주장과 다른 점은 부정론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 그리고 그에 입각해 그들의 사고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비판하려 한 점입니다. 그러나 지원단체를 비롯, 저를 비판하는 이들은 그런 부분을 완전히 무시하고 오로지 조선인위안부에 관한 서술과 운동방식에 대한 비판만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리고 재판부와 검찰 역시 그러한 이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책이 정말로 그런 책이라면 한국에서 처음 발간했을 때부터 문제시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책 발간 후 10개월동안 그런 식의 비난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몇몇 언론은 호의적인 서평을 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일본의 지식인들과 한국의 지식인들마저 목소리를 내 주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측 항의 성명에 일본의 양심을 대표하는 고노전관방장관, 무라야먀 전 수상, 그리고 노벨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이 성명에 동참한 것은 저의 책이 원고측이 말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입니다. 성명에 참여한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저의 지인이 기도 합니다. 저의 인식이 위안부할머니들을 폄훼하는 것이었다면 이들과 지인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며 이들이 기소에 대해 항의성명을 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2.

고발은, 아직 학생신분인 젊은이들의 거칠고 조악한 독해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해방후 70년의 문제를 말한 부분을 할머니를 비난한 것으로 읽고 제가 할머니를 비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저는 ‘위안부할머니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로지 책을 올바르게 이해받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따라서 이른 바 “표현의 자유”를 말한 적도 없습니다. 저는 1년 반동안 법원과 여론을 향해 오로지 고발에 이르게 한 것은 “오독”이라고만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원고측은 처음에 “허위”에 중점을 두었던 고발취지를 중간에 바꾸어, 제가 전쟁범죄를 찬양했다면서 저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재판장님, 오독이든 곡해이든, 거짓을 말한 것은 원고측 대변인들입니다. 결과적으로 명예가 훼손된 것은 저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동안 고발의 배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을 말하는 일이 결과적으로 한국의 수치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가처분판결과 형사기소는 그러한 방식이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동안 하지 않았던 말을 일부나마 하려 합니다. 그리고 증빙자료도 제출 하겠습니다.

우선은, 원고측이 문제시 삼았던 인식이,실은 다른 위안부할머니의 인식이기도 했고 위안부 문제 발생 직후의 한국정부의 인식이기도 했다는 것을 말씀 드리려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이유는 제가 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위안부 할머니 중에도 저와 같은 인식을 가진 분이 계셨다는 것,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러한 분들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어서입니다.

한 위안부할머니는 저에게 “위안부는 군인을 돌보는 사람”이었고 “강제연행은 없었던 걸로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한 생각을 말하지 못했던 할머니가 계시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 서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구조가 우리 안에 자리잡은 지 20년 이상이 지났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위안부문제가 발생하자, 우리사회는 위안부할머니들을 50년동안이나 침묵하게 만들었다는 반성을 해 왔지만, 여전히 침묵의 강요상태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4.

저는 위안부를 징병과 같은 틀에서 생각해야 위안부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안부란 국가가 세력확장을 위해 개인을 동원해 신체와 성을 훼손시킨 존재입니다. 그러나 조선인군인과 달리 여성들에겐 그들을 보호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저의 책은 그 점을 근대국가시스템의 문제로, 그리고 남성중심주의적 제국의 지배와 여성차별의 문제로서 일본에 대해 책임을 물은 책입니다.

저는 강제동원인지 아닌지,소녀인지 아닌지 여부에 방점을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 점 에만 주목해 20년 이상 대립해 왔고 이제 차세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위안부문제 운동방식에 의문을 제기했을 뿐입니다.

제가 만든 개념을 위안부할머니들을 비난하는 개념으로 여기도록 만드는 것은, 그런 이들 안에 자리한 차별의식과 그 밖의 요소들입니다. 1992년에 한국정부가 만든 자료조차, 위안부에 관한 인식은 저와 비슷합니다.

5.

재판장님, 그래서 이제 저는 죽은 자료들 대신, 그러나 이제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목소리를 제출합니다. 이 사회에서 들으려 하지 않았던 목소리를 제출합니다. 저는 죽은 목소리를 복원하고자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책을 쓰고 나서 살아있는 목소리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들려지지 않았고 결국 아무 들어주는 이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점에서 죽은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저는 저에게 들렸던 그 목소리를 세상에 들리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역사와 마주하는 저의 방식입니다.

재판장님. 이 재판은 저와 위안부할머니의 싸움이 아닙니다.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운동가/학자와, 저의 “생각의 싸움”입니다.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다른 생각의 싸움”입니다.

따라서 이 소송을 기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의감에서 저를 비난한 사람들과,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저를 고발한 이들을 세상이 구별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정의로운 이들과, 식민지시대와 냉전시대를 겪어온 우리의 불행에 대해 다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15년 12월 16일

박유하

허문명, 韓日 진정한 화해를 위해 (동아일보)

허문명 동아일보 국제부장

세종대 박유하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를 알게 된 것은 본보에 칼럼을 연재 중인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사히신문 주필의 칼럼을 통해서였다.

그는 2014년 7월 31일 자 본보 칼럼 ‘나도 우익의 대변자라고 부르라’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글에서 ‘제국의 위안부’가 한국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되고 우수 도서로 지정됐던 박 교수의 또 다른 책 ‘화해를 위해서’의 지정을 취소하라는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박 교수를 우익으로 부른다면 나도 우익으로 부르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2007년 아사히신문사가 박 교수에게 상(오사라기 지로 논단상)을 줄 때 논설주간 자격으로 심사위원을 맡았었다며 “일본에서 상을 주면 박 교수가 친일파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하면서 심사숙고했다”고 했다.

와카미야 선생에 따르면 박 교수 책은 일류 지식인들로 통하는 심사위원 4명이 모두 호평을 했다고 한다. 일본인 출신으로 처음 미국 역사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일본의 과거사 침략을 질책해온 이리에 아키라 하버드대 명예교수 평은 이랬다고 한다.

‘학문적 수준도 높고 시사문제 해설서로도 균형이 잡혀 있다. 게다가 읽기 쉬운 문장으로 쓰인 보기 드문 수작이다. … 이런 책이 한국과 일본에서 출판됐다는 것은 양국 관계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기뻐해야 할 것이다.’

평소 와카미야 선생 칼럼의 애독자로서, 또 그의 균형 잡힌 한일관에 신뢰를 갖고 있던 기자는 일본인의 글을 통해 한국인의 책과 존재를 알게 된 것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자랑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당장 책을 사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바쁜 일상에서 곧 잊혀져 갔다.

그렇게 1년여가 흘렀고 박 교수를 다시 떠올린 것은 2일 “나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폄훼할 생각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기자회견 때문이었다. 서둘러 책을 구하러 교보문고에 갔지만 재고가 없었다. 관련 기사를 모두 검색하면서 책이 나왔을 당시 호평했던 국내 언론이 많았음에 우선 놀랐고 정작 박 교수와 책이 곤경에 처하자 변호하는 기사가 확 줄었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기자는 저자를 직접 만나 학자적 진정성을 확인하고 싶었다. 혹여 극단적 편향을 담고 있거나 인기(?)를 노린 욕심에서 출발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오로지 남과 다른 생각 자체만을 강조하며 뜨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한둘인가. 두 시간여에 걸친 대화를 통해 그의 학자적 양심과 진지함, 한일관계를 보는 진정성에 공감을 느끼게 됐고 그로부터 얻은 책 두 권도 꼼꼼하게 읽고 난 뒤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기사가 나가고 난 뒤 한일 양국의 지식인들로부터 칭찬과 격려도 많이 받았지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함께 ‘친일 기자’ ‘위안부 할머니에게 상처를 준 기자’에서부터 ‘고발하겠다’는 내용의 메일도 많이 받았다. 법과 공동체의 질서를 훼손하면서까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공익과 선의의 관점에서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이성과 논리를 앞세우자는 목소리가 이렇게 매도되는가 싶어 착잡했다. 새삼 박 교수가 처한 상황이 이해되면서 연민의 감정까지 느껴졌다.

거듭 말하지만 박 교수 책 어디에도 할머니들에게 상처를 주려거나 폄훼하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는 게 기자의 견해이다. 오히려 기자는 책을 읽으며 그동안 잊고 지내던 할머니들을 더 깊게 이해하고 해결책을 위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됐다.

‘제국의 위안부’ 재판이 한일관계의 미래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거듭 말하지만 학자의 양심에 법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는 일이다.

원문: [광화문에서/허문명] 韓日 진정한 화해를 위해 (동아일보)

배홍진, 순결한 피해자와 불결한 피해자

 

배홍진

December 11, 2015 ·

제국의 위안부 – 순결한 피해자와 불결한 피해자

나는 늘 궁금했었다. 취업사기 등으로 인신매매를 당해 위안부가 된 피해자들은 대중의 자연스런 동의하에 성노예라 불리기도 하는데, 똑같이 인신매매를 당해 매춘을 하게 된 여성들은 어째서 대중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지금까지 버젓이 매춘부라 인식, 호명되고 있는 것일까. 위안부와 그들(인신매매와 구조적 강제에 의해 매춘부가 된 여성)은 성적착취의 장소로 가게 된 과정과 자유의 박탈, 육체적 학대 등 그 피해 양상이 비슷한데 왜 매춘부는 성노예라 불리지 않는걸까?

여성들이 밤거리를 걷다가 인신매매를 당해 매춘부가 되는 일이 횡행했던 저 80년대,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매춘부를 더러운 년이라 손가락질 하곤 했다. 그건 그들이 피해자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몸이 많은 남자에 의해 이미 범해졌다는, 그런 여성의 몸은 불결한 것이라는 비겁하고 폭력적인 시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린 새로운 편견과 차별을 만드는 경계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족과 국가의 역사로 호명된 피해자 여성의 몸과 호명되지 못한 피해자 여성의 몸을 구분짓고 다른 시선으로 보게 만드는 경계. 만약 매춘부가 피해자임에도 여전히 매춘부라면 위안부 피해자들은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매춘이란 말은 어째서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희석하고 부정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금기어가 되었는가? 역설적으로, 동시에 매춘이란 단어는 어떻게 성노예의 순결한 정체성을 불결함으로부터 지키는 심리적 배제의 기제로 작동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한가지 이상한 코미디. 기지촌 피해자 여성들 중 노인의 연령에 이른 사람들을 이 사회가 공식적으로 기지촌 피해자 할머니들이라 부르는 걸 난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위안부 피해자를 할머니라 부르는 건, 그들의 역사적 비극을 가족주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가족인데, 어째서 기지촌 피해자들은 가족이 되지 못했는가.

오래전 불결(가부장의 시선 아래서)했던 피해자는 어떻게 순결한 피해자가 되었는가? 그리고 그것(인격의 회복)이 역사의 정의라면 어째서 순결한 피해자들은 불결한 피해자들을 타자화하는가? 그 차이를 만드는 이 정의로움은 우리 안의 어떤 괴물인가?

* 이 대단찮은 글을 쓰는데도 스스로 검열하고 사족을 단 말들이 너무나 많다. 약자에 대한 배려는 때로 약자에 대한 담론을 검열하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장정일, 개도 물어 가지 않는 ‘표현의 자유’ (한국일보)

소설가 장정일

지난 12월 2일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 2013)로 검찰의 기소를 당한 박유하씨의 기자 회견과 기소에 반대하는 지식인 성명이 함께 발표되었다.

기자 회견에 나선 저자는 정작 “표현의 자유를 침해 당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표현의 자유를 말한 적이 없다. ‘표현 자유’라고 말하면 아무 얘기나 다 써도 되는 거냐? 라는 질문이 돌아오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나 역시 ‘제국의 위안부’와 통합진보당 내란 사건에 대해 여러 번이나 쓴 적이 있지만, 한 번도 표현이나 사상의 자유를 내세워 이들을 옹호하지 않았다. 이런 일에는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결코 내세울 게 아니다. 그보다 윗길은 그들이 옹호되어야만 하는 가치를 적극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이다.

똥은 개가 물어가지만, 표현과 사상의 자유는 개도 물어가지 않는다. 원래 저 자유는 도로나 다리 같이 국가를 지탱하는 공적 기반이어야 하지만, 한국에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기반이 있다면 법이 쉽사리 나서는 일도 없겠지만, 걸리더라도 저 권리를 내세우거나 거기에 의지할 수 있다. 그게 없기 때문에 걸렸다 하면,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한다. 사회안전망이 없는 나라의 실직자가 스스로를 구제해야 하는 이치다. 이처럼 막상 경험하게 되는 현실은 정반대인데도, ‘한국에서는 언제부터인가 표현의 자유가 절대화 되었다’고 목청을 높이는 머저리들이 있다. 슬프게도 저런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진보 ‘먹물’이라니, 우습지도 않다.

박유하씨의 기소에 반대하는 지식인 성명 발표 때, 형사 기소에 반대하는 194명의 서명자 명단도 아울러 공개되었다. 저자를 형사 기소로부터 구하려는 저런 노력이 과연 박유하를 검찰의 기소로부터 자유롭게 해 줄까? 지식인의 서명을 진짜 귀중하게 여기는 사회라면 194명이 아니라 19명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검찰은 1만 9,400명의 지식인이 서명을 했다하더라도 꿈쩍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절판된 나의 에세이집 ‘생각’(행복한책읽기, 2005)에 이런 글이 있다.

“가야산에 골프장을 만드는 일을 반대하기 위해 100만인 서명 운동이 필요할까? 혹은 시인 이상화의 생가를 보존하기 위해 그게 필요할까? 박정희 기념관을 반대하기 위해서는 그것도 필요악일까? 열 명 혹은 다섯 명으로는 안 될까? 진정 단 한 명의 의견이라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고심하는 사회에서라면 100만인 서명 운동 따위는 우스갯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명 운동의 규모와 목표가 걸핏하면 100만인이 넘는 진풍경은 우리 사회의 병폐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100만인 서명 운동은 그것이 어떤 선의에서 행해지든지 간에 우리 사회가 물량과 물리적인 세(勢)가 득세하는 사회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처럼 머릿수가 말하기 시작할수록 소수 의견은 점차 설득력을 잃게 되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박유하씨의 형사 기소에 반대하는 지식인 성명과 서명자가 공개된 날, 저자의 검찰 기소에는 반대하지만 그의 책은 엄정한 비판이 필요하다는 반대편 지식인들의 성명과 서명자 명단도 공개 되었다. 비판자들은 저자의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이 적절치 않다면서도, 결과적으로는 형사 기소를 승인하는 모순을 범했다. 비판자들은 박유하씨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했지만, 토론장에서 피고 신분의 박유하씨가 고르거나 누릴 수 있는 말과 자유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반대자들이 자신들의 성명서를 학술장으로 이 논란을 불러들이기 위한 노력으로 자평한다면, 기만이다. 이들의 의도는 법정의 판결에 앞서 인민재판을 하겠다는 것이다. 죽창을 정의라고 착각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학제 연구가 모색된 지 오래인데도 불구하고, 저자가 역사가가 아니기 때문에 역사학계는 지금까지 박유하씨를 상대하지 않았다. 올해 벌어진 국정교과서 파동 때, 전국 대학교의 역사학과 교수들이 보여준 일치단결은 위안부 문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박유하씨의 박사학위 논문이자 첫 책인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문학동네, 2011)는 제목 그대로 학제 연구를 수행한 책이자, 같은 문제의식이 ‘제국의 위안부’에까지 이어지고 있으므로 반드시 읽을 필요가 있다.

원문: [장정일 칼럼] 개도 물어 가지 않는 ‘표현의 자유’ (한국일보)

와카미야 요시부미, 할머니의 명예는 훼손됐을까 (동아일보)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원문: [와카미야의 東京小考]할머니의 명예는 훼손됐을까 (동아일보)

와세다 저널리즘 대상 받는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무겁고 복잡한 마음의 상처 절절히 느껴져
미묘한 이야기를 예각적 표현을 섞어 집필
의도 오해받을 수 있었겠지만 모독했다는 생각은 안들어

배홍진, 담론의 독점시장에 대해

배홍진

December 9, 2015 ·

제국의 위안부 – 담론의 독점 시장에 대해.

상품 시장에만 독점기업이 있는 게 아니다. 우수어린 신념과 정의감, 투사적 역사의식이 착종된 사회에선 담론시장에도 독점기업이 등장한다.

역사담론 시장의 독점적 자본주의 기업. 그들의 자본은 살아있는 피해자이고, 그들이 판매하는 상품은 미리 특허를 받아둔 역사의 진실이며, 그들이 교란하는 시장은 역사 담론의 자유로운 교환이 이뤄줘야 할 논의의 장이자, 바로 우리 의식 속 사유의 시장이다.

시장을 독점하는 기업은 경제시스템에서 시장을 추방한다. 진실을 독점하는 담론은, 정의롭게, 사명감을 가지고 진실의 옷에 맞지 않는 인간들을 담론의 지평에서 배제한다.

양한승, 검찰 기소 취하를 바라며

양한승

December 17, 2015 ·

나눔의 집은 학자의 책을 마치 연예인의 실언처럼 취급했다. 학교를 사직하고 나눔의 집에서 봉사할동이라도 시키려 했던 모양이다. 아픈 역사의 기억을 무기로 타성어린 여론매질과 고소장부터 남발한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통념을 바꾼 박유하교수의 연구서 ‘제국의 위안부’는 명예 문제가 아니라 사상이 쟁점이다. 내셔널리즘보다 젠더 입장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에 부합하는 관점이다.
정부 또한 새삼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안다. 하지만 광장에서 무르익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검찰 기소를 취하하고 사법부의 판단 오류를 최소화시켜야 한다. 역사는 법복을 입은 일단의 사람들이 ‘예, 아니오’를 결정하는 성질이 아니다.

[뿌리와이파리 정종주 대표] 제국의 위안부 형사기소에 대한 사실관계 및 기타 사항 공유

Jong-joo Jeong

December 6, 2015 · 

엊그제, ‘나눔의집’ 쪽에서 최근 한국-일본에서 나온 <제국의 위안부> 형사기소에 대한 항의성명과 관련하여 ‘입장’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박유하 교수가 따로 얘기를 하시리라 생각하지만, 우선 제 짧은 소견으로나마 사실관계를 포함한 몇 가지 점만 말씀드려두겠습니다.

  1. 벌써 1년 반이 되었습니다만, 저는 줄곧 이 책이 담고 있는 ‘사실’과 ‘의견, 주장’ 모두 법정에서 다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씀드려왔습니다. ‘사실’은 확인하면 될 일이고, ‘의견과 주장’은 공론장에서 비판하고 토론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2. 나눔의집 쪽은 입장 표명에서 “이번 사안의 본질은 과연 박유하가 사실과 다른 표현을 하여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느냐입니다”라고 말씀하셨고, 작년 6월의 출판금지 가처분신청과 민.형사 고소 시점부터 이 책이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해오셨습니다.(가처분신청 심리 중간쯤에 박유하 교수의 반박 답변서 제출 이후 ‘신청 취지’를 ‘변경’하실 때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아니라 저자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고 전쟁범죄를 찬양’했다는 식으로 바뀌어 정말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하지만 이미 박유하 교수가 여러 차례 밝혔고 법원 및 검찰 답변서에서도 상세히 기술했듯이, 이 책에 언급된 어떤 내용도 근거 없는 ‘허위의 사실’이 아닙니다. 이와 관련하여, 박 교수는 어느 월간지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결국 이 기사는 실리지 못한/않은 것으로 압니다).

-문:위안부 강제연행은 포주나 업자들의 취업 사기와 인신매매가 더 많았다는 식의 주장을 했는데, 근거가 있습니까.

-답: 제가 책에 인용한 증언집은 기존 위안부 지원단체나 연구자들이 낸 것입니다. 이걸 거짓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동안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은 모두 허위를 바탕으로 이뤄져 온 것이라고 인정하는 게 됩니다.

또한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도 목적도 없었습니다. 특히 위안부 할머니들을 <“자발적인 매춘부”, “일본의 승전을 위하여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전쟁을 수행하였다”고 하는 여러 표현들>이라고 썼다는 ‘거짓말’을 비롯한 ‘허위의 사실’ 여부와 관련해서는, 원고 측과 검찰이 들고 있는 이른바 ‘범죄일람표’와 거기에 대한 반박을 곧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1. 2015년 봄부터 몇 달 동안 진행된 검찰의 형사조정 과정과 관련해서도, 나눔의집 쪽에서 내놓은 입장은 저희가 아는 바와 다릅니다.

나눔의집 쪽은 “① 박유하의 진심어린 사과 ② 왜곡된 표현을 한국이나 제3국에서 사용하지 마라는 2가지 요구만을 하였고 박유하가 이를 수용한다면 진행하고 있는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을 모두 취하 하겠다고 까지 하였습니다”라고 쓰셨습니다.

형사조정위원회에서 나온 조정안들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만, ‘조정 불성립’으로 끝나게 된 가장 결정적인 문구는 “가처분사건의 결정주문 제1항에서 금지한 행위를 한국 내외에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하지 아니한다”였습니다. ‘한국 내외에서 직.간접적으로’ 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곧 한국에서 ‘삭제판’도 출판하지 말고, 비슷한 표현을 앞으로 나라 안팎에서 직/간접적으로 하지 말 것이며, 결정적으로 한국어판과는 구성도 문장도 다른 ‘일본어판’마저 절판시키라는 요구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예 입을 다물라는 요구였지만, 박유하 교수는 ‘일본어판’과 관련된 요구 말고는 모두 수용하려고까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조정안의 전문과 1항, 2항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 사건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피해자인 위안부할머니들이 겪었던 형언할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깊이 공감하고, 20년이 넘도록 갈등을 거듭해온 위안부 문제가 고령의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조속하게 해결되어야 한다는 데에 뜻을 함께하고 이를 위해 일본정부의 명백한 사죄와 보상의 행동을 촉구한다.

한편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한일양국간의 위안부 문제의 원만한 해결과 동시에 양국 시민들의 상호 이해와 우호협력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는데 공감한다.

이에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다음과 같이 조정하여 이 사건을 원만히 해결한다.

1) 피고소인들은 피고소인 박유하가 저작하고 피고소인 정종주가 출판ㆍ배포한 책인 ‘제국의 위안부’(이하 ‘이 책’ 이라 한다.)로 인하여 고소인들을 포함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하였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것에 대하여 고소인 및 위안부할머니들께 진심으로 사과하고 아울러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2) 고소인들은 피고소인들이 이 책을 저작ㆍ출판ㆍ배포한 목적이 위안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역사 인식을 내놓는데 있었고, 위안부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할 적극적 의도나 목적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아니한다.”

  1. 박유하 교수도 저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모진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눈 감고 있지 않습니다. 저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아흔 살이 넘은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한시라도 일찍 한일 간에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어제 새벽에 돌아가신 최갑순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저는 <제국의 위안부>가 법정에서 단죄당하는 것이 아니라 공론장에서 토론되고 비판받고 논박하는 ‘공개토론’을 통해서 진정한 해결책을 함께 찾고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 일동’의 여러 선생님들도 “원칙적으로 연구자의 저작에 대해 법정에서 형사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단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공개토론을 제안하셨으니, 모쪼록 이 사안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배홍진, 오독과 표현의 자유에 관해

 

배홍진

December 5, 2015 ·

제국의 위안부 – 오독과 표현의 자유에 관해..

제국의 위안부 사태는 엄밀히 말해 학문과 표현의 자유의 문제는 아니다. 실상 저자와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가부장적 시스템과 이데올로기, 제국주의와 식민의 문제, 민족주의(저자는 반일과 혐한 민족주의, 비판자들은 일제에 의한 조선인의 차별)와 그 폭력의 문제를 동일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같은 대상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거기서 도출한 결론도 문제해결의 방법론을 제외하곤 그다지 다르지 않다. 다만, 저자는 문제의 맥락을 심화하고 그 외연을 넓혀 그동안 분명 알고 있었으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거나 외면하고 있었던 것들을 상기시키고 있을 뿐이다.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그 지점에서부터 비로소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실 저자와 비판자는 아예 서로 상반되는 적대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한 마디로 표현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오독 혹은 왜곡의 문제란 것이다. 표현 자유의 문제가 되려면 적어도 그 누구들처럼 무궁화회 할머니들을 제외한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은 가짜다, 이 정도까진 얘기해야 한다.(내가 한말이 아니다. 세상에 오독이 범람하여, 이런 구질구질한 사족을 덧붙인다.)

그럼 오독 왜곡의 문제가 어째서 표현의 자유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일까. 어째서 오독이, 오독한 문장을 공권력으로 구속하려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 오독의 주체들은 왜 자신이 표현의 자유를 구속한 건 아니라고 알리바이처럼 깨끗한 손을 내미는 것일까? 고발과 기소는 전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했다고, 마치 그게 정의의 실현인양 목청을 높이며 외쳐대는 것일까? 난 여기서 왜 자꾸 학창시절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이간질하던 얘들이 생각나는 것일까. 제국의 위안부를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세상에 편견과 분노를 일으키더니 그게 학문의 자유를 침탈하는 문제로 번지자, 이번엔 반대로 고발은 할머니들이 했다, 라고 사방팔방 떠들며 학문의 자유는 존중한다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것도 정도껏.
내가 이 상황을 일부러 비틀어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치 친일파의 얼굴을 고발하듯 전면에 나섰던 이들이 정작 중요한 순간에 피해자 할머니들의 얼굴 뒤로 숨어 고개만 삐죽 내밀고 할머니들의 권리야, 어쩔건대, 라고 떠들고 있는 모습은 글쎄, 별로 솔직해 보이진 않는다.

오독 왜곡의 문제가 표현의 자유의 문제를 핵폭탄처럼 터트렸다. 사실 문장을 오독하면 오독한 걸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그러나 이번엔 오독이 맹수처럼 달겨들어 문장을 넘어 책 자체를 잡아먹어 버렸다. 어째서일까? 혹시 그건, 위안부 문제가 지금까지 굳건히 믿어왔던 거와는 달리, 악랄한 가해와 숭고한 피해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고 해결도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이 그 복잡의 해결책으로 단 하나의 깔끔한 정답만을 믿어온 사람들은 단순의 가면 아래서 숨막혀하던 복잡의 얼굴을 누군가 꺼내려 할 때 분노하고 두려워한다. 그때 그들은 단순의 가면을 벗기려는 사람의 몸짓을 극단적으로 과장해서 보게되고, 그 과장된 몸짓이 온 시야를 무섭게 압도하기 때문에 그들은 맹수처럼 달려들어 그 과장의 몸짓을,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신기루를 물어뜯는다. 그 몸짓, 신기루의 뒤편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자신들이 허상 혹은 오독을 물어뜯을 때, 죽는 건 더이상 허상이 아니란 걸 모르고……

때로 오독하는 사람은 자신이 오독한 내용을 두려워 한다. 그리고 그 오독의 내용을 주둥이 수세미로 빡빡 지우려 한다.

배홍진, 문맥의 창조적 오독에 대해

배홍진

December 5, 2015 ·

제국의 위안부, 문맥의 창조적 오독에 대해

텍스트는 다양한 문맥의 핏줄들로 짜여진 복잡한 유기체다. 하나의 텍스트를 읽을 때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문맥만 따라가다 아뿔사 창조적 오독에 빠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문맥의 지도를 섬세하게 짚어가며 텍스트의 의미망을 객관적으로 포착하기도 한다.

제국의 위안부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자꾸 쓰지도 않은 자발적 매춘부다란 표현을 고집스럽게 물고 늘어지는 건, 그들 말대로 어떤 문맥이 그들에겐 그렇게 창조적으로 읽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뭐, 그렇다 치자. 그럼 왜 그들은 자발적 매춘부로 읽힐 수 있는(편협한 오독이지만) 문맥만 읽고, 그 문맥을 전반적으로 둘러싸고 있는 여러 다양한 층위의 문맥들은 읽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일테면 위안부란 가부장적 제국주의와 식민지가 만들어낸 명백한 피해자들이며, 설령 그곳에서 형식적인 자발성이 있었다 해도, 그건 국가와 계급, 남성권력이 벼랑으로 내몬 가혹한 자발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리고 이 외에도 일본과 제국과 식민지의 모순을 신랄하고 꼼꼼하게 비판한 다른 수많은 문맥들은 왜 읽어내지 못했는가? 아니 읽으려 하지 않았는가. 쓰지도 않은 자발적 매춘부란 말을 문맥에서, 무슨 달걀 꺼내듯이 마구 끄집어낼 정도로 창조적인 독해를 할 줄 아는 양반들이 우째서 다른 문맥들은 개무시를 하고 휑 지나갔는냐 말이다. 참으로 아리송한 일이다.

아리송하지만, 요건 분명히 말하고 싶다. 역사의 정의란 미명하에, 한 학자를 마녀재판의 가혹한 불길로 몰아넣을 정도로 당신들은 확신하고 있는가? 당신들이 그 놀라운 문맥을 본 곳이, 당신들이 손에 들었던 그 책의 지면인지, 혹은 그 책을 냉소적으로 내려다 보던 당신들 눈동자의 심연인지…..

Yong Kyun Kim, 현재에도 자행되는 구조적 폭력

Yong Kyun Kim

December 4, 2015 ·

무하마드를 풍자한 <샤를리 에브도>가 모독한 건 신이 아니라 그 신을 추앙하는 신도들이었다. 신성모독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 신에게 불경을 행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을 때, 그로인해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할 때, 그가 모욕한 건 정작 신이 아니라 그 신의 절대성을 절대적으로 숭배한 나머지 그의 이름조차 입에 올릴 수 없었던, 세차게 돌을 던지는 바로 그 군중들 자신이었다.

<제국의 위안부> 사태를 바라보며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된 까닭은, 위안부 할머님들이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느꼈다는 사실 자체를, 그리고 그분들이 자신들이 당한 피해에 대해 민형사상 법적 구제를 청구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내가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할머님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느낀 것은 하나의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하나의 사실 이상이기 때문이다. 아니, 위안부 문제가 수천여 명의 위안부들의 개인적 경험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문제가 되어버린 이상, 그것은 단지 하나의 사실에 그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인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가 공격한 건 위안부 할머님들이 아니라, 일본순사에게 끌려가는 열네살 소녀이자 일본대사관 앞에서 사죄와 배상을 외치는 칠순 투사로, 그렇게 단일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우리 안의’ 위안부였으며, 그 박제화된 이미지에 사로잡혀 다른 어떤 해석의 시도조차 용인할 수 없었던, 박유하 교수를 향해 사정없이 돌을 던진 군중들 그 자신이었다. “할머님들이 피해를 입었다”라는 사태 자체와 바로 그 진술을 대변하는 단체, 학자, 정치인, 그리고 수많은 군중들이 내보이는 할머님들에게 투영된 피해의식을 구분하는 건 따라서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명예훼손을 당한건, 그리고 그 피해의 구제를 바라는 건 누구보다 바로 그들이다. 이 점에서 이번 사태는 법적 문제 이전에 정치적 문제인 것이고, 이를 법적 문제로 환원하려는 시도에 대해 나는 반대한다.

어디 위안부 문제 뿐이겠는가. 굴곡의 한국 현대사 장면장면마다, 하나의 ‘올바른 역사 해석’에 도전해 그 획일화된 단순한 이미지 속에 감춰져 있던 수많은 다양한 진실들을 누군가 들춰낼 때마다 그 재해석되는 역사 속의 인물들의 명예는 그럼 어떡해 해야 하나. 아직 살아있는 ‘건국 공신들’의 명예는 훼손되어도 상관없는가. 4.3 항쟁은 모두 ‘무고한’ 양민이었고 군경은 ‘모두’ 학살자였는가. 베트남전에 참전해 나라를 위해 목숨걸고 싸웠던 것을 평생의 명예로 살아온 월남용사들을 이제 와서 베트남 양민을 무참히 살해한 전쟁범죄자라고 말한다면 그분들의 참혹히 무너진 명예는 그럼 중요하지 않은가. 이 모든 문제들을 법정으로 가져가 누구의 명예는 어떤 주장, 어떤 표현에 의해 훼손되었음이 인정되기에 삭제하고, 보상하고, 인신을 구속해 죄값을 치르게 해야 맞는 것인가.

내가 생존해 계시는 위안부 할머님들의 아픔을 단 1센티라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동시엔 난 위안부 할머님들이 명예훼손으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입었다며 이의 법적 구제를 옹호하고 있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같은 고백을 할 것을 요구한다. 올해 봄 <제국의 위안부>를 읽기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내가 가지고 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지식과 관심 수준은 한국 국민 평균을 결코 넘어서지 못했다. 할머님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깊은 연민을 가지고 그분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14세 소녀를 강제로 끌고간 일본 순사에 대한 분노에 치가 떨리는 대신,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처음으로 그분들이 아팠다. 의붓아버지 손에 위안부로 팔려가는 걸 옆에서 눈감았던 자기 어머니를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는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에 마음이 무너졌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여동생을 두들겨 패고 책을 모두 불태워 버린 오빠를 피해 결국 학교가 아닌 위안소에서 성노예로 청춘을 보내야 했던 또 다른 할머니의 증언을 읽고 그 오빠를 대신해 사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꼭 분노가 아니어도 좋지 않은가. 그분들의 아픈 과거를, 우리의 잘못된 역사를, 그리고 여전히 자행되는 구조적 폭력을 조금이나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래서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로 그분들이 바라는 것이 아닐까. 난 그렇게 간곡히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국의 위안부』 형사 기소에 대한 지식인 194명 성명

2015년 11월 19일, 서울 동부지방 검찰청은 세종대 박유하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군 종군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묘사하고 일본군과 종군위안부를 “동지적 관계”로 표현하였다는 이유로 저자를 형법상의 명예훼손죄로 기소하였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 17일, 서울 동부지방 법원은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학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로 『제국의 위안부』의 내용 가운데 서른네 곳의 삭제를 명하는 “가처분 신청 일부인용”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 일련의 조치에 대해 우리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선, 검찰 측에서 제시한 기소 사유는 책의 실제 내용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습니다. “자발적 매춘부”라는 말은 저자 자신의 것이 아니라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인사들을 비판하기 위해 저자가 그들의 발언 중에서 인용한 것이며, “동지적 관계”라는 말은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된 식민지 조선인의 사정을 그 전쟁의 객관적 상황에 의거해서 기술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입니다. 검찰이 과연 문제의 책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기소 결정이 과연 공정한 검토와 숙의의 결과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공론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책입니다. 특히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집단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마이니치 신문이 주관하는 아시아태평양상, 와세다 대학이 주관하는 이시바시 단잔 기념 저널리즘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국내 출판사 마흔일곱 곳이 참여하는 모임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책의 삭제판 출간이라는 오늘의 출판현실에 주목하여 이 책을 올해의 책 중 한 권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의 주장에 논란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학술적으로 보다 철저한 조사와 정교한 분석을 요하는 대목이 있을 수 있고, 국내외의 이런저런 정치사회단체의 비위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군위안부는 당초부터 갈등을 유발할 요소를 가지고 있는,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까다로운 사안입니다. 이 사안을 다루는 합리적인 방법은 어느 특정 정치사회집단이 발언의 권위를 독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표출되고 경합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검찰의 기소 조치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사법부가 나서서 종군위 안부 문제에 대한 여론을 국가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와 발언의 자유가 당연히 제한을 받을 것이고, 국가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주장들이 진리의 자리를 배타적으로 차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종군위안부 문제의 범위를 넘어 역사 문제 일반과 관련해서도, 국가가 원한다면 시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도 무방하다는 반민주적 관례를 낳을 것입니다.

한 학자가 내놓은 주장의 옳고 그름을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발상은 너무나도 시대착오적입니다. 우리 사회는 1987년 권위주의 정권을 퇴출한 이후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민주적 관례와 제도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으며 사법부를 포함한 국가 기구 또한 그러한 사회적 진보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검찰이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를 형법 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것은 그러한 민주화의 대세에 역행하는 조치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시민들과 함께 박유하 교수에 대한 기소 사태를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부디 검찰의 기소가 취하되기를 바라며,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2015년 1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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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목사)

총 서명인 194명

장정일, ‘제국의 위안부’ 기소에 부쳐 (한국일보)

장정일 소설가

지난 11월 2일 서울에서 이루어진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의 철거를 요청했다.

2011년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총리간의 정상회담에서도 노다 전 총리가 똑같은 요구를 한 적이 있다. 한국 언론은 대사관 앞의 소녀상이 일본의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맺고 대사관을 설치하기로 했을 때, 두 나라는 대사관 지위와 주변 관리에 대한 각서를 교환했을 것이다. 대사관 주위는 대사관을 설치한 나라에 대한 공격이나 혐오가 금지된 공간이다. 그렇지 않다면 전 세계의 대사관 주위는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전장이 될 것이다. 알다시피 지구상에는 한일 두 나라와 버금가는 앙숙이 많은데, 모든 나라가 한국을 모범 삼는다고 생각해보라. 선전 포고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서로에 대한 우호가 가정(假定)되어야 하는 상징적인 공간이 대사관이다. 일본 총리의 요구는 외교 각서와 국제 외교 관례에 근거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아베 총리가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해 달라고 요청한 의도도 깊이 따져봐야 한다. 아베 총리의 요청이 진심이고자 했다면, 정상회의에 앞서 한국 정부와 한국민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선물을 가져 와야 했다. 하지만 그는 올 한 해 동안 일본 정부가 군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했던 ‘고노 담화’를 뒤집으려고 애썼던 장본인이다. 그랬던 만큼 자신의 요구가 어처구니없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저런 ‘쇼’를 한 것은 자신의 지지 기반을 넓게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은 일본 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이 일본의 목에 걸린 ‘가시’라고 여기지만, 아베와 같은 우익 세력에게는 ‘알박기’처럼 흥감한 일이다. 자국의 대사관 앞에 설치된 ‘혐오ㆍ적대’ 시설은 평범한 일본인마저 혐한으로 돌아서게 해주니 말이다.

여기에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했던 어떤 충고를 대입해 보자.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백성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것은 이루기 힘든 희망 사항이라고 한다. 그래서 제시한 차선책이 백성들로 하여금 군주를 ‘두렵게(공포)’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군주가 반드시 피해야 하는 최악은 백성들이 군주를 ‘경멸’하게 되는 사태라고 했다. 일본 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은 일본인들로 하여금 한국을 경멸하게 만든다. 위안부 문제의 진실과 상관없이 일본인은 한국을 ‘제 멋대로’라고 생각할 것이다. 일본인들로 하여금 한국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방법은 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하는 대신, 전국의 마을마다 하나씩의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는 것이다. 아마도 식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승만 이래 친일파가 득세해온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갈등은 민족주의를 동원할 수 있게 해주는 자산이다. 현재의 한일 정부에게는 소녀상이 필요하다.

2011년 12월 14일 처음 세워진 일본 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위안부 소녀상)은 커다란 일을 했다. 이 동상이 있었기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탄력을 받았고, 해외로까지 동상 건립이 이어졌다. 하지만 적당한 계기에 이 동상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나도 이제부터 친일파가 되는 것일까? 제대로 된 사회라면 더 많은 이견을 환대해야 한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 2013)는 올해 2월 법원으로부터 34곳을 삭제하라는 판결을 받고, 6월에 복자(伏字) 처리가 된 삭제판을 냈다. 그런데 처음에 지은이를 고소했던 위안부 관련 단체는 ‘복자 처리’가 자신들을 농락한 것이라며, 출판 중지를 요구했다. 일제 강점기에 복자 처리된 책이 꽤 나왔으나, 일제 경찰도 그것마저 트집 잡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검찰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저자를 기소했다. ‘제국의 위안부’가 민족ㆍ국가ㆍ남성이 독차지해 온 공식 역사와 다른 목소리를 내다보니, 위안부에 대한 고정된 상식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이견이 없으면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 사상이 생겨날 수 없다.

원문: [장정일 칼럼] ‘제국의 위안부’ 기소에 부쳐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