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곰치
Author: Editorial
오에 겐자부로 “일본은 후진성 인정해야” 『익사』 발간 기념 기자 간담회
장정일, 박유하 논란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 (한겨레신문)
장정일 소설가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지음/뿌리와이파리 펴냄(2013)
지난 2월17일,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가 출판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았다. 그러자 이재명 성남 시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트위터에 “어쩌다 이런 사람과 하나의 하늘 아래서 숨 쉬게 되었을까”라면서, 지은이를 “청산해야 할 친일 잔재”로 몰아 세웠다. 그러면서 책을 읽어 보았느냐는 누리꾼에게 “똥은 안 먹고 냄새만으로 압니다”라고 일갈한다. 여러 우익 단체들이 아무 근거 없이, 단지 ‘냄새’가 난다는 직감만으로 그를 ‘빨갱이’라고 확신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더 슬픈 것은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학과 교수가 <한겨레> 2월26일치에 쓴 칼럼이다. 그는 그 글에서 박유하가 “조선인 위안부가 군수품이었다면, 강간당한 네덜란드 여성이나 중국 여성은 전리품”이었다는 논지를 폈다고 주장하는데, 이 책 219쪽에 있는 저 대목은 위안부 제도를 운영했던 일본군의 기본적인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지 지은이의 것이 아니다. 또 조한욱은 지은이가 위안부 형성 과정을 기술하면서 전적으로 “제국주의 일본 정부의 사료”에 의지했다고 비난하고 있는데, 위안부 형성 과정을 다루고 있는 대목에서는 제국주의 일본 정부의 사료가 단 한건도 나오지 않는다.
지은이가 <제국의 위안부>를 쓰면서 기본으로 삼은 사료는 1993~2001년 사이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출간한 군위안부들의 <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다섯권이다. 현재 강제납치와 매춘 여부를 둘러싸고 지은이가 ‘나눔의 집’ 할머니들에게 명예훼손으로 피소된 사항들은 모두 이 책을 근거로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나보고 배급을 타가라던 이장 아들이 계집애가 있는 집을 다 가르쳐 준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 사람이 주인이 돼갖구는 얼마나 나를 뚜들겨패는지 몰라. 손님을 안 받을라 한다구.”, “주인은 한국 사람이었어.”, “한국 사람들이 더 나뻤어요. 우리를 팔어묵었으니께.” 등등.
<증언집>에서 출몰하는 이런 증언은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출판금지 조처가, 강제납치 되어 성노예가 되었던 ‘나눔의 집’ 할머니들과는 다른 무수한 할머니들의 기억과 목소리를 빼앗는 일이라고 말해준다. 지은이는 ‘나눔의 집’ 할머니들이 강제납치 되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이 군위안부의 “평균적인 모습이 아니”라고 할 뿐이며, 이 주장은 딱히 지은이의 것만이 아닌 이 분야의 상식이 된 지 오래다.
2003년, 일본에서 출간되고 이제야 번역된 윤명숙의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이학사, 2015)는 “조선인 군위안부의 징모(국가에서 특별한 일에 필요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일) 형태는 군인·헌병·경찰의 납치로 이루어지는 형태보다 징모업자의 취업 사기로 이루어지는 형태가 압도적”이었다고 말한다. 군인에 의한 강제납치가 일반적이 아니었다는 사정은 그만큼 많은 한국인들이 징모에 협조했다는 뜻이며, 윤명숙의 말에 따르면 그 일을 직시하는 것은 “친일 세력(도지나사 경찰 등)”에 대한 책임 추궁과 간접적으로 연결된다. <제국의 위안부>는 우리가 외면하려고 하는 일제 36년의 성격을 마주보게 한다. 위안부 논쟁에서 일본을 이기는 방법은 그들보다 우리가 더 많이 아는 것이고, 백전백패하는 방법은 일본이 아는 것을 우리가 모르는 체하는 것이다.
김규항, 역사의 거울 앞에서 (경향신문)
‘제국의 위안부’ 토론과 논쟁 사이
맥락 생략된 텍스트 읽기 애석
상징체계가 주입한 습관 깼으면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토론과 논쟁에서 ‘텍스트는 컨텍스트(맥락)와 함께 읽어야 한다’는 텍스트 읽기의 기본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건 애석한 일이다. 맥락이 생략된 텍스트 읽기는 오독이나 악의적 왜곡에 이용된다. 특히 이 책처럼 민감한 사회적 주제를 담은 텍스트인 경우, 논쟁은 주제와 관련하여 이미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문화적 상징체계에 포획되어 버린다. 다들 진지하고 열띤 얼굴로 견해를 말하지만 실은 그 상징체계가 주입한 이런저런 주문을 암송할 뿐이다.
눈곱만큼이라도 유의미한 논쟁이 되려면 상징체계를 박차고 나가, 비로소 내 견해를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그 주제에 대한 나의 즉각적이고 단순명료한 반응과 판단을 의심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제국의 위안부>에서 가장 문제가 된 ‘매춘부’ ‘동지적 관계’ 등 텍스트 조각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책의 적확한 요약이 되기도 하고, 책에 없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보수 세력은 오랜 권위주의 독재 시절을 통해 반일 정책을 표방하며 일본 극우세력과 야합하는 이중 전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그들의 겉 다르고 속 다름을 개탄하는 데 그치는 건 그들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다. 문제는 ‘반일’이라는 개념 자체의 기만성에 있다. 일제 식민지 경험은 한국 민족과 일본 민족이 아니라 일본 지배계급과 한국 민중 사이의 일이었다. 일본 민중 역시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되고 착취당했으며, 한국의 지배계급은 일본 지배계급과 이해를 같이했다. 해방 후 지배계급으로 남은 그들은 모든 것을 민족 간의 문제로 은폐하고 기만했다.
그런 기만은 진보 세력에게도 답습된다. 한국 사회가 일본 제국주의에 이어 미 제국주의의 지배와 영향을 받게 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진보 세력 안에서 한국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이 중첩된 사회’라 해석되곤 했다. 진보 운동은 ‘민족주의+진보(계급)’라는 모순적 상태를 지속해왔다. 그리고 민족주의를 계급이라는 ‘체’로 제대로 걸러내지 못함으로써 진보(계급)의 괴멸도 지속되었다. 조직노동(민주노총)이 비정규 불안정 노동이라는 노동자 계급의 보편적 현실을 외면하고, 진보정당이 분당과 합당을 반복하면서 지리멸렬해진 내적 원인도 결국 그것이다.
‘민족주의+진보’의 폐해가 얼마나 깊고 광범위한가는 ‘디아스포라’에 천착하는 재일 지식인 서경식이 박유하 비판의 물꼬를 텄다는 사실과, 한국의 진보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단호한 계급적 관점을 고수해온 박노자가 이 논쟁에서만은 ‘탈계급적’ 태도로 일관한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두 사람은 박유하의 견해가 일본 우익에 봉사한다는 식의 비난과도 선을 긋지 않는다. 어떤 사회적 견해가 사회적으로 악용될 소지를 우려하는 건 필요한 일이나, 반대와 금지의 근거로 삼는 건 파시스트의 방식이다. 한국 민주화운동에 대한 반공극우 세력의 주요한 탄압 논리는 ‘북한에 봉사한다’였다.
<제국의 위안부>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으로 대변되는 기존의 위안부 문제 활동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정대협의 활동은 ‘위안부 소녀상’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소녀상이 담은 ‘순결한 소녀’라는 정체성은 사실관계와 문제의 본질을 동시에 거스른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동정녀든 창녀든 예수의 어머니이듯, 모든 생존 위안부는 ‘순결한 소녀’라는 정체성에 부합하든 안 하든 위안부 문제의 피해자다. 일본의 보상금을 받은 위안부에 대한 정대협의 부당한 태도는 위안부 운동이 생존 위안부를 위해 존재하는지, 생존 위안부들이 위안부 운동을 위해 존재하는지 되묻게 한다.
‘민족주의+진보’의 수렁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국의 진보적 인텔리들이 아우슈비츠의 학살자 아이히만 재판 당시, ‘민족 배신자’로 매도되면서도 ‘악의 평범성’을 설파하던 한나 아렌트를 상찬하는 건 인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 상찬이 지적 허세가 아니려면 온전하게 당시 상황에서 유대인이 되어 봐야 한다. 아렌트는 일생의 벗들에게까지 절교당해야 했다. 그런 상상 속에서 아렌트에 대한 분노가 일어난다면 그게 바로 박유하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지난 역사, 남의 역사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갖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역사에선 쉽지 않다.
우리는 역사의 거울 앞에서 성찰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친일 문제에 대해 단순명료한 태도를 보이는 나는, 독립이나 해방을 좇는 사람은 이미 ‘비현실적’이라 치부되던 일제강점기 후반부에 살았어도 같은 태도를 보였을까. 그것은 현재의 지배체제, 즉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내 태도로 추정될 수 있다.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아이를 밤늦도록 학원을 돌게 한다면, 신자유주의의 다른 분파인 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유일한 사회적 희망이라 생각한다면 그 태도는 허상일 것이다.
그것은 나의 태도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문화적 상징체계가 만들어낸 습관일 뿐이다. 우리는 그 습관을 직시하고 해체해야만 한다. 만일 누군가가 처음으로 우리의 습관을 적확하게 비판하거나 해체하려 든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진즉 해체했어야 한다며 고마워할까, 아니면 아렌트 앞의 유대인들처럼 격렬하고 집단적인 반감을 보일까. 박유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그 답을 보여준다.
Anna Roh, 우리는 정말 ‘해방’ 된 것이 맞는걸까?
Park Yuha 선생님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하여.
영국을 중심으로 요즘 유럽에서 대세인 학문 중에 <memory studies> <memory policy>라는 것이 있다. 넓게 보아 메타 역사학이라 할 수도 있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집단과 개인의 역사는 선택적으로만 수용된다는 전제 아래 어떤 내러티브들이 어떤 집단에 의해 역사와 문화로 수용되고 거부되었는지 분석하는 학문이다. 똑같은 시공간을 관통하며 똑같은 사건을 겪었음에도 기억하는 바는 개인의 정치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심지어 경제적(계급적)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반도만 보아도, 남한과 북한의 분단 이전 역사인식에 차이가 있고, 같은 남한 안에서도 박정희 시대에 대해 서로 다르게 추억하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역사의 선택적 수용은 역사 왜곡과 다른 문제이다. 자연스럽게 수용된 문화와 역사가 있지만 각자의 정치적, 사회적 이해관계로 인해 의도적으로 정책적으로 걸러지는 역사가 있다. 역사 안에 A와 B라는 사건이 모두 터졌는데, 누군가는 A만 기억하고, 누군가는 B만 유달리 강조한다. 이럴때 누구는 틀리고 누구는 맞다고 할 수 없다. 그보다는, 그들이 왜 유독 A혹은 B만 강조하고 기억하는지 현재의 관점을 분석하는 것이 더 현명한 시도이다. 다만, 나의 관점은 더 넓은 스펙트럼을 포괄하며 기억되는 역사가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이익만을 염두에 둔 역사보다 더 인류에 대한 포용력이 있다고 본다. 강자 뿐 아니라 약자의 역사를 포괄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에게 치욕스럽고 도덕적으로 불쾌한 기억 또한 포괄한 역사가 더 설득력 있다는 소리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하여 일제 식민지 역사는 그런 의미에서 일본 뿐 아니라 한민족의 골치아픈 숙제라고 생각한다. 일제의 패망덕분에 한민족은 당당하게 ‘제국주의에 저항한 희생자’로 일반화되었지만 실제로 그러했을까. 친일명부에 오른 소수의 친일파를 제외하고 모두 그렇게들 저항만 했을까. 제국주의의 시스템 아래서 한반도에서 그들에게 세금을 내고, 그들이 제공하는 직업을 가지고, 그들이 제공하는 교육을 받으며 묵묵히 자신들의 일상을 영위한 이들이 과연 나는 ‘반일’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 땅을 떠나 망명 투쟁을 했던 독립운동가를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친일’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모 역사학자의 일침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생각하면, 우리는 일본의 식민 통치에 대해 강압적인 폭압뿐 아니라 문화적 교란과 동질화 정책도 한민족에게 해를 미쳤다는 것을 설득시켜야 한다. 자발적인 복종을 유도한 그들의 문화정책도 실은 불공정한 식민지 폭압의 일부였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한데, 해방되고 나니 그렇게 일제에 설득당하고 동조한 사람들이 싹 사라지고 불굴의 애국투사들만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제의 문화 정책에 대한 책임을 거론하는 것은 물건너 갈 수밖에 없다.
36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쨌든 일본인들과 한데 어울려 그럭저럭 살던 사람들이 해방이 되고 나니 갑자기 모두 사라지고 저항하거나 강제 폭압에 시달리던 희생자들만 이 땅에 남았다. 소수의 친일파들에게 자신들의 제국에 대한 복종의 죄과를 모두 미뤄버리고, 이런 Victimisation은 해방 후 반식민지 역사교육을 통해 한층 더 한민족의 뇌리에 뿌리박혔다. 하지만 문제는, 이 식민 통치에 대해 보상의 책임이 있는 당사자인 일본은 다른 기억을 한다는 것이다.
한쪽은 억압의 기억만을 고집하고, 한쪽은 ‘그래도 동조한 사람들이 있었다’라고 기억하는 이 한-일 양쪽 상황에서, 누구의 기억이 맞다고만 말할 수 없다.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쪽에서 계속 강제동원의 근거를 발굴해내더라도 다른 한쪽이 자발적 참여의 근거를 계속 들고 나오는 한 이 보상 협상은 평행선을 이룰 수밖에 없다. 왜냐. 양쪽 다 실제 존재했던 역사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읽은 <제국의 위안부>는 이 양쪽의 역사를 모두 인정하고 문화적 동질화 정책도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동질화되어 자발적으로 일제 정책에 참여한 한민족 또한 희생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은 일본 정부가 계속 끌어내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위안부에 대한 주장을 무색하게 만드는 제안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이에 반기를 드는 이유는 기억하기 싫은 역사를 끄집어냈다고, 그 끄집어낸 역사가 – 엄연한 사실임에도 – 한민족의 희생자적 입장에 불리하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가 휩쓸고 간 뒤에도 살아남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불의에 저항한 희생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촉발된 논쟁이, 그리고 내가 존경하던 학자들마저 양쪽으로 대립하는 이 모양새가 남탓을 하기 위해 나의 약점을 숨기는 것처럼 보여 못내 씁쓸하다. 반세기도 한참 지난 식민의 역사에서 우리는 정말 ‘해방’된 것이 맞는 걸까.
출처 : https://www.facebook.com/anna.roh.94/posts/10203832833372490
Meesun Min, 같은 문제의식임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우리 조상들에 대해서 한 학자가 쓴 글들이다. 이제 이 학자를 물어뜯자!!!
“하지만 현실의 콰이강의 다리에 대한 앞에서 언급한 르포 기사는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에게 충격을 전해준다. 한국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버마전투의 당사자로 ‘지금까지도’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태국인들의 착각이라고 가벼이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공부를 더 하면 할수록 조선인 강제 동원 문제가 그리 간단한 것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영화 <콰이 강의 다리>에서 연합군 포로를 교량 공사에 동원하고 학대하던 일본군 포로 감시병 속에 조선인이 섞여 있었던 점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영화 <콰이 강의 다리>에 등장하는 일본군 포로 감시병 가운데 조선인이 포함되었던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그렇다면 태국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박물관에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써 아직도 한국을 전쟁 당사자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까? 태국의 박물관으로부터 태극기를 끌어 내린다고 해서 조선인들이 제국주의 일본의 태국 침략전에 참여했던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등 국민을 꿈꾸는 새끼 제국주의자: ‘대영제국’을 제압하는 ‘대일본제국’의 힘에 압도될 때 조선의 피지배 식민지민들은 제국 속의 ‘이등국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았다. 리콴유가 증언하는 싱가포르에 있던 조선인들의 모습은 바로 이런 이등국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침략전에 나섰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요컨데 앞의 두 삽화는 모두 ‘식민지’로서의 조선이 그냥 ‘식민지’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선은 식민지이기도 했지만, 제국 일본의 일부분이기도 했다. 한국인들은 조선이 식민지일 ‘뿐’이었다고 생각하는 데 비해, 일본의 침략을 당했던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조선이 제국 일본의 일부분이자 침략의 당사자라고 믿고 증오하고 있었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조선인을 제국 일본의 식민지 피지배민이 아니라 오히려 거칠고 고압적인 일본군의 형태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새끼’ ㅈ국주의자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국 일본 속에서 이등국민의 가능성을 엿보던 조선인들은 제국주의자로서의 욕망을 가슴속에 감춘 ‘새끼’ 제국주의자였다.”
“이미 이 시기에 조선인들은 ‘강제된’ 한 손에 ‘피’를 묻히고 있었다. 강제로 침략전에 나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 그리하여 한손에 이미 피를 묻혀 버린 사람이 바로 식민지하의 조선인들이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제국 일본의 침략 전쟁에 가제로 동원된 조선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의식의 분열현상을 극복해야만 했다. 요컨데 식민지는 바로 식민지민에게 분열증을 강요하는 체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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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동 교수의 책에서 인용한 이 글들의 내용은 보다시피 철저하게 박유하교수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근데 정말 이상한 것은 지금 윤해동 교수의 비판이 비판자들의 글들에 인용된다. 비겁한건가 분열적인건가 아님 둘다 인가!
최범, 친일과 반일
3월 1일 포스트
친일과 반일
한국은 자주적 근대화에 실패하여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일본의 식민지배는 우리 삶을 크게 변화시켰고 그런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지배에 협력했다. 그들을 가리켜 친일파 또는 민족반역자 또는 매판세력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계속된 불행은 일본으로부터 자주적으로 해방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친일파 또는 민족반역자들에 의해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지배되고 있다는 점이다.
친일파를 제거하기는커녕 거꾸로 친일파들이 민족주의자들을 처단한 것이 숨길 수 없는 우리의 흑역사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한편으로는 친일파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증오와 함께 반일에의 정념에 불타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더욱 비극적인 것은 바로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이 뒤집어진 혀로 반일을 부르짖으며 대중을 오도해왔다는 것이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그랬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은 친일에 대한 증오와 함께 맹목적인 반일이라는 덫에 빠지게 된 것이다. 반일은 친일의 단순 안티테제(반명제)일 뿐 결코 식민주의를 극복할 진테제(합)가 되지 못한다. 친일과 반일은 개화와 척사, 찬탁과 반탁, 종북과 반공, 친미와 반미라는 잔인한 이분법으로 우리 민족의 삶을 옥죄어 온 쇠우리의 하나이다. 한 마디로 무간지옥이다.
친일파의 지배에 대한 증오에 비례하여 반일에 대한 어떠한 이의제기나 수정도 허용되지 않는다. 최근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존의 정식화된 반일에 대한 어떤 수정주의나 재해석도 친일로 매도되고 공격당하는 것을 보면서 친일 못지않게 반일도 또 하나의 야만일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역시 얼마 전 페이스북에, 식민지배 당한 것에는 우리 자신의 책임도 크다라는 글을 올렸고 직후 많은 사람들로부터 집중공격을 당했다. 내가 정식화된 반일 도그마에 수정을 가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나를 친일파로 몰고 가려고 했다. 나의 주장을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입하면서 친일파임을 자백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우리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반드시 상대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것이 되는가. 그것은 제로섬 게임인가. 윈윈이 될 수는 없는가.
그렇다. 나는 친일파도 아니지만 반일파도 아니다. 나는 친일과 반일이라는 무간지옥을 벗어나고 싶다. 개와 고양이라는 동물밖에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토끼가 설 자리는 없다. 나는 우리에게 친일의 폐해 못지않게 일본을 무조건 악마시하면서 민족주의의 숭고함을 확보하려는 그릇된 충동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크게 우려하는 바이다. 나는 친일도 아니고 반일도 아니다. 나는 친미도 아니고 반미도 아니다. 나는 이 이분법이 지배하는 무간지옥을 벗어나고 싶은 하나의 중생일 뿐이다.
일본서평 (우에노 치즈코) 및 인터뷰
일본서평(우에노 치즈코) 인터뷰
김도언, 지식인들의 위선에 관해
2월 23일 포스트
지식과 권력의 유착, 다시 말해 지식의 권력에 대한 욕망과 권력의 지식에 대한 욕망을 말하는 것은 인류가 탄생된 이래 너무나 뻔한 사실로 간주된 것이어서 새삼스러운 것이긴 하지만 내 눈에 우리사회에서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첨예한 관심은 ‘포지션’인 것처럼 보인다. 적실한 포지션은 그에게 발언할 권리, 대우받을 자격, 영형력을 미치고 꾀할 자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담론의 선취에 따라 권력의 지형이 쉽게 바뀌는 우리 사회 구조 안에서는 특히 그렇다.) 너무 삐딱한 시선인지는 모르지만 지식의 권력적 행사에 용이한 포지션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유지하려는 욕망은 매우 본능적인 것이어서 이것은 심지어 학자적 양심에 우선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지식인은 결국 자신의 생래적 계급과 상대적으로 모순을 덜 일으키는 진영 안에서 ‘자리’에 대한 헤게모니를 다투고 취하는 것에 자신의 지식을 소비하는 것이다. 모든 지식인이 다 그렇다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이런 의심의 정황이 지식인 사회의 모순에서 이미 충분히 노출되었다고 믿는다. 비주류로 분류되는, 국내에 학맥이 전혀 없는 학자의 학술적 저작물을 고소고발하고, 학문적 작업을 방해하는 중심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안정적으로 구축한 포지션에 이 학자의 작업이 균열을 일으킬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지 그들이 자신의 위선을 은폐하려고 다분히 감각적으로 짜놓은 민족적 자존심 대 매판적 친일의 프레임이 아니다. 나는 그들이 해당 책의 학술적 가치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잘 알기에 논의를 차단하고 법원에 단죄부터 요구한 것이겠지. 나는 그것이야말로 지식인의 양심의 심판이 필요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일본정부의 돈을 받았다는 확인되지 않은 말을 퍼뜨리고, 강간을 당해봐야 한다느니 ‘국민쌍년’이라느니 하는 막말로 자행되는 인격살인을 용인하는 것도 범죄행위에 준하는 것이다.) 내가 이번 사태를 두고 관심과 절망이 교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가 일본제국주의의 범죄를 두둔하겠는가. 종전 70년이다. 우리는 이제 ‘친일/반일’이 아니라 ‘극일’을 말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일본도 변한다.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지식과 권력의 위선이 정말 지겹다.
2월 28일 포스트
- 2월 마지막 날이다. 내일부터는 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대청소를 했다. 대청소라고 해봐야 청소기 돌리고 걸레로 훔친 것뿐이지만. 어쨌거나 청소를 마치니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지금은 열어놓은 창을 통해 산새소리가 제법 선명하게 들린다. 가벼운 산책, 청소를 마치고 새소리를 듣는 것, 온수와 냉수로 번갈아 샤워를 하는 것, 그런 것들이 사람을 너그럽게 하는 것 같다. 우주적인 ‘망원감’을 가질 수 있다면 맹렬해보이는 우리의 삶 역시 꼼지락거리며 싸우는 진드기들의 싸움밖에는 안 될 터인데. 이딴 소릴 해놓고 나는 또 어딘가에 제출해야 할 서류 생각에 골몰하겠지.
-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에 복지를, 그리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 통일이라는 담론을 선점했을 때 당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던 야권과 진보세력의 반응이 생각난다. 전통적으로 진보 쪽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의제인 ‘복지’와 ‘통일’을 뜬금없이 ‘독재자의 딸’이 들고 나오니 뒤통수를 맞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들의 심정이 얼마나 복잡했을까. 대놓고 비판할 수도 지지할 수도 없었을 그 자중지란의 포지션이 말이다. 나는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하거나 짐짓 무관심한 척하는 학계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복잡한 표정을 발견한다. 한일간 역사 문제를 주조음으로 하는 근대의 극복과 민족주의의 성찰이라는 가장 뜨겁고 민감한 의제를, 자기들 딴에는 ‘쳐주기도 싫은’ 비주류 학자가 자기들 눈에는 ‘되지도 않는 깜량’으로 계속 말하고 있으니, 일단은 기를 죽이고 싶은 심정 아니었을까. 그들에게 그 의제는 오로지 자기들이 기득권을 가져야만 하는 사유화私有化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팩트가 아니라 내가 가진 심리적 추정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솔직히 내 심증이 보기 좋게 틀리기를 바란다. 그렇게 우리의 학계가, 지식이 작동하는 매커니즘이 위선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한번쯤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 또 현실적인 정치 이야기를 하고 보니, 청소 후의 상쾌한 기분이 조금 망가졌다. 나를 잘 아는 분들은 진지하게 정치현안에 대한 발언을 가급적 삼가라고 조언하시는데, 내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것이 내가 사는 동시대와 세계, 그리고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성실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말 나 혼자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다면 문학적 피안으로 벌써 도피했을 텐데. 술이나 먹고 누워서 흐린 하늘이나 보며 살 텐데.
설안재, 한겨레의 사실 왜곡에 관해
2월 28일 포스트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 한겨레가 그 책을 까는 기사는 언제쯤 나오나 했다. 역시 예상은 조금도 빗나가질 않네. 언제부터인가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난 늘 한겨레와 상반된 입장인 게 신기할 정도다. 샤를리 엡도, 정명훈 고액 연봉, 그리고 제국의 위안부까지.
정명훈 고액 연봉만해도 한겨레 칼럼에 가난한 예술가들을 빌미삼아 까기 시작했을때, 난 그게 한국 음악계의 오랜 권력관계와 일부 음악가들의 타락으로 인한 내부갈등이 아무 관계없는 정명훈 선생에게로 덧씌운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았다. 실제 서울시 의원이 줄기차게 이것을 거론하며 문제 삼았을때, 무지를 넘어 악의가 엿보이기도 했다. 그뒤로 한겨레를 줄곧 비판하고, 페친 몇명과도 소통관계를 끊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명절 연휴에는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 약 50여 명의 페친을 끊기도 했다. 어차피 소통하려고 페북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한겨레 길윤형 도쿄 특파원은 제국의 위안부를 어떻게 읽은 걸까. 오늘 토요판 기사는 책 내용의 일부분, 특히 중요한 대목은 왜곡하다시피 하면서 자신의, 그리고 박유하 교수 비판자들의 시각과 거의 중첩되는 논지의 기사를 쓰는 이유는 뭘까. 마지막에 ‘심장’ 어쩌구 운운하는 대목에서는 내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너무 민감한지라 되도록 자극적이며 논쟁적인 의견 피력을 삼가해 왔다만, 앞으론 내가 느낀 점을 직설적으로 말하고 싶다.
위안부 문제는 역사와 절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니까 역사를 보는 관점에 따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시각이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조선 500년이라는 시간동안, 피지배 계층에서 ‘정치적 공론의 장’을 요구하는 최초의 정치 투쟁은 ‘동학 농민 전쟁/혁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지배계층은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인식에 너무 안일했고, 민중들의 요구를 묵살했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공론의 장’에서의 사실 왜곡은 이미 공정하지 못할 뿐 아니라, 다수일 때에는 심리적 폭력에 다가서는 길이다. 토론은 이성적이며 비평/해석학의 관점에서 정확해야 한다. 심리/감정의 세계와 관심법은 毒이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는 이미 맛이 살짝 간 것 같다.
역사 논쟁은 대개 ‘현재화한 과거’와 ‘현재화한 미래’가 부딪히는 지점이고, 위안부 문제는 고통이라는 본질이 더해져 ‘현재’를 더 난해하게 만든다는 점. 박유하 교수의 집필 방향/의도와는 다를 수도 있지만, 내가 제국의 위안부를 읽는 독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생각할 거리가 많고, 섣불리 의견 피력을 삼가는 것일 뿐.
오석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몇가지 생각
오석태
https://www.facebook.com/suktae.oh.5?fref=ufi
2월 26일 포스트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몇 가지 생각
- ‘제국의 위안부’는 ‘회색지대’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다양한 회색지대를 제시하고 있다. 본국과 적국(교전상대국) 사이의 회색지대인 식민지, 연애와 강간 사이의 회색지대인 매매춘, 정부차원의 사과와 민간차원 사과의 회색지대에 위치했던 고노담화와 아시아여성기금, 위안부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는 우파와 철저한 국가차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좌파 사이에서 중간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지식인들 등이다. 회색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흑과 백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하지만 진실은 보통 흑색이나 백색이 아닌 회색이다.
- ‘제국의 위안부’는 한일간의 화해를 위한 책이다.
원래 일본문학 연구자였던 박유하 교수가 위안부, 야스쿠니 신사, 독도 등 한일관계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게 된 것은 한일간의 화해를 위해서였다. 화해를 위해서는 회색지대를 인정해야 한다. (‘철저한 과거 청산과 사죄 후의 화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속내는 화해를 하지 말자는 것이며, 그런 측면에서 과거 청산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적대적 공생’ 관계를 이루게 된다. 남북한 관계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화해를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유하 교수는 일본인, 그 중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회색지대에 서 있는 여러 사람들(와다 하루키, 가라타니 고진 등 잘 알려진 지식인들을 포함하는)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유하 교수는 친일파가 맞다. 한일간의 화해를 위해서는 일본 내 친한파 뿐 아니라 한국 안에도 친일파가 필요하다. (나 자신도 한일간의 화해를 원한다.)
- ‘제국의 위안부’는 한일기본협약의 불완전성을 상기시켰다.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협약은 식민지 해소의 조약도, 전쟁 후의 강화 조약도 아니다. 일본이 한국에 ‘청구권 자금’을 제공한 것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연장선상이었으며, 이는 결국 ‘징용 징병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었을 뿐 식민지배 전체에 대한 보상은 아니었다. 한일조약 어디를 봐도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는 없다. 그리고 한일간의 모든 청구권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규정하여, 이후 일본정부가 위안부에 대한 보상을 거부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박유하 교수는 고노 담화와 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회색지대’를 긍정하면서 이를 계승, 발전시켜 궁극적으로 한일기본협약을 대체하는,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를 포함한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적대적 대상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그 대상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 모두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천안함이나 연평해전 전사자, 아니면 대한항공 858기 폭파 희생자나 아웅산 폭탄테러 희생자 가족 모두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진심어린 설득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아래는 제가 작년 여름에 쓴 서평입니다.)
http://blog.naver.com/neolone/220123355036
와다 하루키 “제국의 위안부 논란, 日내부 환기시키는 순기능도” (한국일보 2015. 2.26)
김미영, “자발적 매춘” 에 대한 단상
김미영
https://www.facebook.com/miyong.kimto?fref=nf
2월 10일 포스트
(하얀 거짓말 혹은 과장 …. 에 대한 비교문화적 단상)
한국으로 말하면 손석희씨 정도의 영향력 있는 미국 NBC방송 앵커가 수년 전 보도에서 과장한 일로 평생 닦아놓은 커리어가 무너질 위기-그의 과장으로 딱히 피해자가 있는것도 아니고 그간 그의 젊잖고 친화력 있는 분위기로 막강한 팬덤이 있는 인물이지만 사건보도를 둘러싼 과장이 드러났을때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니까” 로 인정하고 자숙하라는 비난은 있을지언정 그가 말한 하얀 거짓말들의 디테일의 오류를 발견, 지적한 이들에게 돌팔매질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황우석 사태나 박유하샘 사건을 보면 불편한 진실은 폭력을 써서라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꽤 있는게 우리나라의 현실. 언제까지나 진실의 메신저 들에게 돌팔매질하며 되지못한 괴논리를 펼치려는지. 공공의 선 이라니 .. 부끄럽지도 않은가.
2월 23일 포스트
자발적 매춘에 관한 단상:
내친구 “딥 뉴웬”
살다보면 동기간 같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나이도 인종도 살아온 과정도 아주 달라도. 대학원때 우리 동기 다섯명이 그랬다. 보스톤 토박이 키다리 아이리쉬 맨 “바비”, 쥬위시 공주 “데나” , 레바논 출신의 천재 “쑤라야” , 베트남을 틴 에이저일때 마지막날 보트로 탈출했던 “딥”, 그리고 남편 공부시키러 왔다 우연찮게 공부하게 된 나. 공부도 한방에서 하고 밥도 같이 해먹고 싸우기도 무단히 싸우고. 이제는 다 뿔뿔이 흩어졌지만 형제자매 만큼 끈끈한 마음은 변함없다.
몇년전 모교에서 나한테 학교를 빛낸 동창에게 주는 상을 준다 하여 망설이다 갔었는데 그 상보다 더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캐나다 까지 각지에 흩어져 사는 내 친구들이 다 함께 모인 것. 산장 비슷한 교외의 리조트 스위트를 빌려 다섯이 일주일을 정말 논스톱을 먹고 놀다 왔다.
마지막 날밤은 모두 다 달빛 비치는 거실에 담요를 깔고 남녀 불문 중년의 “혼숙” 을 하게 되었는데 그밤을 잊지 못하게 한것은 내친구 “딥”의 난민 수용소 시절의 아리고 아린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그녀가 어린시절 베트남을 탈출하다가 식구의 반을 잃은 것, 고생고생하며 학부 마치고 미공군에 입대해서 당시 대령이었던 그녀는 군장학금으로 석박사를 마친 재원. 깔끔한 성격이라 내 너저분한 책상 치워주는걸 부전공으로 삼은 그녀(이제야 이야기지만 난 그거 속으로 싫어했다). 우린 그아이에 모르는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희들 내가 미국 오기 전 라오스 난민수용촌에서 삼년이나 살았던 걸 모르지?”
“………..”
그렇게 시작된 그이야기. 같이 울고 웃으며 들은 그 아이의 그 아픈 삼년 생활 중 요즘 부쩍 더 생각나는 부분이 있어 반추한다. “난민수용소 생활이라는게 참 루머가 많은 곳이라 하루에도 몇번씩 우리는 모두 다시 공산화된 베트남에 압송될 거라는, 그러면 우린 앞날을 기약할수 없는 수용소로 가거나 친미분자로 가려져 처단 될거라는 등의 이야기들…”
“그런데 그 와중에 채 여자티도 안 나는 나 같은 아이들이 어쨌거나 살아보려고 경비병들에게 추파를 던지는거야…”
“나? 물론 나도 몇날 며칠 어떤 경비병 에게 내 장래를 의탁해야 하나 그 감수성 예민한 시절을 고민하며 보냈지…”
“……..”
그리고 갑자기 그녀가 울기시작했다. 서럽게 서럽게 오래도록. 우리도 나직하게 숨죽이며 울었다. 달빛이 막 감당할수없이 쏟아 지고 있었다. 그녀와 그녀의 어린 친구들이 어떤 경로로 “자발적”인 매춘을 계획했던 실행으로 옮겼던 아니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전쟁이 가져다 준 그 폭력적인 상황이, 그래서 멍이 들었을 그녀들의 영혼들이 가여워서.
그날 밤 같이 울던 우리 친구들의 측은지심은 내 친구 딥과 그 아이 친구들을 “순결”한 소녀의 이미지를 전제로 한 조건부의 마음 울림이 아니었다. 내 일천한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자면 개중 식구들을 살리려고 쫌 발랑 까진 아이들이 껌씹으며 걸어갔던, 혹은 능력없고 심약한 어떤 아버지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그 아이들을 떠밀었다 해도, 우리의 마음 울림과 전쟁상황에 대한 분노나 그속에서 무시되는 인권옹호를 위한 작은 액션을 취하자는 우리의 결의는 변함없었다. (여담이지만 이 친구들중 셋이 인권옹호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최근 다시 불붙기 시작한 Park Yuha 선생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쟁을 보며 내가 조용히 좋아해왔던 폐친들도 박유하샘의 관점을 오해하신듯 하여 안타깝다.
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저자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어떤 경로로 위안부가 되었던 우리 모두가 안아드려야 한다는 것. 그녀들이 딱히 소녀상에 맞는 이미지가 아니었다 해서 우리가 모두 등돌릴 만큼 미성숙한 사회가 아니라면 꼭 묻어만 둘 게 아니라 이런저런 다양한 형태의 모집과정, 그 과정 속에 강하게 자리잡은 못난 가부장적인 문화의 역할도 살펴보면서 이제 몇 년 안 남은 이들의 여생을 제대로 보상하고 전쟁종주국이었던 일본에게도 팩트에 의거한 책임을 물어보자, 법정에서도 보면 큰 줄기가 있다 해도 디테일에서 틀리면 결국 힘있는 변론하기가 어렵지 않은가로 읽힌다.
요즘 미국에서 탈북자들의 인권을 위해 일을 하는 친구들이 고민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많은 탈북자들이 그들의 탈북과정이나 북한의 상황을 과장하여 발표하는데 그러다가 그 디테일의 틀리면 그들이 해온 모든 말의 신뢰성이 한방에 무너지고 만다. 그분들의 말로는, 우리 대중들의 너무 선명한 이원론적 내레이티브 선호가 그런 “하얀” 거짓말을 부른다 한다.
글로벌시대에 맞추어 스탠다드를 맞추자는 각성은 수출해야 할 컴퓨터 프로그램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박유하는 그 수많은 돌팔매를 맞으며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은것 같다.
“꼭 총칼의 위협으로 끌려간 소녀들의 이미지가 이책으로 훼손 된다해도 우리가 그이들을 사랑하고 안쓰러워 하는 맘이 달라져야 하는 걸까요?”
안개비 내리는 일요일 아침. 모두에게 따뜻한 생각 보냅니다 . 내친구 딥에게 전화나 해야겠네요.
『慰安婦問題』事務局版 日本記者クラブ 対談
김도언, 파시즘에 반대하며
2월 20일 포스트
어제 어떤 분이 박유하 선생의 <제국의 위안부>를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을 옹호하는 포스팅을 했길래, 나도 차분하고 진실되게 반론 성격의 댓글을 세 개 정도 달았다. 그리고 조금 전에 그분 담벼락에 들어갔더니, 내가 달았던 댓글이 지워지고 온통 그분의 의견에 동조하는 댓글만 도배되어 있는 걸 보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차분하게 내가 달았던 댓글이 지워진 사실을 적시하는 댓글을 달았던 것인데, 그러고서 정확히 1분 후에 그분으로부터 차단당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차단 당한 남자. 내가 바란 건 이성적인 토론이었는데 뭐가 그분을 불편하게 했을까. 그분 이름은 죽어도 밝히지 않겠다.
2월 22일 포스트
작가적 양심 운운할 것도 없이 개인적으로 소시민일 뿐인 내가 반대하는 건, 소시민적인 개인의 일상을 기만하고 억압하는 모든 형태의 파시즘이다. 하나의 정의만이 인정될 때 독점적인 이익을 얻는 세력의 위선과 탐욕이 그 파시즘을 견고하게 추동한다. 기막힌 역설이지만 교조주의와 전체주의는 종종 교조주의와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형식으로 새로운 차원의 파시즘을 구축한다. 그걸 알고 경계하는 것과 모르는 채 자기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욕망과의 싸움, 그게 나는 모든 개인의 전선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믿는 진실을 소신있게 말하되,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의 삶부터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보는 것은 그래서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이다. 여기서 조롱은 성찰의 유희를 비유적으로 표현하기 의해 선택된 단어다. 상처와 고통을 실존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여러 입장이 있을 수 있는데, 북한정권처럼, 혹은 1970년대의 박정희처럼, 혹은 IS처럼 정신무장이나 개조 차원의 국가주의적 강요로 단속하는 게 과연 지금도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인지를 나는 고통스럽게 자문하고 싶은 것이다.
2월 22일 포스트
혹시 나도 그런 오류를 범했을까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박유하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공방에서 저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혹여 상대 쪽 사람들을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종속된, 덜 각성된 근대적 우민이라고 간주하면서 비난하고, 자신들은 세련된 무정부주의자나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탈근대 합리적 시민(지식인)으로 자처(포지셔닝)하는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논쟁의 본질을 엉뚱한 데로 끌고 갈 소지마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저쪽이 자신들은 약자와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휴머니스트들이고 이쪽을 친일잔존 세력이라고 비난하는 것과 별다를 게 없는 값싼 감정의 포즈밖에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합리적 비판의 목적은 사람을 평가하고 배제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의견이 가진 논리적 모순을 공박하는 데 있다. 학술적 의견이 담긴 책은 해석의 여지에 따라 찬반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외부자로서 나는 이 문제의 출발이 연구자의 학문적 소신이 담긴 책을 법정에 세운 원고측의 야만적인 고소고발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폭력적인 것인지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작물을 법적 판단에 맡겨 처벌을 요구한 것이야말로 이 사태가 보여준 다양한 장면 중, 가장 명백하게 나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국의 위안부>의 내용에 반대하는 쪽 일부도 인정하는 것이다) 책의 내용의 해석과 수용에 따른 다양한 논쟁은 그것의 부당함이 인정받은 다음 공론의 장에서 이어져도 늦지 않다.
김진우, 여성적 관점으로 본 위안부
여성적 관점으로 본 위안부
<제국의 위안부>에서 지적하고 있는 위안부라는 폭력적인 제도의 가장 큰 범인은 가부장주의다. 가부장주의는 역사가 오래되었으며 일본과 조선뿐 아니라 당시 세계 곳곳에 널리 퍼져있었다. 또한 전쟁이 일어나 위안부를 모집하기 전부터도 일본과 조선에서는 성매매가 흔하게 행해지고 있었다. (또한 오늘날에도 그러하다.) 내가 서평에서도 말한바 있지만, 위안부의 archetype로서 17세기부터 존재했던 ‘가라유키상’을 들수 있다. 가라유키상은 특히 메이지유신 이후 많아졌는데, 해외에 나가 있는 일본 상인, 관료, 군인들의 수요에 부응했다. 오늘날 한국의 비즈니스맨들이나 남자 관광객들이 가는 곳에 어김없이 한국식 성매매업소가 들어서고 심지어 그 문화(?)가 한국인들과 사업상 관계를 맺는 현지인들에게까지도 전파되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할만하다.
위에서 내가 든 사례들을 보면, 여성을 성매매의 대상으로 이용하는 것은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9세기식 제국주의 방식이든, 21세기식 자유주의 방식이든 간에, 여성의 몸은 철저히 세계 곳곳으로 ‘진출’하여 국가의 이익이나 기업의 부를 키워주는데 복무해야 할 근대적 남성 주체의 ‘위안’을 위해 희생되고 이용되는 것이다. 비록 가부장주의 자체는 전근대의 유산이지만, 근대와 결합하며 어떤 면에서는 더 악질적으로 변하기도 했고, 남성은 근대의 주체가 될 자격이 주어졌던데 반해 여성은 여전히 객체로 남아있어야 했다. 여성에게 선거권이 주어진 것이 1910년대 이후의 일이었고, 실제 사회생활의 영역에서는 더욱 오랫동안 차별당했다. 산업혁명기의 섬유산업이나 전시의 군수공장 등에서 일은 일대로 했는데 말이다. 전업주부로 사는 것이 덕목으로 강조되던 건 부르주아 가정의 경우 또는 1950~60년대 미국과 서유럽의 중산층 가정의 경우였다.
어쨌든 일제시기 당시 조선의 여성들은, 이미 식민지인으로서 2등 시민 대우를 받아야 했던 차에 여성으로서 이중적인 차별을 감내하고 살아야만 하는 현실에 놓여 있었다. 집안에서도 아버지나 남자 형제, 남편과 시댁에 눌려 살아야만 했고, 사회에서도 종사할수 있는 직업이나 개인적으로 할만한 활동의 선택지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비록 1920~30년대에 경성을 비롯한 도시의 일부 교육받은 중, 상류층 출신들 중에 ‘신여성’이라는 근대적 여성상이 나오긴 했지만, 대부분의 조선여성들(심지어 일본여성들에게조차)에게 그것은 아주 먼 이야기였다. 어쩌면 종군위안부는, 특히 전시가 되며 경제상황이 악화되어가던 차에, 평범한 식민지 여성의 몇 안되는 삶의 선택지였을지도 모른다.
소설 <감자>에서 무능한 남편을 둔 복녀가 중국인 부자 왕서방에게 몸을 팔고, 심지어 죽어서도 그 댓가(보상금)는 남편과 장의사에게만 돌아가는 것을 볼수 있다. 복녀의 모습은, 그 당시의 적지 않은 조선인 여성들의 현실적인 처지를 나타내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복녀를 우리가 죄인이라 할수 있는가. 죄인은 오히려 왕서방과 남편, 그리고 그 모든것을 용인하는 가부장적 사회가 아닐까.
나는, 위안부로 간 수많은 조선여성들 역시 복녀와 같은 체제의 피해자라고 파악한다. 그렇게 파악할 때, 물리적인 강제연행이 부정되더라도 위안부를 일제의 피해자라고 볼 근거가 생기는 것이다. 사실 <감자>와 같은 이야기는, 계몽주의적 시각으로 보기엔 아주 불편한 이야기인데,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알고있던 위안부의 서사는 계몽주의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사료된다.
이처럼, 모더니티는 결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졌던 게 아니었다. 20세기 초반의 동아시아를 기준으로 보자면, 가장 우선적으로 모더니티의 권리를 향유할수 있었던 이들은 일본인 남성이었다. 그 다음은 조선인, 중국인, 타이완인, 오키나와인, 홋카이도 원주민들 중 근대 문물에 접근이 가능한 남성이었다. 아마도 지주나 상인 계급에 속해있던 이들이 유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은 일본인이건 식민지인이건, 상류계급 출신이건 빈민이건 간에 1945년 이전까지는 모더니티의 수혜자가 되지 못했다. (일본과 한국 모두 여성의 선거권이 1945년 이후에야 처음 보장되었으며, 나혜석을 비롯한 조선의 신여성들은 당시 일본이나 서양의 기준으로 보아도 매우 독보적인 경우에 속했다.)
노정태, 우리의 명예를 찾아서 (경향신문)
정나란, 어려운 책이 아니다, 외.
정나란
https://www.facebook.com/jungnaran?fref=ts
2월 15일 포스트
내 페친들 중 이런 실수를 하는 분들이 없길 바란다. 어제 오늘 헛물켜는 포스팅을 본다. 특히 모욕적인 댓글들. 이제부터 숨을 고르면서 쓰려 노력은 하겠다.
‘제국의 위안부’ 비판하기 위해서 내용을 살피고 포스팅을 하든 말든 해야 할 것 아닌가. 어떤 문제를 비판할 때 내용을 덮어두고 볼 필요도 없이 이건 아니지 식은 비판도 아니고 자기 말도 아니다. 사안이 무엇이든 어떤 문제를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지 않고 말하는 것은 거듭되어온 낡은 담론에 손을 담그고 편리한 정치적 논리적인 입장을 게으르게 취하고 자기 말인것처럼 하나 집어들고 당위성을 획득했다는 착각 안정감으로 과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닌가. 기사 퍼나르는게 편의점에서 왕뚜껑과 신라면 고르는 것과는 달라야 하지 않나.
끼리끼리 포스팅 담그늘 아래 모여서 양아치 짓들 하는 어른들을 본다. 양아치라 함은 남녀를 안 가린다. 위안부문제 관련 기사에 광분하여 또 한명의 여성을 향해 쏟아내는 비난이 성차별적 발언으로 과도하게 몰리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 아마도 성적 컴플렉스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언론이 정신나가게 욕하면서 씹으라고 그러면서 또렷이 지켜보기 같은 건 개나 줘버리라고 던져주는 밑밥들에 정신없이 주둥이를 담그는, 시궁창에 자신의 입을 주저없이 적시는 당신들 보면 언어와 정신의 생태계가 너무 여실히 보인다.
윤리문제를 떠나 내가 쌍욕을 해댈 수 있는 사람은 간혹 나 자신을 향해서이다. 특히 신체와 성정체성을 건드는 욕들은 모두 고소해버리고 싶다. 내가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윤리문제를 떠나 절대 나 아닌 타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그걸 잊으면 양아치가 된다.
욕은 꾸욱 참고 속으로도 하지 않겠다.
2월 16일 포스트
학교에서 공유만 했었다. 나는 이제 의견을 말하고 싶지 않다. 어제 오늘 확인 한 것은 반일 감정은 학살자 전두환이나 이명박 박근혜를 향한 것보다 더 하다는 것. 우리는 언제부터 괴물이 된 걸까. 학자가 주장하는 말들이 논란이 될만하다 ‘설령’ 100프로 잘못 된 주장이다 철회를 요구해야 한다 하더라도 그래서 한 사람을 말로 다 짓이기고 죽일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운전하고 집에 오는데 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광장으로 모임까지 공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 프랑스나 덴마크와 유럽 국가에서 반이슬람주의자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간의 다툼이 있다면 우리안에도 그런 성역을 두고 다툼이 생기고 있구나 했다. 지역 감정 전라도 홍어 그런 자극적 싸움보다 더 삽시간에 분노 하고 한 사람을 공적으로 만들어 죽어 마땅한 자리로 내치는 (정말 저자의 신변 안전까지 걱정이 되는) 그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바로 위안부 문제 이다.
그녀들의 고통을, 삶을 되살리고 추모하고 애도하고 평화를 기원하고 삶으로 껴안으려는 것인지 후대들이 빼앗기고 더럽혀진 처녀 어머니에 대한 컴플렉스로 발악 하는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어제도 말했듯이 위안부를 감싸고 옹호하는 것 같은 사람들이 그 문제에 대해선 손도 못 대게 바르르 떨면서 한 여자를 말로 욕보이고 무참히 짓밟는 것을 집단적으로 해대는 것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설명을 안 하기로 하고서 이렇게 주저리 하는건 정말 두려워서이다. 총은 없지만 우리는 이미 서로를 여러 번 죽였다.
2월 19일 포스트
<제국의 위안부는 어려운 책이 아니다. 이웃사람 카더라 통신>
반지성주의 비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건 실은 나한테 해야 할 말인데’ 라고 한편으론 입술을 핥는다. 그런데도 나 같은 사람이 전달하는 이야기 (제국의 위안부 고발사태)에 위안부 할머니는 너무 불쌍하고 참담한 역사의 증언자라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어느 정도 책 내용에 동감하고 이해할 정도라면 책이 촉발하는 의혹과 그럴 수 있는 점 등을 들어 뉴라이트 비스무리 결국 친일로만 몰아 붙이는 건 안이하게 **스럽지 않나.
반지성주의라는 말을 듣거나 책을 읽으라는 말을 할 때 불편한 건 그게 어떤 일정 수준 이상의 학력이나 지식, 문해력을 요한다는 말로 들려서이다. 오히려 머리에 짜여진 틀이 많아서 걸리는 게 많고 나머지는 일반 정서에 걸리는 거겠지. 근데 그 너무 가슴 아파서 할머니들에게 너무 하지 않냐 되묻는 사람들과는 차근차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는 어떤 희망을 가져본다. 왜냐면 그들은 가슴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인데 지금 그들의 가슴이 ‘너무 참담하고 불쌍한 어린 소녀들’로 엉엉 우는데 자꾸 사실관계를 논리로 들이미는 건 일단 가혹하다. 동감하지만 그걸 부정하는 게 아냐. 오히려 이 문제는 양쪽이 대표적인 사례를 서로 유리한 쪽으로 들어서 절대 이해 할 수 없는 극단으로 가고 있는데 일단 그걸 내려놓고 이야기 해보자고 하는 친절한 설명은 귀를 기울이게 한다. 이런 표현을 과감하게 쓰자면 가슴대 가슴. (매우 쉬운 긴 글이 될 싹이 보인다. 그러나 구구절절 소심하게 쓰는 이야기도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 망설임들엔 무시할 수 없는 인간적인 면들이 있으니까.ㅜㅜ)
어쩌다보니 일하는 곳과 시골어른 중졸 학력이 전부인 분, 정통 민족주의자 ㅋㅋ 통진당 당원들 여러 층의 사람에게 잠깐씩 문제가 되는 것만 이야기 했다. ‘그렇네’, ‘근데 그믄 그책 판매금지 될 수도 있다고?’, ‘원래 옛날에 업자들이 있었지.우리가 그것만 기억할라고 한거니까 그렇지’, ‘아~근데 책을 안 읽은 사람들이 욕한다고..헐..’ 등등의 반응을 들었다. 믿거나 말거나 이웃사람 카더라 통신이다. 학자들의 박유하 교수 태도문제 거론, 진실성에 치명타, 개인에게 상처를 주는 떠도는 소문이 마치 객관적인 비판으로 위장하는 데 슬쩍 얹히는 것을 보며 (나는 이게 왜 자꾸 열등감이나 시기심..으로 보이지) 학자들간의 카더라 통신이 있다면 나는 동지적 관계 매춘등을 이해도 조사한 이웃사람 카더라 통신이 있다. 물론 내가 그들에겐 악의적인 기사 인용문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일 수 있다. 그 점 생각해 봐야겠다.
점점 배가 산으로 간다.
나는 아마도 77년생중에 무지 상위 1프로에 속하는 역사와 한문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그러다 보니 역사와 한문이 연결되는 다른 분야도 잘 모르는 사람이다. 집단을 좀 무서워하고 집단 속에 있게 되면 유체이탈하듯 한 번씩 빠져나와 저 새까만 머리통들을 보라지 하는..
일본 문화에도 큰 관심 없다ㅡ 내 또래들이 일본영화 어둠의 경로로 보던 때도 나는 굳이 힘들여 그런 걸 접하는 현상이 이상해 보였다. 어찌보면 뭐든 심드렁한 순수무지인간이다.
딱 하나 내게는 성폭력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건 어쩌다보니 내가 직간접으로 경험한 것들이며 이걸 극복했는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가장 나를 힘들게 한건 내가 남자를 낳았다는 거였다. 그건 병과 같아서 공포를 떨치는데 시간과 훈련이 필요했고 밤중에 뛰쳐나가 울면서 다니는 이상한 밤들도 함께왔다.
내가 위안부 문제를 처음 들었을 때 그건 내게 더도 덜도 아닌 강간 성폭력 문제였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렇다면 그 짐승으로 전락한 다수 남자들, 그들의 인생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떠올렸다. 그들은 일상에서 성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라 성폭력을 종용당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생명을 연장 시킨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제국의 위안부를 읽기 전에도 어렴풋이 참담한 연민으로 가졌던 것이다. 책을 읽기 전 내 인식은 병사도 위안부도 불쌍하다, 전쟁을 일으킨 나쁜 일본! 까지였다.
미렵스럽게 구분을 시도해 보자면 책에서 이동당한 존재들을 읽어내면 알 수 있고 강조되는 점. 전쟁을 일으키고 병사를 강제 이동시켜 ‘목숨 바쳐 천황에 대한 충성”황국신민의 영예로운 의무’를 강제한 일본은 자국 남자들에게 죄를 저질렀다. (일본이 이것에 대해 철저하게 반성하는지 궁금하다. 이부분은 지금 기억이 안난다.) 거기다가 위안소를 차리고 일본인 위안부를 동원하여 죽음으로부터 도망하고 싶은, 불쌍한 인간들을 위무하여 본국의 일상, 향수를 조금씩 넣어주며 교묘한 전쟁수단으로 만든 일본의 책임을 묻고 있다. 조선에서는 조선인 업자들이 조선 여자들을 데려온다. 이것 역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1차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조선에서 업자들에게 속아 갈 수 밖에 없던 여자들을 가게 만든 우리의 책임도 분명 있다. 이것을 부정하고 없었던 사실로만 기억하려는 것은 억지다.
어떤 분이 제국의 위안부 논리가 ‘강간당한 여자에게 실제로는 너도 즐겼지’ 라는 것이니 절대 용납할 수 없다 했는데. 생계형 자발적 매춘은 무언으로 속한 집단에게서 종용당한, 사회로부터 내침당한 이들이 선택한 마지막 수단이다. 그러니 자발적 매춘이라 함은 거기에 매춘 소굴에 자신의 발로 걸어들어간 그 걸음이 바로 절망 혹은 삶을 포기당한 자의 자각하지 못한 걸음으로 그려진다. 그런 자발적 매춘부들을 만들어 낸것은 바로 일본 제국주의 전시상황 여자들을 불러들인 구조와 그 구조에 편승해 이익을 얻으려는 포주들 조선인 업자들의 가담, 그러한 가담을 양산한 다시 구조적 문제이며 한편 결국 여자들을 항시 남자들의 분노와 추잡한 욕망의 끝을 받아내는 양동이로 서슴없이 몰아내는 조선의 가부장제, 고깟 딸 버리거나 희생시키는 남성주의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일본의 가라유키상을 보아도 조선과 일본 아니 전세계의 뿌리 깊은 여성에 대한 차별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들이 전반 책에서 확인 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간다. 내가 처음 위안부 문제를 들었을 때 그것을 강간 성폭력으로 들었다면 그것은 단지 일본병사와 위안부사이에만 있었던 특수한 성폭력으로 인지하고 고통스러워 한 것이 아니다. (나는 여기서 어디까지가 강제 징용이고 지발적 매춘이고를 떠나 이야기 한다) 위안부들은 자기 몸에 가한 고통을 절대 잊지 않지만 자신들의 참담과 병사의 처지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아냈을까 나는 상상을 했다. 물론 상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 내가 위안부 참상을 이야기로 들었을 때 몸으로 떠올린 기억이다. 내몸은 무섭고 떨리고 병사들은 개 같고 불쌍하고 곧 죽음 직전에 벌벌벌 똥을 지르는 짐승 같았다. 서로는 서로를 비춰본다.
제국의 위안부에는 전쟁터에서 잠시 병사들이 돌아와 일본인 위안부나 조선인 위안부와 시간을 보내는 좀 평화로운 한 때도 자료로 나온다. 만약 비극인 시간이 있다면 그 얼마간의 평화는 또한 정말 환각 상태 혹은 다 잊어버리고 싶은 순간들이었을까. 그 부분을 읽다가 울었다. 위안부가 성노예 오로지 고통만으로 점철되어 살아도 산 게 아닌 어떤 이미지로 박제되어 있었고 내가 그걸 떠올릴 때 실은 나는 내몸이 떠올리는 기억을 공포스러워한 거고 저주했던 것이다. 내게 가해지는 것 같은 폭력에만 분노했다.
위안부 문제에 분노하는 여성들은 몸으로 치를 떨고 남성들은 잠재적인 자신의 폭력성을 그악스럽게 부정하는 것이라고 느낀다. 공포와 분노는 잠시 이성과 분리된 상태다. 그건 마치 목숨만 본능적으로 살아나려는 몸부림 같다.
내 스스로 소화하기에 고통스러워 얼른 이것은 위안부 문제, 소녀들, 너무 아파, 어떻게 그런일이, 몇 개의 단어로 고이 박제시킨 것들을 ‘실제 사람들이 살아야했던 사실’ 로 불러오고 살려내게 한 것이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이다. 공포로만 여기거나 싸울 거대한 담론으로만 여기면 나는 힘을 쓸 수 없다. 위안부 힐머니들의 마음이나 그 시대의 사람들이 살아낸 비극상황, 사람사이 관계, 당연히 그러했을 그들의 삶, 그것을 제국주의는 어떻게 간파하고 이용했나. 가슴이 풀어지며 어루만지고 내가 깨지고 그녀들이 인간으로 느껴져서 그래서 더욱 연민하게 된 것은 그녀들의 일상과 위안소의 폭력을 오가는 상황을 읽을 때였다. 이것까진 내 개인적인 책을 읽을 때의 심정 고백이다.
그런데 자발적 매춘이나 조선인 업자의 가담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이 자발적 매춘이었다, 우리에게도 가라유키 상이 있듯 조선인 위안부도 그런 역할을 한 것이다, 조선인이 실은 같은 조선인을 매춘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라고 말하는 이유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국에선 일본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일본의 책임이다’라고 말할 근거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근거들은 위에 설명한대로 일차 책임은 어디로도 물을 수 없는 일본 제국주의 폭력에 있다는 것을 책에서 강조한다.
어제부터는 학자들이 비판에 나선 모양인데. 그들의 비판이 아직까진 카더라 통신과 혼재되어 어떻게 와도 내 동막골 같은 의식이 이해한 저 자리는 절대 일본의 죄과를 약화시키려는 물타기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또 하나 독도는 우리땅이란 노래를 우리는 띄어띄엄 노래를 따라 부를 줄 알게 되는 네 다섯 살 부터 들어왔는데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문제는 나를 무식하다 해도 된다.
2007년인가 2006년? 내가 육아에 시달리며 세상 소식이 우울증을 더하게 해 모든 미디어를 끊었을 때였다. 어느 날 읍내에 나갔더니 모든 차들에 태극기가 꽂혀 있었다. 또 월드컵인가 했더니 독도문제 때문에 온 국민이 태극기를 달고 있다고 했다. 내 의식의 동막골에선 독도가 그다지도 문제면 양쪽 주장이 한치의 의심도 없이 치열하게 진짜만 있을텐데 그거 그만 반복하고 합의하면 안 되나, 전세계 공동 평화영토로 하면 안되나, 그리고 서로 영해분할선이던가 이런 거는 합의하고 나면 전세계의 괜찮은 응원 받으며 잘 해결되지 않을까, 전문가도 많은데, 이런 생각을 했는데 한 번도 말한 적은 없다. 어쩌다 보니 이런 말까지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내편에선 어 정말 저런 게 가능하다고도 생각하네, 하며 힘을 실어줄 것이다.
나는 민족주의를 전세계 사람이 자신과 한 민족이다로 인식하는 사람들과 뜻을 함께 한다. (헛다리지만 다 서로 다른 민족으로 가를 거면 문학도 음식도 전부 갈라서 절대 이해불가 물타기 하면 안돼. 국익에 반하니 음식도 우리 것만. 신토불이. 그런데 전세계인의 축제 월드컵 켁 이 따위 짓은 서슴없이 가담해 오 필승 코리아 외치는 그러면서 지면 열 받아가지고 외국 김독 수입해 오고 이거 말이 앞뒤가 하나도 안 맞고 구분 어차피 안 되는 거다. 죄송 갑자기 열받는다) 동막골 사람처럼 이 방면으로 무지하지만 위에 말한 것처럼 이런 이해가 아무리 전문가가 필요한 사안의 해석에도 무시당해선 안된다는 생각이다. 세계 곳곳엔 정말 순리대로 있는 그대로 서로간의 약속으로 평화를 유지하게 하는 조용한 집단들이 있는 것 같아서다. 그럼 이만 총총..부끄러움을 감당하지 못해 오늘은 페북을 쉬겠다. 믿거나 말거나.
2월 20일 포스트
욕설은 줄었지만 논리 싸움 시작. 댓글들을 주욱 읽어보는데 내용을 들먹여 비판하시는 분들이 집요하게 싸우면서도 책은 그다지 읽을 필요가 없다 하시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음. ‘또라이들 뭐라는거야. 헛소리 하고 있네.’ 이런 욕 한마디 던지고 가는 사람들 붙잡고 전도사처럼 책을 읽으세요라는 헛소리 필요없다는 거 알겠는디 그토록 책내용, 용어의 쓰임 반박하고 싶다면 정독하고 이야기를 하든가. 상대의 답을 듣고 반나절이라도 생각해보고 다시 이야기 하든가. 이 잡고 늘어지는 핑퐁은 그냥 항복 소리 받아내고 이기고 싶어 투정 하는 거 아닌지.. 배는 이미 먼산까지 가고.
2월 21일 포스트
일본은 히로시마 원폭으로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고 한국은 일본에 피해자 코스프레하고 그럼 베트남은, 필리핀은, 힌국군이 저지른 양민 학살은? 사죄와 화해와 풀어야 할 것들은 아직도 멀고 멀다. 국가와 구조의 잘못을 묻기 위해 미시를 거시로 가져가야 하는데. 일본을 나쁜 개인으로 인식해 버리면 그 구조가 양산한 무수한 다른 피해들은 어떻게 책임을 물 것인가.
까놓고 이야기 해야 될 거 아니냐고요.
2월 21일 포스트
나는 박유하 선생님이 ‘야생의 학자’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학문적 위치를 떠나 최선의 진심의 언어를 사용한다. 나는 이런 정치·학문적 생태계에서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것을 ‘진성’으로 말 하는 사람을 만났고 그 목소리가 곡해 되는 것을 우려한다. 아니 슬퍼한다.
나는 선동 정치적 이용을 경멸한다. 세월호 발언에 있어서도 미약한 인간적인 발언들이 묻히지 않길 바란다. 선동적인 발언들은 밉다. 선동은 항상 다른 목적을 가진다. 어머니들은 연약한 피부를 지니고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떠나 무너지고 슬프다. 인간은 연약한 신경선들로 이루어진 그러나 끊어지지 않는 섬세하고 강인한 존재다. 섬세한 결을 최대한 들여다보며 묻히지 읺길 바라는 소외되지 않길 바라는 사람의 행보를 지지한다.
나는 공교롭게도 박유하 선생님이 공격받는 부분까지 세상에 꼭 필요한 ‘심성’ 으로 지지한다. 우리의 심성들은 살해당한 육고기 양지 사태로 구분하듯 너무 재단 당해 왔다. 그녀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 나쓰메 소세키론’ 을 보면 그녀의 심성이 읽힌다. 정치 학문적으로 세상에 통용되기엔 약한 고리가 있으나 그녀의 심성이나 진심이 가짜라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녀의 약한 부분을 지지하고 보충해주시라. 특히 학자들, 그녀는 개인의 일신을 위해 이 퍼포먼스를 벌인 게 아니다.
제발 도와주시라. 내 페친분들께 죄송하다. 나도 내가 할일을 미뤄가면서 일주일 이 일에 묻혀있다. 그래야 한다.
취했다. 나는 술을 많이 마시면 안 되는 사람이다. 내 일에 지장이 있다. 그러나 술 한잔을 빌어 말한다. 그녀가 일본의 어떤 좌파 지식인의 논리를 체화했다는 그런 말 제발 하지 마라. 나는 이성과 감성이 살아있는 생목소리를 들었다.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 읽어보시라. 아쉽게도 화해를 위해서는 절판이라 못 읽었다. 그러나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 나쓰메 소세키론은 박유하 선생님과 개인 대화로도 확인한 매우 중요한 저서이다.
비판자의 입장을 떠나 말을 읽어가듯 읽어보시라. 나는 세월호 발언 어떤 선동적인 문구를 경계한다. 우리는 살아서 아프고 어느 누구 하나 매도 해선 안 된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는 가장 비천한 인간적인 타협 약함까지도 그 자리에 이르게 한 더 큰 힘 권력구조를 보아야 할 것 같다.
이 포스팅은 독주에 힘을 빌린 용기를 낸 포스팅이다. 그러나 주정이 아니라 삼켜왔던 말이다. 기지촌 여성에 대해 앞으로 예를 들어 생각을 주절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일본과 화해 해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아이가 있고 노인이 있고 시인이 있고 하루키가 있고 고진이 있고 좌익 우익이 있고 천황을 침배하는 무리가 있고 지한 친한이 있고 위안부였던 할머니가 있고 내일 죽을지 오늘 죽을지 모를 ‘사람’이 살기 때문이다. 우리와 같다. 다른 그림을 내보이는데 그들이 우리를 욕하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도 쪽바리로 몰아붙이면 안된다. 우리는 그럴 자격이 없다. 똑똑히 묻고 따지자. 누기 욕할 자격이 있는가. 용서를 받자. 그리고 우리는 이웃이 될 수 있다. 천년만년 살 것 아닌데 이 싸움을 대물림하지 말자.
정우성, <금서> 『제국의 위안부』에 관하여
(출처) https://www.facebook.com/woosung.jeong.7/posts/838926126148741
<제국의위안부>라는 책은 이제 한국에서는 읽을 수 없게 됐습니다. 금서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자는 손해배상책임과 형사고소 이 두 개의 소송이 남았습니다. 긴 싸움이 될 것이며, 수년의 피곤함을 거치면서 한국사회의 수준이 드러날 것입니다. 저는 저자인 박유하 선생을 몰랐다가, 독서를 하고 서평을 쓰면서 페북으로 연결되었죠. 작년 여름의 일입니다. 제가 그때 7편의 서평을 썼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남을 인정하는 기준이 매우 높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저서에 대해 서평을 쓰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무려 7편의 서평을 쓴 까닭은 <제국의위안부>에 담긴 글이 제 사유를 많이 넓혔기 때문입니다. 금서가 된 이 책은 중학교수준의 문장이해력이라면 읽고 이해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책입니다(물론 심리적 편향이 문장이해력을 방해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자유!라고 말할 때 그것은 매우 묘한 의미랍니다. <자유>에는 사적 본질이 있과 사회적 본질이 있습니다. 사적 본질은 사실상 “나의 양심”과 “나의 의지”에 관한 것인데, 이게 아우구스티누스 이후로 서양 철학의 중심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사회적 존재를 이야기할 때, 예컨대 페북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거나, 칼럼나 저술을 하여 주장을 하거나, 거리에서 뭔가를 말할 때의 자유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모두 사회적 차원입니다.
<자유>의 사회적 본질은 <나의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의 본질은 <타인의 자유>에 있습니다. 타인의 자유를 인정함으로써 나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인류의 사상가들이 자유를 탐구하고, 수많은 목숨들이 자유를 이뤄냈을 때의 그 자유는 “나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었습니다. 남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면서 자신의 자유가 확립되는 것이 자유의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남의 자유를 외면하는 자유는 없으며, 그런 자유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꼴값을 떠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먼저, <자유>에 대한 저의 생각이 깊게 묻어난 <제국의위안부서평 7>을 소개합니다. 이글은 제가 쓴 게 아닙니다. 1859년에 출간된,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영국에서 출간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의 문장을 인용해서 쓴 서평입니다. 2014년 9월 6일에 쓴 글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매우 복잡하지요. 인간은 매우 볼품없이 야만적이고 미개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게 대부분이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 인류는 스스로 개선해 왔고 한 번 이룩한 진보는 좀처럼 후퇴하지 않습니다. 갈등과 파국은 있으나 더 나은 개선이 없는 한 그 진보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게 역사입니다. 정우성의 목소리가 아니라 존 스튜어트의 밀의 목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서평 7: http://wp.me/p3Xhl1-lz
금서 <제국의위안부>를 읽으면서 저는 아주 많은 사유의 영역을 개척했습니다. 그중 빛나는 발견 중의 하나가 <과장>입니다. 우리는 흔히 거짓말을 <완전한 날조>로 이해해 왔습니다. 만약 그것이 새빨깐 거짓말로 밝혀지는 순간 그런 거짓말은 이제 괜찮습니다. 재판을 받는 거짓말은 그 위험까지 단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좀처럼 밝혀지지 않고, 양심을 핍박하지 않으며 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 거짓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과장하는 거짓말>입니다. 저는 금서 <제국의위안부>를 읽고 <과장하는 거짓말의 존재와 위험>을 깨닫게 됐습니다. 중년이 돼서 알게 된 이 위험은 어떻게 생각하면 지나치게 늦지만 또 어떻게 생각하면 빨리 알게 돼서 기쁩니다. 저는 이것을 주제로 장차 <어린이 철학 강의> 책을 저술할 작정입니다. 서평 2는 다음과 같습니다.
서평 2: http://wp.me/p3Xhl1-kv
몇몇 똑똑한 사람은 <위안부>와 <정신대>를 구별하겠습니다만, 저는 잘 몰라서 그것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저만 그럴까 싶어서 주위에 많은 사람한테 물어봤습니다. “정신대와 위안부의 차이를 아니?” 제 주위에는 모두 무식한 사람만 있을까요? 모두 몰랐습니다. 매주 수요일에는 수요집회가 열립니다. 우리 회사 앞에는 <위안부 소녀상>이 있습니다. 그 앞에서 정대협 주최로 수요집회가 열리는데 중학생 아이들이 많이 옵니다. 그 학생들에게 정대협의 주장이 각인됩니다. 이것은 매우 강렬한 메타포입니다. 우리 인간은 서술형 문장으로 기억하지 않고 메타포(비유)로 기억합니다. 그것이 머릿속 사유체계에 강력한 프레임을 만들죠. 아이들은 자기 나이 또래들이 일본군에 끌려갔다고 생각하면서 증오심을 갖고 돌아갑니다. 얼마나 올바른 일이지 의문입니다만, 그런데 그 아이들이 정신대와 위안부의 차이를 알까요? 서평 3는 주로 이것에 관한 것입니다.
서평 3: http://wp.me/p3Xhl1-kF
물론 박유하 선생의 금서 <제국의위안부>는 매우 불편한 책입니다. 우리가 진리처럼 알고 있는 사실과 너무나 다른 이야기를 할 뿐더러, 그 이야기가 수많은 “증언”과 “기록”에 의해서 뒷받침되며,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등장인물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이 책을 읽다가 몇몇 단어에 열폭하기도 하죠. 열폭을 부른 단어 때문에 다른 문장, 사실, 문장들의 맥락, 저자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조차 모두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립니다. 그중 상당수가 교수나부랭이들과 <지식인>이죠. 저도 매우 낯선 체험을 했고 또 그런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반대한다고 머뭇거리며 표현했다손 치더라도, 이 책으로 말미암아 내가 만난 <와타나베>와 <메이>의 존재는 제국과 전쟁을 바라보는 내 시야를 넓혔습니다.
서평 4: http://wp.me/p3Xhl1-kH
만약 여러분께서 인내심이 있고, 또 지적 호기심이 있다면 여기까지 네 편의 서평을 읽었을 것입니다. 당신의 인내심과 지적호기심이야말로 우리 인류의 진정한 에너지랍니다. 위의 네 가지 서평만으로도 금서 <제국의위안부>가 만만한 책이 아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저의 첫번째 서평은 매우 소박했답니다. 마이너스와 플러스가 함께 병존하는 입장처럼 읽히는군요. 2014. 7. 13.일의 서평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거의 두 달에 걸쳐 서평을 쓴 셈입니다. 엔터테인먼트로 저술하는 사람이 아니라면(그런 사람도 많습니다), 한 권의 책을 쓸 적에는 수많은 시간, 수많은 자료, 그리고 그것보다 더 많은 번뇌가 들어갑니다. 모든 서평에 저자의 그런 노력에 준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만, 제가 첫번째 서평을 쓸 때 들었던 느낌은 ‘이 책, 좉됐다. 승냥이들이 몰려오겠군”하는 것이었습니다. 금서 <제국의위안부> 는 제국주의를 겨누고 있지만 슬프게도 한국인의 정신세계가 제국주의적이라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신세계에 대한 약탈과 방화와 침략이 행해지는 것은 이 사회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서평 1: http://wp.me/p3Xhl1-kq
앞서 말한 것처럼, 저는 금서 <제국의위안부>를 읽으면서 저의 역사에 대한 철학을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독서를 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그 책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거나 반대하는 이분법적인 것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독서의 본질은 사유함에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내가 알고 있는 지식에 중대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또 40년을 넘게 살면서 듣고 겪었던 많은 일들을 떠올렸습니다. 사실 저의 이런 체험은 이 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사유를 확장했습니다. 예컨대 소주를 마시면서 친구와 허튼소리를 할 때, 그러면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거나 자기 생각이 정리되었던 체험, 누구나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그런 것과 같습니다. 저는 대결함으로써 존재성을 확인하는 80녀대 이후의 진보주의자들의 헤겔철학적인 습성과 단절을 선언했습니다. 그게 철학적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진보파들에 만연된 국가주의적 관념이 어떻게 역사에 발현되는가를 깨닫게 됐습니다. 역사는 사실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관념에 의해서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죠. 이 서평은 비교적 난해하고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이 서평을 끝까지 읽어냈다면 당신의 내 영혼의 친구입니다.
서평 5: http://wp.me/p3Xhl1-kP
여러분, 여러분은 팬덤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각자 자기 사유의 힘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어린 아이입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스스로를 명망가와 대등하게 생각하시기를 권합니다. 여러분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학자나 지식인이나 정치인, 특히 한국사회의 경우에, 그렇게 정신세계가 깊지 않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저도 여러가지 할 말은 있습니다만,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기본적으로 “오만”하기 때문이며, 더욱 문제는 그 오만함이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엘리뜨들은 자기 자신의 생각은 있어도 남에 대한 생각을 “습관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게 어디 한국인의 DNA겠습니까. 아마도 그런 문화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말을 하려면 귀가 있어야 합니다. 박쥐의 귀가 아니라 사람의 귀, 이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문장을 이해하고 진심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귀없는 사람의 논쟁은 간단합니다. 이미 쓰기 전에, 이미 말하기 전에 결론이 난 “논쟁”, 그것도 아주아주 민감한 주제에 관한 논쟁 글은 단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씨발 죽어라 마녀야” 박노자교수와 이재승교수를 반박하고 금서 <제국의위안부>를 옹호하는 서평입니다.
서평 6: http://wp.me/p3Xhl1-l7
이렇게 저는, <제국의위안부>에 대해서 7편의 서평을 썼습니다. 이제 금서가 됐으니까 책을 들고 저자를 찾아가서 싸인이라도 받아야겠습니다. 보통 파시스트는 한 가지의 정의, 다 하나의 길만을 생각합니다. 대개 그들의 눈빛은 단호합니다. 박유하와 한 하늘 아래 사는 것을 비통하다고 말했던 성남시 시장 이재명 변호사의 눈빛처럼 말이죠. 파시스트는 자기가 위험한 생각에 젖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며 필연적입니다.
너무나 태평하고 자연스러운 <반일파시즘> 프레임. 관심없습니다. 금서와 금기를 아무리 주장한다 하더라도, 과거가 될 것은 이미 과거입니다. 저는 그저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류의 온유한 공생을 위한 길을 모색할 작정입니다. 더디더라도 그런 지구를 내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합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5520853474828
이관식, 난독, 오독에 관해
이관식
https://www.facebook.com/lukeinsaipan?fref=ts
2월 19일 포스트
난독, 오독이란 게 별 거 아니다.
게으르면 그리된다. 물론 인간은 이미 결론을 정한 채 편향된 컨텐츠에 끌리기 마련이지만 최소한의 양식이 있다면 양쪽, 아니 여러 입장의 글을 읽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이재명 시장으로부터 촉발된 논쟁에서 꽤나 명망있다는 학자나 책 좀 본다는 이들조차 기본적으로 게으르다는 인상을 받았다면 무리일까?
다시 밝히자면 이재명 시장은 이제 내게는 후안무치하며 선동을 일삼는 모리배쯤으로 남았다. 실망을 넘어 그에게 분노를 느낀다.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수많은 폭력적인 댓글을 일부 선동했고 아직까지도 본인이 한 짓이 폭력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 사태가 우리 사회의, 특히 정의롭다고 주장하는 몰지각한 대중의 폭력적 단면을 드러낸 일이라고 본다.
책으로 인해 촉발된 논쟁이라면 책을 우선 읽는 게 옳다. 책의 일부 표현에 대한 법원은 판단을 내세우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법원의 판단은 항상 옳은가? 그리고 재판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하급 법원의 1차 판결일 뿐이며 그조차도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갈리고 있다.
우연히 알게 된 문제이긴 하나 이 일에 관심을 가지며 제국의 위안부는 물론 증언록과 관련자료 몇권을 읽었다. 물론 온라인 상의 여러 주장도 거의 대부분 스크립해서 읽었고 아직도 읽는 중이다. 위안부들이 직접 증언한 몇개의 이야기만 읽어도 기존에 우리가 알던 이야기와 많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증언록은 위안부 문제가 지금처럼 편향된 방향으로만 알려지기 전에 녹취,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다. 몇권이 아니라 몇분의 증언만 읽어도 알 수 있는 문제이다. 기본적인 자료조차 습득하지 않은 채 그동안 체제 안에서 받은( 그토록 부정하는 전 정권들이 고의적으로 저지른) 편향적인 정보만으로 폭력적 댓글놀이에 동조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박유하 교수의 주장이 온전히 옳다는 것이 아니다. 법원을 끌어들여 입을 틀어막고 책을 판금하기 전에 최소한 이 문제에 대해선 논의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우루루 몰려가 돌을 던지기 전에 말이다. 연휴 내내 우리 사회의 폭력적 단면을 다시 확인한 것 같아 씁쓸한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