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약도

백옥주사니 태반 주사니에 이어 나온 비아그라 얘기는 실소할 수 밖에 없지만, 웃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기들면 가는 동네의원에도 무슨무슨 주사를 맞을 수 있다는 “안티에이징 치료”가 나붙은 지 이미 오래고, 그건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우리사회의 축약도이고,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번 사태는 잘 된 일이다.
시간이 갈수록 점입가경인 이 사태를 두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자. 결코 자랑이 되지 않는 우리의 자화상을 상징해 주는, 청와대의 수치를 외면하지 말고 잘 보자. 중심에 있는 이들의 외모와 젊음과 권력에 대한 끝없는 욕망은, 학대와 가난으로 죽어가는 약자들의 존재와 대비되어, 오늘의 대한민국을 보여준다. 다른 나라의 양극화와도 결코 같지 않은.
오늘은 법무장관등이 사퇴했다는 소식이 들려와 그나마 기쁘다. 대통령도 수치를 모르는 나라에서, 수치감의 표명으로 보이는 첫 행보.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551686404858268

위로하는 힘

재판을 위한 최종 자료체크를 하다가 발견한 원고.
5년전 봄에 오에겐자부로 <익사>(水死)심포지엄에 참석했을 때 오에선생께서 그날 발표한 원고에 나에게 주는 메시지를 적어서 건네 주셨다. 애석하게도 원본은 같이 참석했던 중국인학자에게. 그걸 보고 농담으로 “저도 주세요.”했더니 “복사지만…”하면서 써 주신 거였다.
오에선생은 나의 <수사>해석이 마음에 드신 것 같았다. 써 주신 말은
“다이오라는 인물이 만약 실재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박선생한테) 깊이 이해받았다는 느낌에 행복한 인생을 누릴 권리를 되찾은 것 같았을 겁니다”.
소중한 한단계를 넘어선 것으로 느껴지는 <새로운 박유하>에게!”
기쁜 칭찬이었지만, 3년후에 나는 한국에서 나쁜 책을 썼다는 비난과 함께 고발당했다.
그동안 잊고 있었지만 우울한 재판준비를 다시 하면서, 새삼 위안이 된다. 위로는,기억해야 힘이 된다.
“새로운 나” 역시도 희망사항일 뿐이지만, 희망은 품는 일 자체로 삶을 지탱한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오에선생 악필도, 위로가 된다. 글씨는 능력이나 인품을 늘 표현하는 건 아니다. ㅎ)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550575881635987

대통령의 근무

연구자들은 연구실에서만 연구하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도, 나도 “사저집무실”(서재)에서 재택근무하는 거 좋아한다.
하지만 그건 혼자 해야만 하는 일(읽고 쓰기/연구와 집필)이 교수의 직무중 하나기 때문이다. 사람과 마주보며 해야 하는 일– 회의나 강의까지 서재에 앉아 이메일(서면보고란 종이였을까)이나 전화로 하진 않는다.
대통령은 그 시간에 왜 회의를 하지 않았을까. 왜 다른 이들의 지혜를 모으려 하지 않았을까.
대통령이 모든 판단에서 우월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우수한 인재들을 주변에 둘 수 있는 사람보는 눈과 인덕이 있어서, 그 브레인들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내 줄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랄 뿐이다.
대통령은 “출퇴근 개념이 없고 모든 시간이 근무시간”이라는데, 정말이지 그러길 바랐다. 구하지 못한 생명들과, 하다못해 구해야 할 생명들 생각으로라도, 잠못드는 대통령이기를 바랐다.
관저건 본관이건, 집무실을 그저 지킨다고 “근무”가 되는 건 아니다.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549562481737327

박유하에게 허락된 3분

내가 갑자기 참석하는 바람에 이 며칠 페북에서도 시끄러웠던 정영환출판기념회의 영상이 어제 주최측에 의해 공개되었다.
그런데 정영환씨의 나에 대한 비난이 편집되어 사라진 건 그렇다 치고, 나를 향한 야유와 비난등 장내 목소리가 전부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이 영상은 전부가 아닌 요약버전이지만, 그럼에도 “현장”을 기록하고 있는 건 이 쪽이라 하고 싶다.
모든 장내목소리가 사라진, 기이한 느낌의 주최측 영상에서 나는 “역사왜곡”의 현장을 본 듯 했다. 보여 주고 싶은 것만 기록해 온 “역사주체의 욕망”을.

원글 링크

박유하에게 허락된 3분 영상

퇴락한 한국의 저널리즘

이미 한겨레 한승동 기자의 글에 대한 비판이 이미 태그되었기에 기사 본문은 생략하고 방송을 보신 분의 글을 복사해 둔다.
“일본인의 시각” 이라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국적도 이념도 무엇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이 당연한 일이, 우리에겐 일본/진보(좌파)를 향해서는 늘 망각된다.
Facebook 글을 줄이겠다고 했던 직후에 정영환교수 책이 출간되어 또다시 어지러운 며칠을 보냈다. 두통이 실제로 일어나 몸이 아프다는 건 내가 탁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부족하고 부족하다.
소송은 오로지 이기고 지는 것이 초점이 되는 싸움이다. 그래서 세속적일 수 밖에 없다.
근거없는 곡해와 오독으로 학문을 세속화한 것은 누구인가.
———-
한국의 저널리즘이 이렇게까지 퇴락했구나 하는 것이 기사를 읽었을 때 첫 느낌이었다.
특정한 사람이나 책에 대한 평가는 물론 자유이나 가급적 편향성을 기피하려는 의식 정도는 갖추는 게 신문가자의 기본일 것이다.
무엇보다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는 자세 또한 저널리즘에는 요구된다.
질의응답 부분. 이 날 기자회견을 동영상으로 보고 있었던 나(후반 뿐이지만)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기사는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유하 교수의 폐이스북을 보면 박교수가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초청]되었음이 확인되는 메일 사진을 볼 수 있고, 나중에 박교수에게 실행위원회에서 온 [착오가 있어서 그렇게 됐다]는 메일도 확인이 가능하다. 비록 기사를 쓸 때 그러한 정보가 없었다 하더라도 박교수에게 그 자리에서 직접 물어보면 되는 일이었다. 동영상을 보는 외국인인 나조차 무슨 착오가 있었구나 하는 정도는 추측이 가는 부분이었는데 기사를 쓴 분에게는 그 가능성조차 생각을 못하셨던 모양이다.
인터뷰는 또한 이게 무엇인가 싶었다. <제국의 위안부>의 학술적 검토도 마땅히 있어야 하고 정영환 교수 책 또한 마찬가지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청구권의 문제 하나 가지고도 의논은 그렇게 쉽지는 않다. 고노담화의 대한 평가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정 교수가 쓰는 [화해론]이라는 용어에 대한 규정도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신현철 선생님이 대략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비판은 언제나 가능하다. 그러나 조소는 언제나 불가능하다. 남을 조소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가장 저급한 쾌감이며 그 유혹에 굴복한다는 것은 내 안의 있는 가장 저열한 존재와의 싸움에 지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어 메모에 의한 것이므로 표현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그날 행사장에도 비아냥 어린 웃음이 나에게는 보였다(내 착각이길 바랄 뿐이다).나는 결코 조소하는 입장에 서지 않으련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민주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편향과 왜곡 보도 때문에 고통을 겪은 적이 있는 줄 안다.
그러나 이 기사를 보니 한겨레 신문은 이미 권력자가 된 모양이다. 적어도 박유하 교수의 인권을 존중하는 자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에 있어서 불행한 일인 것이다.
https://www.facebook.com/kumakichi39jp/posts/131680210593808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405803206113256

한승동 기자의 왜곡

정영환 교수 책에 대해 잇달아 호의적인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다른 뉴앙스의 기사를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다. 한승동 기자의 한겨레 기사의 왜곡에 (<제국의 위안부>를 극우 산케이가 극찬?) 절망적인 기분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뒤늦게 검색해보니 두개 기사가 있었다.
진영 논리로 부정할 분들도 계실 지 모르니 다른 언론의 기사도 기대하고 싶다.
http://m.chosun.com/svc/article.html…
http://m.segye.com/conte…/html/2016/…/01/20160701003525.html

페이스북 원글 링크

기시감

정영환의 말을 출판사와 출판기념위원회가 그대로 옮겨 언론에 퍼뜨리고, 언론 또한 나를 비판하는 책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묻지 않고 기사화하고 있다. 2년전에 나눔의 집이 나를 고발하며 “자발적 매춘부라 했다””위안부할머니를 피해자가 아니라고 인정하라 했다”고 했던 말을 수많은 언론들이 앞다투어 보도했던 때와 똑같아 현기증을 느낀다.
이번 사태가 내게 더 충격적인 건, 그의 책이 번듯한 출판사에서 번역출판되고, 성실한 학자들이 아직 젊은 그의 책의 논지를 아무런 검증없이 수긍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일이라서가 아니라, 경박한, 너무나도 경박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한 댓글이 내게 “통일되면 보자”는 식의 협박을 날렸던 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사태를 나는 크게는 “냉전 후유증”으로 본다. 하지만 동시에 대한민국의 총체적 “지적 퇴락”(정영환)이 일으키는 일인 것도 분명하다.
나를 “실성한 여자”라고 쓴 글이 출판사대표의 담벼락에 공유되어 있는 것도 그런 현상 중 하나일 것이다. 설사 참고용이라 해도. 화가 나기보다 부끄럽다.
출판기념기자회견에서 재판에 연대를 표명하는 발언이 있었던 것처럼, 이 출판은 나에 대한 소송에 본격적으로 가담하는 일이다. 출판은 자유이나 관계자들이
그점을 인식 해주면 좋겠다. 정영환 역시 노골적으로 고소취하에 합의할 수 없다고 언명했었다.
“잘못 나가는” 현대일본을 비판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겠지만, 정영환식 사고야말로 일본을 잘못 나가게 만들 수 있다. 그 책임은, 20여년 운동 끝의 국민간적대와는 다른 차원이 될 것이다.
정영환이 나를 비판한 자리에서 제출한 자료와 발언을 읽었다. 최소한 거기에서의 그의 지적들은, 전부 악의적 왜곡이거나 견강부회이거나 초보적 오독에 의한 것들이다. 곧 구체적으로 지적할 생각이다.
이 글을 보실 기자여러분께 부탁드린다.
“이 책에 대해 기사를 쓰실 분들은, 저의 홈피(parkyuha.org)에 올려 놓은 반론을 읽거나 제게 의견을 물어봐 주신 후에, 기사를 쓰거나 수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405028859524024

정영환 교수 저서 출판 기념회 참석 후기

어제 참석을 결정한 건 “초청공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간담회 두시간 중 최소 15분, 많으면 30분은 발언시간이 주어지리라 생각했었다.
세 사람이 20분씩 나의 책을 극렬히 비판했으니 그렇게 예상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원래 없었다는 지정토론자가 세사람이나 갑자기 정해졌고 그들에 대한 저자의 피드백이 끝나고 “청중”에게 마이크를 돌리겠다며 사회자가 말한 남은 시간은 고작 20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절망적인 기분으로 물었다. 내가 얼마나 시간을 쓸 수 있는지. 일반적인 질문은 보통은 3분정도가 예의니까.
하지만 내 예상/기대와는 달리 나는 특별취급을 받지 못했고(즉 주최측은 반론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고),오히려 일부사람들에게 야유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잔치판을 깬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고, 그나마 주어진 시간도 유효하게 쓰지 못했다. 학문적 논쟁이 기대되지 않은 “잔치”에, 존중받는 논의를 기대하고 나간 건 불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만에 만나는, 한 때 함께 했던 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건 나쁘지 않았다. 우연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소중한” 대접을 받은 지정 토론자 세 사람 모두가, 과거에 민족주의를 넘어 대화하는 어떤 한일지식인모임에서 함께 했던 이들이었다. 말하자면 현재의 대립은 그런 대립이다. “만남”은 어떤 의미에서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책이 나오고 3년동안, 어떤 비판모임도 나를 한번도 부르지 않은 데 대해 유감을 표하고 앞으로라도 불러 달라고 말했다.
사실 고발이후, 모든 비판은 재판 이후로 미뤄달라고 부탁해 왔다. 하지만 그런 나의 부탁을 비웃듯 이미 여러 글과 책이 나왔으니, 이제 그 말을 철회한다.
비판자들이,내 책에 대한 규탄을, 모놀로그가 아니라 다이얼로그적, “학문적 잔치”로 만들어 주기 바란다.
그런데 왠일인지, 모임 종료 직후에 동영상이 비공개처리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굳이 보이고 싶은 영상은 아니지만, 반론권에 대한 질문을 포함, 그리고 정영환씨가 나를 비난했다는 말까지, (정말이라면 유감이다. 나는 참석한 덕분에 그에 대해 약간의 호감이 생겼었는데) 편집 되지 않은 상태로 다시 공개 되기를 바란다.
“축하”자리였다면 더더욱, 논의를 풍성하게 해야 하고, 그럴수록 반론에 시간을 할애해야 했던 거 아닐까. 모든 공간은 타자가 있어야 풍요로워진다. 어제 모임이 유감으로 남는 이유다.
(어제 와 주었던 강의석감독이 영상을 올려 주었다는 걸 방금 알았다. 아래 태그포스팅. 어제 분위기를 아실 수 있다.)

초청장 포함 링크

강의석 감독 촬영 영상 링크

정영환 출판기념 강연회 초청장

안내 드립니다.
오늘 저녁에 갑자기 이하의 모임에 출석하기로 했습니다.
조용히, 읽고 쓰기에 집중하려 했더니 세상이 저를 가만히 두지 않는 군요.
본인이 있는 앞에서 비판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고 실행위원 중 한 분인 김창록 교수에게 말했더니 조금 전에 초청장이 왔습니다. 원래 일정에 없던 일이라 저에게 얼마나 시간이 할애될 지 모르겠지만, 참석해서 반론하려 합니다.
너무 갑자기고 불금이기도 해서 얼마나 오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 되시는 분들은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6년 7월 1일
박유하 드림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403565813003662&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theater

정영환 입국불허 항의 서명서 유감

이 성명서는 정영환의 방한목적이 나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목적을 노골적으로 쓴 것은 나에 대한 비판자들을 모으기 위한 것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 나에 대한 비난을 캠페인화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
이들은 내가 소송당해 법정에 갇혀 있고, 그 결과에 따라서는 형무소행과 해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 듯 하다. 서명운동을 하려면 나에 대한 얘기는 빼는 것이 좋을 뻔 했다.

기본 문제는 박세진 선생님이 이미 지적하셨으니
(https://www.facebook.com/sejin.pak8/posts/10154269712042296)
몇가지 오류만 지적해 둔다. 나의 페친들께선 지겨우리만큼 들은 얘기겠지만 정영환의 비판에 곧바로 반론하지 않았던 것처럼 태만하다 보면, 어느샌가 또다시 진실로 회자될 것이기 때문에.

1.
나는 “일본의 국가책임을 최소화”하지 않았다. 이들이 주장해 온 “법적책임”(국회에서 입법해 배상하는 방식)을 지우는 일이 이런 저런 이유로 어렵다고 말했을 뿐이다. 또, 법적책임만이 “책임의 최대화”라 생각하는 건 내가 보기엔 법지상주의적 생각이다. 때로 도덕은, 법이 못하는 것을 한다.
이런 식의 왜곡은 이제 그만, 지양해 주기 바린다.

2.
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악용”하지 않았다. 그동안 지원단체가 외면했거나 강조하지 않았던 목소리를 듣고자 했을 뿐이다.
나의 글을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악용”한 건 정영환 쪽이다. 이미 일부 썼지만, 앞으로도 밝히도록 하겠다.

3.
“일본의 ‘전후보상’의 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과대평가하는 등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은 비판자들의 생각일 뿐이다.

4.
“그와 같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일본 언론계나 일부 학계가 『제국의 위안부』를 과도하게 평가한 배경을 예리하게 비판함으로써 일본 사상계의 지적・도덕적 퇴락에 경종을 울렸다”는 인식은, 정영환과 그의 “오독 혹은 거짓말”(장정일)을 외면중인 이들의 생각일 뿐이다.

5.
정영환의 “제국의 위안부』 사태 이후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2015년 말부터 현재까지 홋카이도에서부터 히로시마까지 일본열도 전역을 돌면서, 도쿄 대학 등에서 시민센터에 이르기까지 학계와 시민사회를 오가며 열성적인 강연활동”내용은, 오로지 박유하 비판이었다.

6.
“저서 출간 이후에는 『도쿄 신문』 『마이니치 신문』 등의 일간지에서 소개 기사가 실리기도 했으며, 이것을 계기로 관련 연구자들이 도쿄 대학에서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대한 격론을 벌이기도” 한 것이 아니다. 마이니치신문 소개는 격론 이후 최근 일이다.
책이 나온 지 몇달 후에 새삼스럽게 실린 마이니치신문 소개는, 3/28 “격론”의 현장에 내가 없었음에도 행해진 정영환등 비판자들의 비난을, 기자가 그대로 믿은 결과일 것이다.

7.
비판자들은, “할머니의 아픔”을 내세워 나에 대한 억압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할머니를 아프게 만든 건 내가 아니다.
할머니를 아프게 만든 건,추출해 낸 곳을 “반복해 읽어 들려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드리면서 “박유하가 할머니를 자발적매춘부라고 했어요” 라고 말했을 나눔의집 사람들이고, 그 말을 확산시킨 사람들이다. 2차가해자는 누구인가.

8.
정영환의 “본국에서의 학술 활동을 비롯한 각종 활동 자유의 권리를 즉각 보장할 것을 요구” 하는 행동이 보편인권을 위한 것이라면, 할머니의 오해를 풀고
나에 대한 국민과 법정의 억압을 푸는 행동에도, 나서 주기 바란다.

검증되지 않은 비난을 언론과 학자들이 받아쓰기하는 사태 역시, 오늘의 한국을 상징하는 한 단면일 것이다.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402696496423927

정영환씨 입국불허 관련

어제는 과잉반응을 했다. 많은 분들께 걱정 끼쳐서 죄송한 마음이다.
재판이 없었다면, 또 신뢰했던 이가 한 일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반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충하고 싶은 말이 많으나, 불필요한 곡해가 또다시 재생산되고 있는 것 같아 우선 그 부분에만 언급해둔다. 내가 서글프고 힘든 건, 이런 왜곡들이 문화권력을 갖는 이들에 의한 것인 이상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하다못해, 이들의 목적이, 내가 지치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고 싶다.

정영환씨의 입국불허문제에 대해 나는 이렇게 썼다.
`정영환씨는 한국과 북한에서 정치적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한국입국이 불허된 사람이다. 국가가 개인의 이동의 자유를 관리하는 일에 나는 비판적이지만, 이들이 한일화해에 강한 두려움을 내비치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런데 박노자씨등 몇몇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비판에 나섰다. 그 글에 어떤 비약과 왜곡이 있는지는 글을 정확히 읽을 수 있는 이라면 금방 알 수 있을테니 굳이 지적하지 않겠다.
정영환이 아니라 정부를 비판했는데도, `대북마녀사냥`이고 `마각이 드러났다`는 식으로 `멋대로, 깊이, 비틀어 읽기`가 이루어지는 현장은, 아마도 냉전후유증으로 병들어 있는 우리사회의 단면일 것이다.
어떤 젊은 연구자는 내가 재일교포를 `연구자로서가 아니라 조선적재일조선인으로 호명해 북한과 연계시키는 짓`을 했다면서 `표현의 자유를 입에 담는 연구자가 할 짓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고까지 비난했다.(젊은 연구자들은 언어예의교육을 좀 받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나의 책을 표현의 지유라는 말로 변호한 적도 없다.)

북한과의 연계를 언급하는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기회가 될 때마다 나와 일본우익과의 관계를 증명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일본과 분명 깊은 연계관계가 있다. 그리고 누가 그걸 지적한다고 해서 문제삼지 않는다. 문제는 사실에 반하는 지 여부일 뿐.
집단명사로 호명당하는 일과, 표현의 자유문제에 민감한 이들이, 왜 나에 대한 사태에 대해서는 침묵했고 이제 직접 거들기에 나선 것인지도 묻고 싶다.

나는 국적을 갖지 않는 것을 택한 조선적 분들을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정점에 작가 김석범 선생이 있고, 내가 `조선적`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도 그 분을 통해서였다.
내가 언급한 건 오로지 `한국정부의 판단`이다. 쓰여 있지 않는 비난을 굳이 읽어내 비난하는 이들의 행위는, 위안부는 원래 일본인이 대상이었고 국가에 의해 이동당한 가난한 여성이라는 의미로 `조선인 위안부는 가라유키상의 후예`라고 썼더니 `그건 매춘부라는 뜻! `이라면서 판금을 요구한 지원단체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현 사태를 지식인의 대중화,라고 내가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쓴 글 들을, 비판자들은 멋대로 비틀어 확산시킨다, 하지만 언어를 사용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으로서, 언어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의식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나를 옹호해 준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과의 차이는, 대상과 글 자체에 대한 존중이 있는지 여부였다고 생각한다.

정영환문제에 대한 참고자료로 조관자 선생의 논문을 올려 둔다. 재일교포/조선적에 대해 말하려면 이 논문은 필수적으로 읽혀야 할 것이다. 입국제한문제에 관해서는 특히 6절이 자세하다.

https://onedrive.live.com/?authkey=%21AHZnee0gS38QXRI&cid=9F10CD072717D734&id=9F10CD072717D734%21960&parId=9F10CD072717D734%21959&o=OneUp

우리 안의 식민성

나의 책을 혹 “일본의 우익이 환영”했다면, 그리고 그들이 내 책을 읽고 반성적인 입장을 취했다면 나는 그들의 환영을 거부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이런 식의 소개는 명백한 왜곡이자 거짓이다. 물론 한 사람의 성실한 서평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쓰기에 이르렀다는 건, 2년에 걸친, 정영환을 비롯한 비판자들의 왜곡작업이 충분히 성공했다는 것일 터이다. 내가 견디기 힘든 건, 비판이 아니라 왜곡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보여주는 비겁함이다.

이미 여러번 말하고 썼지만, 나에 대한 기소반대에 나선 이들은 대부분 진보지식인이고, 나에게 상을 수여한 곳도 산케이나 요미우리가 아닌 마이니치신문과 아사히 신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평가한 건 위안부문제를 식민지 지배책임으로 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든 나를 우익과 이어져 있는 사람으로 몰고 싶어한다.

문제는 그 자체보다, 오로지 일본의 누구와 이어져 있는지로 자기정당화를 하거나 누군가를 내치는 이런 심성이다. 이거야 말로 우리 안의 식민성이 아니고 무엇일까. 해방후 70년이 지나도록 일본과의 연관성으로만 자신을 파악하는 이들이나, 나와 가까운 건 진보쪽이라고 외쳐야 하는 나나, 서글픈 건 마찬가지다.

정영환을 비롯한 비판자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당신들은 내가 당한 전국민적 비난과 재판에 따른 고통만으로는 내가 겪는 일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가.
그토록이나 집요한 증오를 드러내는 이유는, 당신들이 말하는 대로 “일본이 사죄하고 보상했다”고 썼기 때문인가. 나의 책이 오로지 그런 책인 것도 아니지만 설사 그렇다 한 들, 그건 형무소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인가.
그래서 기자회견까지 해서 나를 죄인으로 고발하려 하는가.

좌파든 우파든, 중요한 건 타자에 대한 상상력과 윤리적인 태도다.
짧았던 평화로운 시간이 끝나고, 이제 다시 총성이 들려 온다. 총을 겨누는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401361296557447&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누구를 위한 불화인가

고발 직후부터 집요하게 나를 비판해 온 재일교포 정영환의 책이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다른 것보다, 푸른역사에서 그 책이 나왔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나의 페친이어서가 아니라, 그곳을 훌륭한 출판사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번 재판에서, 검사는 김부자교수의 책을 들고 와서 나의 범죄사실을 증명하는 “범죄증거”라 했었다. 이미 일부 논문이 제출된 바 있지만, 다음번 재판에는 이 책이 제출될 가능성이 높다. 관계자들이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민변회장이 정영환 책의 출판기념강연회에 등장하고, 학자들이 재판중인 사람에 대한 왜곡과 규탄에 나서는 현황이,나의 일이지만 한국의 일이기도 해서, 우려스럽다.
지켜야 할 대상이 일(학문 혹은 법)자체가 아닐 때,그 공간은 낙후되거나 부패한다.

정영환씨는 한국과 북한에서 정치적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한국입국이 불허된 사람이다. 국가가 개인의 이동의 자유를 관리하는 일에 나는 비판적이지만, 이들의 담론이 한일화해에 대한 강한 두려움을 내비치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정영환의 두려움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남들이 나를 빼고(그의 표현에 따르면 망각하고) 화해할까 봐 두려워 하기보다는, 재일교포사회와 일본과의, 혹은 북한과 일본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다.

이들에게, 바로 얼마전에들은,정대협의 한일합의비판을 비판하던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이들이 만들려 하는 건, 누구를 위한 불화인가.

반론 1(2015/8, 페이스북 노트)
https://parkyuha.org/%eb%b9%84%ed%8c%90%ec%9d%b4-%ec%a7%80%…/

반론 2(2015/8, 역사비평 112호)
https://cldup.com/mt2lV_7iqt.pdf

장정일 작가의 정영환 비판(2016/5, 허핑톤포스트)
https://parkyuha.org/%eb%b0%95%ec%9c%a0%ed%95%98-%ec%a3%bd%…/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401263399900570

고발 2년을 맞으면서

내일은 다시 재판이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국민참여재판여부가 최종결정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연히도 내일은 고발에서 꼭 만 2년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재판 뿐 아니라 멈추지 않는 비난들 때문에 제겐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었지만, 그런 만큼, 그 과정을 지켜 보시고, 지지하고 응원해 주신 분들께 다시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8월말 재판까지는, 재판과 그동안 쓰지 못했던 반론을 쓰는 일에 집중할 생각이지만, 그동안 생각만큼 하지 못했던 일–페친들과의 만남의 시간도 가능한한 가질 생각입니다.

친구신청해 주신 분들께도, 조금만 더 너그로운 마음으로 기다려 주십사 부탁 드립니다.
짬짬이, 페친을 줄여볼 생각입니다. 혹시 교류가 있었는데도 제가 실수한 경우, 메시지로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본재판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 해도, 여론이 바뀌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일은 홈페이지도 새로 공개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 주시고, 앞서서 저를 이해해 주신 페친 여러분들께서, 더 많은 분들이 또다른 여러분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책이 나온 직후에 긍정적인 서평을 써 주셨던 사진가 이상엽 선생님과도, 이후 페친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나 괜찮아” 사진을 찍어 주셨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2년이라는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같이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6년 6월 14일 박유하 드림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390580720968838&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theater

올랜도 총기난사

미움과 경멸(차별)은 폭력을 만든다. 끔찍한 살인자가 된 29세 ‘보통’ 청년의 미움과 경멸의 대상이 미국인이었는지 게이였는지,그가 없는 이제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 자라면서도 미국인의 생명을 경시하고, 게이들의 행복을 경멸하고,빨래를 잘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폭력을 휘두르도록 만든 것이, 그가 받은 교육임은 분명하다. 애국심과 인종주의와 여성차별은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런 한 총기단속은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

타자의 일상과 생명을 한순간에 엉망으로 만들어도 된다는 생각을 누가 정당화하는가. 함부로 “그들”로 규정짓고, 그들이 더이상 세상에 없어도 된다고 누가 ‘함부로, 쉽게’ 생각하도록 만드는가.

‘보통’ 청년의 집단살인사건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안에도 내 안에도 폭력범은 있다. 늘, 언제나. 먼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 남의 일이 아닌 이유.

올랜도 총기난사 관련기사

금비녀 애국심

한 페친이 올린 흥미로운 영상을 공유해 둔다.
1938년영상이니 중일전쟁발발 직후인 듯 하다.

진해해군사령부가 만들었으니, 이 필름은 국민모두가 이랬다기 보다는 이래야 한다고 하는, 당위를 강조하는 영상인 건 틀림없다. 이른바 국책필름.

그렇다 하더라도 이 풍경을 이른바 친일파의 것으로만 볼 수는 없다. 여기에 나오는 한 여성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조선의 여성들은 자신을 그저 “일본여성”으로 생각했을 뿐이니까. 거기엔 그저 협조해야 할 “국가”가 있을 뿐, 따로 “親”해야 할 “日本”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진심이든, “비국민”소리를 들을까 두려워서든, 밥을 지을 때마다 쌀 한줌 덜어 모아두었다가 헌금하고, 머리에 있어야 할 “금비녀”를 아낌없이 뽑아 바친 “애국심”은, 60년 지난 1997년 IMF사태때까지 유지되었다. 그러니 이런 국민동원적 애국심이야말로 “일제잔재”의 핵심이었다.

조선인 포로 심문조서가 보여주는 가혹한 노동과 차별대우는, 이런 금비녀애국심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발적애국심이야말로 그 시스템이 차별적이었음을 증명한다. 일본인 이상으로 일본인이 되는 일. 권력을 갖지 못한 자가 권력을 가진 자를 모방하도록 만드는 일. 식민지화의 죄는, 바로 거기에 있다.

영상 링크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88954011131509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

어제 올린 포로심문 조서 기사를 게재한 한국 언론은많지 않은 듯 하다. 그나마, 우리한테 중요할 수 있는 위안부관련 기술까지 공정하게 언급한 곳은 경제지 한 곳 밖에 없었다.

낯선 인식을 무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이미 국제문제화된 문제다. 우리가 마이니치를 무시해도, 세계는 마이니치신문을 본다. 이런 식의 자폐성은 한일 국민간 공통인식공유를 더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세계 속의 고립을 부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편향성 속에서 자란 우리아이들이 훗날 겪을 일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물론 현재 역시 이미 20년전의 “훗날”이다. 내가 지원단체의 책임을 물어 온 이유는 거기에 있다.

“부모에 의해 팔려간” 사실을 너무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일본에서도 그런 일은 있었고, 오늘날도 부모에 의해 팔려가는 소녀는 전세계에서 적지 않으니까. 중요한 건, 그들의 공통점은 빈곤이라는 사실이다.

더구나 나는, 이들이 말하는 “부모”에는 “수양부모”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기본정보를 공유해야 토론도 반박도 가능할 것 아닌가. 우리가 모르는 척 하는 동안 일본의 혐한파들은 또다시 한국을 조롱중이다.

역사란, 조상의 “후예”로서의 긍지를 찾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과거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지혜는 계승하고 잘못은 직시하는 일. 당시와는 다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고민을 이어가는 일. 그게 아니라면, 역사와 마주하는 의미는 없다.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388808021146108&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theater

근대적 혼돈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비판 중에는 “논문으로 쓰지 왜 ‘대중서'( 그들은 굳이 대중서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로 냈느냐는 것이 있었다. 말하자면 학계에서논의하면 되는 문제를 왜 갑자기 일반인들 앞에 내놓았느냐는 것이다.

주석등 형태를 갖추고 논문문체로 썼으면 그럴듯한 학술서로 보였을 이 책을 굳이 일반서 형태로 쓴 것은, 위안부 문제가 한일양국국민들에게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어서, 더 이상 정부나 학자들의 논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양국민의 국민적 합의 없이 위안부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대립하는 학자들의 협의체를 만들어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동시에 그 논의가 밀실논의여서는 안되고, 언론과 관계자가 논의자체를 국민들에게 전해 학계에서 어떤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 왔다. 학자들은 웬만해서는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으니 양측 이야기를 잘 듣고 제3자가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학계에선 더이상 위안부동원을 강제연행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관계자들이 언론과 국민을 향해서 그렇게 말하는 일은 없다. 다시 말해 초기에 강제연행으로 생각했던 것은 잘못이었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전시관 같은 곳엔 비교적 사실에 가까운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결국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대한민국의 일반상식은 일원화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아직도 “군인이 강제연행”했다고 믿고 누군가는 “업자가 끌고 갔다”고 알고 있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어느 쪽이 옳은지 여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만드는 거국적소모 쪽이다.그리고 이 모두가, 학자가 대중을 우습게 보고, 지원단체 역시 대중을 동원해 운동을 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정보는 독점해 온 결과라는 점이다.

성남시 도서관이 나의 한일관계 관련 책 중 세 권을 “19금 도서”로 만든 것 역시, 정보를 독점하려는 어른들의 오만이 만든 일이다. 그러는 사이, 일본에선 18세가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오늘, 한일 합의에 반대하는 이들이 정부와는 다른 재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느 쪽이 옳은지 여부를 떠나,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많지 않은 힘과 돈의 분산과정이다.
근대의 차가운 합리주의조차 아직은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 탈근대 커녕, 근대의 혼돈 속에 있다.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86835634676680

19금 도서 지정 관련 보도

성남도서관에서 나의 책들을 19금 도서로 지정한 배경을 취재해 준 기자분이 있었다. 깊이 감사드린다.

우연히도 오늘, 서울의 한 남자 고등학생 둘이 <제국의 위안부>가 “방과후수업”의 과제도서였다면서 남은 질문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었다. 고등학교 1학년. 책을 읽고 찾아온 학생중에는 최연소다.

책을 너무 좋아한다는 두 학생한테 성남시 조치 얘기를 했더니 학생들도 기막혀 했다.

아이들은 때로, 어른들을 훌쩍 앞서간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06090107263917300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86654784694765

 

渦中日記 2016/5/13

오랫만에 다시 “渦中日記”를 쓰기로 한다.

고발이후 한동안, 재판관련 그리고 책관련 일을 이 제목으로 썼었다. 그러다가, 기소 이후부터 이 제목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워낙 경황이 없어서, “渦中日記”라는 제목조차 사치스럽단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1월에 민사패소하고 2월에 가압류를 당하면서,그 외에도 한일합의 이후 부쩍 심해진 공격을 하루가 멀다고 받으면서, 약간의 무기력증이 오기도 했었다. 어차피 일일이 대응할 수도 없고 여론을 살피는 사람을 따로 두고 있는 것도 아니니 비난글들을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월말에 한겨레가 비판글을 올렸기에 반론을 썼지만, 요즘처럼 재판준비에 쫓기고 있는 시기에 시사인,오마이뉴스, 그리고 녹색평론,..이런 식으로 연달아 나오면 반론을 쓰는 일도 부담스럽다.

정말 써야 하는 책을 쓸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는다.

앞으로는 책/재판관련 해서 “일어난” 일만 간단히 쓰기로 해 본다. 渦中日記를 쓰는 날이 많지 않기를.

————
아침에 박경신교수의 SNS발언에 항의포스팅. 이런 작업은 늘 우울하다. 비판하는 이들이 두려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짧게 얘기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하루종일, 법원에 제출할 자료준비를 위한 작업.책에 사용한 자료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굳이 밝혀야 하는 작업의 무의미성에 견뎌야 했던 시간. 명백히 소모적인 시간들에 의미를 부여해보려 하지만, 그 노력자체에도 가끔은 지친다.

1940년 전후의 수양딸제도관련기사와 인사소개업자들의 호적위조관련기사가, 나눔의집 할머니들 중에 수양딸로 갔던 분들이 있었던 걸 생각나게 만들었다. 되돌아 온 딸을 다시 내다 판 아버지 때문에, 자살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소녀들. 그러나, 그런 주변인들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자고 했던 나의 제안은, 여전히 공중에서 부유중이다.

“책임”에 대해 생각하려면 자아가 강해야 한다. 물론 그런 “시대”에 대한 연민도 필요하다.

변호사사무실에서 돌아오면서, 많이 졸렸다. 운전하면서 졸렸던 건 별로 없었던 일이다.
피로가 누적된 탓이거나, 노화현상이거나.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66352310058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