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감

정영환의 말을 출판사와 출판기념위원회가 그대로 옮겨 언론에 퍼뜨리고, 언론 또한 나를 비판하는 책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묻지 않고 기사화하고 있다. 2년전에 나눔의 집이 나를 고발하며 “자발적 매춘부라 했다””위안부할머니를 피해자가 아니라고 인정하라 했다”고 했던 말을 수많은 언론들이 앞다투어 보도했던 때와 똑같아 현기증을 느낀다.
이번 사태가 내게 더 충격적인 건, 그의 책이 번듯한 출판사에서 번역출판되고, 성실한 학자들이 아직 젊은 그의 책의 논지를 아무런 검증없이 수긍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일이라서가 아니라, 경박한, 너무나도 경박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한 댓글이 내게 “통일되면 보자”는 식의 협박을 날렸던 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사태를 나는 크게는 “냉전 후유증”으로 본다. 하지만 동시에 대한민국의 총체적 “지적 퇴락”(정영환)이 일으키는 일인 것도 분명하다.
나를 “실성한 여자”라고 쓴 글이 출판사대표의 담벼락에 공유되어 있는 것도 그런 현상 중 하나일 것이다. 설사 참고용이라 해도. 화가 나기보다 부끄럽다.
출판기념기자회견에서 재판에 연대를 표명하는 발언이 있었던 것처럼, 이 출판은 나에 대한 소송에 본격적으로 가담하는 일이다. 출판은 자유이나 관계자들이
그점을 인식 해주면 좋겠다. 정영환 역시 노골적으로 고소취하에 합의할 수 없다고 언명했었다.
“잘못 나가는” 현대일본을 비판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겠지만, 정영환식 사고야말로 일본을 잘못 나가게 만들 수 있다. 그 책임은, 20여년 운동 끝의 국민간적대와는 다른 차원이 될 것이다.
정영환이 나를 비판한 자리에서 제출한 자료와 발언을 읽었다. 최소한 거기에서의 그의 지적들은, 전부 악의적 왜곡이거나 견강부회이거나 초보적 오독에 의한 것들이다. 곧 구체적으로 지적할 생각이다.
이 글을 보실 기자여러분께 부탁드린다.
“이 책에 대해 기사를 쓰실 분들은, 저의 홈피(parkyuha.org)에 올려 놓은 반론을 읽거나 제게 의견을 물어봐 주신 후에, 기사를 쓰거나 수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405028859524024

정영환 교수 저서 출판 기념회 참석 후기

어제 참석을 결정한 건 “초청공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간담회 두시간 중 최소 15분, 많으면 30분은 발언시간이 주어지리라 생각했었다.
세 사람이 20분씩 나의 책을 극렬히 비판했으니 그렇게 예상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원래 없었다는 지정토론자가 세사람이나 갑자기 정해졌고 그들에 대한 저자의 피드백이 끝나고 “청중”에게 마이크를 돌리겠다며 사회자가 말한 남은 시간은 고작 20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절망적인 기분으로 물었다. 내가 얼마나 시간을 쓸 수 있는지. 일반적인 질문은 보통은 3분정도가 예의니까.
하지만 내 예상/기대와는 달리 나는 특별취급을 받지 못했고(즉 주최측은 반론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고),오히려 일부사람들에게 야유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잔치판을 깬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고, 그나마 주어진 시간도 유효하게 쓰지 못했다. 학문적 논쟁이 기대되지 않은 “잔치”에, 존중받는 논의를 기대하고 나간 건 불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만에 만나는, 한 때 함께 했던 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건 나쁘지 않았다. 우연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소중한” 대접을 받은 지정 토론자 세 사람 모두가, 과거에 민족주의를 넘어 대화하는 어떤 한일지식인모임에서 함께 했던 이들이었다. 말하자면 현재의 대립은 그런 대립이다. “만남”은 어떤 의미에서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책이 나오고 3년동안, 어떤 비판모임도 나를 한번도 부르지 않은 데 대해 유감을 표하고 앞으로라도 불러 달라고 말했다.
사실 고발이후, 모든 비판은 재판 이후로 미뤄달라고 부탁해 왔다. 하지만 그런 나의 부탁을 비웃듯 이미 여러 글과 책이 나왔으니, 이제 그 말을 철회한다.
비판자들이,내 책에 대한 규탄을, 모놀로그가 아니라 다이얼로그적, “학문적 잔치”로 만들어 주기 바란다.
그런데 왠일인지, 모임 종료 직후에 동영상이 비공개처리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굳이 보이고 싶은 영상은 아니지만, 반론권에 대한 질문을 포함, 그리고 정영환씨가 나를 비난했다는 말까지, (정말이라면 유감이다. 나는 참석한 덕분에 그에 대해 약간의 호감이 생겼었는데) 편집 되지 않은 상태로 다시 공개 되기를 바란다.
“축하”자리였다면 더더욱, 논의를 풍성하게 해야 하고, 그럴수록 반론에 시간을 할애해야 했던 거 아닐까. 모든 공간은 타자가 있어야 풍요로워진다. 어제 모임이 유감으로 남는 이유다.
(어제 와 주었던 강의석감독이 영상을 올려 주었다는 걸 방금 알았다. 아래 태그포스팅. 어제 분위기를 아실 수 있다.)

초청장 포함 링크

강의석 감독 촬영 영상 링크

정영환 출판기념 강연회 초청장

안내 드립니다.
오늘 저녁에 갑자기 이하의 모임에 출석하기로 했습니다.
조용히, 읽고 쓰기에 집중하려 했더니 세상이 저를 가만히 두지 않는 군요.
본인이 있는 앞에서 비판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고 실행위원 중 한 분인 김창록 교수에게 말했더니 조금 전에 초청장이 왔습니다. 원래 일정에 없던 일이라 저에게 얼마나 시간이 할애될 지 모르겠지만, 참석해서 반론하려 합니다.
너무 갑자기고 불금이기도 해서 얼마나 오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 되시는 분들은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6년 7월 1일
박유하 드림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403565813003662&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theater

정영환 입국불허 항의 서명서 유감

이 성명서는 정영환의 방한목적이 나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목적을 노골적으로 쓴 것은 나에 대한 비판자들을 모으기 위한 것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 나에 대한 비난을 캠페인화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
이들은 내가 소송당해 법정에 갇혀 있고, 그 결과에 따라서는 형무소행과 해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 듯 하다. 서명운동을 하려면 나에 대한 얘기는 빼는 것이 좋을 뻔 했다.

기본 문제는 박세진 선생님이 이미 지적하셨으니
(https://www.facebook.com/sejin.pak8/posts/10154269712042296)
몇가지 오류만 지적해 둔다. 나의 페친들께선 지겨우리만큼 들은 얘기겠지만 정영환의 비판에 곧바로 반론하지 않았던 것처럼 태만하다 보면, 어느샌가 또다시 진실로 회자될 것이기 때문에.

1.
나는 “일본의 국가책임을 최소화”하지 않았다. 이들이 주장해 온 “법적책임”(국회에서 입법해 배상하는 방식)을 지우는 일이 이런 저런 이유로 어렵다고 말했을 뿐이다. 또, 법적책임만이 “책임의 최대화”라 생각하는 건 내가 보기엔 법지상주의적 생각이다. 때로 도덕은, 법이 못하는 것을 한다.
이런 식의 왜곡은 이제 그만, 지양해 주기 바린다.

2.
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악용”하지 않았다. 그동안 지원단체가 외면했거나 강조하지 않았던 목소리를 듣고자 했을 뿐이다.
나의 글을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악용”한 건 정영환 쪽이다. 이미 일부 썼지만, 앞으로도 밝히도록 하겠다.

3.
“일본의 ‘전후보상’의 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과대평가하는 등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은 비판자들의 생각일 뿐이다.

4.
“그와 같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일본 언론계나 일부 학계가 『제국의 위안부』를 과도하게 평가한 배경을 예리하게 비판함으로써 일본 사상계의 지적・도덕적 퇴락에 경종을 울렸다”는 인식은, 정영환과 그의 “오독 혹은 거짓말”(장정일)을 외면중인 이들의 생각일 뿐이다.

5.
정영환의 “제국의 위안부』 사태 이후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2015년 말부터 현재까지 홋카이도에서부터 히로시마까지 일본열도 전역을 돌면서, 도쿄 대학 등에서 시민센터에 이르기까지 학계와 시민사회를 오가며 열성적인 강연활동”내용은, 오로지 박유하 비판이었다.

6.
“저서 출간 이후에는 『도쿄 신문』 『마이니치 신문』 등의 일간지에서 소개 기사가 실리기도 했으며, 이것을 계기로 관련 연구자들이 도쿄 대학에서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대한 격론을 벌이기도” 한 것이 아니다. 마이니치신문 소개는 격론 이후 최근 일이다.
책이 나온 지 몇달 후에 새삼스럽게 실린 마이니치신문 소개는, 3/28 “격론”의 현장에 내가 없었음에도 행해진 정영환등 비판자들의 비난을, 기자가 그대로 믿은 결과일 것이다.

7.
비판자들은, “할머니의 아픔”을 내세워 나에 대한 억압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할머니를 아프게 만든 건 내가 아니다.
할머니를 아프게 만든 건,추출해 낸 곳을 “반복해 읽어 들려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드리면서 “박유하가 할머니를 자발적매춘부라고 했어요” 라고 말했을 나눔의집 사람들이고, 그 말을 확산시킨 사람들이다. 2차가해자는 누구인가.

8.
정영환의 “본국에서의 학술 활동을 비롯한 각종 활동 자유의 권리를 즉각 보장할 것을 요구” 하는 행동이 보편인권을 위한 것이라면, 할머니의 오해를 풀고
나에 대한 국민과 법정의 억압을 푸는 행동에도, 나서 주기 바란다.

검증되지 않은 비난을 언론과 학자들이 받아쓰기하는 사태 역시, 오늘의 한국을 상징하는 한 단면일 것이다.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402696496423927

정영환씨 입국불허 관련

어제는 과잉반응을 했다. 많은 분들께 걱정 끼쳐서 죄송한 마음이다.
재판이 없었다면, 또 신뢰했던 이가 한 일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반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충하고 싶은 말이 많으나, 불필요한 곡해가 또다시 재생산되고 있는 것 같아 우선 그 부분에만 언급해둔다. 내가 서글프고 힘든 건, 이런 왜곡들이 문화권력을 갖는 이들에 의한 것인 이상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하다못해, 이들의 목적이, 내가 지치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고 싶다.

정영환씨의 입국불허문제에 대해 나는 이렇게 썼다.
`정영환씨는 한국과 북한에서 정치적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한국입국이 불허된 사람이다. 국가가 개인의 이동의 자유를 관리하는 일에 나는 비판적이지만, 이들이 한일화해에 강한 두려움을 내비치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런데 박노자씨등 몇몇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비판에 나섰다. 그 글에 어떤 비약과 왜곡이 있는지는 글을 정확히 읽을 수 있는 이라면 금방 알 수 있을테니 굳이 지적하지 않겠다.
정영환이 아니라 정부를 비판했는데도, `대북마녀사냥`이고 `마각이 드러났다`는 식으로 `멋대로, 깊이, 비틀어 읽기`가 이루어지는 현장은, 아마도 냉전후유증으로 병들어 있는 우리사회의 단면일 것이다.
어떤 젊은 연구자는 내가 재일교포를 `연구자로서가 아니라 조선적재일조선인으로 호명해 북한과 연계시키는 짓`을 했다면서 `표현의 자유를 입에 담는 연구자가 할 짓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고까지 비난했다.(젊은 연구자들은 언어예의교육을 좀 받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나의 책을 표현의 지유라는 말로 변호한 적도 없다.)

북한과의 연계를 언급하는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기회가 될 때마다 나와 일본우익과의 관계를 증명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일본과 분명 깊은 연계관계가 있다. 그리고 누가 그걸 지적한다고 해서 문제삼지 않는다. 문제는 사실에 반하는 지 여부일 뿐.
집단명사로 호명당하는 일과, 표현의 자유문제에 민감한 이들이, 왜 나에 대한 사태에 대해서는 침묵했고 이제 직접 거들기에 나선 것인지도 묻고 싶다.

나는 국적을 갖지 않는 것을 택한 조선적 분들을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정점에 작가 김석범 선생이 있고, 내가 `조선적`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도 그 분을 통해서였다.
내가 언급한 건 오로지 `한국정부의 판단`이다. 쓰여 있지 않는 비난을 굳이 읽어내 비난하는 이들의 행위는, 위안부는 원래 일본인이 대상이었고 국가에 의해 이동당한 가난한 여성이라는 의미로 `조선인 위안부는 가라유키상의 후예`라고 썼더니 `그건 매춘부라는 뜻! `이라면서 판금을 요구한 지원단체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현 사태를 지식인의 대중화,라고 내가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쓴 글 들을, 비판자들은 멋대로 비틀어 확산시킨다, 하지만 언어를 사용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으로서, 언어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의식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나를 옹호해 준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과의 차이는, 대상과 글 자체에 대한 존중이 있는지 여부였다고 생각한다.

정영환문제에 대한 참고자료로 조관자 선생의 논문을 올려 둔다. 재일교포/조선적에 대해 말하려면 이 논문은 필수적으로 읽혀야 할 것이다. 입국제한문제에 관해서는 특히 6절이 자세하다.

https://onedrive.live.com/?authkey=%21AHZnee0gS38QXRI&cid=9F10CD072717D734&id=9F10CD072717D734%21960&parId=9F10CD072717D734%21959&o=OneUp

김미영, 누구를 위한 불화인가

Miyong Kim-To

6월 28일 ·

“누구를 위한 불화인가”
몇년에 걸쳐 Park Yuha 박유하선생이 겪고 있는 필화는 박유하 선생자신이 가진 철학이나 그의 책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지성인 혹은 반지성인들의 계보를 읽는데 훨씬 유용한 렌즈란 생각이 든다. 일단 편하고 어쩐지 든든한 소속감을 주는 “가짜애국심 또는 무한 반복 , “죽어도 반일 “프레임에 갇혀 다치고 손해보는 이들은 박유하 개인뿐이 아니다. 현재 양국민의 대다수가 1945년8/15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고 2000년대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밀려오는 난제들을 주변국들과 협력해 일해야하는 사람들이라는 간단한 사실을 상기한다면 “누구를 위한 불화”인가를 돌아보자는 그의 외침은 ” 누구를 위한 화해”냐며 선량한 대중을 부추기는 거짓 선지자들의 비열한 선동과 비교된다. 박유하선생의 시대적 양심을 지지한다.

Miyong Kim-To

6월 29일 ·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 ·

누구를 위한 불화인가 II.

불화를 부추겨서 구차한 잇속이라면 잇속을 챙기는 이들을 모르는것은 아니다.몰라서 입을 닫고 있었던게 아니다. 단지 워낙 힘들게 버티고 있는 박유하(Park Yuha) 샘에게 누가 갈까봐 참고 있었을 뿐이다.

어떤 시대착오적 적인 혁명가들은 그들의 허약한 명분에 금이갈까봐서, 또 어떤 생계형 운동가들은 만약 천황이 와서 무릎꿇고 사죄하고 할머니들이 수용할만한 보상을 한대도 바라지 않을것이다. 그동안의 적대구조가 그들에게 존재이유와 생계수단을 함께 제공했으므로. 또 언제 실현될지 모르지만 북한과 일본의 협상 테이블에 일본 압박용카드로 위안부문제를 써서 돕고 싶은 친북그룹도(종북이란 허명을 씌울 생각은 없다) 있고 무능한 권력들이 ( 좌.우파정부가 다 싸먹은 방법이다) 대중을 흥분시켜 밖에 있는 “적”에게 눈을 돌려 안에서의 실정에서 시선을 돌리눈데 쓰기도 했다 ( 그건 일본의 우익정권도 마찬가지).
그러는 동안 국제사회에서 우리는 성숙치못한 분노조절장애그룹으로 낙인찍히고 선하고 깔끔한 전후세대의 일본국민들과 선입견없이 교류하는 자유를 저당잡혔다. 온국민이 함께 분노하며 같이 미워할 영원한 적국하나룰 갖기위해…”
누구를 위한 불화인가 ! 정말 붙잡고 묻고 싶다.

화해를 위하여”라는 시대적 당면 화두에 부르르 떨며 절대 그럴수없다고 날뛰는 이들의 면면을 기억해둘테다. 이미 잃어버린 70년에 얼마다 더 기다려야 이 분노의 성화를 끌수있는지. 역사가 책임을 물을수 있도록 기록하면서.
사족-

이번 일에 특히 마음에 걸리는 것은 비교적 길고 공정한 역사관 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푸른 역사 출판사에 대한 실망이다. 내가 손에 일이 안잡힐정도로 마음이 상하는데 박선생 은 오죽하랴. 허허벌판에 맨몸으로 서서 믿었던 지인들로부터까지 돌팔매질 당하는 기분이리라. 안쓰럽고 쓸쓸하다.

박세진, 『제국의 위안부』,[평화운동] 나는 박유하 교수를 지지한다

[책 제국의 위안부] [평화운동] 나는 박유하 교수를 지지한다

– 박유하 교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우익도 아니고, 친일파도 아니다.

– 그렇다고 하는 이들은 무지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 이던지, 안다면 왜곡을 하는 것이다. 그들의 발언은 무책임한 것이고, 한국을 위한 것도 아니고, 위안부문제의 해결에 도움되는 것도 아니다.

– 나는 일본과 화해하자는 것은 북한과 화해하자는 것과 기본적으로 같은 종류의 평화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운동을 해서 친일파가 되는 것도 아니고, 종북이 되는 것도 아니다. 꺼꾸로 이런 운동은 일본의 시민들과, 가능하다면 북한의 시민들과도 같이 해야하는 운동이라 생각한다. 이 운동은 <국제적인 평화운동>인 것 이다. 책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서 상을 받은 것은 일본의 우익 때문이 아니고, 위안부문제에 있어 한국에 사과하고 화해를 하고 싶어하는 일본의 시민사회의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북한과는 화해를 하자는 사람들이 일본과 화해하자는 데는 반대이다. 일본이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않아서 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주장을 북한에는 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북한에는 그런 주장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북한과 달리 민주사회이고 모든 이슈에 관해 뭉처저 있지가 않다. 일본의 우익이 일본을 대표하지 않는다. 일본에도 한일관계에 화해를 바라는 그룹들이 많이 있다. 일본과 화해를 하자는 것은 그들과 손잡고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저오자는 것이기도 하다.

– 재일학자 정영환은 <동아시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라는 이름의 블록을 가지고 하는 것은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다. 시대에 지난 시각으로 계속 일본을 비판하고 있다. 이점에 대하여는 다른 기회에.

 

https://www.facebook.com/sejin.pak8/posts/10154268512467296

우리 안의 식민성

나의 책을 혹 “일본의 우익이 환영”했다면, 그리고 그들이 내 책을 읽고 반성적인 입장을 취했다면 나는 그들의 환영을 거부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이런 식의 소개는 명백한 왜곡이자 거짓이다. 물론 한 사람의 성실한 서평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쓰기에 이르렀다는 건, 2년에 걸친, 정영환을 비롯한 비판자들의 왜곡작업이 충분히 성공했다는 것일 터이다. 내가 견디기 힘든 건, 비판이 아니라 왜곡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보여주는 비겁함이다.

이미 여러번 말하고 썼지만, 나에 대한 기소반대에 나선 이들은 대부분 진보지식인이고, 나에게 상을 수여한 곳도 산케이나 요미우리가 아닌 마이니치신문과 아사히 신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평가한 건 위안부문제를 식민지 지배책임으로 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든 나를 우익과 이어져 있는 사람으로 몰고 싶어한다.

문제는 그 자체보다, 오로지 일본의 누구와 이어져 있는지로 자기정당화를 하거나 누군가를 내치는 이런 심성이다. 이거야 말로 우리 안의 식민성이 아니고 무엇일까. 해방후 70년이 지나도록 일본과의 연관성으로만 자신을 파악하는 이들이나, 나와 가까운 건 진보쪽이라고 외쳐야 하는 나나, 서글픈 건 마찬가지다.

정영환을 비롯한 비판자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당신들은 내가 당한 전국민적 비난과 재판에 따른 고통만으로는 내가 겪는 일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가.
그토록이나 집요한 증오를 드러내는 이유는, 당신들이 말하는 대로 “일본이 사죄하고 보상했다”고 썼기 때문인가. 나의 책이 오로지 그런 책인 것도 아니지만 설사 그렇다 한 들, 그건 형무소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인가.
그래서 기자회견까지 해서 나를 죄인으로 고발하려 하는가.

좌파든 우파든, 중요한 건 타자에 대한 상상력과 윤리적인 태도다.
짧았던 평화로운 시간이 끝나고, 이제 다시 총성이 들려 온다. 총을 겨누는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401361296557447&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누구를 위한 불화인가

고발 직후부터 집요하게 나를 비판해 온 재일교포 정영환의 책이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다른 것보다, 푸른역사에서 그 책이 나왔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나의 페친이어서가 아니라, 그곳을 훌륭한 출판사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번 재판에서, 검사는 김부자교수의 책을 들고 와서 나의 범죄사실을 증명하는 “범죄증거”라 했었다. 이미 일부 논문이 제출된 바 있지만, 다음번 재판에는 이 책이 제출될 가능성이 높다. 관계자들이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민변회장이 정영환 책의 출판기념강연회에 등장하고, 학자들이 재판중인 사람에 대한 왜곡과 규탄에 나서는 현황이,나의 일이지만 한국의 일이기도 해서, 우려스럽다.
지켜야 할 대상이 일(학문 혹은 법)자체가 아닐 때,그 공간은 낙후되거나 부패한다.

정영환씨는 한국과 북한에서 정치적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한국입국이 불허된 사람이다. 국가가 개인의 이동의 자유를 관리하는 일에 나는 비판적이지만, 이들의 담론이 한일화해에 대한 강한 두려움을 내비치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정영환의 두려움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남들이 나를 빼고(그의 표현에 따르면 망각하고) 화해할까 봐 두려워 하기보다는, 재일교포사회와 일본과의, 혹은 북한과 일본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다.

이들에게, 바로 얼마전에들은,정대협의 한일합의비판을 비판하던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이들이 만들려 하는 건, 누구를 위한 불화인가.

반론 1(2015/8, 페이스북 노트)
https://parkyuha.org/%eb%b9%84%ed%8c%90%ec%9d%b4-%ec%a7%80%…/

반론 2(2015/8, 역사비평 112호)
https://cldup.com/mt2lV_7iqt.pdf

장정일 작가의 정영환 비판(2016/5, 허핑톤포스트)
https://parkyuha.org/%eb%b0%95%ec%9c%a0%ed%95%98-%ec%a3%bd%…/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401263399900570

고발 2년을 맞으면서

내일은 다시 재판이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국민참여재판여부가 최종결정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연히도 내일은 고발에서 꼭 만 2년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재판 뿐 아니라 멈추지 않는 비난들 때문에 제겐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었지만, 그런 만큼, 그 과정을 지켜 보시고, 지지하고 응원해 주신 분들께 다시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8월말 재판까지는, 재판과 그동안 쓰지 못했던 반론을 쓰는 일에 집중할 생각이지만, 그동안 생각만큼 하지 못했던 일–페친들과의 만남의 시간도 가능한한 가질 생각입니다.

친구신청해 주신 분들께도, 조금만 더 너그로운 마음으로 기다려 주십사 부탁 드립니다.
짬짬이, 페친을 줄여볼 생각입니다. 혹시 교류가 있었는데도 제가 실수한 경우, 메시지로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본재판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 해도, 여론이 바뀌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일은 홈페이지도 새로 공개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 주시고, 앞서서 저를 이해해 주신 페친 여러분들께서, 더 많은 분들이 또다른 여러분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책이 나온 직후에 긍정적인 서평을 써 주셨던 사진가 이상엽 선생님과도, 이후 페친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나 괜찮아” 사진을 찍어 주셨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2년이라는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같이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6년 6월 14일 박유하 드림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390580720968838&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theater

올랜도 총기난사

미움과 경멸(차별)은 폭력을 만든다. 끔찍한 살인자가 된 29세 ‘보통’ 청년의 미움과 경멸의 대상이 미국인이었는지 게이였는지,그가 없는 이제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 자라면서도 미국인의 생명을 경시하고, 게이들의 행복을 경멸하고,빨래를 잘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폭력을 휘두르도록 만든 것이, 그가 받은 교육임은 분명하다. 애국심과 인종주의와 여성차별은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런 한 총기단속은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

타자의 일상과 생명을 한순간에 엉망으로 만들어도 된다는 생각을 누가 정당화하는가. 함부로 “그들”로 규정짓고, 그들이 더이상 세상에 없어도 된다고 누가 ‘함부로, 쉽게’ 생각하도록 만드는가.

‘보통’ 청년의 집단살인사건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안에도 내 안에도 폭력범은 있다. 늘, 언제나. 먼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 남의 일이 아닌 이유.

올랜도 총기난사 관련기사

금비녀 애국심

한 페친이 올린 흥미로운 영상을 공유해 둔다.
1938년영상이니 중일전쟁발발 직후인 듯 하다.

진해해군사령부가 만들었으니, 이 필름은 국민모두가 이랬다기 보다는 이래야 한다고 하는, 당위를 강조하는 영상인 건 틀림없다. 이른바 국책필름.

그렇다 하더라도 이 풍경을 이른바 친일파의 것으로만 볼 수는 없다. 여기에 나오는 한 여성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조선의 여성들은 자신을 그저 “일본여성”으로 생각했을 뿐이니까. 거기엔 그저 협조해야 할 “국가”가 있을 뿐, 따로 “親”해야 할 “日本”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진심이든, “비국민”소리를 들을까 두려워서든, 밥을 지을 때마다 쌀 한줌 덜어 모아두었다가 헌금하고, 머리에 있어야 할 “금비녀”를 아낌없이 뽑아 바친 “애국심”은, 60년 지난 1997년 IMF사태때까지 유지되었다. 그러니 이런 국민동원적 애국심이야말로 “일제잔재”의 핵심이었다.

조선인 포로 심문조서가 보여주는 가혹한 노동과 차별대우는, 이런 금비녀애국심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발적애국심이야말로 그 시스템이 차별적이었음을 증명한다. 일본인 이상으로 일본인이 되는 일. 권력을 갖지 못한 자가 권력을 가진 자를 모방하도록 만드는 일. 식민지화의 죄는, 바로 거기에 있다.

영상 링크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88954011131509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

어제 올린 포로심문 조서 기사를 게재한 한국 언론은많지 않은 듯 하다. 그나마, 우리한테 중요할 수 있는 위안부관련 기술까지 공정하게 언급한 곳은 경제지 한 곳 밖에 없었다.

낯선 인식을 무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이미 국제문제화된 문제다. 우리가 마이니치를 무시해도, 세계는 마이니치신문을 본다. 이런 식의 자폐성은 한일 국민간 공통인식공유를 더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세계 속의 고립을 부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편향성 속에서 자란 우리아이들이 훗날 겪을 일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물론 현재 역시 이미 20년전의 “훗날”이다. 내가 지원단체의 책임을 물어 온 이유는 거기에 있다.

“부모에 의해 팔려간” 사실을 너무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일본에서도 그런 일은 있었고, 오늘날도 부모에 의해 팔려가는 소녀는 전세계에서 적지 않으니까. 중요한 건, 그들의 공통점은 빈곤이라는 사실이다.

더구나 나는, 이들이 말하는 “부모”에는 “수양부모”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기본정보를 공유해야 토론도 반박도 가능할 것 아닌가. 우리가 모르는 척 하는 동안 일본의 혐한파들은 또다시 한국을 조롱중이다.

역사란, 조상의 “후예”로서의 긍지를 찾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과거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지혜는 계승하고 잘못은 직시하는 일. 당시와는 다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고민을 이어가는 일. 그게 아니라면, 역사와 마주하는 의미는 없다.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388808021146108&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theater

근대적 혼돈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비판 중에는 “논문으로 쓰지 왜 ‘대중서'( 그들은 굳이 대중서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로 냈느냐는 것이 있었다. 말하자면 학계에서논의하면 되는 문제를 왜 갑자기 일반인들 앞에 내놓았느냐는 것이다.

주석등 형태를 갖추고 논문문체로 썼으면 그럴듯한 학술서로 보였을 이 책을 굳이 일반서 형태로 쓴 것은, 위안부 문제가 한일양국국민들에게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어서, 더 이상 정부나 학자들의 논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양국민의 국민적 합의 없이 위안부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대립하는 학자들의 협의체를 만들어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동시에 그 논의가 밀실논의여서는 안되고, 언론과 관계자가 논의자체를 국민들에게 전해 학계에서 어떤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 왔다. 학자들은 웬만해서는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으니 양측 이야기를 잘 듣고 제3자가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학계에선 더이상 위안부동원을 강제연행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관계자들이 언론과 국민을 향해서 그렇게 말하는 일은 없다. 다시 말해 초기에 강제연행으로 생각했던 것은 잘못이었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전시관 같은 곳엔 비교적 사실에 가까운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결국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대한민국의 일반상식은 일원화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아직도 “군인이 강제연행”했다고 믿고 누군가는 “업자가 끌고 갔다”고 알고 있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어느 쪽이 옳은지 여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만드는 거국적소모 쪽이다.그리고 이 모두가, 학자가 대중을 우습게 보고, 지원단체 역시 대중을 동원해 운동을 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정보는 독점해 온 결과라는 점이다.

성남시 도서관이 나의 한일관계 관련 책 중 세 권을 “19금 도서”로 만든 것 역시, 정보를 독점하려는 어른들의 오만이 만든 일이다. 그러는 사이, 일본에선 18세가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오늘, 한일 합의에 반대하는 이들이 정부와는 다른 재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느 쪽이 옳은지 여부를 떠나,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많지 않은 힘과 돈의 분산과정이다.
근대의 차가운 합리주의조차 아직은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 탈근대 커녕, 근대의 혼돈 속에 있다.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86835634676680

19금 도서 지정 관련 보도

성남도서관에서 나의 책들을 19금 도서로 지정한 배경을 취재해 준 기자분이 있었다. 깊이 감사드린다.

우연히도 오늘, 서울의 한 남자 고등학생 둘이 <제국의 위안부>가 “방과후수업”의 과제도서였다면서 남은 질문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었다. 고등학교 1학년. 책을 읽고 찾아온 학생중에는 최연소다.

책을 너무 좋아한다는 두 학생한테 성남시 조치 얘기를 했더니 학생들도 기막혀 했다.

아이들은 때로, 어른들을 훌쩍 앞서간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06090107263917300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86654784694765

 

이경일, 읽어보길 권함

이경일님이 새로운 사진 2장을 추가했습니다.

5월 25일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울 ·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읽었다. 박교수가 배포한 34곳이 삭제된 2판 PDF를 읽다 갑갑해서 초판 무삭제본을 도서관을 뒤져 구해 읽었다.

사서가 금고에서 꺼내주어 좀 놀랬다.

다 읽고나니 내가 박교수라면 이 책으로 일어난 사태를 당하고 복장이 터져 죽을만큼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문 수준의 이 책에서 박교수가 주장하는 바는 서울 정대협이 만든 이미지에 휘둘리는 세상에 대해 정견을 갖자는 것이다. 또한 우리 안의 착취자들이 있었음을 적시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정신대가 현재에도 미군 주둔지 주변에도 현존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읽으면서 슬픈 우리 역사 단면의 선혈 흐르는 참상을 느꼈다. 남자로서 남성성의 끊임없는 정욕의 밑바닥도 본 느낌.

무엇보다 김종영 편집장의 지적처럼 쉽게 휩쓸리고 사실보다는 ‘제공된 주장’에 견강부회하는 우리네의 민낯이 슬펐다.

가슴 아프고 읽기 절대 쉽진 않지만 대강이라도 읽으시길 바란다.

渦中日記 2016/5/13

오랫만에 다시 “渦中日記”를 쓰기로 한다.

고발이후 한동안, 재판관련 그리고 책관련 일을 이 제목으로 썼었다. 그러다가, 기소 이후부터 이 제목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워낙 경황이 없어서, “渦中日記”라는 제목조차 사치스럽단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1월에 민사패소하고 2월에 가압류를 당하면서,그 외에도 한일합의 이후 부쩍 심해진 공격을 하루가 멀다고 받으면서, 약간의 무기력증이 오기도 했었다. 어차피 일일이 대응할 수도 없고 여론을 살피는 사람을 따로 두고 있는 것도 아니니 비난글들을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월말에 한겨레가 비판글을 올렸기에 반론을 썼지만, 요즘처럼 재판준비에 쫓기고 있는 시기에 시사인,오마이뉴스, 그리고 녹색평론,..이런 식으로 연달아 나오면 반론을 쓰는 일도 부담스럽다.

정말 써야 하는 책을 쓸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는다.

앞으로는 책/재판관련 해서 “일어난” 일만 간단히 쓰기로 해 본다. 渦中日記를 쓰는 날이 많지 않기를.

————
아침에 박경신교수의 SNS발언에 항의포스팅. 이런 작업은 늘 우울하다. 비판하는 이들이 두려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짧게 얘기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하루종일, 법원에 제출할 자료준비를 위한 작업.책에 사용한 자료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굳이 밝혀야 하는 작업의 무의미성에 견뎌야 했던 시간. 명백히 소모적인 시간들에 의미를 부여해보려 하지만, 그 노력자체에도 가끔은 지친다.

1940년 전후의 수양딸제도관련기사와 인사소개업자들의 호적위조관련기사가, 나눔의집 할머니들 중에 수양딸로 갔던 분들이 있었던 걸 생각나게 만들었다. 되돌아 온 딸을 다시 내다 판 아버지 때문에, 자살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소녀들. 그러나, 그런 주변인들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자고 했던 나의 제안은, 여전히 공중에서 부유중이다.

“책임”에 대해 생각하려면 자아가 강해야 한다. 물론 그런 “시대”에 대한 연민도 필요하다.

변호사사무실에서 돌아오면서, 많이 졸렸다. 운전하면서 졸렸던 건 별로 없었던 일이다.
피로가 누적된 탓이거나, 노화현상이거나.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366352310058346

장정일, 박유하 죽이기 | 정영환·이명원의 오독 (허핑턴포스트)

장정일 소설가

『녹색평론』5~6월호(제148호)를 받았다. 목차에서 이명원 형의「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지식인의 지적 쇠퇴」를 발견하고 그것부터 읽었다.

위의 글에서 이명원은 박유하의 한국어판『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2013)와 일본어판『제국의 위안부』(아사히신문출판,2014)를 가리켜 “두 책은 사실상 동일한 서적이라 보기 어렵다”(65쪽)면서, “일본어를 모르는 한국의 지식인과 독자들이 격렬한 박유하의 팬덤(fandom)으로 전락하는 마술은 [판본을 달리한 지은이의] 이런 수사학적 책략 탓”(66쪽)이라고 말한다.

『제국의 위안부』의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이 ‘동일한 서적’이 아니며, 바로 거기에 박유하의 간계가 숨어 있다는 식의 이런 음모론은 원래 이명원의 것이 아니라, 일본어판 출간 즉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의 것이다. 정영환의 주장은 이타가키 류타와 김부자가 함께 엮은『’위안부’ 문제와 식민지 지배 책임』(삶창,2016)에「’전후 일본’을 긍정하고픈 욕망과 문제와 식민지 지배 책임」이라는 제목을 실려 있다. 거기서 정영환은 한국어판 262쪽과 그것을 번역한 일본어판 251쪽을 비교하고 나서,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 주장은 일본어판을 읽지 않으면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98쪽)라고 말한다.

하지만 위의 사례보다 더 심각한 사례가 있으면 모르되, 정영환이 먼저 제기하고 이명원이 고스란히 받아쓴 ‘(한국어판)262쪽/(일본어판)251쪽’의 차이는 결코 두 사람의 주장을 뒷받침해주지 않는다. ‘(한국어판)262쪽/(일본어판)251쪽’의 차이를 놓고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 주장은 일본어판을 읽지 않으면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라느니, “두 책은 사실상 동일한 서적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좋게 봐서 오독이지만, 실제로는 ‘고의적인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저 대목이『제국의 위안부』의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의 ‘핵심 주장’을 다르게 하고 있는지, 정영환이『’위안부’ 문제와 식민지 지배 책임』에 번역해서 싣고(94~95쪽), 이명원이「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지식인의 지적 쇠퇴」에 고스란히 인용한(64~65쪽) 문제의 대목을 살펴보자(일본어판 인용문에 나오는 밑줄은 정영환·이명원의 것이며,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에 있는 볼드체는 나의 것이다).

(한국어판) 말하자면 일본은 1945년에 제국이 붕괴하기 이전에 ‘식민화’했던 국가에 대해 실제로는 공식적으로 사죄 ․ 보상하지 않았다. 조선 조정의 요청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식민화 과정에서의 동학군의 진압에 대해서도, 1919년의 독립운동 당시 수감·살해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간토(關東) 대지진 당시 살해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 밖에 ‘제국 일본’의 정책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옥되거나 가혹한 고문 끝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는 단 한 번도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인 위안부’들은 국민동원의 한 형태였다고 볼 수 있지만, 제국의 유지를 위한 동원의 희생자라는 점에서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식민지배의 희생자다.

(일본어판) 그러한 의미로는 일본은 1945년 대일본제국 붕괴 후 식민지화에 대해 실제로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은 없다. 양국의 정상이 만날 때마다 사죄를 해왔고 이 사실은 한국에 더 알려야 하겠지만, 그것(지금까지의 사죄 – 번역자 주)은 실로 애매한 표현에 불과했다. 1919년의 독립운동 때 살해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제국 일본’의 방침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가혹한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는 한 번도 구체적으로 언급할 기회가 없는 채로 오늘날까지 온 것이다.

정영환·이명원은 일본어판에 자신들이 밑줄 친 문장을 들어 박유하가 한국어판에서는 “일본은 1945년에 제국이 붕괴하기 이전에 ‘식민화’했던 국가에 대해 실제로는 공식적으로 사죄 ․ 보상하지 않았다”고 해놓고서, 일본어판에서는 그것을 뒤집었다고 말한다.

일본어판의 독자를 위해 바꿔 쓴 부분 중에 주목해야 할 포인트로서, 저자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바뀌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한국어판에는 일본 정부는 식민지화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 ․ 보상하지 않았다”라고만 쓰여 있는데, 일본어판에는 “양국의 정상이 만날 때마다 사죄를 해왔”다는 문장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문장이 추가되면 “공식적으로”라는 의미가 사죄를 한 사실은 있으나 “애매한 표현” 때문에 한국에 전달되기 힘들었다는 뜻으로 바뀝니다. (정영환 : 96쪽)

위의 각기 다른 판본을 보면, 삽입된 문장들 때문에 매우 상이한 의미를 띠게 된다. 한국 독자들에게 쓴 글에서는 식민지배 책임에 대해 일본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죄 ․ 보상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다가, 일본판에서는 “양국의 정상이 만날 때마다 사죄를 해왔고”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이렇게 판본이 다른 두 책은 사실상 동일한 서적이라 보기 어렵다. (이명원 : 65쪽)

어떻게 읽으면 저렇게 될까? 두 사람 다 기가 찬 해석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이상한 것인가 싶어, 문과와 전혀 거리가 먼 통계학과를 나온 지인에게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을 읽히고 나서, 일본어판은 한국어판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지인의 대답은 명쾌했다. “일본어판에 정영환·이명원이 밑줄 친 대목은, 바로 그 위에 나오는 일본은 1945년 대일본제국 붕괴 후 식민지화에 대해 실제로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은 없다에 대한 부연이다.” 맞다!

그러면 한국어판의 “일본은 1945년에 제국이 붕괴하기 이전에 ‘식민화’했던 국가에 대해 실제로는 공식적으로 사죄 ․ 보상하지 않았다”에는 부연이 없는데, 왜 이 대목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일본어판의 “일본은 1945년 대일본제국 붕괴 후 식민지화에 대해 실제로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은 없다“에는 저런 부연이 필요했을까? 밑줄 친 대목으로 부연하지 않았다면, 일본인들은 “일본은 1945년 대일본제국 붕괴 후 식민지화에 대해 실제로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은 없다“라는 박유하의 단정에 의문과 반발심을 느꼈을 것이다. ‘무슨 말이야? 일본 정부가 사과하지 않았다니?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한 무라야마 토미이치는 무려 총리였지 않는가?

박유하는 일본인의 의문에 답하고 반발심을 누그러뜨리고자 정영환·이명원이 밑줄 친 대목을 일본어판에 넣은 것이다. ‘일본 정부의 수반이 사과를 해온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공식적이라고 하기에는 늘 애매한 것이었다.’ 정영환·이명원이 일본어판에 밑줄 친 대목의 아래 부분을 보면, 밑줄 친 그 대목이 “일본은 1945년 대일본제국 붕괴 후 식민지화에 대해 실제로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은 없다”의 부연 설명이라는 것은 더욱 명확해진다. 박유하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학문적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박유하 죽이기’를 하고 있다는 의혹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원문: 박유하 죽이기 | 정영환·이명원의 오독 (장정일, 허핑턴포스트)

서윤, 저들의 양심은 무엇을 향한 것일까?

 

서윤

5월 7일 ·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스마트폰을 쓰다보니 이제는 그 기능에 별반 놀라워하는 사람이 없지만, 나는 지금도 내 손에 들린 기계가 늘 신기하다. 내가 사용하는 컴퓨터도 그렇고, 컴퓨터라는 기계는 다 신기해보인다.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 기능을 사용하다 보면 편리함도 편리함이지만 구현해낸다는 게 참 어려운 일임을 아는 터라, 매번 그렇다.

조금이라도 어떤 분야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아는 편이라면 늘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새삼 놀랄 것이 없는데도 계속 놀라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러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 경이로움은 익히 안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2014년 6월 15일 오전 8시 30분경 연합뉴스에서 최초로 <제국의 위안부> 소송 기사가 떴을 때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6월 13일에 박유하 선생님과 페친이 되었고, 이틀간 담벼락을 보면서 느낀 바로는 전혀 그런 이야기를 쓸 분이 아니었기에, 먼저 했던 행동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혀로 입술을 핥은 것이었다. 의구심이 들 때 내가 하는 습관이다. 당시 기사내용은 나눔의집 측에서 배포한 자료를 확인없이 배포한 것이었고, 이후 유수 일간지에서도 역시 확인없이 복사-재배포를 거듭했다. 놀란 건 그때부터였다.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제국의 위안부>를 사 읽고, 이어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 <화해를 위해서>를 구해 읽으며 나는 저자인 박 선생님이 도저히 제국주의자는 될 수 없는 분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볼 근거가 전혀 없었다. 이런 생각은 했다 : “어쩌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런 논변은 설 자리가 없을수도 있겠다.” ‘관계’가 와해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항상 의탁할 곳을 찾게 마련이며, 지금 같은 사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의탁할 곳은 결국 ‘국가’이기 때문이며, 국가 역시 그런 의존성을 높이는 데 적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국가를 허구라든가 악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국가는 물질적 실재가 아닌 상상적 실재이며, 그러므로 이미지에 불과하지만 그 이미지는 실재보다 힘이 세다. 원래 이미지가 실재보다 힘이 세기는 하다. 그래서 실재보다는 이미지로부터 규범, 실천, 변화, 이런 것들이 나온다. 게다가 국가를 악이라고 해봐야 이미 영속성마저 띠어가는 국가를 엎어놓고 빠따 때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해서 고민해야 할 것은 국가를 어찌 없애버릴 것인가가 아니라, 국가의 존재양식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있다. 무언가에 의탁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며 한 인간이 살아가는 실존의 영역은 매우 협소하므로, 국가보다는 지역사회와 같은 작은 영역에 가장 크게 의탁하는 편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뭐,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니 넘어가자.

어쨌든 국적이라는 게 많은 것을 보장하는 한 국가를 우습게 보는 건 정신병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래서 국경을 진지하게 염두에 두는 사고방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국경을 진지하게 여긴다 하여 국경을 근거로 누군가에게 서슴없이 ‘사상범’이란 말을 써도 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친일파’라는 말을 이토록이나 거칠게 사용하는 이가 어떻게 말글을 다루는 직업의 하나인 기자씩이나 하고 있을까? 기사를 읽다 기함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오해이고 오독이고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러 명의 연구자가 제국의 위안부를 읽은 뒤 박유하가 일본군 위안부를 여러 대목에서 ‘자발적 매춘부’로 규정했다고 판단했고, 재판부는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는 구절을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는 이미지를 우리가 부정해온 것 역시 그런 욕망,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296쪽, 삭제)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를 무엇이라 읽어야 오독이 아닐까. 대략난감이다.”

누가 난감해야 하는지 참으로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책은 읽고 이 기사를 쓴 것일까? 기본적으로 책은 읽고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라는 책을 기획한 것일까? 위의 문장은 앞부분에서 위안부문제를 부정하는 일본 논자들을 비판하는 대목과 조응한다. 위안부들을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 부르는 일본의 논자들의 인식, 그것이 ‘매춘부는 피해를 입어도 상관없다’는 폭력적 인식임을 비판하는 대목이다. 또한 국가이고 남성이고 가난이 주범인 위안부 문제에서 별안간 민족의 문제를 맨앞에 세워 실제로 유곽 여성들이 먼저 갔던 위안부의 모습을 소거한 그간의 인식을 비판하는 글이기도 하다. 유곽 여성들은 위안부로 차출되어도 좋다는 것이냐 묻는 대목이다. 이런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숙연할 정도로 진지하게 비판의 이유를 밝히는 기자의 지성은 도대체 어디쯤에 놓여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판결문에는 있지도 않은 ‘허위사실’이란 말을 버젓이 기사에 내놓는 이 기자의 양심은 얼마나 우거진 것인지, 가능하다면 확인이라도 해보고 싶다. 이런 글을 볼적마다 새록새록 놀라울 뿐이다. 마치 기계에 늘 경탄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재승, 최종길, 정진성 등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모리배들이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관심법들 시전하는 걸 흉내내서, 나도 관심법 한 번 시전해봐야겠다.

이 기자는 이거 쓰고 우수리를 얼마나 받을까? 손종업이라는 사람이 이전에 박유하 교수를 가리켜 “일본 우익의 돈을 받았다”는 식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리기도 하였으니 미러링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쁠 것은 없잖은가? 손종업, 이재승, 아, 그리고 지난해 거짓말 담긴 성명서에 무거운 책임을 느껴서 이름 올린 홍성수까지, 그들은 어디서 얼마를 받아먹고 이런 거짓부렁을 일삼을까?

나도 참!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다. 저들처럼 양심적인 사람들이 어디 있다고 우수리를 받아먹는단 말을 하는가 말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은 가능할 것 같다.

“저들의 양심은 무엇을 향한 것일까?”

건다미, 법적 책임론에 대하여

 

건다미

5월 6일 ·

박유하 교수가 2013년 기사를 링크해서 나도 봤는데..
그래도 이때만 해도 좀 제대로 읽고 토론하는 분위기가 있었음.
그리고 기사 내용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법적 책임’과 고노담화에 관한 한국인들의 왜곡된 이해에 대해서 좀더 부연 설명해 볼까 해.
저번에 박노자는 물론 손아람 조차도 ‘법적 책임’에 대한 왜곡을 일삼는 경향이 있음.
일단 법적책임을 지운다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는 가해자들을 추적해서 전범 재판을 통해 처벌하는 거야. 유태인들은 최근까지도 가해자들을 세계 곳곳에 추적해서 고발하지? 뉘른베르그 전범재판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제대로 진상규명이 필요하고 처벌받지 않은 부분에 끝까지 물고 늘어지잖아. 아이히만 재판같은 무리수까지 동원하고 말이야. 개인이 아니라 아예 조직적으로 협력해서 증거를 모으고 가해자들을 추적해.
근데 이거 우리나라는 못했지? 일단 첫째 이유가 해방이후 전쟁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반민특위가 무산된게 큰데..하지만 위안부의 경우엔 반민특위가 아니라 아예 피해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가능하지 않았잖아? 그거 누구 책임이야? 한국인들 책임이잖아.
아사히의 특종보도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묻혀 있었을껄?
그러니 가해자를 추적해서 처벌하는거 현실적으로 불가능함. 당사자의 증언만 남아 있을 뿐 추가적인 재조사도 할 수가 없어. 고문당한 박복순 할머니의 사례처럼 기혹행위한 자들 추적해서 법적 처벌할 수가 없음.
그러면 결국 포괄적인 책임을 일본이 지고 사과하는 거야. 그런데 기혹행위에 대한 증언을 일본정부가 공식적으로 부인했나? 부인한적 없거든? 고노담화 내기전에 일본 정부차원의 조사, 피해자 증언 청취등의 과정이 있었고 거기서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한 강제납치나 가혹행위 사례에 대해서도 인정했음. 다만 증언의 세부적 사항까지는 이제 와서 재조사하여 검증할 수 없다는 것도 함께 인정한 거지.
고노담화에 부정된 건 일본군의 조직적 공적인 깅제연행설이지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부정한게 아니라고. 부정했으면 고노담화가 나올수 없지.
게다가 고노담화의 내용은 기존의 한국인들의 인식보다 더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어. ‘출신에 관계없이’ 나이가 어리든 많든 자발적이든 납치당했든 속았든..일본군의 관여하에 일어난 ‘여성의 명예와 존엄성’을 해친 사건으로서 사죄한다는 내용이야.
물론 나같은 사람의 입장에서야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국가주의로 정당화한 구조’에 대한 책임의 내용이 담겨야 더욱 확실한 사죄가 된다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고노담화를 발표할 시기에 일본이 최대한 사죄를 하려했다는 것만은 움직일 수 없는 ‘팩트’라고.
일본정부의 공식적 입장-고노담화 는 결코 일본 우익의 입장이 아님. 당시 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던 양심적인 일본 국민들의 성취라고 보는게 올바른 태도임.
오히려 일본 우익들은 아베같은 정치인 앞장세워 계속 고노담화를 수정하고 부정하려 했음. 그러니까 한국인들이 고노담화를 지나치게 가치절하 하며 ‘일본은 사죄한 적이 없다’고 하는 건 사실에도 어긋난 정치선동일 뿐이여.
그리고 지원단체가 보상의 법적책임 인정이 ‘사죄의 증거’라는 논리를 내세웠기 때문이기도 해. 그 논리에 따라 일본이 아무리 사죄를 해도 보상의 법적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사죄를 안한 게 되는 거지.

둘째, 법적책임의 두번째 항은 보상과 관련된 것이야. 이것도 왜곡이 심한데, 일본정부가 보상과 관련해서 공식적으로 ‘법적책임이 없다’고 한 적이 없음.
정확하게는 한일기본조약으로 이미 법적책임을 다했고 새롭게 <또다시 반복할 법적책임은 없다> 는게 공식적 입장이지. 법적으로 이중배상의 책임을 부정한거.
한일기본조약이 조약으로 국제법적으로 유효하다면 보상의 법적책임은 일본정부가 아니라 한국정부가 져야 하는 거임.
한일기본조약 청구권 조항과 관련된 당시의 회의록을 보면 일본은 오히려 조항을 넣지말고 국교정상화 이후에 시간을 갖고 진상조사를 한 다음 직접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 주겠다고 제안을 하는데 한국정부쪽이 한사코 거부하고 모든 개인청구권을 자신들이 대행해서 완결짓고 ‘최종적 해결’이라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우기지. 우긴 이유도 골때려. 당시 보상금액을 최대한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고 해. 결국 이렇게 보상금받아 피해자들에게 안주고 지들이 낼름 처먹은 거잖아. 이거 100% 한국정부의 책임임.
한일협정의 청구권 조항으로 꼬이지만 않았다면 당근 일본정부가 공식사죄담화까지 발표한 마당에 사법부의 개인배상 재판은 아무 무리없이 피해자들의 승소로 이어졌겠지. 한일협정때도 진상조사와 개인보상에 적극적 입장을 취했던 일본이 거부할 이유가 없어.
그런데 위안부 문제가 이슈가 된 90년대 이후로 한국정부는 이 ‘법적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이 없음. 마치 자기들은 제3자인 것처럼 방관자처럼 또는 마지못해 행동해. 이 부분에 대해 몇년전 헌법재판소에 위헌판결을 받잖아. 그 판결내용이 바로 ‘방관자처럼 행세하지 말고 문제해결에 적극 노력하라’는 것이여.
이 부분과 관련해서 위안부 할머니들 중에서도 왜 정대협이 일본대사관앞에서 수요집회만 할 뿐 한국정부를 상대로 투쟁하지 않느냐는 불만을 터뜨리는 분들도 있었음. 하지만 이런거 다 묻혀버렸지.
이 법적문제는 그리 만만한게 아니여.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이든 독일이든 다 똑같아. 조약을 맘대로 재해석하고 뒤집지 못함.
지난 그리스 디폴트 위기때를 생각해봐. 치프라스가 독일에 대해 나치피해보상이 과거에 불충분하게 이루어졌다며 추가배상 하라고 요구했지만 독일은 끝까지 거부하잖아? 독일이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어서 그런줄 아냐? 이전에 맺은 조약을 근거로 거부했던 거지. 그런걸 함부로 뒤집지 말라고 경고한거야. 그러면 법적 안정성도 해치고 밑도 끝도 없이 정부는 소송에 계속 시달려야 하거든.
그래서 독일정부도 그런건 안함. 대신에 기금이나 재단 같은걸 내세워 추가보상과 추가적인 진상조사를 전담케 하는 기구를 따로 만들어서 해결함.
이게 바로 ‘법적 문제’야.
한국인들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이 국제적으로도 고립되어 생때쓴다고 인식하는데 그것도 착각임. 대일 강경파인 멕두걸 유엔인권위원도 이 문제를 당장 해결하기 위해선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면 된다고 하지만 승소하리란 보장은 없다고 얘기하거덩?
한국쪽이 추가적 법적배상 책임을 일본에게 묻기 위해 갖가지 법논리를 개발하지만 국제법적으로 인정받기가 그리 쉬운게 아니라고… 한국정부의 원죄적 책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 피해자들은 일본으로 부터도 한국정부로 부터도 보상을 받지 못한 처지가 되어 버렸지. 한국정부도 ‘법적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사실 보상과 관련한 법적책임은 한국정부에게 더 있음에도 그걸 요구하는 운동단체나 국민들도 없지?
때문에 이 문제는 ‘인도주의’에 입각해서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거임.
더이상 법적책임 운운하는거 부질없는 거여.
(내 생각엔 한국정부와 일본정부가 반반씩 도의적 책임을 지고 함께 기금이나 재단을 만들어서 해결하는게 가장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함.)
그리고 박유하 교수를 비롯해 누가 ‘법적책임이 없다’고 했냐? 한일기본조약으로 법적문제가 꼬여 있어서 계속 법적책임을 일본정부에게만 묻기가 ‘어렵다’고 한거지. ‘(애초에) 없다’와 ‘(현실적으로) 어렵다’ 말뜻 구분 못하냐?
그럼 니들은 쉬운 문제라고 생각하니? 쉬우면 지금이라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해.
실제적으로 법적문제 해결에 보탬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왜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 역적 취급하냐?
이 문제와 관련해서 지금 박유하 스토커 자임하는 이들과 아닌 이들의 차이는 박노자 처럼 ‘일본은 깡패집단’ ‘일본은 반인륜적인 범죄집단’ 등등 과격한 레토릭을 구사하며 느낌표 !! 팍팍 넣는거 밖엔 없음. 그러면 법적문제가 해결돼?
좀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증말.

결론적으로 우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해야 할 것을 정리해 보자.

  1. 전시 가혹행위와 위안부제도의 폭력성에 관한 범주의 혼동이나 강제연행설 같은 팩트에 어긋난 주장으로 우익의 입지만 강화시키는 기존의 주장들을 재평가하고 위안부 제도를 운용한 것에 대한 일본군의 책임과 사죄의 본질적 내용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한국-일본 국민들간의 역사인식의 합의를 만드는 것.
  2. 더이상 보상의 ‘법적 책임’ 문제에 연연하지 말고 ‘인도주의’에 입각한 정치적 해결방안을 만드는 데에 정부-민간이 함께 참여해야 함.
  3. ‘위안부란 어떤 존재였는가’ 라는 <제국의 위안부>가 던진 문제의식을 보충하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 당시의 가난한 여성들이 처해진 사회적 지위, 젠더와 계급에 관한 보다 풍부한 사료 연구와 토론이 이루어 져야 함.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