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김종걸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평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그리고 [제국의 위안부, 지식인을 말하다]를 읽어보았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비공식 문헌과 인터뷰를 참 잘 정리한 훌륭한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위안부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고소당하고 재판에 걸려있습니다. 1심에서는 무죄였으나, 2심에서는 34곳을 삭제하도록 판결이 있었습니다. 대법원 판결은 몇 년이 지나도록 그냥 질질 끌고 있는 듯합니다. 비겁한 일입니다.

저는 그 삭제 명령이 난 곳을 [책]과 [재판기록]을 대조해 가면서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34곳이나 삭제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 [그 어디에도] [위안부 할머니들을 폄하]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가난에 팔려가고, 중간상인에 사기당하고, 포주에게 폭행당하고, 만주와 남태평양 땅에서 고생했을 그분들의 삶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이 책이 불편해했던 이유는 아마도 다음의 3가지 정도였을 것입니다.

첫째로, 소녀들이 군인들에게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가 되었다는 그동안의 [인식]을 정면으로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은 조선인 중계업자와 포주에 의해 사기당해 끌려갔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면 비난의 대상이 구체적인 일본 정부/군부가 아니라 제국/식민지/가난/인간의 추악함 등 일반적인 대상으로 전환됩니다. 일본정부/군부가 의도적/조직적으로 개입해서 강제로 끌어가지 않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나 [위안부운동] 차원에서 본다면 난감했을 것입니다.

둘째로, 위안부들이 일본 군인과 일종의 정서적 [동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식민지 속에 살았던 조선 처녀들에게 있어서 비록 억울하고 참담했으나, 일본 군인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에 대해서는 일종의 [동지 의식]을 가졌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측 가능합니다.
위안부들에 대한 폭력은 주로 조선인 포주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일본 군인들은 그들을 위로하기도 했다는 것 또한 수많은 증언이 있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셋째는 위의 불편한 진실을 무시한 [정대협] 등 관련 운동단체에 대한 비판입니다.

애초부터 [위안부]와 [정신대]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역사적 지식이 부족했던 점. [위안부 운동단체] 그리고 [위안부]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는 점을 이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박교수의 책은 누구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다양한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설명했을 뿐입니다.

단 하나의 주장(일본군부에 의해 강제 연행된 소녀 위안부)만이 진실이며 나머지는 [일본 우익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악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
그것은 무척이나 오만한 일이며, 당시를 살았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다양한 삶과 기억에 대한 폭력입니다.

박유하 교수의 주장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박교수는 문학평론가와 번역가로서 레알 A급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응시하는 지식인으로서도 그렇습니다.
탄탄한 학문적 기반을 가진 일문학자가, 자신의 양심을 걸고 쓴 책을, [형사] 고발하고, 재판하고, 언론과 SNS를 통해 마녀사냥했던 우리의 ‘반지성주의’는 무척이나 창피한 일입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근대 문명사회의 기본가치입니다. 그것이 인류 진보의 동력이기도 하죠. 제가 좋아하는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의 핵심입니다.
새삼 용기 내어 책을 쓰고 당시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 박유하 선배에게 감사드립니다.(2023/8/2) https://www.facebook.com/100081046535428/posts/pfbid02urfCsAtzk17oAyZzbMU3Yp6AdwTS7gkht8JLjM53hTiCe11sBAXhRdphFx6WbKQel/?mibextid=K8Wfd2

김도형, 전 한겨레기자의 글

우리시대 선각자이자 그때문에 터무니없는 고초를 겪고 있는 박유하 교수님이 오늘 부로 세종대 정년퇴임을 맞이했다.

박 교수님의 문제작 ‘제국의 위안부’는 여러 시각으로 읽을 수 있지만 내가 보기엔 최고 수준의 페미니즘 작품이다.

“분명한 것은 보수가 주어졌건 아니건 ‘위안부’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윤간이 국가에 의해 허용된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허용한 의식은 여성을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 도구로 대할 수 있게 만드는 차별의식이었다. 특히 ‘조선인 위안부’는 그런 인식이 명확히 드러난 경우다.”(제국의 위안부 143쪽)

“말하자면 강간을 피하기 위해 위안소를 만들었다는 (일본) 군 상부의 의도는 군대의 숫자를 생각하면 처음부터 문제해결에는 도움이 될 수 없는 시도였다. 그리고 실제로 여기서의 강간욕망은 그녀들이 고작 ‘조선삐’였기 때문에 생긴 욕망이었다. 말하자면 단순한 여성 경시 뿐만 아니라 민족경시가 그들에게 강간을 허용한 것이다.”(같은 책 147쪽)

책도 안읽어본 사람들이 맹목적인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없는 죄를 만들고 심판하려 들고, 재판회부 7년이 지나도록 박 교수의 정년이 지나도록 사법부는 비겁하게 재판을 끝내지도 않고 있다.

그녀의 작품을 뒤늦게라도 꼭 읽어보길 바란다. 특히 2030젊은 여성들은 위안부 문제를 ‘소녀상’이란 한가지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국가폭력과 가부장제 사회의 맥락 속에서 바라본 박 교수의 접근법에 주목해 텍스트를 읽어보길 권한다.

후속작 ‘역사와 마주하기’ 한국판도 최근 출간됐다. 나도 오늘 주문했다.

텍스트의 문장 때문에 그 문장도 제대로 독해못한 자들에 의해 고소당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7년이란 세월속에 재판을 방치한 야만의 세월은 끝나야 한다.(김도형, 전 한겨레기자. 2022/8/31, 페이스북)

Su Lee Dilber, 실체 없는 폭력

 

Su Lee Dilber

7월 7일 오후 4:54 ·

시간이 조금만 더 허락된다면

박유하교수님이 이번에 겪은 일들을 잘 정리해보면 참 좋을텐데

3년동안 즈음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

박유하교수가 처음 생각했던 건 아마도

이 상처들을 모두 껴안고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야 하나,

이 상처들을 모두 제대로 껴안으려면 평화인데

였던 듯 하다.

나는 박유하교수의 글들 속에서 그런 추측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처들은,

그 상처의 책임을 제대로 물어야 할 곳에 날라갈 모든 무기들을 갖추고

박유하교수를 찔러대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가 본 “제국의 위안부” 사태의 전말이다.

그리고 사태가 시작되고 박교수가 상당히 당당히 반응하던 사이사이

섬세한 그녀가 보였는데

그 섬세함이 상처받아 흔들리거나 혹은 넘치거나 혹은 비틀거릴때마다

빈틈없이 주먹질을 날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실적으로 일어난 일들은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로 돌리고

감정적으로 몰아가는 사태에 대해 말하면 학문적인 이야기를 하자고 하고

학문적으로 박유하교수의 취지를 설명하려 하면 빈약한 연구였다며 패대기를 쳤다.

말끔하게 똑똑한 소위 지식층의 민낯은

사회를 대표할 “지식인”층의 그것은 아니였다.

지식인들이라면 박유하교수가 당한 실체없는 폭력의 존재를 먼저 봤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면 또 우수수 페절하고 나갈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박유하는 당신이 듣고싶어하지 않는 관점과 논조로 연구를 하고 그것을 쓴 의도는 우리모두가 다시 한 번 고민해야할 평화였다고.

그리고 당신이 아마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런 논쟁의 책을 쓰게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당신은 어떻게 써야만 환영받을지 알고 있으니까.

***박유하교수의 앞으로의 싸움에도 그리고 또 일어날지 모르는 제 2의 박유하교수 사태 에도 만일 “실체없는 폭력”이 모여든다면 난 또 다시 그 폭력에 함께 맞서거나 맞아죽는 걸로 하련다.

Park Yuha 교수님, 이제 진짜 쉬시깁니다. ㅎ

 

Brecht Rufen, 허구적 프레임

 

Brecht Rufen

7월 3일 ·

어쩌다 보니 한 문예지 가을호에 <제국의 위안부> 논란(논쟁 + 소송)과 관련한 글을 쓰게 됐다. 텍스트 자체에 대한 해석도 해야겠지만, 주되게는 텍스트 자체보다 국내 지식인들의 반응을 ‘징후적 현상’으로 보고 논쟁적으로 다루어 보려 한다.

나는 구조적 책임이 상징적 책임이 아니라 실질적 책임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위안부 문제가 일차적으로는 성별 권력 관계 속에서 해석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성별 권력 관계를 식민의 역사적 지배구조가 직접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은 중요한 부분이며, 법적 책임 추궁은 이러한 ‘실질적’ 활용의 책임을 묻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이는 원칙적인 부분이고 협상에서는 피해자의 입장을 존중하는 수준에서 공적 타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나는 박유하 교수의 해석에 이견을 갖고 있지만, 오히려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나름 믿어 왔던 국내 지식인들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처참한 반응 수준이다. 비판자들이 쉽게 사용하는 ‘성노예제’라는 자극적 개념이 어떤 문제를 갖는 개념인지(이 개념은 성폭력/성매매를 예외화한다), 소송에서 핵심 주제로 삼는 자발성-강제성 프레임 자체가 얼마나 위선적인 프레임인지 반성하지 않은 채, 한 명을 마녀로 몰기 위해 내 편 아니면 모두가 적이 되는 게 현실이다.

나는 표현의 자유냐 피해자 인권이냐의 프레임이 허구적이라 생각한다. 1) 애초에 텍스트가 자발성 여부를 화두로 삼지 않고 있으며(일본군이 아니라 업자가 가해주체라는 것이 책의 주된 논점이다), 2) 설령 군위안부들을 일반 공창제의 성매매 여성과 유사한 존재조건의 지평에서 해석하더라도 피해자의 인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그간 페미니즘 연구의 핵심적 성과 중 하나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애초에 성매매 자체에 자발적이냐 강제적이냐의 프레임이 허구적이다).

성매매와 성폭력 문제에서 자발성 여부는 가해주체를 명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피해자의 인권이나 명예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은 정대협과 연관된 활동을 해온 몇몇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이나영 교수가 군위안부와 기지촌 성매매 여성의 상동성에 대해 다루는 2013년도 논문에서도 이 부분이 잘 지적되고 있다). <제국의 위안부> 논쟁의 핵심은 피해자 인권 침해가 아니라 가해주체를 누구로 삼을 것이냐의 해석 문제이며, 이것이야말로 공적으로 열린 토론 주제가 되어야 한다.

내 눈에 ‘소녀상’이야말로 전 위안부 여성들의 자아를 분열시키고, 다른 성매매 여성들과 위안부 여성들 간의 폭력적인 위계를 설정하는 인권침해적 상징물이다.

이 마녀사냥급 논란 속에서 군위안부 문제의 해석지평은 내가 보기에는 고 윤금이 사건에 분노하고 위안부 문제가 막 폭로되던 90년대 초로 돌아가고 있다.

김곰치, 정말 할머니들을 모욕한 사람들

김곰치

7월 3일 ·

나는 판사가 박유하의 책을 고발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책을 다 읽어보기는 하셨냐’라고 물어봤는지 궁금하다. 감히 판사라 해도 질문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는 책 한 권이 문제가 아니라 책 속의 단 한 문장이라고 해도 몸서리치는 모욕감을 받을 수도 있겠다. 때문에 책 한 권이 통째로 용서받기 힘들게 될 수도 있다.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해보기는 했지만, 나는 박유하의 책에서 그런 구절도 발견할 수 없었다. 어떤 극단적인 표현들도 앞뒤 문장을 함께 보면, 최소한의 문해력이 있다면 다 납득이 되는 표현들이다. 책은 무엇보다 객관적인 가치가 있다. 고백하건대 일제시대라는 것이 거의 최초로 내게 입체적으로 보였고, 당시 위안부 여성들의 아픔이 비로소 좀 설득력있게 느껴지는 것을 경험했다.

박유하 책이 할머니들을 모욕한 것이 아니다. 할머니들을 모욕한 것은 박유하 책을 편향적으로 극적으로 요약 전달한 몇 인사들이라고 봐야 한다. 할머니들에 의해 고발되어야 할 사람은 바로 그들이다. 한 독자로서 양심상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김미영, 누구를 위한 불화인가

Miyong Kim-To

6월 28일 ·

“누구를 위한 불화인가”
몇년에 걸쳐 Park Yuha 박유하선생이 겪고 있는 필화는 박유하 선생자신이 가진 철학이나 그의 책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지성인 혹은 반지성인들의 계보를 읽는데 훨씬 유용한 렌즈란 생각이 든다. 일단 편하고 어쩐지 든든한 소속감을 주는 “가짜애국심 또는 무한 반복 , “죽어도 반일 “프레임에 갇혀 다치고 손해보는 이들은 박유하 개인뿐이 아니다. 현재 양국민의 대다수가 1945년8/15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고 2000년대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밀려오는 난제들을 주변국들과 협력해 일해야하는 사람들이라는 간단한 사실을 상기한다면 “누구를 위한 불화”인가를 돌아보자는 그의 외침은 ” 누구를 위한 화해”냐며 선량한 대중을 부추기는 거짓 선지자들의 비열한 선동과 비교된다. 박유하선생의 시대적 양심을 지지한다.

Miyong Kim-To

6월 29일 ·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 ·

누구를 위한 불화인가 II.

불화를 부추겨서 구차한 잇속이라면 잇속을 챙기는 이들을 모르는것은 아니다.몰라서 입을 닫고 있었던게 아니다. 단지 워낙 힘들게 버티고 있는 박유하(Park Yuha) 샘에게 누가 갈까봐 참고 있었을 뿐이다.

어떤 시대착오적 적인 혁명가들은 그들의 허약한 명분에 금이갈까봐서, 또 어떤 생계형 운동가들은 만약 천황이 와서 무릎꿇고 사죄하고 할머니들이 수용할만한 보상을 한대도 바라지 않을것이다. 그동안의 적대구조가 그들에게 존재이유와 생계수단을 함께 제공했으므로. 또 언제 실현될지 모르지만 북한과 일본의 협상 테이블에 일본 압박용카드로 위안부문제를 써서 돕고 싶은 친북그룹도(종북이란 허명을 씌울 생각은 없다) 있고 무능한 권력들이 ( 좌.우파정부가 다 싸먹은 방법이다) 대중을 흥분시켜 밖에 있는 “적”에게 눈을 돌려 안에서의 실정에서 시선을 돌리눈데 쓰기도 했다 ( 그건 일본의 우익정권도 마찬가지).
그러는 동안 국제사회에서 우리는 성숙치못한 분노조절장애그룹으로 낙인찍히고 선하고 깔끔한 전후세대의 일본국민들과 선입견없이 교류하는 자유를 저당잡혔다. 온국민이 함께 분노하며 같이 미워할 영원한 적국하나룰 갖기위해…”
누구를 위한 불화인가 ! 정말 붙잡고 묻고 싶다.

화해를 위하여”라는 시대적 당면 화두에 부르르 떨며 절대 그럴수없다고 날뛰는 이들의 면면을 기억해둘테다. 이미 잃어버린 70년에 얼마다 더 기다려야 이 분노의 성화를 끌수있는지. 역사가 책임을 물을수 있도록 기록하면서.
사족-

이번 일에 특히 마음에 걸리는 것은 비교적 길고 공정한 역사관 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푸른 역사 출판사에 대한 실망이다. 내가 손에 일이 안잡힐정도로 마음이 상하는데 박선생 은 오죽하랴. 허허벌판에 맨몸으로 서서 믿었던 지인들로부터까지 돌팔매질 당하는 기분이리라. 안쓰럽고 쓸쓸하다.

박세진, 『제국의 위안부』,[평화운동] 나는 박유하 교수를 지지한다

[책 제국의 위안부] [평화운동] 나는 박유하 교수를 지지한다

– 박유하 교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우익도 아니고, 친일파도 아니다.

– 그렇다고 하는 이들은 무지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 이던지, 안다면 왜곡을 하는 것이다. 그들의 발언은 무책임한 것이고, 한국을 위한 것도 아니고, 위안부문제의 해결에 도움되는 것도 아니다.

– 나는 일본과 화해하자는 것은 북한과 화해하자는 것과 기본적으로 같은 종류의 평화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운동을 해서 친일파가 되는 것도 아니고, 종북이 되는 것도 아니다. 꺼꾸로 이런 운동은 일본의 시민들과, 가능하다면 북한의 시민들과도 같이 해야하는 운동이라 생각한다. 이 운동은 <국제적인 평화운동>인 것 이다. 책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서 상을 받은 것은 일본의 우익 때문이 아니고, 위안부문제에 있어 한국에 사과하고 화해를 하고 싶어하는 일본의 시민사회의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북한과는 화해를 하자는 사람들이 일본과 화해하자는 데는 반대이다. 일본이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않아서 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주장을 북한에는 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북한에는 그런 주장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북한과 달리 민주사회이고 모든 이슈에 관해 뭉처저 있지가 않다. 일본의 우익이 일본을 대표하지 않는다. 일본에도 한일관계에 화해를 바라는 그룹들이 많이 있다. 일본과 화해를 하자는 것은 그들과 손잡고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저오자는 것이기도 하다.

– 재일학자 정영환은 <동아시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라는 이름의 블록을 가지고 하는 것은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다. 시대에 지난 시각으로 계속 일본을 비판하고 있다. 이점에 대하여는 다른 기회에.

 

https://www.facebook.com/sejin.pak8/posts/10154268512467296

이경일, 읽어보길 권함

이경일님이 새로운 사진 2장을 추가했습니다.

5월 25일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울 ·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읽었다. 박교수가 배포한 34곳이 삭제된 2판 PDF를 읽다 갑갑해서 초판 무삭제본을 도서관을 뒤져 구해 읽었다.

사서가 금고에서 꺼내주어 좀 놀랬다.

다 읽고나니 내가 박교수라면 이 책으로 일어난 사태를 당하고 복장이 터져 죽을만큼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문 수준의 이 책에서 박교수가 주장하는 바는 서울 정대협이 만든 이미지에 휘둘리는 세상에 대해 정견을 갖자는 것이다. 또한 우리 안의 착취자들이 있었음을 적시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정신대가 현재에도 미군 주둔지 주변에도 현존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읽으면서 슬픈 우리 역사 단면의 선혈 흐르는 참상을 느꼈다. 남자로서 남성성의 끊임없는 정욕의 밑바닥도 본 느낌.

무엇보다 김종영 편집장의 지적처럼 쉽게 휩쓸리고 사실보다는 ‘제공된 주장’에 견강부회하는 우리네의 민낯이 슬펐다.

가슴 아프고 읽기 절대 쉽진 않지만 대강이라도 읽으시길 바란다.

서윤, 저들의 양심은 무엇을 향한 것일까?

 

서윤

5월 7일 ·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스마트폰을 쓰다보니 이제는 그 기능에 별반 놀라워하는 사람이 없지만, 나는 지금도 내 손에 들린 기계가 늘 신기하다. 내가 사용하는 컴퓨터도 그렇고, 컴퓨터라는 기계는 다 신기해보인다.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 기능을 사용하다 보면 편리함도 편리함이지만 구현해낸다는 게 참 어려운 일임을 아는 터라, 매번 그렇다.

조금이라도 어떤 분야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아는 편이라면 늘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새삼 놀랄 것이 없는데도 계속 놀라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러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 경이로움은 익히 안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2014년 6월 15일 오전 8시 30분경 연합뉴스에서 최초로 <제국의 위안부> 소송 기사가 떴을 때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6월 13일에 박유하 선생님과 페친이 되었고, 이틀간 담벼락을 보면서 느낀 바로는 전혀 그런 이야기를 쓸 분이 아니었기에, 먼저 했던 행동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혀로 입술을 핥은 것이었다. 의구심이 들 때 내가 하는 습관이다. 당시 기사내용은 나눔의집 측에서 배포한 자료를 확인없이 배포한 것이었고, 이후 유수 일간지에서도 역시 확인없이 복사-재배포를 거듭했다. 놀란 건 그때부터였다.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제국의 위안부>를 사 읽고, 이어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 <화해를 위해서>를 구해 읽으며 나는 저자인 박 선생님이 도저히 제국주의자는 될 수 없는 분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볼 근거가 전혀 없었다. 이런 생각은 했다 : “어쩌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런 논변은 설 자리가 없을수도 있겠다.” ‘관계’가 와해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항상 의탁할 곳을 찾게 마련이며, 지금 같은 사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의탁할 곳은 결국 ‘국가’이기 때문이며, 국가 역시 그런 의존성을 높이는 데 적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국가를 허구라든가 악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국가는 물질적 실재가 아닌 상상적 실재이며, 그러므로 이미지에 불과하지만 그 이미지는 실재보다 힘이 세다. 원래 이미지가 실재보다 힘이 세기는 하다. 그래서 실재보다는 이미지로부터 규범, 실천, 변화, 이런 것들이 나온다. 게다가 국가를 악이라고 해봐야 이미 영속성마저 띠어가는 국가를 엎어놓고 빠따 때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해서 고민해야 할 것은 국가를 어찌 없애버릴 것인가가 아니라, 국가의 존재양식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있다. 무언가에 의탁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며 한 인간이 살아가는 실존의 영역은 매우 협소하므로, 국가보다는 지역사회와 같은 작은 영역에 가장 크게 의탁하는 편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뭐,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니 넘어가자.

어쨌든 국적이라는 게 많은 것을 보장하는 한 국가를 우습게 보는 건 정신병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래서 국경을 진지하게 염두에 두는 사고방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국경을 진지하게 여긴다 하여 국경을 근거로 누군가에게 서슴없이 ‘사상범’이란 말을 써도 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친일파’라는 말을 이토록이나 거칠게 사용하는 이가 어떻게 말글을 다루는 직업의 하나인 기자씩이나 하고 있을까? 기사를 읽다 기함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오해이고 오독이고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러 명의 연구자가 제국의 위안부를 읽은 뒤 박유하가 일본군 위안부를 여러 대목에서 ‘자발적 매춘부’로 규정했다고 판단했고, 재판부는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는 구절을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는 이미지를 우리가 부정해온 것 역시 그런 욕망,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296쪽, 삭제)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를 무엇이라 읽어야 오독이 아닐까. 대략난감이다.”

누가 난감해야 하는지 참으로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책은 읽고 이 기사를 쓴 것일까? 기본적으로 책은 읽고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라는 책을 기획한 것일까? 위의 문장은 앞부분에서 위안부문제를 부정하는 일본 논자들을 비판하는 대목과 조응한다. 위안부들을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 부르는 일본의 논자들의 인식, 그것이 ‘매춘부는 피해를 입어도 상관없다’는 폭력적 인식임을 비판하는 대목이다. 또한 국가이고 남성이고 가난이 주범인 위안부 문제에서 별안간 민족의 문제를 맨앞에 세워 실제로 유곽 여성들이 먼저 갔던 위안부의 모습을 소거한 그간의 인식을 비판하는 글이기도 하다. 유곽 여성들은 위안부로 차출되어도 좋다는 것이냐 묻는 대목이다. 이런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숙연할 정도로 진지하게 비판의 이유를 밝히는 기자의 지성은 도대체 어디쯤에 놓여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판결문에는 있지도 않은 ‘허위사실’이란 말을 버젓이 기사에 내놓는 이 기자의 양심은 얼마나 우거진 것인지, 가능하다면 확인이라도 해보고 싶다. 이런 글을 볼적마다 새록새록 놀라울 뿐이다. 마치 기계에 늘 경탄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재승, 최종길, 정진성 등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모리배들이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관심법들 시전하는 걸 흉내내서, 나도 관심법 한 번 시전해봐야겠다.

이 기자는 이거 쓰고 우수리를 얼마나 받을까? 손종업이라는 사람이 이전에 박유하 교수를 가리켜 “일본 우익의 돈을 받았다”는 식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리기도 하였으니 미러링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쁠 것은 없잖은가? 손종업, 이재승, 아, 그리고 지난해 거짓말 담긴 성명서에 무거운 책임을 느껴서 이름 올린 홍성수까지, 그들은 어디서 얼마를 받아먹고 이런 거짓부렁을 일삼을까?

나도 참!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다. 저들처럼 양심적인 사람들이 어디 있다고 우수리를 받아먹는단 말을 하는가 말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은 가능할 것 같다.

“저들의 양심은 무엇을 향한 것일까?”

건다미, 법적 책임론에 대하여

 

건다미

5월 6일 ·

박유하 교수가 2013년 기사를 링크해서 나도 봤는데..
그래도 이때만 해도 좀 제대로 읽고 토론하는 분위기가 있었음.
그리고 기사 내용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법적 책임’과 고노담화에 관한 한국인들의 왜곡된 이해에 대해서 좀더 부연 설명해 볼까 해.
저번에 박노자는 물론 손아람 조차도 ‘법적 책임’에 대한 왜곡을 일삼는 경향이 있음.
일단 법적책임을 지운다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는 가해자들을 추적해서 전범 재판을 통해 처벌하는 거야. 유태인들은 최근까지도 가해자들을 세계 곳곳에 추적해서 고발하지? 뉘른베르그 전범재판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제대로 진상규명이 필요하고 처벌받지 않은 부분에 끝까지 물고 늘어지잖아. 아이히만 재판같은 무리수까지 동원하고 말이야. 개인이 아니라 아예 조직적으로 협력해서 증거를 모으고 가해자들을 추적해.
근데 이거 우리나라는 못했지? 일단 첫째 이유가 해방이후 전쟁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반민특위가 무산된게 큰데..하지만 위안부의 경우엔 반민특위가 아니라 아예 피해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가능하지 않았잖아? 그거 누구 책임이야? 한국인들 책임이잖아.
아사히의 특종보도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묻혀 있었을껄?
그러니 가해자를 추적해서 처벌하는거 현실적으로 불가능함. 당사자의 증언만 남아 있을 뿐 추가적인 재조사도 할 수가 없어. 고문당한 박복순 할머니의 사례처럼 기혹행위한 자들 추적해서 법적 처벌할 수가 없음.
그러면 결국 포괄적인 책임을 일본이 지고 사과하는 거야. 그런데 기혹행위에 대한 증언을 일본정부가 공식적으로 부인했나? 부인한적 없거든? 고노담화 내기전에 일본 정부차원의 조사, 피해자 증언 청취등의 과정이 있었고 거기서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한 강제납치나 가혹행위 사례에 대해서도 인정했음. 다만 증언의 세부적 사항까지는 이제 와서 재조사하여 검증할 수 없다는 것도 함께 인정한 거지.
고노담화에 부정된 건 일본군의 조직적 공적인 깅제연행설이지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부정한게 아니라고. 부정했으면 고노담화가 나올수 없지.
게다가 고노담화의 내용은 기존의 한국인들의 인식보다 더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어. ‘출신에 관계없이’ 나이가 어리든 많든 자발적이든 납치당했든 속았든..일본군의 관여하에 일어난 ‘여성의 명예와 존엄성’을 해친 사건으로서 사죄한다는 내용이야.
물론 나같은 사람의 입장에서야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국가주의로 정당화한 구조’에 대한 책임의 내용이 담겨야 더욱 확실한 사죄가 된다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고노담화를 발표할 시기에 일본이 최대한 사죄를 하려했다는 것만은 움직일 수 없는 ‘팩트’라고.
일본정부의 공식적 입장-고노담화 는 결코 일본 우익의 입장이 아님. 당시 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던 양심적인 일본 국민들의 성취라고 보는게 올바른 태도임.
오히려 일본 우익들은 아베같은 정치인 앞장세워 계속 고노담화를 수정하고 부정하려 했음. 그러니까 한국인들이 고노담화를 지나치게 가치절하 하며 ‘일본은 사죄한 적이 없다’고 하는 건 사실에도 어긋난 정치선동일 뿐이여.
그리고 지원단체가 보상의 법적책임 인정이 ‘사죄의 증거’라는 논리를 내세웠기 때문이기도 해. 그 논리에 따라 일본이 아무리 사죄를 해도 보상의 법적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사죄를 안한 게 되는 거지.

둘째, 법적책임의 두번째 항은 보상과 관련된 것이야. 이것도 왜곡이 심한데, 일본정부가 보상과 관련해서 공식적으로 ‘법적책임이 없다’고 한 적이 없음.
정확하게는 한일기본조약으로 이미 법적책임을 다했고 새롭게 <또다시 반복할 법적책임은 없다> 는게 공식적 입장이지. 법적으로 이중배상의 책임을 부정한거.
한일기본조약이 조약으로 국제법적으로 유효하다면 보상의 법적책임은 일본정부가 아니라 한국정부가 져야 하는 거임.
한일기본조약 청구권 조항과 관련된 당시의 회의록을 보면 일본은 오히려 조항을 넣지말고 국교정상화 이후에 시간을 갖고 진상조사를 한 다음 직접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 주겠다고 제안을 하는데 한국정부쪽이 한사코 거부하고 모든 개인청구권을 자신들이 대행해서 완결짓고 ‘최종적 해결’이라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우기지. 우긴 이유도 골때려. 당시 보상금액을 최대한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고 해. 결국 이렇게 보상금받아 피해자들에게 안주고 지들이 낼름 처먹은 거잖아. 이거 100% 한국정부의 책임임.
한일협정의 청구권 조항으로 꼬이지만 않았다면 당근 일본정부가 공식사죄담화까지 발표한 마당에 사법부의 개인배상 재판은 아무 무리없이 피해자들의 승소로 이어졌겠지. 한일협정때도 진상조사와 개인보상에 적극적 입장을 취했던 일본이 거부할 이유가 없어.
그런데 위안부 문제가 이슈가 된 90년대 이후로 한국정부는 이 ‘법적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이 없음. 마치 자기들은 제3자인 것처럼 방관자처럼 또는 마지못해 행동해. 이 부분에 대해 몇년전 헌법재판소에 위헌판결을 받잖아. 그 판결내용이 바로 ‘방관자처럼 행세하지 말고 문제해결에 적극 노력하라’는 것이여.
이 부분과 관련해서 위안부 할머니들 중에서도 왜 정대협이 일본대사관앞에서 수요집회만 할 뿐 한국정부를 상대로 투쟁하지 않느냐는 불만을 터뜨리는 분들도 있었음. 하지만 이런거 다 묻혀버렸지.
이 법적문제는 그리 만만한게 아니여.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이든 독일이든 다 똑같아. 조약을 맘대로 재해석하고 뒤집지 못함.
지난 그리스 디폴트 위기때를 생각해봐. 치프라스가 독일에 대해 나치피해보상이 과거에 불충분하게 이루어졌다며 추가배상 하라고 요구했지만 독일은 끝까지 거부하잖아? 독일이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어서 그런줄 아냐? 이전에 맺은 조약을 근거로 거부했던 거지. 그런걸 함부로 뒤집지 말라고 경고한거야. 그러면 법적 안정성도 해치고 밑도 끝도 없이 정부는 소송에 계속 시달려야 하거든.
그래서 독일정부도 그런건 안함. 대신에 기금이나 재단 같은걸 내세워 추가보상과 추가적인 진상조사를 전담케 하는 기구를 따로 만들어서 해결함.
이게 바로 ‘법적 문제’야.
한국인들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이 국제적으로도 고립되어 생때쓴다고 인식하는데 그것도 착각임. 대일 강경파인 멕두걸 유엔인권위원도 이 문제를 당장 해결하기 위해선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면 된다고 하지만 승소하리란 보장은 없다고 얘기하거덩?
한국쪽이 추가적 법적배상 책임을 일본에게 묻기 위해 갖가지 법논리를 개발하지만 국제법적으로 인정받기가 그리 쉬운게 아니라고… 한국정부의 원죄적 책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 피해자들은 일본으로 부터도 한국정부로 부터도 보상을 받지 못한 처지가 되어 버렸지. 한국정부도 ‘법적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사실 보상과 관련한 법적책임은 한국정부에게 더 있음에도 그걸 요구하는 운동단체나 국민들도 없지?
때문에 이 문제는 ‘인도주의’에 입각해서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거임.
더이상 법적책임 운운하는거 부질없는 거여.
(내 생각엔 한국정부와 일본정부가 반반씩 도의적 책임을 지고 함께 기금이나 재단을 만들어서 해결하는게 가장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함.)
그리고 박유하 교수를 비롯해 누가 ‘법적책임이 없다’고 했냐? 한일기본조약으로 법적문제가 꼬여 있어서 계속 법적책임을 일본정부에게만 묻기가 ‘어렵다’고 한거지. ‘(애초에) 없다’와 ‘(현실적으로) 어렵다’ 말뜻 구분 못하냐?
그럼 니들은 쉬운 문제라고 생각하니? 쉬우면 지금이라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해.
실제적으로 법적문제 해결에 보탬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왜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 역적 취급하냐?
이 문제와 관련해서 지금 박유하 스토커 자임하는 이들과 아닌 이들의 차이는 박노자 처럼 ‘일본은 깡패집단’ ‘일본은 반인륜적인 범죄집단’ 등등 과격한 레토릭을 구사하며 느낌표 !! 팍팍 넣는거 밖엔 없음. 그러면 법적문제가 해결돼?
좀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증말.

결론적으로 우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해야 할 것을 정리해 보자.

  1. 전시 가혹행위와 위안부제도의 폭력성에 관한 범주의 혼동이나 강제연행설 같은 팩트에 어긋난 주장으로 우익의 입지만 강화시키는 기존의 주장들을 재평가하고 위안부 제도를 운용한 것에 대한 일본군의 책임과 사죄의 본질적 내용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한국-일본 국민들간의 역사인식의 합의를 만드는 것.
  2. 더이상 보상의 ‘법적 책임’ 문제에 연연하지 말고 ‘인도주의’에 입각한 정치적 해결방안을 만드는 데에 정부-민간이 함께 참여해야 함.
  3. ‘위안부란 어떤 존재였는가’ 라는 <제국의 위안부>가 던진 문제의식을 보충하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 당시의 가난한 여성들이 처해진 사회적 지위, 젠더와 계급에 관한 보다 풍부한 사료 연구와 토론이 이루어 져야 함.

이상.

건다미, 『제국의 위안부』에서 ‘동지적’ 관계 란 워딩이 씌여진 맥락

내가 이해하기로 제국의 위안부에서 ‘동지적’ 관계 란 워딩이 씌여진 맥락은 이런거라고 생각해.

초기 정대협은 정신대와 위안부도 구분하지 못했음. 피해규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그래서 계속 정신대와 같은 ‘공적인’ 강제동원 체계속에 위안부 문제를 증명하려고 했지만 증거가 나올리 없지. 이렇게 시간만 허비해.

정대협도 이 입장 스스로 철회한게 아니라 정신대 피해자들에게 항의를 받고서야 철회하고 사과함. 그러면 이때부터라도 위안부란 존재가 대체 무엇이었나를 제대로 들여다 보고 연구해야 하는데 전략을 바꿔서 ‘성노예’라는 개념으로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일본에 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식으로 나가지. 다분히 운동의 전략적 사고만 한거지.

하지만 이 문제가 또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정신대와의 혼동이 동원과정에서의 강제성(강제연행)을 입증하는데 실패했다면 ‘성노예’라는 개념은 위안소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었는가라는 걸 알려주는 여러가지 증언과 상충되는 면이 있거덩.

실제로 노예적 상황에 처해지도록 감금과 폭력으로 매일 매일 혹사시킨 직접 주체가 포주이기 때문이야. 일종의 하청관계라서 일본군이 정기적인 성병검사하는 관리차원을 넘어서서 운영에 직접적으로 구체적으로 관여한 증거도 또 없단 말이지. 오히려 위안부들은 포주로 부터의 폭압적 상황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일본군의 보호를 받기 위해 좀더 높은 지위의 군인과 연애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위안부들이 간호사역할을 하기도 하고 군인들 환송회를 가고 죽은 군인들 무덤도 돌봐주고 함께 훈련을 받기도 하고 함께 아편을 하기도 하고 같이 신세타령을 하거나 전장터에서 살아돌아 오라는 격려도 해주고…

직접 점령지에서 군인에게 강제로 끌려가서 수용된 점령지 여성들 증언에 그런 내용 있는거 봤냐? 분명 다른 면이 있거덩.

일본 우익들은 동원과정에서의 강제성과 마찬가지로 위안소 풍경에 관련된 여러 증언과 사실을 근거로 위안부문제 자체를 부정하지.

그러면 과연 조선인 위안부는 점령지 출신의 위안부보더 더 편한 생활을 했냐 하면 또 그런건 아니여.

직접적 폭력과 강압의 주체가 다르다는 거지. 점령지 여성들이 일본군에게 직접 개취급 노예취급을 당했다면 조선인 위안부들은 대신 민간인 업자-포주에게 맨날 두들겨 맞고 감시당하고 감금, 혹사당하면서 개취급 노예취급을 당하고 일본군과의 관계에선 전쟁을 치루는 같은 황국의 신민으로서 ‘위안’을 해줘야 하는 애국자 역할까지 강요받은 거라고.

즉, 조선인 포주-업자와의 하청관계와 위안과 애국이라는 내면화된 국민동원 이데올로기를 통해 일본군과 조선인 위안부 사이의 직접적 폭력성을 은폐할 수 있었던 것. 그래서 그 은폐의 구조를 드러내지 않고 직접적 폭력성을 증명하는 증거찾기에만 집중하는 방식의 운동은 결국 별다른 성과를 낼 수 없었던 것.

동지적 관계란 점령지 위안부와는 다른 면 그 은폐된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지. 그리고 이 개념은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함.

일본군 병사들 조차도 자신들이 점령지 여성(적의 여성)과 조선인 위안부를 명확히 구분하고 다르게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면적으로 ‘정당화’하고 있거덩. 이건 일본군을 한국군이나 다른나라 군대와 바꿔도 마찬가지여. 그만큼 조선인 위안부 문제는 좀더 구조적이고 보편적이 문제로 볼 필요가 있다는 거여.

그냥 일본군의 만행이라는 특수화된 범주를 넘어서서 여성에 대한 성적착취를 정당화시키는 ‘가부장제 국가’.. 그리고 가난한 여성이 주로 표적이 되는 ‘계급’문제등으로 봐야 하는 거지.
그래서 ‘위안’이라는 국민동원 이데올로기는 식민지 이후에도 한국군 위안부, 미군 위안부로 재생산 될 뿐 아니라

전시가 아니더라도 ‘성매매 합법화’와 ‘공창제’를 주장하는 남성들의 의식속에서도 내면화되어 재생산되고 있지. 남성의 성욕해소에 도움을 줘서 성범죄를 예방한다는 개소리가 사실 당시의 ‘위안’이라는 이데올로기와 똑같은 거거든. 여성의 성적대상화가 너무도 일상적이고 당연해서 그걸 언제든 국가,민족,사회의 공적 구조로 끌여들여 정당화시키는 짓까지 한다는 거야.  (난 그래서 ‘성노예’라는 용어보다 일본군이 썼던 ‘위안부’라는 용어가 오히려 더 그 실체를 잘 드러내 주는 개념이라고 생각함.)

위안부제도를 공적으로 용인하고 정당화했던 구조적 강제성으로 문제를 접근해야 제대로 된 역사에 대한 반성도 이끌어 낼 수 있는거 아니냐. 그래야 일부 표면적인 사실관계 끌어다가 위안부 부정하는 일본우익의 논리도 씹을 수 있는 거고. 그런 논리에 휘말려 위안부 피해자들 이미 백발이 되 다 늙고 죽어가는데 직접적 강제성 증거찾고 문서찾고 그딴 헛발질로 허송세월만 보내지 말란 얘기여.

오히려 일본군이 폭력과 강압의 직접적 주체로 전면에 나서지 않았어도 어떻게 이 많은 여성들이 위안부로 동원되고 희생될 수 있었을까…라는 점이 더 끔찍한 역사적 사실이잖아.
그런 합법적이고 공적인 구조와 체계를 만들어낸 장본인으로서 당시의 일본군-일본정부-국가의 책임, 더나아가 전국민적 의식의 차원까지 책임을 묻고 반성하게 하는게 위안부문제와 관련한 과거사 청산의 핵심이라는 생각은 안드나?

안그러면 그 정당화의 구조는 언제든지 다른 모습으로 다른 국적으로 반복될 수 있잖아.
세월호도 그저 박근혜정부 탓으로만 돌리고 규탄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냐? 뭐 문재인이 대통령었다면 사고 예방되고 전원구조도 되고 막 그랬을 거 같아?그것도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제대로 문제가 해결되는 거지. 그거랑 비슷한 이치.

물론 그렇다고 제국의 위안부가 구조적 문제를 치밀하고 꼼꼼하게 탐구했다고 보긴 어려워. 좀더 충실히 보완되어야 할 부분들도 많고 그런면에서 생산적인 비판과 논쟁이 이루어진다면 대환영.

하지만 지금 하는 꼬라지는 문맥도 제대로 파악못하고 왜곡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함.
이상.

작성자 : 건다미
출전 : 건다미 페이스북

배홍진, 중세적인 종교재판

 

배홍진

3월 6일 ·

박유하 교수를 비판하는 진보 지식인들은 박교수가 진보주의의 가면을 쓴 채, 국가주의나 제국주의의 담론에 교묘하게 봉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이지 씁쓸한 건, 책에 명시적으로 나오는 박교수의 논지나 의견엔 침묵하고, 그 논지의 배면에 흐르는 박교수의 무의식이라 할만한 것을 다분히 자의적으로 추측해 비판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논리적 전개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박 교수는 물론 A는 오렌지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따져보면 박교수는 A는 오렌지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통해 A를 호도하고 왜곡하려는 교묘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렇게 그들은 거의 백년동안 꽈배기만 만들어온 사람처럼, 혹은 문맥의 심층까지 내려가 뭔가 비판할 건덕지를 찾는 탐험가들처럼, 이 책은 어쨌든 꼬아봐야 진짜 의도를 알 수 있어, 혹은 이 책은 분명 다른 속셈을 지니고 있을테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텍스트의 지하로 내려가 봐야돼, 라고 말한다.

사실 그들이 얘기하는, 진보의 가면을 쓴 국가주의를 먼저 비판하기 시작한 건 박유하 교수다. 민족, 역사, 애국이란 미명이 지식과 운동에 이용될 때 어떻게 정의를 가장한 반목과 증오의 담론을 생산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폭력의 멘탈리티로 귀결되는지를 박유하 교수는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제국의 위안부에 나오는 어떤 논지들은 이미 지식인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었던 것들도 있다. 그러나 그걸 책으로 용기있게 구체적으로 쓴 사람은 없다. 그들은 자기들도 알고 있던 거야, 라고 얘기하는데 정작 자기들은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내지않고 있다가 박교수가 목소리를 내니, 우리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당신은 그 사실을 이용해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하고 있어, 라고 성토한다. 도대체 뭐하자는 짓인가.

박교수를 얼마든지 부정하고 비판해도 좋다. 심지어 텍스트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해도 좋다. 다만 한국 사회가, 인문학자가 자신이 쓴 책으로 감방을 갈 이유가 없는 사회라면 말이다. 정의감에 넘치는 지식인들은 먼저 박유하를 물어뜯기 전에, 한 지식인의 인문학 저서를 범죄 행위의 증거 따위로 생각하는, 이 사회의 그 대단한 상식부터 물어뜯어야 할 것이다. 역사의 진실은, 당신들이 믿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종교적 신앙의 대상은 더더욱 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번 사태를 명백히 중세적인 종교재판이라 생각한다.

박일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해야 할 것들

출처: https://www.facebook.com/poem.river/posts/677484008990769

어제 오늘에 걸쳐 <제국의 위안부>를 다 읽었다.
그동안 우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들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피상적이었는지를 알게 해준 책이다. 이 책의 핵심은 위안부에 대해 하나의 기억(어린 조선 소녀들에 대한 강제연행, 일본 군인들에 의한 집단 강간과 잔인한 폭력, 민족의 자존심을 대신해서 싸우고 있는 투사 할머니들 등)만 강요함으로써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던 위안부의 실체와 그런 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기억과 의식을 소거시켰고, 그로 인해 문제 해결마저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책이 학문적 비판이 아니라 고발의 대상이 된 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즉 정대협에 대한 비판이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유하 교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이라는 국가의 책임을 묻고 있다. 결코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쓴 책이 아닌데도 사태가 이렇게 이른 데는 정대협이라는 존재가 자리잡고 있다.

일단 내가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 사실 몇 가지부터 얘기해 보자.
조선인 위안부의 평균 나이가 25세라는 것(소녀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일본은 개인 보상의 여지를 남겨 두려고 했는데 오히려 한국이 거부하고 국가 간에 전체적으로 일괄타결을 요청해서 개인 몫까지 국가가 대신해서 받았으며, 이러한 사실이 나중에 개인들이 일본 법정에 제소한 재판에서 계속 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한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몇 차례에 걸쳐(197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2005년) 대신 보상금을 지급했다는 것.
1994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국가 책임을 인정한 고노담화에 이어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을 조성하여 각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지급하였으며, 이때 수상의 편지를 함께 전달했다는 것.
우리나라의 위안부 피해자들도 60여명이 이 기금을 수령했으며, 필리핀과 네덜란드는 이 기금으로 위안부 문제를 종결지었다는 것 등이다.

고발의 증거로 제시된 내용 중에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다는 말이다. 앞뒤 자르고 이 말만 떼어 와서 들이밀면 박유하 교수가 민족의 배반자이자 죽일 년이 되는 건 당연지사일 것이다. 박교수는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책에서 밝힌 내용들을 간추리면 몇 가지 층위가 있다. 위안부와 마찬가지로 일본인 병사들도 제국의 강요에 의해 끌려왔으며 그런 점에서 서로 동병상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일본인 병사들이 전투에 나갈 때 환송회를 열어주기도 했으며 살아서 돌아오라고 당부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우에 따라 간호원처럼 일본인 부상병들을 치료해 주는 역할을 부여받았으며 군사훈련을 받기도 했다, 일본에게 침략을 당한 아시아의 제3국이 보았을 때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였으며 일본인과 조선인을 구분하지 않았다, 자신의 희생이 국가(일본)를 위한 것이라는 의식을 스스로에게 주입시키는 것이 그나마 비참한 처지를 버틸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와 같은 근거들을 제시한다. 물론 이러한 근거들은 강요된 동지적 관계임에 분명하고, 친일파들처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자발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박교수는 이러한 상황이 식민지의 내적 모순에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술하고 있으며, 그러한 점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동지적 관계라는 말 대신에 협력적 관계와 같은 말을 썼으면 오해를 피해갈 수 있었을까? 어감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비난은 똑같이 쏟아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표현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서술한 것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을 비난하고 멸시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며, 그로 인해 일본의 죄악상이 감춰지는 것도 아니다.

두 번째로 강제 연행과 매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정신대는 노동력 확보를 위해 국가가 동원령을 내려 끌고 간 것이며, 위안부는 그와 별개로 진행된 사안이라는 점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그래서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기구 이름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라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위안부는 드물게 강제로 연행하거나 자발적으로 지원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업자들이 중간에서 감언이설로 꼬여서 데려갔다. 일본 사람들이 위안부는 강제성이 없었으며, 돈을 받고 매춘에 종사한 여성일 뿐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는 근거이기도 하다. 형식상으로는 업자들이 데려간 것이 맞으며, 일본 군인들이 돈을 내고 위안부의 성을 산 것도 맞다. 이에 대해 박교수는 국가와 군대가 위안부 여성을 필요로 해서 업자들에게 요청을 했으며, 위안소의 관리 및 위안부들의 이동에 직접 관여를 했으므로 일본이 국가의 책임을 피해갈 수 없으며 마땅히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고노 담화에서 일본도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박교수는 위안부가 강간과 (강요된)매춘의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으며, 강간적 매춘 혹은 매춘적 강간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박교수는 아시아여성기금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하며, 이 기금을 격렬하게 반대한 정대협과 결정적으로 대립지점을 형성한다. 박교수가 보기에 이 기금의 성격은 국가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며(국가가 운영하고 90% 정도를 국가재정에서 부담했으므로), 보상금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반해 정대협은 민간 주도의 위로금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어로 ‘償ぃ金’이라고 된 표기를 해석함에 이어 박교수는 분명히 보상금이고, 영어로는 속죄의 의미를 갖는 atonement로 표기되는데도 정대협이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일부러 위로금이라고 의미를 깎아내렸다고 주장한다.
현재 정대협은 일본 의회의 법률 제정에 의한 배상을 주장하고 있으며, 박교수는 법률 제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계속 이러한 주장에 매달릴 경우 위안부 문제는 영영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박교수의 주장은 입법을 대신해 일본 정부가 추가 보상을 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원자 단체와 위안부 당사자 특히 다른 의견을 가진 위안부들도 참여시켜 합의를 끌어낸 후 전 세계인이 보는 데서 사죄와 보상을 실시할 것, 그리고 사죄의 내용에는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식민지배로 일어난 모든 문제(3.1운동 피해자, 관동대진재 피해자, 징병 피해자, 고문 피해자 등)에 대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이 책에서 쉽게 동의가 되지 않았던 부분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하지만, 그것을 ‘국가범죄’로 정의하기는 힘들다는 부분에서였다. 일본군이 위안소를 기획하고 관여한 것은 맞지만, 공식적으로는 모집 과정에서 사기나 협박을 금지하고 위안소에서의 폭행이나 강간을 금지하고 있었으므로 국가범죄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은 지나치게 형식논리에 갇힌 듯하다.

마무리를 하자. 박교수는 정대협 등 위안부 지원자 단체들의 ‘정의의 독점’에 대해 우려한다. 자신들의 주장에 맞는 목소리만 남기고 다른 목소리는 소거시키는 것-그래서 나눔의 집에서 나와 사는 할머니가 있는 것처럼-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선택적으로만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해결을 어렵게 하고, 할머니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와 권위를 다지려고 하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지금도 미군을 위해 존재하는 기지촌이 위안소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 고민해야 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주고 있다. 더 이상은 힘들어서 이만!

신은실,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사태를 바라보며

<제국의 위안부>를 읽은 것은 책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발터 벤야민과 기억의 정치학으로 석사 논문을 썼던 나에게 전쟁과 국가폭력, 생존자들의 목소리와 증언은 중요한 관심사였다. 논문 막바지에 이를 무렵, 뒤늦게 발견한 책들을 통해 피해/가해의 경계, 그리고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기억이 단일한 것이 아니며 젠더가 그 비균질성의 핵심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공부를 더 진전시키지 않았고 그 이후 떠난 인도 여행을 계기로 전공을 인류학으로 전환해버렸다.

영국에 와서 두번째 석사 논문을 쓰던 때, 내 주제는 재난과 불평등이었다. 지진이나 허리케인 같은 자연재난에서부터 내전등의 정치적, 사회적 위기의 순간 혹은 에볼라와 같은 질병에 이르기까지 ‘재난’ 이라고 불리는 많은 극단적 상황들은 우리가 안정적이라고 믿어왔던 사회의 질서를 정지시키거나 파괴하고 때로는 (다양한 목적에서의) 군사적, 인도적 개입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우리가 위기나 재난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상황이 사회적인 약자들 (특히 여성과 빈곤층)에게는 이미 상례였으며, 많은 경우 여성들은 중층의 고난에 직면한다. 많은 현장연구들은 재난상황이나 난민캠프 등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약자, 특히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착취의 문제를 지적하는데, 일례로 대지진 이후 아이티의 대피소에서는 구호물자로의 접근과 분배에 대한 통제력을 가진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성을 댓가로 요구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것은 여성에 남성에게 종속된 사회에서는(나는 지구상의 모든 사회가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들이 여성을 그저 ‘무력한 피해자’로만 위치짓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은 그 안에서도 갈등하고 협상하며 연대를 만들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혹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종종 울지 않을 수 없었지만, 또한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분노와 슬픔이 나와 그 여성들을 이어주고 있다고 느꼈다. 그것은 오에 겐자부로가 대담에서 ‘낚시바늘에 걸려 버둥거리는 물고기의 고통’ 에 대해 말했을 때의 인상과 종종 겹쳐진다.

아감벤은 그의 책, <아우슈비츠의 잔여들>에서 바로 그러한 잔여들에 대해 말했다. 진정한 증인은 살아남은 이들이 아니라 바로 죽어간 자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죽은자도 산자도 되지 못했던 ‘무젤만들’ 혹은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언어조차 갖지 못해 의미없는 소리들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던 어린아이, 후르비넥이라고 말한다. 그 고통은 ‘홀로코스트 산업’ 이라고 불릴 정도로 거대화된 추모의 형식 속에서가 아니라, 미국의 유대뮤지엄에서조차 추모의 자리를 얻지 못했던 소수자들, 국가없는 이들의 존재를 통해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침묵’의 형식을 통해 들려온다.

나는 이런 논의가 과거와 현재의 고통을 대하는 아주 ‘상식적’ 인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 이라는 단어는 종종 모든 것을 삼킨다. 박유하 교수의 책을 ‘안읽어봐도 뻔하다’ 며 비난하는 이들의 말들에, 과거사를 사과하라며 다짜고자 식사자리에서 일본 여학생들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한 한국 남성 유학생에게(같은 기숙사엔 일본 남학생들도 살고 있는데 왜 그는 여학생들에게만 그런 짓을 했을까),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간 무고한 소녀들’ 에 관해서만 말하는 언론에, 그리고 박유하 교수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욕설을 퍼부었던 이들에게, 다시 한번 깊은 분노를 느꼈다.

나는 운이 좋게도 공부하고 여행했던 여러 나라들에서 좋은 일본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 중에는 조심스럽게 한국인들은 일본을 싫어하느냐고 묻는 이도 있었는데, 몇 해 전의 나는 그 친구에게 내가 한국에서 배웠던 대로 “위안부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소녀들이었다고!” 라고 말했었다. 나는 그 문장을 여전히 몹시 부끄러워하며 마음에 품고 있다. 그들 또한 내가 그러했듯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과거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친구가 된 이후, 우리는 오에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오키나와 뉴스를 찾아본다. 또한 그 일본 친구들은 나에게 ‘일본제국’의 군인으로 죽어야했던 조선인 병사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내주고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조선인 원폭 희생자들의 추모비를 ‘굳이’ 찾아가 애도를 표한다.

영국에 와서 배운 ‘최상의 것’은 그런 신뢰였다. 심지어 같은 전공 안에서도 입장은 천차만별이고 출신 국가도 문화도 다른 이들은 종종 논쟁이란 이름으로 부딪혔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우리가 대화할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선의를 의심하지 않고 악의를 과장하지 않아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이런 누구나 동의하는 전제들이 있었다. 안봐도 뻔한 것이 아니라, 낯설고 불편해도 듣고 질문하고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안타깝게도 나는 이 문제에 ‘지나치게’ 열정적인 이들이 박유하 교수가 연구를 계속하면서, 일본인/한국인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쌓아온 경험과 시간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제 처음으로(어쩌면 당분간은 마지막일지도 모를) 박유하 교수의 세미나에 다녀왔다. 전공은 다르지만, 나 역시 어디에서건 들리지 않은 목소리들을 들으려, 여성들의 말을 기록하려 애쓸 것이다. 남성들이, 국가가 원하는 서사가 아닌 우리들의 말, 우리들의 이야기를.

지난해 노벨상을 수상한 알렉시예비치의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는 전쟁을 경험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자신이 얼마나 예뻤는지 혹은 무서웠는지를 말하는 여성에게 그녀의 남편은 “내가 당신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얘기해. 얘기하다 또 울지 말고. 예쁘고 싶었다느니, 긴 머리를 자르고 엉엉 울었다느니, 그런 쓸데없는 여자들 얘기는 제발 좀 하지 마.” 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을 알렉시예비치는 “나는 기념비들만 가득한 과거의 사막에 뚝 떨어지곤 했다.” 고 묘사한다. 나는 기념비들만 가득한 사막에서 ‘여자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 페이스북에 글을 거의 쓰지 않지만 이렇게 쓴 건, 박유하 선생님께 건강하시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후속 연구들을 보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그건 아무래도 이 폭풍이 지나간 이후가 되겠지요. 여튼, 건강하세요!

Samuel Lee, 같은 책을 읽고도 정 반대의 생각을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Samuel Lee

1월 22일 ·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팰로앨토 ·

[제국의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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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을 읽고도 정반대의 생각을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나는 이미 여러 차례 내 블로그와 페이스북 게시판에서 이 소름 끼치는 [마녀사냥을 멈추라]고 호소했다. 2016년 벽두부터 또 [박유하 교수 9천만 원 배상판결], [피해 할머니 20억 회유] 등의 마녀사냥이 이어지는 한국 온라인 뉴스를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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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국의 위안부]를 읽지 않았다면 나도 어쩌면 마녀(?)를 향해 돌을 던지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사실 내가 [제국의 위안부]를 굳이 읽은 이유는 마녀(?)에게 바로 즉사할 짱돌을 겨냥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만들어 읽었다. 식상하고 따분한 이야기로 시작한 [제국의 위안부]를 인내심을 가지고 읽고 난 뒤 내 생각은 180도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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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시장바닥 쌈박질 수준의 원색적이고 선동적인 뿔난 빨갱이 때려잡자는 수준의 반일이야기만 접하던 나에게 [제국의 위안부]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일찍이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문제를 이처럼 차분하고 준엄하게 아프도록 지적하고 설득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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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을 입학 한지 2달 반 만에 5.18 최초의 희생자인 이세종 선배의 무참한 죽음 앞에서 금마 7공수에게 잡혀 근 5달에 걸친 불법 감금과 상상할 수 없는 구타와 고문을 당했던 사람이다. 이미 쓰여진 조서를 마치 내가 진짜 그랬던 것처럼 찢어지고 깨진 내 살과 뼛속에 녹여 버리려는 광기를 어찌해볼 도리없이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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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전라도 학생들을 선동하여 학생소요를 일으킬 목적으로 서울에서 김대중에게 50만 원을 받아 전라도 대학에 위장 입학했다”는 게 골자인 그 조서는 살인마 전두환이 대통령이 된 10월까지도 외우질 못해 그들의 조작은 무위로 끝나고 나는 살인마 전두환이 베푼 대국민 화합 차원으로 풀려나 망가진 몸을 이끌고 보안대 인후 공사 정문에서 내 어머니에게 인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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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를 읽으며 1980년 그 투라우마가 떠오르는 것은 차분하고 논리적이고 냉철하게 일본의 잘못을 지적해 가는 [제국의 위안부]를 일본의 앞잡이라 무고하는 꼴을 보기 때문이리라. 그에 그치지 않고 [일본에게 돈을 받았네], [20억으로 회유를 했네] 하며 한국의 사법부까지 한통속 장바닥 개싸움을 벌이는 꼴을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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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은 내가 느끼기에 상식적이고 양심적인 사람들까지 온갖 괴변을 동원해 가며 마녀사냥에 동참하고 있다는 게 슬프게 만든다. 그것은 내가 두 문단이 넘어가는 글을 써보면 한줄도 읽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소설을 만들어 댓글을 다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되는 점도 있다. 마치 모든 한국인이 정신과적인 문제를 가진듯이 말이다. 어쩌면 남의 글 한 문단도 읽어줄 여유가 없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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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한국인에게 적개심을 품고 언젠가 살인마 전두환을 비롯해 한국이 이 지구 상에서 사라질 그 날을 내 눈감기 전에 꼭 보겠노라는 심정으로 한국땅을 떠났으나 2003년 5.18 민주화 유공자로 한국이 화해를 청해오고 살인마 전두환이 권좌에서 내려온 뒤라 다시 한국과 화해를 시작해 오며 페이스북상이지만 감 놔라 배 놔라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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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을 상대하는 정치가나 딴따라들에게는 그리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온 정신을 모으고 자료를 구하고 하나하나 확인해 보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어느 길이 바른 문제 해결인가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나 같은 허접스러운 학문을 하는 사람도 미국에서 분에 넘치는 대접과 보호를 받는 데 국가의 도움도 없이 자기 혼자 마련한 [제국의 위안부]라는 연구 성과를 마녀사냥으로 뭉개버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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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유하(Park Yuha) 의 [제국의 위안부]에서 이런 외롭고 처연한 돌아봄에 분명히 일본의 지성들이 바른 답을 하리라 믿는다. 다시 한 번 이야기 한다. 한국의 원색적인 선동에 길든 인생 들이여, 제발 ‘마녀 사냥’을 멈추고 차가운 가슴으로 한국의 미래를 생각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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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훈, 언론의 자극적 제목에 넘어가 화만 내고 싶은 사람들

 

김남훈

December 30, 2015 ·

오늘자 CBS 라디오 ‘박재홍의 오늘하루’. 한 해를 정리하는 10대 이슈 중의 하나로 나는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기소 논란을 뽑은 것이 사전 녹음을 통해 방송된다. 타이밍이 얄궂다.

이 책은 결코 일본 극우들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책이 아니다. 난 이 책을 다섯 번 읽었고 박 교수를 세 번 만났다. 수 백 페이지에 걸쳐서 수십차례 이상 일본군과 일본정부의 ‘책임’에 대해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위안부의 모집과정에는 각종 기만,폭력,허위,납치 등등이 동원 되었을 것이다. 소녀상으로 표현되는 피해자들처럼 말이다. 난 할머니들의 말을 믿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다른 종류의 아픔을 갖고 계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부분에서 이미 나와 않는 사료등을 통해서 예외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기술했을 뿐이다.

‘똥인진 된장인지 찍어먹어야 아냐고’ 내가 좋아하는 이재명 시장이 이 사건을 일축한 적이 있다. 이런 식의 단순화,이분법으로 수많은 진보 및 야권 인사들이 용공 누명을 쓰고 언론의 융단폭격 및 수사까지 받았던 일들은 모두 잊어버렸나보다.

박 교수의 주장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토론, 논문 등등을 통해서 걸러내고 더 정교하게 서로 간의 주장에 대한 논거를 만들도록 해야하는게 맞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더 치열하고 강력한 합의 과정을 통해서 도출된 주장과 증거들로 일본을 압박하고 세계사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 않았을까.

‘난 그런거 모릅니다! 그저 할머니들의 아픔에 같이 눈물 흘리고 화내고 싶을 뿐입니다!’ 라며 예전에 내가 썼던 포스팅에 댓글을 달고 날 페삭한 분들도 계셨다. 비분강개 좋다. 그런데 내용을 알아보지도 않고 언론의 자극적인 제목에 넘어가면 화만 내다가 그나마 ‘같은 편’에게 저주를 퍼부으면 어찌하겠는가.

이 부분을 조금만 파보면 위안부의 숫자 자체에서부터 시작해서 모집방법 심지어 ‘위안부’라는 용어 자체까지 수 십년 동안 한국 내부에서 통용되는 개념도 계속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할머니들의 용기 어린 증언과 함께 많은 분들의 노력 덕분이다. 그리고 그 작업은 더 지속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기소를 통해 그 누구도 이 작업에 힘을 보태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데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불가역적이고 영구적인 ‘합의’를 덜컥 해버렸고 미국이 추인까지 해줬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배홍진, 순결한 피해자와 불결한 피해자

 

배홍진

December 11, 2015 ·

제국의 위안부 – 순결한 피해자와 불결한 피해자

나는 늘 궁금했었다. 취업사기 등으로 인신매매를 당해 위안부가 된 피해자들은 대중의 자연스런 동의하에 성노예라 불리기도 하는데, 똑같이 인신매매를 당해 매춘을 하게 된 여성들은 어째서 대중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지금까지 버젓이 매춘부라 인식, 호명되고 있는 것일까. 위안부와 그들(인신매매와 구조적 강제에 의해 매춘부가 된 여성)은 성적착취의 장소로 가게 된 과정과 자유의 박탈, 육체적 학대 등 그 피해 양상이 비슷한데 왜 매춘부는 성노예라 불리지 않는걸까?

여성들이 밤거리를 걷다가 인신매매를 당해 매춘부가 되는 일이 횡행했던 저 80년대,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매춘부를 더러운 년이라 손가락질 하곤 했다. 그건 그들이 피해자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몸이 많은 남자에 의해 이미 범해졌다는, 그런 여성의 몸은 불결한 것이라는 비겁하고 폭력적인 시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린 새로운 편견과 차별을 만드는 경계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족과 국가의 역사로 호명된 피해자 여성의 몸과 호명되지 못한 피해자 여성의 몸을 구분짓고 다른 시선으로 보게 만드는 경계. 만약 매춘부가 피해자임에도 여전히 매춘부라면 위안부 피해자들은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매춘이란 말은 어째서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희석하고 부정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금기어가 되었는가? 역설적으로, 동시에 매춘이란 단어는 어떻게 성노예의 순결한 정체성을 불결함으로부터 지키는 심리적 배제의 기제로 작동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한가지 이상한 코미디. 기지촌 피해자 여성들 중 노인의 연령에 이른 사람들을 이 사회가 공식적으로 기지촌 피해자 할머니들이라 부르는 걸 난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위안부 피해자를 할머니라 부르는 건, 그들의 역사적 비극을 가족주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가족인데, 어째서 기지촌 피해자들은 가족이 되지 못했는가.

오래전 불결(가부장의 시선 아래서)했던 피해자는 어떻게 순결한 피해자가 되었는가? 그리고 그것(인격의 회복)이 역사의 정의라면 어째서 순결한 피해자들은 불결한 피해자들을 타자화하는가? 그 차이를 만드는 이 정의로움은 우리 안의 어떤 괴물인가?

* 이 대단찮은 글을 쓰는데도 스스로 검열하고 사족을 단 말들이 너무나 많다. 약자에 대한 배려는 때로 약자에 대한 담론을 검열하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배홍진, 담론의 독점시장에 대해

배홍진

December 9, 2015 ·

제국의 위안부 – 담론의 독점 시장에 대해.

상품 시장에만 독점기업이 있는 게 아니다. 우수어린 신념과 정의감, 투사적 역사의식이 착종된 사회에선 담론시장에도 독점기업이 등장한다.

역사담론 시장의 독점적 자본주의 기업. 그들의 자본은 살아있는 피해자이고, 그들이 판매하는 상품은 미리 특허를 받아둔 역사의 진실이며, 그들이 교란하는 시장은 역사 담론의 자유로운 교환이 이뤄줘야 할 논의의 장이자, 바로 우리 의식 속 사유의 시장이다.

시장을 독점하는 기업은 경제시스템에서 시장을 추방한다. 진실을 독점하는 담론은, 정의롭게, 사명감을 가지고 진실의 옷에 맞지 않는 인간들을 담론의 지평에서 배제한다.

양한승, 검찰 기소 취하를 바라며

양한승

December 17, 2015 ·

나눔의 집은 학자의 책을 마치 연예인의 실언처럼 취급했다. 학교를 사직하고 나눔의 집에서 봉사할동이라도 시키려 했던 모양이다. 아픈 역사의 기억을 무기로 타성어린 여론매질과 고소장부터 남발한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통념을 바꾼 박유하교수의 연구서 ‘제국의 위안부’는 명예 문제가 아니라 사상이 쟁점이다. 내셔널리즘보다 젠더 입장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에 부합하는 관점이다.
정부 또한 새삼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안다. 하지만 광장에서 무르익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검찰 기소를 취하하고 사법부의 판단 오류를 최소화시켜야 한다. 역사는 법복을 입은 일단의 사람들이 ‘예, 아니오’를 결정하는 성질이 아니다.

배홍진, 오독과 표현의 자유에 관해

 

배홍진

December 5, 2015 ·

제국의 위안부 – 오독과 표현의 자유에 관해..

제국의 위안부 사태는 엄밀히 말해 학문과 표현의 자유의 문제는 아니다. 실상 저자와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가부장적 시스템과 이데올로기, 제국주의와 식민의 문제, 민족주의(저자는 반일과 혐한 민족주의, 비판자들은 일제에 의한 조선인의 차별)와 그 폭력의 문제를 동일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같은 대상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거기서 도출한 결론도 문제해결의 방법론을 제외하곤 그다지 다르지 않다. 다만, 저자는 문제의 맥락을 심화하고 그 외연을 넓혀 그동안 분명 알고 있었으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거나 외면하고 있었던 것들을 상기시키고 있을 뿐이다.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그 지점에서부터 비로소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실 저자와 비판자는 아예 서로 상반되는 적대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한 마디로 표현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오독 혹은 왜곡의 문제란 것이다. 표현 자유의 문제가 되려면 적어도 그 누구들처럼 무궁화회 할머니들을 제외한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은 가짜다, 이 정도까진 얘기해야 한다.(내가 한말이 아니다. 세상에 오독이 범람하여, 이런 구질구질한 사족을 덧붙인다.)

그럼 오독 왜곡의 문제가 어째서 표현의 자유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일까. 어째서 오독이, 오독한 문장을 공권력으로 구속하려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 오독의 주체들은 왜 자신이 표현의 자유를 구속한 건 아니라고 알리바이처럼 깨끗한 손을 내미는 것일까? 고발과 기소는 전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했다고, 마치 그게 정의의 실현인양 목청을 높이며 외쳐대는 것일까? 난 여기서 왜 자꾸 학창시절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이간질하던 얘들이 생각나는 것일까. 제국의 위안부를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세상에 편견과 분노를 일으키더니 그게 학문의 자유를 침탈하는 문제로 번지자, 이번엔 반대로 고발은 할머니들이 했다, 라고 사방팔방 떠들며 학문의 자유는 존중한다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것도 정도껏.
내가 이 상황을 일부러 비틀어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치 친일파의 얼굴을 고발하듯 전면에 나섰던 이들이 정작 중요한 순간에 피해자 할머니들의 얼굴 뒤로 숨어 고개만 삐죽 내밀고 할머니들의 권리야, 어쩔건대, 라고 떠들고 있는 모습은 글쎄, 별로 솔직해 보이진 않는다.

오독 왜곡의 문제가 표현의 자유의 문제를 핵폭탄처럼 터트렸다. 사실 문장을 오독하면 오독한 걸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그러나 이번엔 오독이 맹수처럼 달겨들어 문장을 넘어 책 자체를 잡아먹어 버렸다. 어째서일까? 혹시 그건, 위안부 문제가 지금까지 굳건히 믿어왔던 거와는 달리, 악랄한 가해와 숭고한 피해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고 해결도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이 그 복잡의 해결책으로 단 하나의 깔끔한 정답만을 믿어온 사람들은 단순의 가면 아래서 숨막혀하던 복잡의 얼굴을 누군가 꺼내려 할 때 분노하고 두려워한다. 그때 그들은 단순의 가면을 벗기려는 사람의 몸짓을 극단적으로 과장해서 보게되고, 그 과장된 몸짓이 온 시야를 무섭게 압도하기 때문에 그들은 맹수처럼 달려들어 그 과장의 몸짓을,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신기루를 물어뜯는다. 그 몸짓, 신기루의 뒤편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자신들이 허상 혹은 오독을 물어뜯을 때, 죽는 건 더이상 허상이 아니란 걸 모르고……

때로 오독하는 사람은 자신이 오독한 내용을 두려워 한다. 그리고 그 오독의 내용을 주둥이 수세미로 빡빡 지우려 한다.